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69)
이세계 편돌이-68화(69/331)
68화. 편의점 꽃가루 주의보 (3)
상황이 꽤나 터프하게 흘러가고 있다. 자길 내려다보는 치와와에게 얼굴을 찌푸린 채로 대꾸하는 윤하 누나.
“그… 죄송한데, 누구세요?”
“내가 누군지는 왜 물어봐. 마스크 사는 데 민증까지 까라고?”
“제가 그러려고 여쭤본 게 아니잖, 아니 근데 아까부터 말이 왜 이렇게 짧으세요?”
“그럼 마스크 달라는 말을 짧게 하지, 길게 해?”
“?”
이 시점에서 누나도 치와와가 범상치 않은 놈이란 걸 깨달은 듯했다. 할 말도 잃고 어이도 잃은 얼굴로 치와와를 올려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물어왔다.
“이찬, 이 치와와 뭐야. 나한테 왜 이래?”
뭔지는 정확히 나도 모르겠고, 왜 이러는지만은 잘 안다. 치와와의 공격성은 종과 체급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 말한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을 것 같고….
“나중에 얘기해 줄 테니까, 일단 마스크 좀 꺼내주라.”
둘이 대화할 일을 아예 없애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내 대답에 누나가 볼멘소리로 툴툴대면서도 마스크가 든 비닐봉지를 꺼내 내게 건네줬다.
얼른 코볼트용 마스크를 꺼내 내밀었는데, 이놈이 마스크는 안 받고 딴 데 정신을 팔고 있다. 누나의 바지 주머니, 정확히는 주머니 안의 변색된 마스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채였다.
그러다 대뜸 누나에게 말을 걸더라.
“야, 인간 여자야. 니는 그 마스크로 숨이 쉬어지냐?”
“내 마스크가 어떻든 말든 뭔 참견인데요.”
“더러워서 그런다. 꼬라지가 아주 그냥….”
혀를 차며 지 지갑에서 만 원권 한 장을 꺼내고는, 내 조끼 앞주머니에 욱여넣더니….
“얘 마스크 하나 사줘라. 나 간다.”
마스크 포장지는 뜯어서 내게 주고, 마스크만 달랑 들고 가버렸다. 치와와가 어둠 저편으로 사라질 즈음에야 누나가 내게 물었다.
“저거 잔돈은 왜 안 가져가?”
“나도 몰라.”
내친김에 아는 것들을 다 말했다. 어디 회사에서 일하는 거 같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단골이며, 분노를 조절하는 신경회로에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
더해서 잔돈 얘기 할 때마다 나한테 쌍욕을 해대는데, 왜 그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외에 저놈과 있었던 일들을 말한 뒤 누나 얼굴을 힐끗 보니, 영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놈을 단골 될 때까지 왜 계속 받아주냐? 진즉에 안 내쫓고.”
“저러는 거 일일이 다 내쫓으면 야간 편돌이 못 해 먹지. 그리고 솔직히 따지면….”
“뭐가.”
“솔직히 저 치와와가 다른 진상들보단 나아.”
누나는 오만상을 찌푸렸으나, 난 절반 정도 진심이었다.
이 편의점이 도심지 사거리에 있고, 코앞에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걸어서 몇 분 거리에 호프집, 퓨전 포차가 늘어선 먹자골목이 있다. 판데모니엄이라는 소리다.
입지가 이따위니 필연적으로 진상들 방문 빈도도 잦을 수밖에 없다. 당장 내가 겪어본 것들만 해도 정문이 박살 나질 않나, 오크들이 자동차 문짝으로 PvP를 붙질 않나, 불녀 얼음녀끼리 캣파이트를 하질 않나….
그 난장판들에 비하면 저 치와와가 차라리 양반이지. 저놈은 내 멘탈 말고는 때려 부수는 것도 없고, 최소한 물건 쥐여주면 곱게 가주기는 하잖아?
더해서 간간이 부수입도 생기고. 사실 이게 제일 크다.
“전에 누나가 가져간 밀맥주 있잖아. 그것도 저 치와와가 주고 간 거임.”
“맥주는 또 왜 줬대?”
“나중에 둘이 또 만나거든 누나가 이유 좀 대신 물어봐 주라. 저놈이 나한테는 늘 닥치고 처먹으라는 식이라서 그래.”
“저 치와와랑 다시 말을 섞으라고? 내가?”
“싫음 말고.”
아마 둘이 만날 일 자체가 앞으로 없을 거다. 방금 만남도 저 치와와 놈 변덕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에 가까웠으니까. 누나가 정말 재수가 없지 않은 이상에야….
어쨌든 돈은 받았고, 까먹기 전에 계산이나 마치기로 했다.
치와와가 두고 간 포장지 바코드를 찍어보니 1,700원. 8,300원이 유용자금이 됐다. 치와와가 마스크 사라고 준 돈이긴 하지만, 있는 걸 굳이 돈 주고 살 필요는 없지.
“누나, 마스크 따로 쓰는 거 있어?”
“아무거나 줘. 마스크가 그게 그거지.”
“그럼 이거 써.”
점장이 나 쓰라고 마스크 두고 간 걸 누나에게 쥐여줬다. 이어서 누나가 가져온 물류를 들여놓고 전표 처리도 마친 뒤, 바람 쐴 겸 누나랑 정문 앞에 나란히 섰다.
“누나는 이제 뭐 해. 집 들어가서 잠?”
“그래야지. 근데, 그 전에 너랑 뭐 좀 얘기하려던 게 있었는데….”
“어떤 거.”
“그걸 아까 그 치와와 때문에 까먹었어. 에이 씨, 뭐였더라?”
답답한지 금연초를 꺼내서는 입에 물고 까딱거리는데, 금연초 끝자락을 보고 있자니 불쑥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자격증 얘기 하려고 했던 거 아냐?”
말하자마자 까딱거리는 걸 멈췄다. 금연초를 곧바로 손에 쥐고는, 날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짓는다.
“맞다. 그거 축하해 주려고 했어. 축하한다, 야.”
“누나가 그 얘기 하니까 나도 할 말 떠오른다.”
“너도?”
“고맙다고. 누나가 안 도와줬으면 지금쯤 재수학원 알아보고 있었을 건데.”
누나 덕분에 선택장애를 앓지도 않았고, 분노한 ATM에게 뚜들겨 맞는 일도 면했다. 누나는 쑥스럽다는 듯 헛웃음을 짓다가, 느닷없이 내 옆구리를 툭 찔러왔다.
“고마우면, 짜식아. 자격증 따자마자 연락을 했어야지. 언니가 얘기해 주기 전까지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알아?”
“그…건 내 잘못 맞기는 한데….”
이것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누나 연락처를 모르는데 어떻게 연락을 해?”
“아니, 내 연락처를 왜 몰라?”
“말을 안 해줬으니까 모르지. 그럼 누나는 내 연락처 알아?”
“어….”
하여 곧바로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저장해 둔 연락처가 세 개가 됐다. 점장, 유치원 다니는 7세 드래곤 꼬맹이, 누나.
어째 여자들뿐이다. 29년 살면서 등록해 본 여자 연락처라고는 김미영 팀장이 전부였던 내게도 드디어 봄날이란 게 오는 것인가?
“너 이제 내가 틈날 때마다 톡한다. 알았냐.”
“그건 상관없는데, 낮에는 하지 말어. 나 자야 돼.”
“그 정도는 감안해줄 수 있지….”
감안을 안 해줘도 어차피 딴 세상 가 있어서 못 받는다.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크게 하품을 한 번 하는 누나.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게 평소보다 훨씬 더 졸려 보인다. 떠오르는 게 있어 물었다.
“누나. 어제 헤어지기 직전에, 상사한테 연락 왔다고 했잖어. 법인카드 때문인 거 같다면서.”
“어? 어… 그랬지.”
“그건 잘 해결됐어?”
원인 제공자인 내가 진즉에 물어봤어야 할 내용이다. 누나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고, 잠깐 뜸을 들이고 나서야 대답했다.
“잘 끝났지.”
“어떻게 끝났길래.”
“어떻게 끝나기는. 시말서 쓰고, 윤하 너는 왜 자꾸 사고를 치냐면서 핀잔 좀 듣고―”
말하다 말고는 한 번 더 하품을 하는데, 이게 영 미심쩍단 말이다. 누나가 항상 이 시간대에 찾아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피곤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평소대로 일했지. 그게 끝이니까, 너도 괜히 맘 쓰지 말고….”
“법인카드 잔고는 어떻게 됐는데. 다 메꿨어?”
“은행 찾아가서 메꿨지. 왜, 겁나냐? 너한테 물릴까 봐?”
고개를 저었다. 은행 ATM이 맛이 가서 강도질한 걸 왜 내가 물어. 수리비를 물린다면 또 모를까….
아니지. 그 ATM은 누나나 내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다른 놈한테 박살 날 운명이었다. 설령 나한테 물린다 쳐도, 나는 가진 실물자산이라 해 봐야 29년산 콩팥 두 짝이 전부인 놈이다. 급하면 이거라도 떼가든가.
애초에 이 얘길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누나는 시말서 쓰고, 욕 듣고 끝났다고 했잖아.”
“그래. 그렇게 끝났다니까.”
“누나가 쓴 시말서는 소장이 읽었을 거고.”
“무슨 얘기 하려고 그렇게 뜸을….”
“소장이 얘기 안 해? 그 편돌이가 누구길래 도와줬냐고?”
이게 신경이 쓰인다.
누나가 시말서를 정상적으로 썼다면 분명 이렇게 적혀있었을 거다. 어떤 편돌이 놈 일 도와주다가 그렇게 된 거라고.
그리고 내가 소장이라면, 그 편돌이 놈 절대 가만 안 내버려 둔다.
자기 사무소 법인계좌가 일면식도 없는 웬 편돌이 놈 때문에 앵꼬가 났는데, 열이 뻗쳐서라도 전화번호 따서 욕지거리를 하든 설거지를 시키든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그게 아니라 쳐도, 최소한 시말서 진위 확인을 위해서라도 내게 전화를 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안 하면 부하직원이 만만하게 볼 거고, 이런 일 또 일으킬 테니까.
근데 나한테 전화가 안 온다.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누나가 내 얘기를 아예 안 한 거다.
“그리고, 누나. 난 원인 제공자 쏙 빼놓고 쓴 시말서가 통과됐을 것 같지도 않거든?”
반려됐을 게 뻔하고, 다시 쓰게 된 내용도 처음이랑 다를 게 없었을 것이다. 그걸 반복하다, 더 시말서 쓰게 해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겠지.
나라면 이 시점에서 냅다 잘라버렸겠지만, 그 소장은 안 그런 것 같고. 소장이 대신 택한 방법이 뭐였는지는 누나 꼬락서니가 증명해주고 있다.
“잔업시킨 거 아니냐고. 다니던 회사서 잔업시킬 때 내가 지었던 표정이랑 지금 누나 표정이 똑같다니까?”
“야, 소설 쓰냐?”
듣고 있던 누나가 툭 내뱉었으나, 난 눈 안 마주친 채로 하는 말들은 거의 안 믿는다. 마저 이었다.
“그럼 피곤한 티를 내질 말든가. 누나가 전에 그랬잖아. 5월엔 한가하다고.”
정확히는 이렇게 말했다. 5월에는 게이트인지 뭔지가 안 열려서 한가하다고, 그러니까 자주 놀러 오겠다고.
“그리 말해놓고는 딱 타이밍 좋게 졸려 죽으려고 하는데, 이렇게 생각을 안 하고 배겨?”
“…….”
“열 번 양보해서 소설 쓴 게 맞다 치고, 이거나 좀 물어보자. 그 소장한테 내 얘기 하면 그 소장이 어떻게 반응할 거 같아? 이번 일이랑 상관없이.”
내 추측으로는, 그 소장이 나한테 일 한번 같이 하자고 할 것 같다.
자의식 과잉이라 해도 할 말 없긴 한데, 나도 근거 없이 추측하는 게 아니다. 아니 글쎄, 내가 어제만 해도 부교수직 제의를 받고 왔다니까?
국가시험 감독관이란 작자가 정신 못 차리고 그런 소릴 하는데 사무소 소장은 오죽하겠냐고. 내게 사무직이든 뭐든 시키려 들 거라 짐작하는 게 어렵진 않더라고.
“내가 서류정리는 젬병이라 사무직은 못 하겠고….”
여기까지 말한 직후, 누나가 답답해 죽겠다는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니 얘기 안 했다. 그걸로 안 끝날 게 뻔해서.”
“그럼 잔업한 것도 맞겠네.”
“쌔빠지게 하고 왔다. 됐냐?”
더 얘기하기 싫다는 의사 표현처럼 들렸다. 그래서 일부러 대답 안 했다.
이후로 1분가량, 말없이 금연초만 빨고 내뱉기를 반복한다. 졸린 기미가 다 빠진 얼굴이라, 슬슬 괜찮겠다 싶어 물어봤다.
“잔업은 뭐 하고 온 건데.”
“저쪽 공원에서 꽃가루 치우는 거 도와줬지. 공원에 뭔 꽃가루가 그리 많은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