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64)
이세계 편돌이-63화(64/331)
63화. 실기 보는 편돌이 (8)
감독관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중간부터 반쯤 흘려들었다. 큐브 맞추는 게 재미있어갖고. 그래도 큐브 맞추라는 거 맞췄으니까 이제 야간알바 뛰러 가도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뭔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내가 건넨 큐브를 뒤집어보는 감독관 표정이 더없이 진지했기 때문이다. 쌍심지를 세운 채로 수십 초를 큐브만 말없이 노려보고 있길래, 내가 먼저 물어봤다.
“혹시 문제 되는 거 있습니까?”
“…아뇨.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손을 뻗어온다. 태블릿 PC를 건네자, 받아 들어 사인하고는 교탁 밑에 집어넣더라. 이후, 무심한 어투로 내뱉듯이 말해왔다.
“합격입니다.”
“진짜요?”
“혹시 더 할 말 있으십니까?”
“어… 와, 신난다?”
궁금한 게 없지는 않다. 가령, 시험을 왜 이따위로 냈는가, 실습용 교보재로 시험을 치르게 한 의도가 무엇인가, 태블릿 PC에 내가 장난질 좀 쳐놨는데 확인 안 해보셔도 되냐….
근데 솔직히 이젠 내 알 바 아니잖아. 내가 인강 일타강사도 아니고, 이미 합격한 시험에 의문 가질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으니, 감독관이 자기 할 말을 늘어놓았다.
“자격증 및 합격 관련 서류는 2일 이내로 배송되겠지만, 자격의 실효는 명일 오전 0시부터 이루어질 겁니다. 따라서, 3시간 10분 뒤부터는 이 주의사항들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주의사항요?”
“첫째, 자격과 관련하여 타 이종족에게 손해를 입히고 형을 확정받는 경우. 둘째, 자격증을 타 이종족에게 대여한 경우.”
이건 들으면서도 별로 걱정이 안 됐다. 야간편돌이 하면서 그럴 일이 뭐가 있겠어.
헌데 다음 내용들이 좀 많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 분기 국가에서 지정한 기준의 업무량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자격의 취소 및 1년간 자격정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지막 주의사항은 차후에 따로 전달될 테니, 지금은 염두에만 두십시오.”
국가에서 지정한 기준의 업무량은 또 뭔데. 나 나랏일 하게 되는 건가?
“외에 자격을 보유함으로써 얻는 혜택에 관한 것은, 자격증 수첩의 항목을 참고해 주십시오.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만….”
“이거 혜택도 있습니까?”
버스비나 지하철 이용비 할인받을 수 있나 싶어 물었는데, 내 말에 감독관이 팔짱을 끼고는 무미건조한 어투로 답해왔다.
“…예를 들면, 저와 함께 일하는 것 정도가 있겠군요.”
“네?”
그게 왜 혜택이야. 되물었으나 감독관은 대답을 안 했다. 대신 내가 맞춰놨던 큐브를 집어 만지작거리며 딴소리를 해댔다.
“이 교보재는 작년도 제 휘하 학부생에게 주문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걸 주문했을 때의 제 의도는 ‘40분 내로 절대로 풀 수 없는 구조의 퍼즐’을 만드는 것이었고.”
“어….”
“그 학부생은 작년에 졸업시켰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합격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보재를 당신에게 건넨 의도는, ‘얼마나 빨리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포기할 수 있는가’였습니다만….”
손바닥 안에 굴리던 큐브를 교탁 위에 툭 던지고는 마저 말을 이어온다. 이걸 말할 때의 어투는 여태까지의 무미건조한 어투와는 달리, 호기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지금 상황은 제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군요. 솔직히, 감탄하고 있습니다.”
이 뱀파이어 진짜 싸이코패스인가?
“딴소리하는 것 같아 죄송한데요, 그런 걸 왜 시험으로 내시는 겁니까?”
“안 될 일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나도 공감한다. 내가 이걸 판단을 못 해서 내 회사는 안 망하겠지 하고 미련하게 버티다 개백수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경우가 좀 다른 게, 국가자격증 실기시험이잖은가. 필기 합격하고 여기까지 와서 ‘이거는 내가 못 하겠소’ 하며 포기할 수 있는 이종족이 많을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계를 인정할 수 있다면, 실무에서도 안 될 일을 붙잡고 비효율적으로 굴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역시 싸이코패스 맞는 것 같다.
“물론 당신에겐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걸요?”
“저와 함께 일할 의향이 있냐는 얘깁니다. 조교수 발탁은 제 권한과 인맥으로 해결 가능하고.”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감독관은 다시금 자기 할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부교수 승진에는 최소 5년 정도 소요됩니다만, 당신이 지금 보여준 능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조기 진급도 가능할 겁니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실적을 쌓는다면 정교수 승진도 큰 무리 없이 이루어질 테니… 8년 정도 걸리겠군요.”
아니, 이건 또 뭔 소리야….
“바라는 대우가 있다면 지금 저와 상의하시면 되고, 이후에는… 세상이 결정해 줄 겁니다.”
“저기요, 말은 감사한데….”
“감사할 필요 없습니다. 가능성 보고 이야기하는 거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말은 고맙다. 이건 진심이다. 허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가 하나 있다.
“제가 고졸인데, 교수를 어떻게 해요.”
“…아니.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왜 고졸입니까?”
대졸이 아니니까 고졸이지, 그걸 굳이 물어봐야 아냐?
고졸도 보통 고졸이 아니라, 납골당 스켈레톤만 봐도 일단 놀라고 보는 세상물정 전혀 모르는 고졸이기도 하다. 감독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길래, 내 용건을 말했다.
“말씀 도중에 죄송하지만, 슬슬 가봐도 될까요?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어떤 일 말입니까.”
“알바 가야 돼갖고.”
* * *
감독관은 한층 더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교수직 권유받은 직후에 한다는 소리가 알바 뛰러 가야 한다는 말이니 어이가 없을 만도 하겠지.
허나 감독관이 날 붙잡거나, 더 말을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때마침 몸에 검댕 가득 묻은 드워프 하나가 시험장으로 걸어들어왔기 때문이다. 얼굴은 숯검댕이라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등에 짊어 멘 오함마가 아까 봤던 그 오함마였다.
드워프가 말했다.
“야.”
“예. 말씀하시지요.”
“조뺑이 깠다.”
저 드워프도 시험 내용에 불만이 많았나 보다. 드워프를 가만히 바라보던 감독관은, 내게만 들릴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가보셔도 좋습니다. 지금은요.”
어미가 좀 찝찝하긴 했지만, 가라길래 밖으로 나왔다. 학원 입구로 걸어 나오는 동안 다른 응시자를 맞닥뜨리거나 하지는 않았고….
지하철 타고 돌아가는 동안에도 딱히 별일은 없었다. 노선도가 더럽게 복잡하긴 했지만, 나는 한번 지나온 길은 잘 안 까먹는다. 이것도 회사 다닐 적에 생긴 버릇이다.
편의점 정문 앞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9시 50분이었다. 바로 들어가 점장한테 인사를 건넸다.
“저 왔습니다, 점장님.”
“아, 찬이 왔어? 어때. 시험은 잘 치렀구?”
“합격이라던데요?”
“벌써 결과가 나왔어?”
감독관이 알려줬다고 말했다. 점장도 내가 합격한 사실 자체에는 그리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거봐, 내가 합격할 거라구 했잖어.”
“전 결과는 봐야 안다는 주의여서.”
“그래도 이제 한시름 덜 수 있겠다. 그치?”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뭘 해보려고 딴 자격증이 아니라, 여기서 알바하는데 이게 없으면 큰일 난다고 해서 딴 자격증이니까. 이게 있다고 정말 큰일이 안 일어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점장은 이제 걱정 안 하는 것 같으니, 나도 사서 걱정 안 하련다. 안쪽 창고에서 유니폼 갈아입고 나오는데, 점장이 아직 카운터 안에 있었다.
“퇴근 안 하세요? 피곤하실 텐데.”
“피곤하진 않구, 찬이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말씀하셔요.”
“감독관이 합격한 거 직접 알려줬다 그랬잖아. 혹시 다른 얘기도 했어?”
“하긴 했죠. 저보고 교수 할 생각 없냐던데요?”
마침 하고 싶었던 얘기라 솔직히 말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내가 겪는 일들 대부분은, 점장이 아니면 상담할 사람이 없다. 점장은 흥미진진하다는 얼굴이었다.
“응, 응. 그래서?”
“고졸이 교수 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못 하나 보다― 했죠, 뭐.”
“…그래서라기보단, 순수하게 놀라서 말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긴 한데….”
“그냥 못 하겠다는 거 에둘러서 말한 거예요. 이미 아시겠지만.”
감독관은 이것저것 챙겨주겠다는 뉘앙스로 내가 마치 대단한 뭔가라도 해낼 놈인 양 말해왔지만, 난 구두약속, 억빠 둘 다 안 믿는다. 사기꾼이 사기 치는 전형적인 레퍼토리들 아닌가?
사기가 아니더라도 생각 없고. 내가 못 해먹을 일인 걸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나 하는 짓을 보고 ‘아니 그걸 어떻게 해요?’라고 나한테 물어봐도 ‘그러게요?’ 외에는 해줄 말이 없다. 내 몸뚱이가 왜 이런지 나도 모르는데 가르치긴 뭘 가르쳐.
“찬아.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 건데, 교수는 가르치는 게 주 업무가 아닌 거 알아?”
“아, 정말요?”
“응. 주 업무는 자기 분야 연구나 소속 학원 행정업무고, 강의는 학원에서 ‘연구 지원해 줄 테니 애들 좀 가르쳐라’ 하고 시키는 부수적인 업무 같은 거야.”
“고건 몰랐네요. 근데 제가 연구나 행정 같은 걸 잘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랩실 장판 뜯고 새로 깔아달라는 거면 모를까.”
“하긴. 고대어로 논문 쓸 줄 알아야 하니까.”
난 1개 국어 능력자다. 애초에 해당 사항 없었구만, 뭐.
“그럼 교수는 그렇다 치고, 다른 떠오르는 일은 있어?”
“어떤 일요?”
“찬이, 여기서 평생 아르바이트만 할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이걸 점장 입으로 직접 들을 줄은 몰랐다. 말을 꺼내오는 점장은 웃음기가 다소 가신 채였다.
“나는 찬이가 좋지만… 찬이가 떠난다면 말리지는 않을 거니까.”
여길 떠난다라. 나는 여길 떠난다면, 가게 하나 차릴 돈 들고 내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 생각하며 살았는데 말이다. 여긴 이세계잖은가?
사람같이 생긴 게 하늘을 날아다니거나, 네 발로 지들 전용 도로를 달리는 세상이다. 이런 것들에 적응하는 것조차 힘들었고, 오늘 겪어본 바로는 아직도 적응하긴 한참 먼 것 같다. 납골당 관짝들 사열된 거 봤을 땐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으니까.
그래도 만약 적응이 다 되고, 그런 걸 봐도 별 감흥 없이 지낼 수 있게 된다면… 그땐 모르겠다.
점장 말마따나 평생 편돌이나 하며 살 수도 없는 거고, 내 몸뚱이가 이 세상에서는 나름 돈이 되는 것 같으니까. 스윙팬이 2.2m쯤 되는 농구선수처럼 말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아직 적응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고, 이 세상에 대해 알려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지금 그 사람은 여기 있고, 내가 떠날 이유도 없다.
“떠날 때 되면 한 달 전엔 말씀드리겠습니다, 점장님.”
“응.”
고개를 끄덕이는 점장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기사, 나라도 하나 있는 알바생이 알박겠다 하면 기분 좋을 것 같긴 해. 안 그래도 알바생 안 구해지는데.
“그리고 당분간은 생각 없으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셔요. 진짜 안 피곤하세요?”
“안 피곤하지만, 찬이가 들어가라 했으니까 들어가지, 뭐.”
“아, 그럼 가지 마시든가요.”
“싫어. 집에서 파자마 입고 엄청 빈둥거릴 거야.”
이제야 유니폼을 벗고 자기 핸드백을 챙기는 점장. 그렇게 카운터를 나오려다 말고,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내게 물어왔다.
“아 맞다, 찬아. 내일 근무 끝나고 잠깐 시간 돼?”
“되긴 되는데, 왜요?”
“별건 아니구, 지하 좀 한번 같이 가봤으면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