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72)
이세계 편돌이-71화(72/331)
71화. 편의점 꽃가루 주의보 (6)
집에 돌아가서 세 번 씻고 잤다. 여태껏 점장 말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단 말이지.
자고 일어나서는 발바닥 멀쩡한지부터 확인했고, 시간을 보니 9시 40분. 좀 많이 잤다. 그래도 대충 씻고 출근하면 늦진 않겠다 싶어 서둘렀는데, 정문 열고 나간 직후에 잠깐 멈칫했다.
5월 중순이라 그런가, 이젠 밤에도 덥다. 외투를 입고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입고 나갔다. 밤에 좀 더 쌀쌀해질지도 모르잖아.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 정문 앞에 도착했는데, 정문에 못 보던 A4용지 한 장이 붙어있었다.
용지에는 점장 필체에 유성 매직으로 이런 문구가 적혀있더라.
[ 마스크가 다 팔려서 없어요. 죄송해요! ]점장도 어지간히 시달렸나 보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점장이 어떤 식으로 시달렸을지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스크가 없어요. 다 팔려갖구. 죄송해요.”
“뭐? 언제 다 팔렸는데?”
“오늘 오전에요.”
“장난해? 그럼 다 팔렸다고 적어놓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그게, 정문에 써 붙여놓기는 했어요.”
점장 말에 등 돌리고 있던 손놈이 홱 내 쪽을 돌아보았는데, 중년 엘프였다. 내 눈을 슬쩍 보고 정문에 붙여놓은 이면지도 확인하고는, 머쓱했는지 다 들리도록 툴툴거렸다.
“약국도 다 팔렸다 하고, 어딜 가서 마스크를 사라는 거야 도대체.”
중년 엘프는 뒤집어쓴 새마을 모자 위를 벅벅 긁으며 매장을 빠져나갔고, 빠져나가는 걸 바라보던 점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인사는 생략해야 될 것 같다.
“고생 무진장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점장님.”
“무진장까지는… 아니지. 눈에 보이나 보다.”
“제가 점장님 다크서클을 오늘 처음 봐요.”
점장이 워낙 피부가 새하얀 사람이라, 검은 부분이 생기면 눈에 바로 보인다. 바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점장에게 물었다.
“저 A4용지 언제 써 붙이신 거예요?”
“찬이 퇴근한 직후에 바로 붙였어. 별 효과는 없었지만….”
편의점 손님들이 정문에 뭐가 붙었는지 신경을 안 쓰기는 한다. 여긴 지역화폐 되는 매장이라고 스티커를 붙여놔도, 들어와서는 지역화폐 되냐고 물어보는 양반들이 꼭 있단 말야?
물론 이해는 된다. 스티커를 확인하는 것도, 스티커가 붙어있는지 아닌지를 알아야 확인을 하든 말든 할 수 있는 거잖은가. 애초에 스티커도 조막만 해서 잘 뵈지도 않고.
솔직히 편돌이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기도 하고. 나도 묻든 말든 크게 신경 안 쓴다.
“지금은 경우가 다른 것 같긴 합니다.”
“그치.”
약국도 마스크 매진됐다잖아. 이런 판국인데, A4용지고 나발이고 눈에 뵈는 게 있겠는가? 못 먹는 감 찔러는 봐야지.
더해서 어제 직접 즈려밟아보며 느낀 게 있는데, 꽃가루 입자가 제법 고왔다. 그런 게 온 사방에 휘날리고 있고, 그걸 다이렉트로 호흡하며 살고 있으니 위기감도 그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심지어 평범한 꽃가루도 아니고, 마나 잘못 먹고 자란 꽃가루다. 이걸 떠올리고 나니, 점장에게 물어봐야 할 것도 떠올랐다.
“저는 깍두기라 괜찮다고 쳐도, 점장님은요. 몸 괜찮으세요?”
“나도 괜찮은 거 같아.”
“그래도 병원 가서 검진 한번 받아보시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럴 때 쓰려고 건보료 내고 사는 건데.”
“증상 나타나면 그때 가 보려구. 저 꽃가루가, 증상이 뚜렷해서 문제 생기면 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어디서요. 질병관리청에서?”
“거긴 아니구, 이거 봐봐.”
말하며 점장이 자기 스마트폰을 내밀어 왔다. 화면에는 인터넷 기사가 하나 띄워져 있었는데, 눈으로 훑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 주로 알레르기성 비염, 결막염, 피부염, 천식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며, 체내에 내재된 마나가 적은 일부 이종족들의 경우엔 증상이 특히 심해질 수 있다. 이는 마나량이 적은 신체가 꽃가루에 섞인 오염된 마나를 과도하게 흡수하며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부 이종족들의 예시로 나온 게 고블린과 오크. 확실히, 마스크 찾는 양반들 중에 고블린이랑 오크들이 증상이 심해 보이긴 했었다.
외에도 마나 관련해 이런저런 소리들이 나오긴 했는데, 이건 봐도 잘 모르겠고….
[감기와 증상은 비슷하나, 증상 발현 속도가 훨씬 빠르고 뚜렷하다. 심하면 흡입 후 3분 내에도 증상이 발현할 수 있다. 허나 꽃가루의 오염된 마나 농도가 미약한 만큼, 중증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안심해도 좋다.’라는 뉘앙스로 기사는 맺어졌으나, 아직 의문이 남았다.
“이거 믿어도 되는 거예요?”
쉽게 말해 ‘이종족 여러분, 여러분의 기관지는 무사합니다.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라는 소리인데, 나는 못 믿겠다. 이게 위키피디아 검색해서 끄적인 내용일지 아닐지 어떻게 알아?
“대학병원 전문의 자문받아서 작성했대. 맨 밑에.”
스크롤을 좀 더 내려보니, 기자 이름 밑에 ‘반마법 전문의의 자문을 받아 작성했음’이라 적혀있었다. 이걸 확인하고 나서야 좀 안심이 됐다.
“그래도 기침 나온다 싶으면 바로 병원 가십쇼, 점장님. 건강 챙기셔야지.”
“응.”
이후 인수인계. 매장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 다음 내용에 바로 가슴이 뜨끔해졌다.
“윤하가 오늘은 물류 못 나를 것 같대. 바빠서.”
“예?”
“그게, 헌터 일 때문에 오늘 특히 바쁘다고 하더라구.”
헌터 일이 아니라 꽃가루 때문이겠지. 내 이럴 줄 알았다. 인생만사 마옹지새라니까?
“윤하는 밤을 새서라도 물류센터 다녀오겠다 그랬는데, 본업 바쁜 거면 그냥 편히 쉬라고 했어. 어차피 마스크 말고는 물량 모자란 것도 없어갖구.”
그게 본업이 아니라 잔업 때문인데 말야….
이걸 나는 알지만, 지금 말하는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격증 시험 때문에 일이 좀 꼬여갖고’ 해버리고 매를 미리 얻어맞고 싶은 마음이긴 하지만….
“근데, 윤하가 5월에는 한가하다구 전에 그랬었거든. 무슨 일 있나….”
“어….”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어. 왜, 찬아?”
“…아뇨, 설마 별일 있을까 싶어서요. 있으면 진즉에 얘기했겠지.”
안 하련다. 지금 제일 답답한 게 누나일 건데. 모르는 척 누나 얘기 이어가며 점장 속앓이 시키기도 싫어서 아예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오늘은 물류 안 올 거란 말씀이시죠. 다른 건요?”
“다른 거는… 아.”
도중에 뭐가 떠올랐는지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는 점장. 잠시 뒤 사진 한 장을 내게 내밀었는데, 이건 왜… 아니,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찬이가 전에 영물 강아지 얘기했었잖아. 혹시 이 애야?”
편의점 쇼윈도 밖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사진 구석에 초코칩 세 개가 박힌 솜뭉치 같은 게 자리 잡고 있다. 일단 견종은 포메라니안으로 보이긴 하는데….
“…맞지 않을까요?”
“확신하기는 좀 그래?”
“포메라니안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잖습니까. 그렇다고 오밤중에 목줄 안 매고 돌아다니는 포메라니안이 흔하지도 않을 것도 같고. 이거 언제 찍으신 거예요?”
“1시간 전에 왔었는데, 매장 밖에 서 있길래 얘가 걔인가 싶어서 나가봤거든. 말도 걸어봤는데….”
자기한테는 아무 말 없었단다. 처음에는 ‘이 애가 아닌가?’ 싶었으나, 편의점 주변을 못 떠나고 계속 서성이고 있는 게 영 신경 쓰여서 한마디 건네줬다고.
“혹시라도 찾는 사람 있으면, 10시에 출근할 테니까 이후에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구 말해줬어.”
이 말을 건네준 뒤, 잠깐 손님 받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정황상 걔가 맞는 것 같다. 말을 마친 점장이 아쉬움 가득 담긴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 애랑 얘기 한번 해보고 싶기는 했는데….”
“걔가 모르는 이종족한테 말을 안 해요. 어디 팔려 갈 거 무서워갖고….”
“에이. 설마―”
부정하려는 기색이었으나, 잠깐 생각하고는 고개를 젓더라.
“…아니지. 안 팔려 가기가 힘들겠다. 영물이니까.”
“제가 말은 해보겠습니다. 점장님께서 얘기 한번 해 보고 싶어 한다고요.”
그 멍멍이 먹였던 폐기 상품들도, 엄밀히 따지면 소유주는 내가 아니라 점장이다. 밥을 얻어먹었으면 밥값은 해야지.
한데 지금 시각이 10시 2분. 아직 멍멍이는 보이지 않는다. 이후에 오라고 했다 하니, 10시 반에 오든 11시에 오든 지 맘이기는 했다.
“좀 기다려 보실래요? 아니면 퇴근?”
“그러고 싶기는 한데, 오늘은… 졸려서 힘들 것 같구, 나중에.”
눈까지 비비는 게 확실히 졸려 보이긴 한다. 진열대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온 점장은, 수고하라며 내 어깨를 토닥이고는 매장을 빠져나갔다. 이리하여 혼자 남았고….
멍멍이는커녕 손님조차 안 왔다.
정확히 30분. 기가 막힐 정도의 한가함이다. 평일 밤 근무가 새벽이 되면 한가해도 지금 시간대는 손님이 제법 몰리는 게 정상인데, 손님이 덜 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안 온다. 아예.
이유가 뭔지는 안다. 이 빌어먹을 똥가루가, 발생 이틀 만에 거리를 반 죽여버렸다.
거리로 나와 슬쩍 둘러봤다. 단순히 행인만 사라진 게 아니라, 빛과 소리마저 사라졌다. 저 멀리 먹자골목 쪽 네온사인 간판들은 절반가량이 꺼진 채고, 그나마 켜져 있는 간판들도 꽃가루에 뒤덮여 빛이 바랜 채다.
점장이 떠나간 뒤의 버스정류장은 파리만 날리고 있고, 지하철 출구 안내 기둥은 을씨년스럽게 밝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개발 중단된 유령도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도보에 쌓인 꽃가루는… 이젠 치울 엄두도 못 내겠고. 오늘 오전만 해도 시·구청 양반들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일 아니냐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이젠 그것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방역을 해, 이걸. 방구차 배차 몇 번 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 것 같고. 이 수준이면 정말 마법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 아닌가?
생각을 멈췄다. 저 멀리에 솜뭉치 같은 게 보여서였다.
저 멍멍이가 조막만 한 놈이라 걸음걸이가 많이 느리다. 가까이 올 때까지 가만 서서 기다렸는데,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아리달쏭해졌다. 저놈이 정말 내가 아는 그놈 맞나?
내 코앞까지 다가온 솜뭉치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안부를 물어왔다.
“정말 반갑소이다,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소?”
맞네. 몸을 숙여 대답해 줬다.
“난 잘 지냈는데, 넌 아닌 거 같다. 털이 이게 뭐냐?”
이놈 털이 꽃가루를 하도 먹어서 분홍색으로 염색이 됐다. 군데군데가 뭉쳐 꼬질꼬질한 건 덤이다. 묻자, 멍멍이는 부끄러운지 귀를 축 늘어뜨렸다.
“추레한 행색으로 찾아온 건 미안하오. 허나, 본견도 할 말이 있소.”
말을 하다 말고는 힘껏 몸을 터는데, 아무리 털어도 털의 꽃가루가 떨어지질 않았다. 한참을 그러다 포기하고는, 지쳤는지 혀를 살짝 내민 채로 중얼거렸다.
“이 꽃가루가, 털어도 털어도 당최 털리질 않아서 말이오….”
“그럴 거 같긴 하다.”
성인 남성이 대빗자루로 쓸어도 꿈쩍도 안 하는데, 솜사탕 같은 놈이 몸으로 드릴 몇 번 돌린다고 떨어지겠어?
“참으로 큰일이오. 비라도 와야 몸을 씻을 수 있을 터인데.”
“빗물로는 안 될걸? 이거 마법 똥가루라서. 나도 마당 좀 쓸어보려고 했는데, 빗자루질 몇 번으론 꿈쩍도 안 하더라.”
“그렇다면… 아예 깎는 수밖에 없겠구려.”
“깎는 건 누가 깎아 주는데. 너 미용비 있어?”
“당연히 없소. 하지만, 자판기 밑을 뒤지다 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헛소리 그만하고, 눈 감고 있어 봐. 털어볼 테니까.”
멍멍이는 ‘사장님께 또다시 신세를 질 수는….’ 따위의 말을 중얼거렸는데, 일단 털고 봤다. 떡진 곳은 손끝으로 비벼가며 일일이 풀어주고, 꼬리는 싸대기 좀 때려주고.
꽃가루가 다락방 먼지 터는 마냥 풀풀 나온다.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그새 눈을 감은 멍멍이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읊조렸다.
“고맙소, 사장님.”
“고마우면 썰이나 좀 풀어줘라. 너 요새는 어떻게 지냈어?”
난 이렇게 추측하고 있다. 꽃가루 때문에 인적이 드물어졌고, 때문에 이종족들이 밖을 덜 나온다. 그래서 길가에도 먹다 남은 쓰레기가 덜 버려지고, 때문에 이놈이 더 굶는다.
그게 다일 줄 알았는데, 이놈이 예상외의 단어를 꺼냈다.
“보다시피 썩 좋지는 않았소. 그 흑풍파 패거리 놈들이―”
“야, 잠깐만. 뭔 파?”
“흑풍파 패거리 말이오. 최근 이 근방 일대를 주름잡기 시작한 놈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