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7)
이세계 편돌이-6화(7/331)
6화. 적응하는 편돌이 (6)
점장이 조금 전에 뭐라 그랬냐. 날 보고 크립토나이트가 됐다고? 마법 면역이 됐다, 그 말인가?
[ 됐다기보다는, 원래 네가 그런 체질이었을 거야. 타고나는 거니까. ]“제가 그런 체질이었다뇨, 전 살면서 그런 거 전혀 몰랐….”
[ 알 수가 없었겠지. 찬이 세상엔 마법 같은 거 없었다며? ]그렇긴 하네. 내가 절대반지를 주워본 것도 아니고, 9와 3/4 승강장에 가본 것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내가 그런 체질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데 말이다.
“제가 마법이 안 통하는 몸이면, 여기에 올 수도 없었던 거 아닌가요?”
[ 글쎄… 자세한 건 나중에 봐야 알겠지만, 분명 연관이 없지는 않을 거야. ]점장도 어지간히 골이 지끈거리겠다 싶었다. 한 달 넘게 구해서 겨우 받은 알바가 이세계 사람인 것도 모자라 무지개반사 체질이라니.
점장이 할 말을 고르는 동안 서큐버스를 내려다만 보았다. 먹인 약이 효과가 있긴 있었는지, 슬며시 눈을 뜬 채였다. 가늘게 뜬 눈꺼풀 속의 눈동자가 날 주시하고 있는 게 영 부담스러웠다.
“어쨌든 잘 모르신다는 거죠.”
[ 당장은. 알게 되는 대로 말해줄게. ]“사장님….”
통화 도중에 서큐버스가 날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낸 목소리 중 그나마 멀쩡한 목소리였다. 이제야 집에 좀 보내겠다 싶어 바로 대답했다.
“네, 손님.”
“…사랑이란 게 뭘까요…?”
그걸 묻기 전에 사랑을 해보긴 해봤는지부터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냐?
“모르겠습니다, 아직 해본 적이 없어서.”
“헉… 왜요…?”
얼굴에 개연성이 없어서 그런다. 이 서큐버스 그냥 다시 재울까.
“점장님, 혹시 콜택시 전화번호 아세요?”
[ 카운터 밑에 있을 거야. 부르게? ]“네. 잠깐 전화 끊을게요.”
정신을 아주 차린 건 아닌 듯했지만, 어쨌든 대화가 통하긴 했으니 콜택시 불러주면 얌전히 집에 가겠다 싶었다.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자 정상적인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족이 뭔지는 안 봐서 모르겠고….
[ 전화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여기 주소가… 아, 잠깐만요.”
이 와중에도 또 손님이 왔기 때문이… 아니, 저건 또 뭐냐.
얼굴에 뼈만 남은 해골 둘이 막 정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해골바가지 말이다.
몸에는 어떻게 걸쳤는지는 몰라도 군복을 입고 있었고. 이 세계 군대는 병사를 엄청 험하게 굴리나 보다. 얼마나 삽질을 시켰길래 몸에 뼈밖에 안 남았냐.
“어서 오세요, 손님.”
“…….”
해골바가지들이 대답하지는 않았다만, 나도 별로 기분 나쁘게 여기진 않았다. 성대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대신 내민 건 기다란 메모지였으며, 메모지 안에는 담배 이름 십수 종이 보루 단위로 적혀 있었다.
담배 부탁받은 거구나― 생각했다.
군부대 인근이나 도심지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 편의점에 유독 군인 손님들이 자주 오긴 한다. 군대 안에서 싸제 담배를 안 파니 외박이나 휴가 나가는 양반들한테 부탁해서 그때그때 잔뜩 사 가는 거다.
왜냐면, 담배 몇 보루씩 들고 다니려면 불편하잖아. 전자의 경우엔 좀만 들어가면 되고, 후자의 경우엔 버스 타고 복귀하다 까먹을 것 같아서 그렇고.
난 후자의 경우였다. 나도 육군 복무하면서 수십 번 부탁 받아봤고, 세상에 별의별 담배가 다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메모지에 적힌 담배 이름도 다 아는 것들이고.
“이대로 드리면 될까요?”
말하니 삐걱삐걱 고개를 끄덕여온다. 어디 한번 보자. 이것저것 다해서 총 아홉 보루. 전자담배도 하나 섞여 있고….
[ 저기, 편의점에서 일하시나요? ]콜택시에 전화 건 걸 까먹고 있었다. 얼른 대답했다.
“아, 죄송합니다. 편의점 맞아요.”
[ 그럼 위치는 대충 알겠고, 금방 가겠습니다. 그런데 태울 손님 만취 상태인가요? ]“대화는 통해요.”
[ 어… 일단,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전화 끊은 뒤에, 점장한테 다시 전화를 거는 사이 담배를 다 골라 봉투에 담았다. 근데 목록 맨 밑에 담배 외에도 두 글자가 더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어. 시체? 별걸 다 파네, 진짜.
“점장님. 콜택시는 불렀고, 지금 막 들어온 손님께서 시체를 찾으시는데요.”
[ 이번 달엔 그거 취급 안 하는데. 혹시 손님 스켈레톤이야? ]“네.”
[ 아, 그럼 급한 손님일 텐데… 근처에 의체 취급하는 곳 있으니까, 급하면 거기 가보시라고 말씀드려. 정문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3분쯤 쭉 걸어간 뒤에, 길 건너편. ]그러라고 하니 그러기로 했다.
“다 합쳐서 40만 5,000원이고, 시체는 저희 매장에선 취급을 안 해서요.”
“…….”
“정문 나가셔서 3분 정도 우측으로 쭉 가보시면, 길 건너편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검다.”
스켈레톤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담배 받아 들고는 덜그럭대며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점장에게 물었다.
“이건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지난달엔 편의점에서 시체를 취급한 거예요?”
[ 팔긴 했어. 보관이 힘들어서 재고 보충은 안 했지만. ]“그… 왜 팔고, 왜 사 가는 겁니까?”
[ 스켈레톤한테는 필수품이어서 그래. ]이후 점장이 말하기를, 복무 중인 스켈레톤들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딱 2주 정도. 매미 성체가 딱 그만큼 사는 걸로 아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영혼을 담은 해골의 내구성이 최악이기 때문이다.
군부대에서 스켈레톤을 부리기 위해 쓰는 해골들 대부분은 옛날에 일어났다는 전쟁에서 생겨난 시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거라고 한다. 근데, 수십 년 전의 시체에 뼈가 제대로 남아있을 리가 없잖은가? 만년필 금칠도 벗겨질 시간인데.
스켈레톤이 시체를 찾는 이유가 그래서란다. 군대에서 보급하는 시체로는 육신이 몇 주밖에 유지되지 않지만, 밖에서 신선한 싸제 시체를 찾아 빙의하면 최소 몇 달, 최대 몇 년은 육신이 유지된다나 뭐라나.
이야기를 들으며 곧장 떠올린 건, 군복무하던 시절 입었던 국방색 빤스였다. 이놈들은 국방색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왜 보이지도 않는 빤스까지 국방색으로 만드나 모르겠다. 가뜩이나 착용감도 거지 같은데.
“어째 저 군복무하던 시절이랑 비슷하네요.”
[ 찬이도 군대에 있었어? ]“저 살던 곳은 남자면 거의 다 군대 갔거든요. 2년 정도. 여긴 어떤데요?”
[ 모병제인데, 요새는 군대 잘 안 가. 받지도 않고. 전쟁 끝난 뒤에는 나라마다 군비 절감하는 추세라고 하더라고. ]“그럼 저 군인들이 스켈레톤인 건….”
[ 중대장들이 다 네크로맨서거든. 철밥통이래. ]부대 중대장이 한 번 실망했다 하면 그 부대는 정말 개판이 나겠다 싶었다. 이 부분은 나 사는 동네 군대도 다를 게 없긴 하다만.
대화 도중 벨이 울려 정문을 바라봤고, 살짝 움찔했다.
“사장님, 택시 탄다는 손님 어디 계세요?”
콜택시가 온 듯했는데, 기사라고 들어온 이종족이 눈이 하나밖에 없는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저건 사이클롭스, 뭐 그런 거겠지.
살짝 숨을 고른 후, 서큐버스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쪽 저분이세요.”
“어디… 어우, 이분 술 잡수신 거 아닌 거 같은데요?”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하나. 잠깐 생각하다 답했다.
“뭔 저주가 걸려 있긴 하셨는데, 약 드셔서 괜찮을 거예요.”
“그렇다면야, 뭐. 손님, 일어나십쇼.”
“우음….”
사이클롭스가 어깨를 들치며 일으켜 세웠음에도 서큐버스는 몸을 가누질 못했다. 질질 끌려가듯 이끌려 택시 뒷좌석에 태워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잊은 게 떠올라 뒷좌석에 몸을 디밀고 말을 걸었다.
“저기, 손님.”
“네…?”
“약값이 4천 원인데요. 계산 카드로 하시겠어요, 현금으로 하시겠어요?”
일은 해야지. 난 빵꾸 내기 싫다.
서큐버스는 내가 카드 주고 산 것도 아닌데 왜 돈을 줘요? 라며 꼬장을 부리진 않았다. 그랬으면 영업방해로 고소할 생각이었고. 서큐버스는 그저 헤, 웃으며 카드를 내밀어올 뿐이었다.
받아서 다시 편의점에 들어온 뒤에, 아까 서큐버스가 먹었던 의약품을 꺼내서 바코드만 찍고 집어넣었다.
이것도 나름 팁이라면 팁인데, 꽐라 된 손님한테 바코드 찍어야 되니 물건 잠깐 받아가도 되냐며 실랑이를 할 필요가 없다. 유도리 있게 하면 되는 거다, 유도리 있게.
결제한 뒤에 나와서 카드를 돌려주자, 서큐버스가 다시금 물었다.
“진짜… 사랑이란 게 뭘까요….”
난 네가 그걸 나한테 왜 물어보는지를 모르겠다. 이거 진짜 대답해야 하나? 난 상품 바코드나 찍으면 되겠다 싶어 출근한 건데, 왜 서큐버스 손님 상대로 상담을 해줘야 돼?
“대체 뭐지….”
하도 궁금해하는 것 같길래,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해줬다.
“취미로 할 땐 즐거운데, 직업이 되면 짜증 나는 거죠.”
내 주변에 결혼한 친구 놈들 의견이 대체로 이러했다. 연애할 때에는 마냥 즐거웠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엔딩 본 게임 억지로 진행하는 기분이라나 뭐라나.
그걸 들으며 든 생각이 이거였다. 사랑은 취미고, 결혼은 직업이다.
뭔 취미든 간에 직업이 되면 당연히 재미없어지기 마련인데, 사랑의 종착역은 일단은 결혼이란 말이다. 이후에 이혼을 하든 말든 그건 알아서들 할 일이고.
이걸 진짜로 말해줬다. 내가 뭔 생각으로 이리 대답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만, 서큐버스가 원했던 대답은 아니었던 듯하다.
“에이… 뭐예요, 그게….”
이 물음엔 대답 안 했다. 운전석 백미러에 비치는 사이클롭스 눈동자가 희번득했기 때문이다. 빨리 끝내라는 것 같은데, 나도 그러고 싶어 진짜.
“…죄송해요.”
죄송하면 다신 보지 말자고. 직장생활 잘하고.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서큐버스가 사과를 해왔다. 술 먹고 토한 거에 대한 사과이겠거니 납득하며 몸을 빼자, 마침내 택시가 출발했다.
이후 손님이 뜨문뜨문해졌다. 오전 0시 지난 직후라 그런 듯했다.
편의점 야간 근무 때에는 0시 즈음에 매출 전표가 나온다. 용도는 그날 매출이 얼마다― 기록해두는 용도. 받아든 뒤에 점장이 알려줬던 대로 금고에 10만 원만 남기고 죄다 꺼내서 금고에 집어넣고, 자리에 앉았다.
2시간을 일한 현재 소감. 뭐라도 좋으니 푸념을 하고 싶었다.
“근무 두 시간 만에 온갖 진상은 다 만나네요. 손님 사랑 상담까지 해줘야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 사랑 상담? 혹시 서큐버스 손님 얘기야? ]“네. 점장님도 해보신 적 있어요?”
[ 어…. ]점장의 목소리에 고민이 깊어졌다.
[ 앞으로는 그런 손님 있으면 진지하게 받아주면 안 돼. 알았지. ]“그러고 싶었는데, 하도 물어봐서… 일단 몇 마디만 하고 말았는데요.”
[ 그 몇 마디도 하면 안 돼. 서큐버스 손님들이, 음… 집착이 좀 강하단 말이야. ]그래서 사랑에 대해서 나한테 몇 번이고 물어봤나 보다.
[ 특히 사랑에 대한 주제에 대해선 엄청 민감해. 혹시 결론은 냈어? ]“아뇨. 택시 태워야 해서 빨리 보냈어요.”
[ 그럼 그 손님 나중에 또 오겠다. ]아까 보내면서 다신 보지 말자고 기도했는데 말이다.
“진작 좀 말해주시지.”
[ 미안. 아까부터 정신이 없어 가지고…. ]“뭐 하고 계신 거라도 있어요?”
묻자, 점장이 미안하다는 듯이 답했다.
[ 잘 안 들어오는 물류가 하나 있는데, 그걸 지금 가져오겠다고 문자가 왔거든. ]“어… 물류요?”
[ 응. 아직 답장은 안 했는데, 혹시 받아줄 수 있어? ]원래 편의점 물류는 정해진 시간에, 미리 약속된 만큼만 딱딱 오고 간다.
오전에 설명 들을 때에도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이긴 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여기가 보통 평범한 편의점이어야지.
“양이 많아요?”
[ 아니, 하나야. 좀 크긴 한데, 운반은 그 애가 해줄 거고. 찬이 너는 기록만 해주면 돼. ]“화물 기사분이랑 친하신가 봐요.”
[ 응, 옛 직장 동료. 그럼 받는다고 문자 보낸다? ]“그러셔요.”
기록만 하면 된다잖아. 종이에 펜으로 동그라미 치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
근데, 아니었다.
5분 뒤에 밖에 웬 운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허겁지겁 뛰쳐나와 보니, 웬 날개 달린 말이 날갯짓하며 낮게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당근 먹니?
“화물 왔습니다!”
그 위에는 고글을 쓴 한 여자가 타고 있었고. 바닥에 놓여있는 건 에어컨도 담을 수 있을 만한 상자였으며,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짐작도 되질 않았다.
여자가 물었다.
“어라? 언니 어디 갔어요?”
“언니라면 점장님 찾으시는 건가요?”
“네. 근데… 누구세요?”
“알바생입니다. 오늘 시작했구요.”
잠시 후, 여자는 고글을 벗으며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오?”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