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57)
이세계 편돌이-56화(57/331)
56화. 실기 보는 편돌이 (1)
내가 애를 좀 도와줬는데, 도와주고 나니 몸에 혈 같은 게 뚫린 것 같다.
라고 말하려던 도중에 잠깐 정신을 잃었는데, 눈을 뜨니 내가 창가 쪽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입가엔 침이 줄줄 흐르던 채였고 말이다.
날 내려다보는 점장은 할 말이 많은 눈치였으나, 잠시 후 피식 웃고는 짧게 말을 맺었다.
“일단 집 가서 자구, 오후 6시까지만 와. 엄청 지쳐 보인다.”
지쳐? 졸려 보이는 게 아니고?
싶었으나, 비몽사몽간에 알았다 대답하고 집에 돌아와 알람을 맞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5시 반 딱 맞춰서 울려대던 알람을 끄고 나서 든 생각이, 내가 정말 지쳤던 건가? 혈 뚫린 것 때문에?
이걸 편의점 가서 물어보려 했는데, 내부 상황이 뭘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손님이 오지게도 많았기 때문이다.
“34,820원입니다.”
저 멀리의 음료수 진열대까지 손님이 미어터지는 와중이라, 점장은 아예 계산대 두 개를 다 써가면서까지 손님을 받는 중이었다. 말없이 들어가서 계산대 위에 쌓인 물건을 봉투에 담기 시작할 즈음에야 점장도 내가 온 걸 알아차렸다.
“어, 찬이 언제 왔어?”
“방금요. 물건 제가 담을게요, 점장님. 계산하셔요.”
“그냥 앉아 있지. 근무 시간도 아닌데….”
앉아 있고 싶어도 손님들이 테이블 다 차지해서 앉아 있을 데도 없다. 계산대 앞에 늘어선 줄을 슬쩍 바라본 점장은, 잠시 후 미안하다는 듯이 말해왔다.
“…부탁 좀 할게.”
“네.”
어차피 점장이랑 얘기 좀 하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수분크림 바코드를 찍어 눈앞의 민달팽이 수인에게 건넨 뒤, 밀려오는 손님들을 받으며 물었다.
“점장님, 저 몇 시까지 시험 치르러 가면 됩니까.”
“오후 7시. 시험장은 학원지구역 앞이구.”
편의점을 공간이동시키면 가는 데에 3분도 채 안 걸리겠지만, 그러려면 여기 있는 손님들 죄다 내쫓고 문을 걸어 잠가야 한다. 즉, 못 한다.
“지하철 타고 가면 얼마나 걸려요?”
“늦어도 40분 정도? 근데, 찬이는 노선 잘 모르잖아.”
“노선이야 뭐….”
난 내 세상에서도 주소만 알려주면 땅끝마을까지 출장 갈 수 있는 놈이다. 지하철 노선도가 뭐 별거라고….
“찬아, 여기 지하철 별명이 뭔지 알아?”
“뭔데요.”
“지옥마법진.”
“뭔 마법진요?”
“노선도 종이에 베껴 그리면, 진짜로 마법 쓸 수 있을걸?”
실제로 지옥마법이 있는 건 아니고, 노선도가 하도 괴랄하게 생겨 먹은 탓에 지하철 뉴비들이 출근 지옥 겪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지옥마법진이 별명이 됐단다. 듣고 나니 자신이 좀 없어지긴 했다.
“그럼 버스 타면요?”
“힘들 거야. 차 엄청 막힐 시간대거든.”
비슷한 이유로 택시도 못 탈 거라 하고.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묻자, 점장이 시원스레 답했다.
“윤하한테 얘기했더니, 자기가 바래다주겠다 하더라구.”
“아, 그래요? 언제쯤?”
“10분까지 온다고 했으니까… 5분 남았네.”
이러면 오래는 얘기 못 할 것 같다.
“점장님, 짧게 궁금한 것 좀 여쭤봐도 돼요? 아침에 그거.”
“그거? 어… 아, 그거. 뭔지 알겠다.”
손님들 앞에서 대놓고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아 주어 없이 물었다. 아침에 용 꼬마애한테 체질을 쓸 일이 있었는데, 그걸 하고 나니 후에 평소보다 배는 더 잠기운이 쏟아지더라. 이게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시냐.
이거 중요한 문제다. 이따가 실기시험 치르러 가야 하는데, 가서 똑같은 짓 하다가 또 곯아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없지는 않을 것 같아. 같은 직종 이종족들도 비슷한 일 하고 나면 땀 엄청 흘리더라구.”
“그 꼬마애랑 수박 젤리, 두 번밖에 안 썼는데도요?”
“글쎄. 횟수보다는… 찬이 그때 밤샜잖아. 영향은 그게 더 크지 않을까?”
내 몸뚱이가 2회용 스티로폼이라 그런 게 아니라, 밤새워서 피곤한 와중에 그 짓거리를 했기 때문에 더 피곤해진 거라는 게 점장 추측이었다.
“아니면 덜 익숙해서 그런 걸 수도 있구. 따지고 보면, 찬이가 의식하고 해본 건 그게 처음인 거잖아.”
“그렇긴 하죠.”
“몇 번 더 그런다고 찬이가 기절하거나 할 것 같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시험 치르러 가서도 너무 막 쓰고 그러진 않는 게 좋겠다.”
“알겠슴다.”
대충 횟수 제한이 있는 거라 여기면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얘기한 후, 몰려드는 손님들 사이에 윤하 누나가 낑겨 들어오려 하는 게 보였다.
“야, 이찬! 나와!”
그러다 포기하고는 정문 밖에서 날 불러댄다.
“점장님, 저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좀 찝찝했다. 분명 내가 손님 몇 받아서 보냈는데, 다시 둘러보니 아까보다 손님이 더 많아. 이게 사람이 혼자서 다 받을 수 있는 양이긴 한가?
“원래 이 시간대에 손님 이만큼 돼, 찬아.”
“허어.”
“익숙하니까, 찬이는 걱정 말구 시험 잘 치르고 와. 그리구.”
도중에 잠깐 계산을 멈춘 점장이 계산대 밑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어 왔다. 교통카드였다.
“2만 원 채워놨으니까, 가면서 음료수라도 사 먹어.”
“…감사함다.”
뭐라고 거절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냥 받았다. 어쨌든 까라면 까는 게 내 팔자고, 상급자가 시험 잘 치고 오라고 시켰으니 시험 잘 치고 올 수밖에.
고개 꾸벅 숙이고 로비로 나왔더니, 누나가 날 보며 씨익 웃고는 말했다.
“아이고. 이 윤하가, 만점자님 용안을 뵈니 감개가 참으로 무량합니다.”
“누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돼?”
“농담이고, 가자. 너 지각하겠다.”
* * *
밖에 나와, 앞장서 걷는 누나를 따라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 타고 지하철 로비로 내려와서는 캐리어 끌고 다니는 잡상인 보물고블린도 보고, 오크가 개찰구 넘어가려고 끙끙대는 것도 보고….
개찰구 지나서는 기둥에 붙은 노선도가 보였는데, 점장 말대로 뜯어서 내던지면 거대로봇이 소환될 것처럼 생겼다. 이 세상 철도공사는 세금을 대체 어떻게 써먹고 있는 것인가?
“야 이찬, 안 오고 거기서 뭐 해?”
구조가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건가 살펴보려 했는데, 누나가 닦달을 해서 오래는 못 했다. 플랫폼에 도착해 때맞춰 도착한 지하철에 타고, 빈자리 두 칸에 나란히 앉고서야 누나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어휴, 갓 상경한 놈 챙겨주려니 힘드네.”
“갓 상경한 놈? 내가?”
“언니가 그러던데? 너 시골에서 갓 상경한 거라 지하철 노선 잘 모르니까 챙겨주라고.”
이건 또 뭔 소리야?
싶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점장 입장에서는 참 할 말이 없겠다 싶었다. 29살 먹은 놈이 도심지에서 알바를 하는데, 지하철 노선도를 모른대.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된다.
이참에 시골에서 갓 상경한 놈 컨셉을 잡아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누가 마법 본 적 없냐 물어보거든 ‘시골 동네엔 그런 거 없던데요―’ 하고 말면 되니까.
“아냐?”
“뭐… 간간이 트랙터 돌아다니기는 함.”
“그럼 시골 맞네.”
직후 지하철이 출발하고, 그제서야 지하철 내부 풍경이 보였다. 고개 꺾은 채로 손잡이 붙잡고 있는 오크, 노약자석에 앉은 엘프 하나, 드워프 하나. 어째 온라인게임 캐릭터 고르는 화면 같다.
두어 정거장이 꼬박 지날 때까지도 말을 안 하고 있었더니, 누나가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그래서, 기분은 좀 어때. 괜찮냐?”
“내 기분은 갑자기 왜.”
“너 먼 산 보는 게 긴장한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글쎄?”
솔직히, 긴장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이번 실기 조져버리면 다음 시험 때까지 언제 어디로 끌려갈까 조마조마해하며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렇다고 시험 생각을 해보려 해도, 가서 뭘 하게 될지 아는 게 없으니 생각 자체를 못 하겠….
아니지. 어차피 지하철 타고 가게 된 거, 누나한테 이거나 좀 물어봐야겠다.
“누나, 주변에 나처럼 반마법 국가자격증 준비하는 분 안 계셔?”
“어… 제법 있을걸? 나 소속된 길드에도 준비하는 헌터들 몇 있었으니까.”
여기서 덧붙이길, 내가 따려는 반마법사 자격증이 헌터들 사이에서도 최근에 각광받는 자격증이란다. 헌터 정년퇴직 나이가 45세쯤 되는데, 그 전후로 다른 먹고살 길 찾아가려는 헌터들이 하도 많아서라나.
“올해 필기 치르러 갔던 길드원들도 제법 있었거든. 죄다 떨어지긴 했지만.”
“레알?”
“내가 거짓말을 왜 해. 근데 너는 무슨, 가자마자 시험장 마법 풀고 10분 만에 나왔다며?”
“그게 의도하고 한 건 아니긴 한데….”
“그 얘기 듣자마자 든 생각이, 길드 헌터들한테 네 얘기 해주면 다들 뒤집어질 거란 거였는데.”
그러고 나서는 편의점 찾아와서 나도 뒤집어 버릴 양반들이라 따로 말은 안 했단다.
“그건 왜 물어?”
“그분들 중에 실기 준비하신 분 있으면 사례 좀 들어보려고 그랬지.”
“…글쎄? 그건 이찬 네가 듣는다고 별로 도움은 안 될걸. 차라리 필기를 다시 치른다면 모를까.”
“왜?”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차라리 준비를 안 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들 하던데… 야 이찬, 우리 이번 역에서 갈아타야 돼.”
이것만 듣고는 잘 모르겠어서, 지하철을 갈아타며 누나한테 듣는 대로 머릿속으로 정보를 좀 정리해 봤다.
독극물, 그리고 오염된 마력? 그게 뭔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하여튼 화학과 관련된 마법을 해주하기 위해서는 화학 마법에 대해 일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지식‘만’ 쌓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못해도 수개월.
또, 풍력발전소의 풍차가 오작동으로 인해 자기 주변에 태풍을 만들어 낸다 치자. 이 경우에는 전기 마법과 바람 속성 마법 양쪽의 지식이 모두 필요하다. 바람과 관련된 문제인지, 풍차가 오버클럭되어서 생긴 문제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요구 지식량이 2배가 된다. 아니면 양쪽 전문가 다 불러오든가. 한데 이 실기시험이, 이것들 외에도 존재하는 마법 수백 수천 종류 중에 몇 개를 골라서 해주하는 식이었단다. 역대 실기시험들 전부 다.
다음 지하철에 갈아탄 후, 누나가 한마디로 요약해 줬다.
“쉽게 말하면, 당첨 번호 수백 개쯤 되는 로또라는 얘기지. 공부한 게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고.”
“출제위원들이 뭔 정신병자인가?”
“나한테 이 얘기해 준 녀석들이랑 똑같은 말을 하네.”
그 출제위원들이 역지사지라는 고사성어를 안다면 절대 그딴 식으론 시험을 안 낼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런 이유로, 시험 문제로 어떤 마법이 나올지 예상할 바에 차라리 반마법적 능력을 키우는 데에 더 공을 들인다고 한다. 그래, 이게 듣고 싶었다고.
“그걸 어떻게 하는데.”
“별거 없어. 예를 들면… 오염된 드래곤 비늘 붙잡고 몇 시간 끙끙거리거나… 옆에 항마력제 두고 마수 염통 바라본다거나… 마법도 안 걸린 이빨 보면서 뭔 마법이 걸렸을지 분석한다거나.”
그런갑다― 하고 말랬는데, 어째 예시로 든 것들이 다 아는 것들이다. 말을 맺은 누나는 씨익 웃고는 역으로 되물어왔다.
“이찬, 네가 비늘 정화할 때 몇 초 걸렸더라. 5초?”
“허어….”
“네가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그냥 자신감 가져. 네가 이번에 떨어지면, 그냥 이번 분기 합격자 없는 거라 생각하고.”
결국엔 결과가 나와야 알 문제라는 생각이긴 하지만….
낙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까짓거, 그냥 하지 뭐. 날 보고 무지갯빛 사슴벌레를 잡아 오라든가, 뱀파이어 피를 뽑아오라든가 시키지도 않을 거고….
* * *
허나 시험장에 도착해 내용을 확인한 후엔, 차라리 사슴벌레를 잡는 게 편하겠다 싶었다.
[ 어떤 의뢰를 수주하시겠습니까? ]이건 또 뭔 소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