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66)
이세계 편돌이-65화(66/331)
65화. 지하실의 편돌이 (2)
의외로 편의점에서는 장난감을 판다.
작은 편의점들은 구조상 못 그래도, 큰 편의점들은 구석탱이에 요요나 장난감 낚싯대, 아니면 캐릭터 그려진 유아용 놀이세트 같은 것들 간간이 진열되어 있고 그런다. 이외에도 초등학교 앞 편의점이면 TCG 카드를 팔기도 하고. 장소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이 편의점의 공간적 배경이 이세계니, 이세계 꼬꼬마들이 용사놀이 할 장난감 같은 것도 충분히 만들어 팔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생각은 드는데….
“이게 장난감이라고요?”
“찬이네는 저런 거 없어?”
“있기는 한데, 이렇게 리얼한 건 없죠.”
가까이서 직접 만지고 살펴봐도 도저히 장난감 같지가 않다. 칼날 옆면은 알루미늄과 금속 사이에 애매하게 낀 그 감촉이었고, 심지어 검 손잡이 언저리에서는 은은한 달빛 같은 게 새어 나오고 있다.
“이건 도검허가증 딴 애들 아니면 못 갖고 놀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응? 이거 7세 이용가인데?”
말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쑥 뽑아내는 점장. 검 손잡이를 한 손으로 쥐고는, 천장에 대고 거미줄이라도 헤집는 마냥 천천히 저어댔다.
“보다시피 엄청 가볍구, 살상력도 거의 없구.”
“장난감에 살상력이라는 말 쓰는 것부터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치만 레고도 잘못 삼키면 애들 큰일 나잖아.”
“그렇긴 한데….”
두어 번 검을 더 휘젓던 점장은 검을 반 바퀴 돌려, 검날을 꼭 쥔 채로 손잡이를 내게 내밀어왔다. 받아 들어보니 확실히 가벼웠고, 날은 두께에 비해 뭉뚝한 느낌밖에 안 든다. 재질이 당최 뭔지를 모르겠다.
“궁금하면 잠깐 갖고 놀아봐도 되는데.”
“어… 딱히요.”
내가 장난감 갖고 놀 나이는 지났지. 일하러 왔으니 일이나 하련다.
살펴보기에 앞서, 당장 떠오르는 것들을 물었다.
“점장님, 이게 용사 세트라고 하셨는데….”
당장 보이는 거라곤 검 한 자루가 전부고, 설명서고 박스고 아무것도 없으니 구성품이 뭔지도 모르겠다. 이건 점장이 설명해줬다.
“세트 맞아. 검이랑 돌이랑 한 세트.”
“이 돌도 구성품이라구요? 조경협회 스폰 받아서 만들어진 건가?”
“그건 아니구, 이게 정확한 명칭이 빛의 용사 모험 세트거든?”
십수 년 전에 ‘빛의 용사’라는 제목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하나 개봉됐다고 한다. 그게 전 세계 박스오피스 9억을 찍은 명작이라, 명장면을 따와서 제작된 상품들이 이것저것 출시됐다 하고.
이 모험 세트는 그중 ‘빛의 용사가 험악한 산을 올라 산꼭대기에서 검을 뽑아내는 장면’을 모티브로 제작된 상품이라는 것이었다. 어둠으로 뒤덮여버린 세상에서 빛의 용사가 검을 뽑자, 검에서 새어 나온 빛이 온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었다고 하는데….
“검을 뽑아내려면, 검이 어딘가에 꽂혀있어야 되잖아.”
“그렇죠.”
“그렇다고 산꼭대기를 가져다 팔 순 없으니까, 대신 돌에 꽂아서 파는 거지.”
단가와 환경적 요건에 의해 이런 구성이 됐다는 듯하다. 듣고 나니, 이게 어떤 식으로 갖고 노는 건지도 대충 감이 잡혔다.
“그럼 이 검에서 막 빛이 나고 그러는 건가?”
“정확히는 검기가 나가. 세게 휘두르면 큰 검기가 나가구, 빠르게 휘두르면 더 멀리 나가구.”
“검기가 나온다라….”
“갖고 놀다가 충전된 마력 다 떨어지면, 돌에 다시 꽂아서 충전시키면 되구.”
“이 돌이 단순한 장식품도 아닌 거고요.”
“응. 충전기야.”
마저 설명해 준 내용이, 검과 돌이 각각 마석이 하나씩 박혀있다고 한다. 검에 박힌 마석이 마력을 충전해 빛을 방출하는 용도고, 돌에 박힌 마석이 가정용 전력을 마력으로 변환해 저장하는 역할.
“원가로만 따지면, 돌이 검보다 좀 더 비쌀걸?”
“그… 일단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서야 내가 할 일이 뭔지 대충 짐작이 됐다. 검이랑 돌에 박아놓은 마석이 멀쩡하게 작동하는지 테스트하면 된다는 거잖아?
제품 작동 테스트는 회사에서 이골이 나도록 해봤지만, 그게 여기에도 대입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점장에게 말했다.
“일단 제 방식대로 해보긴 할 텐데, 좀 헤매더라도 양해 좀 해주십쇼.”
“응.”
이후 검을 바라보며 내 나름대로 추론해 봤다. 일단, 이건 장난감이다.
마석이나 마력에 대해 내가 쥐뿔 아는 건 없지만, 상식적으로 애들 장난감을 복잡한 구조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A/S도 해야 하고, 대량생산도 해야 하잖아.
그러니 단순하게 만들었다 치고. 단순한 구조의 제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몇 없다. 어디 회로가 끊겼다거나, 부품 문제 생겨서 전력 순환이 제대로 안 되는 거 정도.
그걸 이 검에 대입해 보면 전력이 마력이고, 부품이 마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회로는 뭐에 대입해야 할지도, 있기나 한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그게 끊겼을 것 같진 않다. 검 뿌리 부분에 빛이 나고는 있으니까.
이건가?
“점장님. 이거 지금 스위치 켜져 있는 겁니까?”
“스위치는 따로 없고, 상시 작동이야.”
“그럼 켜져 있다고 치고, 이게 지금 검 뿌리 부분에서만 빛나고 있잖아요. 제 생각엔 이게 출력이 약해서 이런 거 아닌가….”
자주 본 증상이다. 이게 십수 년 전에 나온 거랬으니 문제 생기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닐 거 같고. 자세한 건 마석을 봐야 알 수 있을 텐데, 이건 점장 허락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찬이가 전문가니까, 찬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지.”
“망가질까 봐 그러죠.”
“그건 걱정 말구. 산재 처리 될 건데.”
그럼 무서울 거 없지.
이게 마석이 박힌 검이라 했고, 뭘 박아넣을 곳이라 해 봐야 손잡이 부분밖에 없다. 검 손잡이 밑면을 살펴보니 세로 길이 1cm 정도 되는 홈이 패여 있었다.
매장 구석에 일자 드라이버 팔던 걸 봐두긴 했지만, 이거 하나 열겠다고 포장을 뜯기는 좀 아깝고. 잠깐 생각하다, 지갑에서 안 쓰던 신용카드 하나를 꺼내 홈에 끼워봤다. 딱 맞았다.
그대로 비틀어 열자마자, 뒷면이 뚜껑 열리듯 덜컥 떨어지고는… 어?
―흐하하하! 마침내 해방이…!
“어이 씨, 뭐야 이거!!”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너무 놀랐기 때문이다.
―크아아아….
그러자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지르며 사라져 버렸고, 아지랑이만 남았다. 아지랑이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점장을 바라보았는데, 점장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점장님, 방금 그게 뭡니까?”
“나도 보긴 봤는데… 그게 대체 뭐였을까?”
“점장님께서도 처음 보시는 건가 봅니다.”
“솔직히… 미안, 잘 못 봤어. 워낙 순식간이라갖구.”
“저도요.”
검에 흘러들어온 악령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빛의 용사 애니메이션의 고증이었을 수도 있고.
점장이 이런저런 추측을 꺼내긴 했으나, 그게 말 한마디 마치기도 전에 내 따따블 펀치에 맞아 사라져 버린 탓에 어느 쪽도 확신은 못 하겠단다.
하여 그놈의 정체는 미궁 속에 빠져버렸지만, 최소한 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해졌다. 그놈이 사라진 자리에 새카만 숯검댕이 같은 게 놓여있더라고.
“이게 마석인가 봅니다. 실물로는 처음 보네.”
“응. 맞어, 마석. 변질이 좀 많이 된 것 같긴 한데….”
“원래 이렇게 시꺼먼 것도 아닌가 봐요?”
“우리 세상에도 이렇게 새카만 돌은 석탄 말고는 없어, 찬아.”
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리자 표면이 쩍쩍 갈라지다 부서졌고, 붉은색 보석 같은 게 나타났다. 이게 정상적인 마석인가 보다.
다시 집어넣기에 앞서, 검 손잡이를 바닥에 쿵쿵 찍어 안쪽의 남은 먼지들도 전부 털어냈다. 이것들도 새카맣더라. 이후 마석을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 돌에 꽂자, 이제서야 검 전체로 달빛이 뻗어 나갔다.
마석도 오래 방치하면 상한다는 걸 알 수 있게 된 유익한 실습 시간이었다. 근데 말이다.
“점장님. 전문가분들 매주 온다고 하셨죠.”
“20분 있으면 딱 1주일 되지.”
“왜 전문가분들 왔다 갔는데도 이렇답니까?”
난 이게 진짜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다. 나 이전에도 전문가들 자주 다녀갔다 했으니, 그 양반들이 어련히 잘했겠지― 싶었다니까?
근데 지금 보니 아닌 거 같다. 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점장이 잠시 머뭇거렸다.
“…매주마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다르기는 했어. 각자 전공하신 분야도 다르구.”
어제 시험 칠 때 봤던 오함마 성애 드워프가 떠오른다. 그 드워프가 공사판 에이스 반마법사일 테니, 각자 전문분야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해.
하지만 납득은 전혀 안 된다. 전문분야고 나발이고, 돈 받았으면 호미로 막든 가래로 막든 이런 일 안 일어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다들 바쁜 거 알고, 정말 문제 생길 때는 야간에라도 와주시니까….”
말을 잇는 점장 목소리에도 아쉬움이 한 줌 섞여 있다.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는 말이 있어 바로 내뱉었다.
“제가 잘하겠습니다, 점장님.”
“응?”
난 받은 만큼만 일하며 살고 싶고, 그렇게 안 하면 욕먹는 게 당연하다고도 생각한다. 남의 돈 벌어먹고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데 점장이 나 일 못한다고 꾸짖거나 나무랄 사람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지금도 전문가 양반들 일 처리로 아쉬워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어투를 봐서는 직접 말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으니까….
이러면 내가 잘해야 한다. 난 점장이 마음에 들고 점장도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만,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지.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고요. 돈 주실 거잖습니까.”
그래도 대놓고 말하면 티 내는 것 같아서 싫고. 날 올려다보던 점장은, 해맑은 얼굴을 하고는 내 허리에 손바닥을 툭 짚었다.
“당연히 더 줘야지. 일 더 맡기는 거잖아.”
“네.”
“대신… 나도 좀 더 좋은 상사가 될게.”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구.”
좋은 상사 얘기는 갑자기 왜 꺼냈대?
점장 따라 창고 계단 올라가며 이걸 생각하다, 창고 문 닫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자기 신경 쓰는 걸 눈치챈 거다. 점장이 머리 회전이 느린 사람은 절대로 아닌데, 사람이 순해서 손해 보는 타입이야.
* * *
이게 내가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는 일이란 것도 알았고, 마지막으로 재계약 협상만 남았다.
“찬이 직함은 뭘로 하지? 매니저?”
“매장 노동인구가 저랑 점장님 둘뿐인데, 매니저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음… 그럼 부점장?”
“그냥 정직원 해주세요.”
편돌이와 정직원.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단어의 조화이긴 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 업무 내용도 창고 정리 한 줄 더 적힌 게 전부라 건드릴 게 없었다.
그리고 근로시간은… 음….
“이건 나중에 알바생 들어오면 얘기하시는 걸로….”
“미안….”
3교대 채워줄 알바생 들어오면 그때 얘기하기로 했다. 법무사에서 혀를 내두를 기이한 계약구조인 것도 맞지만, 나는 딱히 불만 없었으니까.
마지막으로 급여 항목. 내가 여기 오게 된 근본적인 이유인 만큼, 말해주는 점장도 목소리가 진지했다.
“찬이, 첫날에 시급 만 원 준다구 했었잖아.”
“예.”
“그건 기본임금이구, 야간수당, 초과수당, 주휴수당도 지금까지 일한 것들 다 계산할 거야. 창고 정리하는 건 횟수가 매달 다를 테니 따로 줄 거구―”
외에도 이것저것 말해오긴 했는데,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햇볕이 눈에 바로 들어오는 게 평소보다 배는 졸린 것 같어.
“다 합치면 좀 많을 것 같아서, 계산해갖구 나중에 따로 적어둘게. 혹시 더 궁금한 점 있어?”
“그…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응.”
“이 세상은 그런 수당들 전부 다 챙겨줍니까?”
묻자, 점장이 고개 크게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럼 안 줘?”
“…어….”
“찬이 덕분에 밤에 잘 자고 있구, 당연히 줘야 될 돈이니까 당연히 줄 거야. 다른 건?”
“…그거 말곤 딱히 없슴다. 사실 지금 졸려갖고.”
“그럼 이 부분은 연필로만 적어두고, 나중에 찬이가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줄게. 괜찮아?”
“옙. 저 들어가겠습니다.”
“응. 수고했어, 찬아. 잘 자구.”
이후엔 점장이 편의점 옮겨줬고, 밖으로 나와 기지개 한번 켠 뒤 집으로 향했다. 5분 거리를 걸을 뿐인데, 아까 점장이 했던 말들이 한 번, 두 번. 몇 번이고 떠오르더란다.
‘그럼 안 줘?’
보통은 안 준다. 본인이 직접 챙겨야 한다. 나도 사회생활 10년간 오만 일 다 해봤고, 일 시작하거든 맨 처음 하는 짓이 임금계산기 두들기는 거였다. 행여라도 뒤통수 맞을까 봐.
말이야 다들 번지르르하게 했었다. 어딜 가든, 사람 급한 곳은 말이 전부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걸로 뒤통수 안 친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헌데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이 바뀐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우리가 언제 그런 말 했냐, 그렇게 퍼주면 우린 뭐가 남냐, 이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 있냐….
‘당연히 줘야 될 돈이니까 당연히 줄 거야.’
말은 공짜다. 점장도 알 거고, 나보다도 더 잘 알 거다. 뒤통수 안 친다, 안심해도 된다, 백날 말해 봐야 결국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것도.
해 온 대로 할 생각이다. 난 내가 믿고 싶은 만큼만 사람을 믿는다. 그래서 아무도 믿은 적이 없다. 믿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어서.
‘대신… 나도 좀 더 좋은 상사가 될게.’
이번엔 믿고 싶다. 그러니 이번엔 나도 좋은 부하직원이 되어 볼 생각이다. 좋은 부하직원이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철칙이 있다.
‘수고했어, 찬아. 잘 자구.’
상사 말 잘 듣는 거. 생각 그만하고 잠이나 잘 잘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