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67)
이세계 편돌이-66화(67/331)
66화. 편의점 꽃가루 주의보 (1)
퇴근하고 들어와서 씻고, 자고 일어나니 9시 반.
일어나서는 출근 전까지 20분가량, 점장이 입금해 준 30만 원을 어떻게 쓸지를 생각해 봤다. 처음에 떠오른 게, 친구 놈들 몇 불러다 술을 한잔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술은 핑계고, 얘기를 좀 해보고 싶다. 친구들아, 내가 편돌이 하다가 정직원이 되어버렸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나는 듣도 보도 못 해 봤다. 편돌이를 정직원 시키려면 연장근로수당, 상여금, 4대 보험에 연차까지 다 챙겨줘야 하는데, 어느 동네 편의점이 미쳤다고 그렇게까지 해줘?
하여 톡방을 뒤지다, 이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친구가 적다.
몇 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톡방 파서 이런저런 얘기들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톡방을 되는대로 뒤져봐도 새로 뜬 메시지가 있는 톡방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 뜬 메시지가 반년 전에 ‘나 결혼한다’라는 내용의… 아니, 결혼? 전전 메시지가 ‘나 여친이랑 헤어짐’, ‘여자 사귀고 싶다’인 놈이 결혼을 해?
한데 이것마저 답장을 한 놈이 없고, 인원을 확인해 봐도 열댓 명가량이던 인원이 다섯 언저리로 줄어든 채다. 다들 먹고살기 바쁜가 보다. 내가 그랬듯이.
이러니 물어볼 친구도 없고, 더 생각해 보니 집합 금지 때문에 애초에 술도 못 마신다. 친구 놈들이 아니면 돈 쓸 사람이 어머니뿐인데, 어머니는 내가 돈 드린다 해도 죽어도 안 받으시는 분이고….
여기까지 생각하고 시간을 보니 9시 50분이 됐다. 어차피 돈이 도망갈 것도 아니고,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하며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불 켜진 정문을 열고 들어가 점장 얼굴을 보자마자… 기분이 몹시 심란해졌다.
“찬이 일찍 왔… 왜 그래? 눈에 뭐 들어갔어?”
“아뇨, 그게 아니고….”
점장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였다. 아니, 여긴 도대체 왜??
“점장님,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라니… 아, 손님. 이 마스크 1+1이니까 하나 더 가져오셔요.”
심지어 점장만 마스크를 쓴 것도 아니었다. 계산대 앞에 줄 서 있는 둘이 각각 드워프와 고블린이었는데, 둘이 마스크 세 개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맨 뒷줄 고블린이 코에 하나, 입가에 하나.
드워프가 마스크 하나를 더 가지러 가는 사이 고블린이 코맹맹한 소리로 점장에게 이런 걸 묻더라.
“사장. 내 규격 마승크 있써?”
“취급은 하는데, 다른 고블린분들께서 전부 사가셔갖구 지금은 없네요.”
“젱장할 고븡링들.”
자아비판으로 화답하고는 나가버렸는데, 난 나대로 찔리는 게 있어 얼른 유니폼 갖고 계산대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점장이 내게 마스크 하나를 건네왔다.
“이건 찬이 꺼.”
“괜찮아요. 제 거 있어갖고.”
“어, 마스크 써야 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제가 알고 갖고 온 건 아니고….”
집에서 편의점 정문 앞까지는 마스크를 쓰고 와야 하니까. 들어와서는 유니폼 갈아입을 때 웃옷에 넣어두고 근무 끝날 때까지 쳐다도 안 봤다. 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얘기를 슬쩍 꺼내자, 점장이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마주치고는 역으로 물었다.
“그럼 찬이도 문 앞까지는 마스크 쓰고 오겠네?”
“네. 그… 저 첫날 면접 볼 때도 마스크 쓰고 오기도 했었고. 그때 기억나세요?”
“응. 그때는 아마… 별생각 없었던 것 같은데….”
눈에 띄긴 했으나, 초봄에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게 희한한 일도 아니고―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단다. 나는 그때 점장 얼굴 보면서 뭔 생각을 했었더라. 구인광고 뒤적대다 미쳐버릴 것 같으니 제발 일 좀 시켜줘라, 였던가?
그 이후로는 마스크 안 쓰고 일하는 해방감을 잔뜩 만끽하며 지내왔는데, 고작 하루 새에 뭔 일이 일어났길래 점장이며 이종족들이며 죄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된 건지….
“꽃가루 특보 때문에 그래.”
“꽃가루 특보요…?”
“응. 여기서 몇 정거장 가면 공원 있거든.”
그 공원에 꽃이 좀 많은데, 날이 따듯해지면서 그 꽃들이 만개해 주변 일대에 꽃가루를 휘날리고 있다는 것. 듣고 나서도 처음엔 이해가 잘 안됐다.
“이 동네 꽃가루가 많이 위험해요?”
꽃가루가 위험할 사람한테 위험하긴 하다. 몸에 안 받는 사람들은 약도 복용한다고 하고, 심하면 과민성 쇼크로 쓰러지기도 한다니까. 근데 그런 사람들이 흔하진 않잖아?
한데 이 동네는 너 나 할 것 없이 죄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당장 쇼윈도 밖에만 봐도 오크는 특대형 마스크, 고블린은 서양 역병의사 것을 뺏어 쓴 듯한 마스크, 엘프는 그냥 마스크. 어째 마스크 안 쓴 놈이라곤 나 하나뿐인 거 같냐.
“밖에 저 이종족들이 죄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지는 않을 거 같고.”
“그러니까… 음….”
설명해주려다 말고는, 계산대 밑에서 손바닥만 한 태블릿PC 하나를 꺼내 올려놓는 점장. 방금까지도 뉴스를 틀어놨던 건지 화면에 곧바로 녹화영상이 떠올랐다.
“역시 백 번 듣는 것보단 한 번 보는 게 낫지.”
“어….”
보자마자 떠오른 게, 그냥 백 번 들려주면 안 되냐는 의문이었다.
[ 오후 2시. 후타바 공원은 보시는 바와 같이, 눈을 뜨고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많은 꽃가루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화면 전체가 분홍색으로 떡칠되어 있어 분간이 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영상에 렉이 걸린 줄 알았는데, 자막이 정상출력되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뚫어져라 쳐다보니 간간이 리포터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보이기는 했다.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렇지. 방독면이며 입고 있는 양복마저 핑크핑크하게 변색된 걸 보고 나서야 이게 꽃가루다 확신할 수 있었다.
“뭔가… 겁나게 많네요. 이러면 알레르기 이전에 숨도 못 쉬겠네.”
“응. 작년엔 이만큼까지는 아니었지마는.”
[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고온 환경이 지속된 데에 더해, 대기 중 오염된 마나로 인해 꽃가루의 양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분석― ]캐스터의 말에 맞춰 화면이 전환되고, 이어서 나온 게… 이걸 뭐라고 불러야 되냐. 핑크색 바오밥나무?
하여튼 추정 20층 높이 즈음 되는 무진장 큰 분홍빛 나무가 화면에 잡혔는데, 생김새와 정황으로 봐서는 벚나무 같았다.
내 상식 속 벚나무와의 공통점이라고는 분홍색이라는 게 전부긴 했지만, 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이 꽃이라 하면 나도 꽃이라고 해야지 뭐 어떻게 해.
[ 예… 전문가의 소견으로는 그, 단기적 이상증상인 것으로 판명하고 있고… 예… 평소에 비염 증세가 있는 분들 경우에 한해서만 외출을 삼가 주신다면…. ] [ 단기적 이상증상이라 하셨는데, 그 기한에 대해 정확히 정해진 바가 있나요? 방역 예정은?] [ 예… 한… 3, 4일 정도… 방역 예정 있습니다… 예…. ]시청 관계자와의 대담 비슷한 느낌으로 영상은 끝이 났고, 점장에게 감상 소감을 말했다.
“꽃도 제 생각보다 좀 큰 것 같고요. 한 20배 정도.”
“그런 것치고는 찬이도 이제 익숙해진 거 같네.”
마스크 쓰는 것 외엔 나랑 상관없는 일 같아서였다.
구청 직원들이 제설차를 끌고 오든, 화염방사기로 지지든 알아서들 하시겠지. 3, 4일 정도의 단기적 이상증상이라 했으니, 내 동네마냥 2년 내리 쓰고 다닐 일도 없을 거 같고.
이후엔 인수인계 차례였다.
“아침에 뉴스 보고 마스크 발주를 많이 넣긴 했는데, 오늘은 딱 평소 물량만큼밖에 없어.”
“그럼 없다고 말씀드리면 되나요?”
“12시까지만. 자정에 윤하가 도매처 들러서 물량 갖고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부터는 정상적으로 팔면… 아.”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내용을 덧붙여온다. 특정 이종족에 맞춰 제작된 마스크 경우에는 사재기해가는 손님이 있을 수 있는데, 개인당 2개 넘게는 팔지 말란다.
살짝 트러블의 냄새가 나긴 했으나, 일단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인수인계를 마친 뒤, 유니폼을 갈아입던 점장이 대뜸 물었다.
“그리고 찬아, 혹시 일하면서 부족한 점 있어?”
“어… 예?”
“왜, 그런 거 있잖아. 복지 같은 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라, 점장이 언급하는 예시를 듣고 나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복지용 카드나 유급휴가 같은 게 떠오르긴 하지만… 두 개 다 이미 받은 것들이다.
“자격증 따는 거 도와주면 그게 복지지, 뭘 더 해주실라고….”
시험장 걸어서 가지 말라고 돈 채워진 교통카드도 주고, 휴가도 줘놓고는 뭘 더 주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허나 점장은 의욕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건 찬이 고용하려면 필요하니까 그랬던 거구, 이건 이거지.”
이렇다고 하니 의도가 궁금해지려 한다. 추측을 한다면 점장이 이게 첫 장사라고 했고, 내가 첫 알바생이고, 직원 뽑는 것도 내가 처음이었을 테니까…?
“그….”
“응? 떠올랐어?”
첫 정직원이라 좀 더 잘해주고 싶기라도 한 건가. 이런 답이 나왔는데, 이걸 말했다간 서로 얼굴 붉힐 일이 될 거 같고. 말을 삼키고 나니 딱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응, 응.”
“…근무 중에 잠깐씩 스마트폰 봐도 됩니까?”
“그야 물론… 엥? 스마트폰?”
편돌이가 근무 중에 스마트폰 보기로 되어있냐?
이게 의외로 난제다. 정답이 순수하게 그 매장 점주의 변덕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곳은 ‘너무 한눈팔다 손님 화나게 하지는 마라’ 선에서 허락해주기는 하지만….
최근 매출이 바닥이다, 혹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다 정말 손님이 화가 났다, 아니면 점주가 마누라한테 바가지를 긁혀서 기분이가 안 좋은 와중에 딱 걸렸다. 기타 등등의 이유로 스마트폰 못 보게 하는 곳이 아주 없지는 않다. 심하면 아예 의자 빼버리기도 하고.
쉽게 말해 유도리에 달렸단 얘기다. 여기에 내 소신 일부를 더한다면, 난 스마트폰 금지가 크게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어쨌든 일하러 온 거잖은가. 고용주가 스마트폰 보라고 고용한 건 아니니까.
남은 소신을 마저 더한다면, 난 점장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당하면 기분 나쁠 짓인 걸 알거든. 이번 건도 내 딴엔 꽤나 조심스럽게 건의한 건데, 점장은 내가 여태껏 본 것 중 가장 어리둥절해하는 반응이었다.
“찬이, 스마트폰 안 보면 밤에 뭐 했어?”
“재고 채우거나 바닥 쓸고 그랬죠. 할 일 없으면 잠깐 쐬러 나가고.”
“그럼 엄청 심심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에 관해 이세계 출신으로서의 장점이자 단점이 하나 있다. 세상천지가 유튜브 각이라는 것이다. 태그 분류가 코미디인지, 스릴러인지는 이종족들 생김새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말야.
“그럴 수도 있겠… 그런가?”
“지금은 좀 물리기는 했는데, 꼭 그래서 이러는 건 아니고요. 그냥… 뉴스 좀 보면 좋겠다 싶어서.”
세상 물정 모르는 게 고민거리고, 해결하는 데에 이만한 것도 없을 거 같아서다. 이유를 마저 밝히자, 날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점장이 태블릿PC를 집어 들었다.
“이 패드, 당분간 찬이 써.”
“아니, 그럼 점장님은 어쩌시고요?”
“나는 집에 중고 하나 있으니까, 사양 말구.”
그럼 그 중고품을 빌려주면 되는 거 아닌가?
허나 첫 직원 복지에 눈이 멀어버린 것인지, 점장은 당장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태블릿PC를 받아들고 나서야 오묘한 표정을 풀고는 미소를 보여왔다.
“이거 말고, 찬이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내 허락 받지 말구 그냥 해. 찬이가 이상한 짓 할 애도 아니고.”
“그럼 담뱃갑으로 탑 쌓거나 라이터로 쥐불놀이하는 건요?”
“어… 진짜 하게?”
“그냥 해본 말이에요.”
파는 물건 갖고 내가 장난을 왜 쳐.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내 옆구리를 쿡 찌르고, 점장은 그대로 손 흔들며 퇴근.
하여 혼자 남았고, 포스기 현금을 세기에 앞서 인수인계 사항을 복기해 봤다. 손님 한 분한테 마스크 2개 넘게 팔지 말라고 했었다.
이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의지로 될 일이 아니다. 손님한텐 그럴 수 있어도 손놈한텐 못 그럴 거 아냐. 그래도 아까 방안을 떠올려 둔 게 있으니, 그걸 그대로 실행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마스크 가판대로 가서.
“씨발, 야!!”
하,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