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70)
이세계 편돌이-69화(70/331)
69화. 편의점 꽃가루 주의보 (4)
듣자마자 물었다.
“그걸 왜 누나가 치워?”
난 누나 직종을 헌터로 알고 있다. 마수 때려잡고, 게이트 닫는 게 주 업무.
이 일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는 내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만, 꽃가루 치우는 게 그 일들과 상관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시?구청 직원이나 공원 관계자가 하는 게 당연할 일을 이걸 왜 누나가 짬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걔네들이 이맘때쯤 자기들 일 맡기기는 해. 우리 한가한 거 걔네도 아니까.”
“누나가 한가한 거랑 걔네랑 뭔 상관이 있다고….”
“많지. 엮일 일도 많고.”
“어떻게?”
“우선, 걔네가 지원금을 줘.”
돈 받는 거면 받는 만큼은 까야지, 별수 있나?
싶었으나, 들어보니 마냥 이상적인 상호협력 관계인 것도 아니었다.
지원금 문제를 빼더라도 엮일 일이 많고, 그중 하나가 이런 식이다. 도심 한복판에 마수가 출현했고, 그 마수를 잡는 과정에서 전봇대 세 개를 부숴 먹었다고 치자.
그 경우 민간, 공적 피해에 관한 보고서를 시·구청 관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우리가 일부러 전봇대 부숴 먹은 게 아니고, 나름 사정이 있었다. 예산 집행해 달라.’라는 증명을 위해서다.
한데 그놈들과의 관계가 개판이다? 그러면 그쪽에서 ‘이건 정황상 안 그럴 수 있었을 걸로 보인다, 늬들 실수 같다. 그러니까 우린 돈 못 주겠다.’라면서 보고서를 다시 돌려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무소에서 새 전봇대 사다가 심어야 한단다. 그게 심화되면 적자로 사무소 망하는 거고.
쉽게 말해, 누나가 꽃가루 치우러 건 시·구청 관계자들과의 호감도작을 위해서라는 소리였다. 듣는 도중에 느낀 게, 누나가 쌓인 게 참 많아 보이더라고….
“단순히 이거뿐인 것도 아냐. 게이트 열렸을 때 그 근방 이종족들 대피시키는 건 경찰청 담당인데, 우리가 경찰청에 직접 컨택을 못해. 법이 이상해갖고. 그래서 구청을 거쳐야 되는데, 이 미친놈들이 전화도 사무소를 가려서 받―”
“누나. 알겠는데, 나중에 얘기해. 숨넘어가겠어.”
이만큼을 말하면서도 누나가 숨 한 번을 안 쉬었다.
누나가 숨을 고르는 동안, 나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다. 누나가 꽃가루를 왜 치우러 간 건지는 이해하겠는데… 그게 누나 한 명 보낸다고 다 치울 수 있는 양인가?
내가 공원 꼬라지가 어떤지를 녹화방송으로 봐서 이런다. 그게 말이 꽃가루지, 딸기시럽 뿌려진 시베리아 벌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 난장판에 한 명 달랑 보내봐야 구청 직원들이 좋아할 것 같지도 않은데….”
“우리가 꽤 고급인력이라고. 일 같이 해보면 걔네들 엄청 좋아하고 그런다니까?”
“가서 어떻게 일을 하길래.”
별생각 없이 물은 거였고, 누나도 어깨 으쓱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해줬다.
“나무들 뽑아서, 꽃가루 턴 다음에 다시 심어줬지.”
“어… 진짜?”
“농담이야. 처음엔 정말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큰일 난다고 말리더라. 천연기념물이라나 뭐라나.”
대답하고는 키득키득 웃는데,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신장 30m 나무도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다는 소리잖은가?
“요란하게 일하는 것도 눈치 보이고 그래서, 특별히 뭘 하지는 않았어.”
나무는 못 건드리고, 구청 관계자들이 입은 꽃가루 방호복, 장비들 마법으로 가볍게 만들어 주고, 꽃가루 담아놓은 마대자루들 날라주거나 했다고 한다.
유격훈련 행군 나갈 때 군장 무게 줄이겠다고 과자봉지 채워 넣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것들만 해도 누나가 선녀 대우 받기는 충분하겠다 싶더라.
“오늘은 끝났는데… 며칠 더 가야지. 무슨 꽃가루가 한 트럭을 치우면 두 트럭이 나와.”
“오늘 몇 시에 끝났길래.”
“막 끝내고, 물류센터 들렀다가 바로 온 거야.”
지금이 오전 12시 30분이니, 넉넉하게 잡아 오후 11시에 공원을 빠져나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누나가 출근한 게 대충 아침 9시쯤 됐을 거고….
도합 16시간 반. 감상을 말했다.
“소장한테 내 얘기를 해, 누나.”
누나가 즉답했다.
“싫어.”
“누나가 싫은지 좋은지는 모르겠고, 그냥 하라니까?”
“야, 이찬. 너는 이게 온전히 니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본데, 니가 법인카드 꽂으라고 시킨 거야? 내가 꽂은 거지?”
이게 누나 본심인가 보다. 어쨌든 법인카드 꽂은 건 자기 자신이고, 시말서 각 이상을 못 본 것도 자기 책임이라는 것. 말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힌다.
“니가 시켜서 한 일 아니잖아. 내가 멋대로 한 일이니까, 너도 더 신경 쓰지 말고―”
“그건 고마운데, 그래도 얘기를 하라고.”
“너 지금 내가 하는 말 듣고 있긴 하냐?”
“듣고 있는데, 누나도 내 말 좀 들어봐. 만약에 누나가 덤탱이 쓴다고 입 꾹 닫고, 16시간 반씩 잔업 나가서 꽃가루 전부 치운다 쳐. 그럼, 그다음엔.”
“다음?”
“내 생각엔, 잔업 한 번으론 안 끝날 것 같거든?”
난 이 상황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헌터들이 5월엔 한가하다, 그래서 구청에서 이런저런 잔업을 떠맡기고, 그 잔업을 누나가 받은 상황.
헌데, 지금이 5월 둘째 주란 말이다.
5월이 끝나기까진 한참 남았고, 고오급 인력이라는 헌터들을 일 한 번 한 걸로 한가하라고 내버려 둘 것 같지도 않다.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다 시키겠지.
그리고 내 집단생활 경험상, 집단 내에서 폭탄 돌리기가 시전될 경우엔 한 번 터진 곳에서 폭탄이 계속 터지기 마련이었다. 내가 그 폭탄 받다가 실핏줄 터져본 놈이라 특히 잘 안다.
“그걸 누나가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도 없을 거고. 말이 잔업이지, 벌 받고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
“…난 상관없어. 까짓거, 하면 되지.”
“하는 거 다 좋은데, 물류는 누가 나르냐고. 물류는.”
누나가 혼자 고생하겠다 하면 난 안 못 말린다. 지가 하겠다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근데 잔업이란 게, 사람 배려해 가면서 주는 게 아니다. 오늘은 재수 좋게 오후 10시 반 퇴근해서 컨테이너 날라왔다 쳐도, 다음에도 그렇게 될 거란 보장이 있나?
없다. 누나가 밤을 꼴딱 새우는 일을 맡게 되어 물류 나를 시간도 못 내게 되는 순간, 꽤 많은 게 꼬이고 만다. 일단, 진열대에 구멍 숭숭 뚫린 편의점에 손님이 올 리가 없으니 편의점 매출부터 꼬일 거고….
“점장님도 알게 되실 거 뻔하고. 그때 되면 점장님한테는 뭐라고 얘기할 건데.”
“니가 사서 걱정하는 거야.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냐.”
“설마일 수도 있겠지. 근데, 지금 잔업하고 있는 것도 설마설마하다 그렇게 된 거 아냐?”
누나는 시말서 각이라고만 말했지, 잔업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었다.
바꿔 말하면, 누나도 소장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게 아니라는 말이 된다. ‘소장이 잔업까지 시킬 양반인 줄은 몰랐다’라는 거잖아?
그게 ‘소장이 밤새는 잔업까지 시킬 양반일 줄도 몰랐다’가 안 될 가능성도 없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겠지만, 일어나면. 그땐 나도 책임 못 진다.
“누가 책임질지 말지 따지다가, 아무도 책임 못 질 상황 되는 게 싫다는 얘기야. 나는.”
“…….”
“점장님 생각해서라도 우리 선에서 끝내는 게 맞고. 여기 관계자래 봐야 누나, 나, 점장님 셋뿐인데, 우리끼리 끙끙대고 있으면 점장님께서 좋아하시겠냐고.”
점장 성격상 욕은 절대 안 하겠지만, 얘기 한마디쯤은 해주지… 하면서 시무룩해 할 게 뻔하다. 난 그 한마디 들을 게 욕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섭다.
점장 얘기를 꺼내는 순간 누나 표정이 경직되긴 했으나, 말은 없었다. 금연초 한 모금을 빨고, 손가락에 필터를 끼워 빙빙 돌리고….
십수 바퀴를 돌린 뒤에야 누나가 겨우 입을 열었다.
“너는 소장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야.”
“뭐 전직 격투기 챔피언이라도 돼? 폭력 혐의로 벨트 반납했고?”
“그 수준이면 차라리 귀엽지. 그런 것보다는… 그….”
한마디로는 정리가 안 되는지 말을 좀 오래 고르더라. 고르고 고른 끝에, 엉뚱한 말을 꺼내왔다.
“…너랑 느낌이 비슷해. 이게 맞는 것 같다.”
“이야, 그 양반도 고졸이야? 얘기가 좀 통하겠네.”
“묘하게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게 비슷하다고. 너는 그걸 농담이라고 해?”
이러고는 내 팔을 꼬집는데, 억울했다. 자기는 나무 뽑으려다 말았다는 걸 농담이랍시고 꺼내놓고 나는 왜 못 하게 해?
“너 들들 볶을 건 확실해. 너 일 잘하니까. 아웃소싱 한두 번으론 절대 안 끝낼 거고….”
“한두 번으로 안 끝나도 난 신경 안 써.”
“뭐?”
“언젠가 돈 주긴 할 거 아냐.”
처음에야 법인카드 털어먹은 놈이라는 명목으로 부려 먹더라도, 나중에는 돈 주겠지. 안 그러면 내가 노동법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면 그만이다.
언제가 됐든, 돈 주기만 한다면 어지간한 일은 감내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10시 사이에 시키는 것만 아니라면 말야. 그땐 나 카운터 지켜야 된다.
“일은 내가 가려 받으면 될 거고, 잘 모를 일들은 누나한테 물어보면 누나가 알려줄 거고.”
“…….”
“점장님께는 상황 봐서 말씀드리면 될 거 같고… 아무튼, 그래.”
일단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최선도 다했고.
그래도 누나가 전부 책임지겠다고 하면, 그땐 나도 모르겠다. 내 말솜씨가 모자랐거나, 내 관측이 누나 생각엔 지나치게 추상적이었다거나, 둘 중 하나라 치고 말 수밖에.
납득은 못 해도 이해는 해줄 것이다. 누나가 이러는 이유가 뭔지 알기 때문이다.
“…미안.”
“뭐가.”
“그때 법인카드 넣는 게 아니었는데, 참….”
이젠 해야 될 말을 할 차례였다.
“내 생각엔 이게, 반반이야. 누나.”
“이게 왜 반반인데.”
“초가집에 담배꽁초 던진 놈이 나고, 불난 집에 휘발유통 집어 던진 게 누나인 거잖아. 그럼 누구 잘못이야. 원인 제공한 놈이야, 일 키운 놈이야?”
“…니 생각은 어떤데.”
“나도 몰라서 묻는 건데?”
실은 안다. 반반은 염병, 내 잘못이다.
내가 누나한테 도와달라고 말 꺼냈다. 은행 강도 잡아야 한다고 누나 끌고 간 것도 나였고. 그럼 내 잘못이지, 이게 왜 누나 잘못이 되냐?
물론 누나도 바로 반박하겠지. 그래도 다른 방법을 썼어야 했다고.
그 다른 방법도 내가 떠올려야 했다. 내 시험이었잖은가. 그 방법을 스스로 못 떠올린 시점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빠져나오는 게 맞았다. 자격이 없었던 거니까.
그럼 누나는 또 반박하겠지. 자격증 따라고 권한 게 자기인데,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냐고. 그럼 나도 또 반박할 거고. 재시험은 괜히 있냐면서.
그렇게 반박배틀 하다간 날밤 꼬박 새울 게 뻔했다. 그래서 반반인 거고, 그래서 설득을 한 것이다. 서로 책임지겠다고 해봐야 쳇바퀴 돌 뿐이라, 내가 책임을 안 지면 안 될 일이라 지는 거라고 했다.
말은 못 하겠지만 말이다. 낯간지러운 소리일 게 뻔해서. 누나가 재차 물었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거 맞아?”
“모르겠다니까? 내가 보험설계사도 아니고.”
“내 말은, 본심 맞냐고. 그게.”
본심? 난 누나가 고생하는 꼬락서니 더 보는 게 싫을 뿐이다.
누나가 잔업하는 거 보기 싫고, 또 하게 될 것도 싫고, 서른 살 여자 손끝에 매니큐어 대신 꽃가루 바르게 만든 나도 싫고, 그냥 다 싫다.
난 잘 먹고 잘살고 싶다. 그러려면, 최소한… 잘못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 본심이다.
“본심 맞으니까, 누나도 모르겠으면 그냥 반반 하고 끝내.”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누나보단 낫네요. 누나 지금 몇 신줄 알아? 새벽 1시야, 1시. 잠은 자야 할 거 아니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냐?”
“정확히 1시 17분이니까, 들어가서 자. 내일 아침에 소장한테 내 얘기 하는 거 까먹지 말고―”
“알았어. 알았다고.”
단답한 뒤, 하품.
입 크게 벌렸다 닫고는 휘파람을 크게 휙 부는데, 불자마자 저 멀리 주차장 쪽에서 날개 달린 말 한 마리가 퍼드득 날아오는 게 보였다.
컨테이너 위에 착지한 말에 능숙하게 줄을 매달고는 두어 번 잡아당긴 뒤, 말에 올라타는 걸 보며 물었다.
“누나. 그거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안 무거워?”
“내가 가볍게 만드니까 안 무겁지. 지금 무게면, 한… 10kg쯤?”
“아하.”
“궁금하면 한번 들어보든가.”
“그건 됐고.”
무게는 둘째 치고, 컨테이너의 어딜 잡고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양하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다시 하품을 했다.
“조심히 들어가.”
“그래. 나중에 보자.”
이걸 마지막으로 누나가 떠났다. 누나가 떠난 자리에 남은 말 날개깃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나도 하품이 나왔다.
편의점 안으로 돌아와, 탄산음료 두어 개 사다가 밤 동안 마셨다.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목이 타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