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58)
이세계 편돌이-57화(58/331)
57화. 실기 보는 편돌이 (2)
지하철역 출구로 나왔을 때가 딱 6시 50분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낙관적일 수 있었다.
“이찬, 시험장 어디냐. 아예 거기까지 바래다줘?”
“괜찮아. 여긴 그래도 한 번 와봐서.”
노을이 다 져서 하늘 어두컴컴해지긴 했어도, 간단한 지리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학원 출입구 근처로 가보니, 친절하게 ‘실기시험 200m ↗’라고 친히 안내판까지 세워놓기도 했다.
“여기서부턴 알아서 갈게. 누나 뭐 할 거 있어?”
“딱히? 어차피 너 얼굴 보려고 잠깐 나온 건데, 뭐.”
“아니, 진짜 친구 없음?”
“일이 내 친구인데 평일밖에 안 만나준다. 왜, 불만 있냐?”
이러고 내 옆구리를 찌르고는, 근처 카페에서 시간 때우겠다며 들어가 버렸다. 이걸 눈으로 직접 보고, 시험장 건물에서 접수표 교부받을 때까지도 낙관적일 수 있었다.
허나 시험장이라 적힌 교실 문 앞에 서서는 살짝 덜 낙관적이 되었다. 내부 분위기가 엄숙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자리 잡고 앉은 이종족들이 얼추 스물쯤 됐다. 이 양반들도 필기시험 합격자들인 거겠지. 플라스틱 의자에 한쪽 엉덩이 걸치고 앉은 오크도 있고 책상에 걸터앉은 요정도 있고 다양했는데, 하나같이 뭔가에 몰입한 채였다.
누구는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이고 있고, 누구는 들리지도 않을 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고. 말 붙이겠다고 목소리 냈다간 화려한 시선이 나를 감쌀 것 같아, 얌전히 맨 뒷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러고 5분. 지하철 타고 오던 기억이 주마등으로 느껴질 즈음, 교실 안으로 양복 입은 누군가가 들어와 문을 탁 닫았다. 필기시험 때 봤던 그 뱀파이어 감독관이었다.
“감독관 데카드입니다.”
슬쩍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손가락을 탁 튕긴다. 그러자 허공에서 이삿짐 상자 같은 게 소리 없이 나타나서는 감독관 옆에 툭 떨어졌다.
“시작하기에 앞서, 소지품들을 모두 수거하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종족들이 일제히 일어나서는 각자 소지품들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백과사전 두께의 책이라든가, 지팡이라든가, 오함마라든가… 아니 시발 시험 치는데 오함마는 왜 들고 온 거야?
오함마를 꺼낸 게 드워프였는데, 주변 이종족들은 저 드워프가 시험장 교실에 오함마를 들고 왔음에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감독관도 형식적인 질답만 주고받고 말 뿐이었고.
“마도구입니까?”
“아니.”
“어떤 목적으로 들고 오신 겁니까?”
“심리적 안정.”
“이해했습니다. 검사 후, 시험 과정에 영향이 없다 판단될 시에 돌려드리겠습니다. 5분 정도 소요될 겁니다.”
“검사? 믿을 만해?”
“건물에 대기 중인 대학원생들이 담당할 거고, 장비가 손상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
오함마를 반납한 드워프가 자리에 돌아간 후, 나도 소지품 반납하러 나가서는 박스에 담긴 오함마를 슬쩍 바라봤다. 손잡이 부분에 윤기가 아주 자르르 흘렀다. 저 오함마가 드워프 종족들한테는 단짝친구 토마스 같은 거라도 되는 건가….
내 차례가 됐고, 주머니에서 지갑과 스마트폰을 꺼내 감독관 앞의 교탁에 올려놓았다. 오함마 든 박스에 스마트폰 넣어두긴 좀 그렇잖아.
“흠.”
그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한쪽 눈썹 끝이 미세하게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날 기억하고 있는 듯했지만, 딱히 말은 안 걸더라.
내가 자리로 돌아가서 앉자, 감독관이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시험은, 응시자분들이 반마법 국가자격증을 소지해 업무를 수행할 실무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그 여부를 판단하는 시험이 될 것입니다.”
이걸 듣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일말의 낙관은 남아있었다. 어쨌든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되겠지― 하고 말야. 허나 이후에 감독관이 해오는 말을 들으며, 남아있던 일말의 낙관마저 싹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실무를 준비했습니다.”
뭐요?
이번엔 주변 이종족들도 나와 반응이 비슷했다. 저놈이 대체 무슨 소릴 하려는 거지? 하는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감독관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손을 튕길 뿐이었다.
동시에, 책상 스무 개 위에 태블릿PC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원이 켜진 채였고, 화면 맨 상단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어떤 의뢰를 수주하시겠습니까?]
“이번 실기시험의 응시자 총합 스물. 따라서, 60개의 의뢰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그중 3개의 의뢰를 수주해 완료한 후, 다시 이곳에 돌아오시면 됩니다.”
“이런 및….”
“의뢰처의 범위는 학원지구 시가지. 공개되는 건 의뢰를 마쳐야 할 장소. 의뢰의 자세한 내용 및 난이도는 수주하시기 전까지는 비공개 상태입니다. 응시자분들 간의 다툼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쉬운 거 맡겠다고 멱살잡이할 걸 방지하겠다는 소리 같았는데, 감독관은 당장 자기가 멱살 잡힐 소릴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주의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시험 도중 일체의 폭력을 포함해 범죄로 간주되는 행위, 의뢰자를 제외한 이종 및 동종과의 접촉, 여기엔 응시자분들 간의 접촉도 포함입니다. 비인가 마도구의 사용, 컨닝, 대리시험, 장소이탈 등의 행위가 금지됩니다. 적발 즉시 실격 처리되며, 차후 3년간 모든 국가자격증 시험에 대한 응시 자격이 박탈됩니다.”
들으며, 기분이 점점 비관적이 되어갔다.
“말씀드린 주의사항을 어겼는가, 그 여부는 배부된 태블릿PC에 설치된 기능에 의해 판단될 것이며… 말씀드린 주의사항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어떠한 수단을 쓰셔도 무방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후, 감독관은 시험장 내부를 슥 둘러보며 물어왔다.
“이외의 질문사항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다 듣고 어이가 터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어느 누구도 미동이 없다. 그래서 내가 손을 들었다. 누군가는 물어봐야 할 내용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씀하십시오.”
“의뢰라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맞죠?”
자격증을 따야 실무를 볼 수 있을 건데, 자격증을 따고 싶으면 실무를 보래. 이거 순서 거꾸로 된 거 아니냐?
붉은 동공으로 날 뚫어져라 바라보던 감독관은, 가까운 책상 위의 태블릿에 한번 눈길을 주고는 말을 이었다.
“응시자분들의 능력을 고려해 구성한 의뢰들이니,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제야 시험장 안에 안도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이외의 질문사항 없으십니까.”
“내 오함마는?”
“로비 1층의 휴게실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이외에는 없습니까?”
하나 있긴 한데, 이건 따로 물어봐야 할 것 같고. 나 말고 다른 이종족들은 슬슬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지, 태블릿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아무 말이 없다.
정적 속에서, 감독관이 시계를 슬쩍 확인하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현재 시각 7시 8분. 실기는 10시 10분까지 진행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손을 튕기니, 교탁 위에 탁상 전자시계 하나가 나타나서는 알람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응시인원 중 대다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쳐나갔으나, 난 자리에 가만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감독관과 나만 남았다. 교탁 옆 의자에 앉으려던 감독관이 날 발견하고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을 걸어왔다. 나 못 봤으면 내가 말 걸려고 했다.
“안 가십니까?”
“그… 아까 질문사항 있냐고 물어보셨잖습니까?”
“그랬습니다.”
“여쭤보려고 말 꺼내려고 했는데, 그냥 맺으시더라고요.”
따로 물어보려고 일부러 늦장 부린 거긴 하지만, 저 양반이 내 마음을 읽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살짝 눈을 크게 뜬 감독관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고는 내게 물었다.
“질문사항 있으십니까?”
“이 PC에 설치된 기능이란 게, 혹시 마법이에요?”
이 질문에 감독관은 대답을 안 했다. 이게 대답인 줄 알기로 했다.
* * *
지하철역까지 나와 태블릿PC를 확인했다. 우측 상단의 시간이 7시 12분, 화면에 남은 의뢰 수는 47개.
회색 글씨가 되어버린 의뢰들이 1번, 3번, 9번… 듬성듬성이다. 뛰쳐나갔던 다른 응시자들이 슬슬 의뢰를 고르기 시작한 듯하고, 저마다 나름대로 기준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이 중에 뭔가 고르긴 해야 할 텐데, 나로서는 뭘 골라야 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기준을 정하기는커녕, 의뢰 장소랍시고 달랑 적힌 것조차 이런 식이어서 그렇다.
[ 레소 포르헤 ]이름은 간지가 철철 넘쳐흐른다. 흐르는데, 대체 뭐 하는 가게냐. 재즈 카페? 꽃집?
장소만 달랑 적힌 걸 이해를 하려면 할 수는 있다. 정보 더 적힌 거 보고 ‘어? 이거 나한테 좀 어려워 보이는데?’ 싶으면 아무도 그거 안 하려고 들 거 아냐. 더해서, 이 세상 이종족들이라면 이것만 봐도 조금 정도는 유추가 가능할 테니 이렇게 해놓은 걸 테고….
허나 이건 그놈들 사정이지,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사안이었다. 나는 시골 촌놈이라 이 세상 고유어를 잘 몰라요. 지나가는 행인 붙잡고 여기가 어디냐― 물어보고 싶어도 그것도 못 한다. 접촉 금지라잖은가.
그러니 상식 딸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짓이래 봐야 하나뿐이었다. 아무거나 찍고, 쉬운 거 걸리라고 하늘에 비는 거.
난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한다. 29년 살면서, 하늘에 빈다고 하늘이 내 기도 들어준 적이라곤 단 한 번도 없었어.
“한번 보자….”
도보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태블릿PC 화면을 바라보며 감독관이 한 말을 되새겼다. 주의사항을 어겼는가의 여부는, 태블릿PC에 설치된 기능이 판단한다.
더해서 주의사항을 위반하지만 않으면 뭔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했고. 헌데, 이 PC를 조작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은 내가 들은 기억이 없단 말이다.
그게 해선 안 될 짓이면 말 한마디 더 하면 될 일이지, 반마법 자격증 따러 온 놈들한테 구태여 말을 안 할 리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태블릿PC 뒷면을 손바닥으로 슥 쓸어내렸다.
이후, PC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우자고 마음먹은 건 주의사항 위반 적발하는 마법 하나. 그 외에 다른 마법들도 걸려있던 건지, PC가 여전히 일그러져 보이긴 했지만….
이러면 내가 지우려던 마법이 제대로 지워졌는지도 알 수 없다. 확인하는 방법도 하나뿐이다. 가드레일을 박차고 일어나, 누나가 시간 때우러 들어갔던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들어가서 둘러보니, 누나가 창가 자리에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쪽쪽대고 있는 게 보였다. 바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누나.”
“앗, 깜짝이야… 아니, 너 여긴 왜 돌아왔어?”
실기 치르러 간 놈이 20분도 안 돼서 기어 나왔으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설마 탈주했냐?”
“그건 아니고, 이거나 한번 봐주라.”
태블릿PC를 건네며 말했다. 의뢰자 외의 이종, 동종과 접촉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완벽하게 위반하는 행위다. 내가 마법을 제대로 못 지웠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오겠지….
누나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PC를 집었고, 화면에 경고문이 뜨거나 PC가 터지는 일은 없었다. 의뢰가 가득 적힌 화면을 위아래로 슬라이드하던 누나가 물었다.
“이건 왜 만져보라는 거야?”
“…실기 목적이, 실무능력을 파악하는 거라길래….”
“?”
“실무 좀 해봤지.”
누나 앞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뭐라도 해볼 수 있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