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75)
이세계 편돌이-74화(75/331)
74화. 영물 상담 편의점 (3)
처음엔 수소비행선 같은 건 줄 알았다. 여기 이세계잖아?
이세계니까, 방역도 방구차보단 공중살포 같은 좀 더 세련된 방식을 쓰나 싶었지. 한데 자세히 보니, 비행선에 웬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있었다.
비행선도 선체 꽁무니에 지느러미가 달려있긴 하지만, 그게 살아서 흐느적대거나 하진 않으니 말이다. 더해서 비행선의 장점 중 하나가 소음이 적다는 점인데….
―부오오오.
저건 무소음과는 거리가 멀다. 저게 방구차 배기음이 아니라, 고래 울음소리였구만.
멍멍이는 신기한 건지 놀란 건지,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사장님. 저것이 고래라 하셨소?”
“아마도.”
“고래는 무엇이외까. 그, 살아 있는 것이오? 새 같은?”
“살아 있는 건데, 새는 아니고. 굳이 분류한다면 물고기에 가깝지.”
“하지만 저건 하늘에 떠 있소이다. 물고기는 물에서 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는 말이었다. 저게 진짜 고래면, 어떻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건데?
엄밀히 말해서 하늘을 날고 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구름 떠다니는 속도로 두둥실 부유하고 있을 뿐, 흐느적대는 지느러미도 느긋하기 그지없다.
살짝 주관을 보탠다면, 하늘을 헤엄치는 데에 익숙한 듯했다.
지느러미 끄트머리로 네온사인 간판이나 건물 유리창을 살짝씩 스치면서도, 전깃줄이나 현수막은 또 잘 피하더라고. 저 두 개가 뭔지 모르면 저렇게 움직이진 못할 것 같다.
고래가 코앞까지 다가올 즈음엔, 배 언저리에 특유의 줄무늬 반점도 보였다. 이젠 인정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
“저거 고래 맞는 거 같다. 대왕고래 같고.”
“대왕고래라. 참 신기한 생명체구려….”
라며 말하는 강아지가 감탄했다. 더 늦기 전에 미리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봐야 하나…?
“사장님께서는 신기하지 않으시오? 저게 그, 엄청 크고, 거대하고, 굉장하잖소.”
“신기하긴 하다. 지나치게 신기해서 문제지.”
나도 남극의 눈물 3부작을 제외하면 고래를 본 적이 없다. 맨눈으로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란 얘기다.
한데 처음 보는 고래가 하필이면 직경 30m짜리 대왕고래고, 심지어는 하늘을 날고 있다. 놀라움이 오버플로우 해버렸다니까?
그래서 역으로 별 생각이 안 든다. 그래 씨, 100톤 넘는 쇳덩어리들도 사람 태우고 날아다니는데 고래가 하늘 좀 날면 뭐 어때….
우릴 지나쳐 날아가는 순간엔 고래로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시커먼 먹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쳐다보는 와중,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멍멍아. 쟤 멈춰있는 것 같지 않냐?”
고래가 비행을 멈춘 것이다. 앞에 길이라도 막혔나?
이 앞 도로는 6차선이다. 6차선 너비가 도합 18m. 여기선 대왕고래가 움직일 수 있다 쳐도, 저 앞은 먹자골목이라 차선이 좁아진다.
유턴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고래 머리 쪽을 보니까 그것도 아닌 거 같고. 우리 쪽으로 살짝 몸을 틀고는 있으나, 여전히 미동이 없다.
―부오오오.
그러다가 방구차 소리 한 번. 어째 느낌이, 우리 들으라고 내는 소리 같은….
“사장님, 사장님.”
“왜.”
“저 고래가 방금 이렇게 말한 것 같소. ‘빨리 일 끝내고 쉬고 싶은데, 저놈들은 왜 안 들어가냐?’라고.”
“저 짧은 소리에 그 뜻이 다 담겨있다고?”
참 가성비 좋은 언어, 아니. 이게 아니라.
“멍멍아. 넌 저게 그렇게 들려?”
“아까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 같소.”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싶어 내려다봤다. 멍멍이는 확신이 없다는 눈치였으나, 그래도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사장님께서는 저게 다르게 들리시나 보오.”
“내가 저걸 알아들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그린피스에 취직했지?”
“그린피스가 무엇이외까?”
“고래고기 무진장 싫어하는 양반들 있어. 어쨌든….”
저 고래 말이 들리기는 하는데 100% 확신은 못 하겠다, 이 말이잖아. 그럼 확인하면 그만이다.
“멍멍아. 저 고래한테 바람 쐬러 나온 거라고 말 한마디 해줄 수 있냐.”
“말을? 저 대왕에게 말이오?”
“떠오르는 게 있어서 그래.”
아무리 봐도 저 고래가 영물 같아서다. 저게 보통 대왕고래면 하늘은 못 날 거 아냐.
아까는 이 녀석에게 불사조 붙잡고 얘기를 해 보라고 조언해주려 했다. 근데 그 불사조는 동물원 횟대를 박차서 날아가 버려서 안 되고.
마침 저 녀석이 딱 나타났으니, 어떻게든 붙잡고 대화를 시키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미친 발상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위험할 것 같지는 않다. 멍멍이가 ‘일 끝내야 하는데 얘넨 언제 들어가냐―’ 이랬다잖아. 사회생활 잘하는 놈이란 거겠지.
“떠오르는 것이라면, 어떤….”
“아 글쎄, 속는 셈 치고 한번 해보라니까. 쟤 가려고 그런다.”
고래가 슬금슬금 움직이려고 든다. 답답함에 멍멍이를 안아 들자, 품에 안긴 멍멍이는 당황해하면서도 크흠 목청을 가다듬은 뒤.
“…그! 대왕고래 어르신!!”
외치고는, 목을 바르르 떨며 마저 덧붙였다. 어지간히도 무서운가 보다.
“보, 본견! 사장님과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것이오! 귀찮게 하려던 게 아니었소,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오!”
멍멍이가 말을 맺음과 동시에 고래의 움직임이 멎었다. 잠시 뒤, 다시 한번 울음소리.
―부오오오.
“…그, 그렇소!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이 아주 잘 들리오, 그러니 화를―”
―부오오오.
“화나신 게 아니라니 참 다행이오! 한데 어르신이 아니면 무어라고 불러야… 켁, 케헥!”
도중에 사레라도 들렸는지 멍멍이가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이쪽으로 머릴 돌린 채 가만히 있던 고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부오오오.
몸을 수직으로 한 바퀴 돌려 이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후 천천히 다가오는데, 똑바로 다가오는 게… 와 씨, 이젠 나도 무섭다.
반면 멍멍이는 말이 통해서인가, 아까보다는 몸의 떨림이 덜해졌다. 고래를 올려다본 채로 울음소리에 대답하는 멍멍이.
“아니오. 본견이 작은 것이니, 마음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소이다.”
“멍멍아. 아까부터 이 고래가 뭐라는 거냐?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방금은 작은 몸집에 자꾸 소리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셨소. 처음에는….”
자기 말을 알아듣냐고 물어본 거였고, 두 번째 울음소리는 ‘나 화 안 났고, 어르신 소리 들을 만큼 나이 먹은 것도 아니니 그만해라, 부끄럽다.’
“몇 살이길래.”
―부오오오.
“스물다섯이시라 하오.”
“뭐야, 나보다 어리다고?”
고래가 다 크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년, 이후 100년을 산다고 남극의 눈물에서 그랬다. 이 고래 사회초년생이었구만?
“그리고, 사장님이 말이 좀 짧다고도 하고.”
“심지어 내 말을 알아들어?”
―부오오오.
“지금은 불만 있냐고 여쭙는구려.”
“어….”
이걸 생각 못 했네. 일단 사과부터 했다.
“미안, 알아들을 줄 몰랐다. 나는 니 말 못 알아들어갖고.”
―부오오오.
“그럼 됐다고 하오. 그리고, 그건… 본견도 잘 모르겠소만….”
“방금 너한테 뭐 물어본 거야?”
“그렇소. 자기 말을 알아듣는 게 본견이 처음이고, 어떻게 알아들었냐 묻고 있소이다.”
그러게? 얘는 포메라니안이고 쟤는 고래인데, 대화가 용케 통하고 있다.
“아무래도, 같은 동물이라 그런 게 아니겠소이까.”
“그럼 난 곤충이냐?”
“음… 그럼 같은 영물이라 그럴 수도….”
이것도 아닐 것 같다. 이 고래가 나이 스물다섯 먹었다는데, 그 나이 먹도록 다른 영물을 못 만나본 건 아닐 테니까. 영물이 희귀하긴 해도 동물원 가면 만날 수 있는 수준인 거 같고….
둘을 제외하고 나니, 딱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게 니 재주가 아닐까 싶다. n개 언어 하는 거 말야.”
난 고래 말을 못 알아듣고 이 고래는 사람 말을 못 하는 것 같으니, 두 개가 다 되는 이 멍멍이가 특별한 거겠지.
허나 이 녀석은 영 아리달쏭하다는 눈치였다.
“사장님께선 그렇게 생각하시오?”
“정황상으론 그런 거 같지 않냐?”
솔직히 나도 아리달쏭하다. 이것도 마법 비슷한 거 같긴 한데, 내가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쥐뿔 없으니 알 방도가 있나.
머리 싸맨다고 결론이 날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터놓고 말했다.
“몰?루.”
“본견도 잘 모르겠소. 미안하오.”
―부오오오.
이번 울음소리는 ‘그럼 말고.’였단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 고래 녀석이 생긴 것에 비해 엄청 무덤덤한 성격 같다.
지금도 소리 한 번 낸 뒤로는 별말이 없고. 이 고래가 말해올 걸 받아주는 게 아니라, 이쪽에서 먼저 화제를 꺼내야겠다 싶었다.
“야, 고래야. 너 아까 일하고 있다고 그랬잖어.”
―부오오오.
“그 일이란 게 꽃가루 방역하는 거야?”
이 시국에 거리에서 일할 이유가 이것 말곤 없을 것 같아서다. 묻자, 고래는 대답 대신 머리를 짧게 위아래로 까딱인다. 맞는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몸을 살펴봐도 방역제 통 같은 건 안 보였고, 등에 방역 인원이 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묻자, 우릴 바라보던 고래가 지긋이 눈을 한 번 끔벅였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숨을 들이켜는데, 주둥이에 빨려 들어간다 싶을 만큼 강한 바람이 일었다. 곧바로 몸을 숙여 버텼으나, 멍멍이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나자빠졌다.
“아이구야!”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가길래, 얼른 달려가서 꼬리를 붙잡아 멈췄다.
이후 몸을 숙인 채로 버텼는데, 발밑의 꽃가루들이 보푸라기마냥 일어나 흘러 들어가는 게 보였다.
고래는 수 초가 지나서야 들숨을 멈췄고, 이제서야 안전하겠다 싶어 고개를 들었다. 거리를 둘러보니 거리가 훨씬 깔끔해진 상태였다.
―부오오오.
“…이제 빨아들인 걸 내뿜으면, 그 자리엔 꽃가루가 안 달라붙는다 하시는구려….”
“그렇구만….”
“잘못 내뿜다 민원 들어온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여기서는 안 한다 하시고.”
우리 때문에 일을 못 하고 있었다는 게 납득이 됐다.
“그리고, 지금 일하는 게 자기뿐이라 밤을 새워야 된다고 하셨소.”
“너 말고 다른 고래들은 비번인가 보다.”
―부오오오.
비번인 게 아니고, 구청 소속 고래가 자기 한 마리뿐이라고 한다. 여기가 이세계이긴 해도 이 녀석 같은 난다고래가 흔하지는 않은 듯하다.
더해서 이 고래 외의 다른 시청 직원들은 이미 퇴근한 상태라는데, 듣던 와중에 두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는 이 고래가 몇 급 공무원일까 하는 점.
다른 하나는, 자기 상황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것 같다는 점이다.
울음소리에 뒤이어 작게 입을 뻐끔거리는데, 이게 내 눈에는 한숨 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화딱지 날 상황이긴 하다. 거리는 더럽게 넓은데, 일하는 게 시청 직원 중 자기 혼자인 거잖아.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바쁜 놈 억지로 붙들어 맨 것 같아 영 꺼림칙했다.
―부오오오.
“이왕 멈춘 거, 잠깐 쉬다 가겠다 하시는구려.”
“그럼 다행이고.”
이후에는 잠시 정적.
물어볼 게 몇 개 더 있긴 했지만, 당장은 말을 아꼈다. 멍멍이도 할 말이 있어 보여서였다.
“…그, 고래 어르신. 뭐 하나만 여쭈어봐도 괜찮겠소이까?”
―부오오오.
“송구하외다. 어르신 외에는 당최 떠오르는 명칭이 없어서….”
―부오오.
“고맙소. 그… 어떻게 시청에 취직하신 것이오?”
이 멍멍이가 먹고살 길 찾아보려고 편의점에 일자리를 구하러 왔던 녀석이다. 잘 안됐고. 반면, 같은 영물이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게 퍽 부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물음에는 고래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 좀 더 낮게 깔린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부오오.
“어쩔 수 없었다니, 그게 무슨….”
―부오오오.
이 울음에, 멍멍이가 당황한 듯 침을 삼켰다. 이건 통역이 필요한 부분 같다.
“쟤가 뭐랬길래 그러냐.”
묻자, 멍멍이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그… 헤엄을 못 치신다 하오. 물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