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76)
이세계 편돌이-75화(76/331)
75화. 영물 상담 편의점 (4)
이어서는 곧바로 덧붙인 말이, 자기도 하늘을 날고 싶어서 나는 게 아니란 것이었다.
“몸이 알아서 떠오른다는 것이오?”
물속에 억지로 몸을 밀어 넣어도 구명보트마냥 바로 튕겨 올라 버리고, 그래서 헤엄을 칠 수가 없단다. 칠 줄 몰라서 못 치는 게 아니라, 아예 물속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그럼 태어난 건 어떻게 태어난 거야.”
―부오오.
“어르신께서도 어릴 때는 평범했다고 하시는구려.”
3살 될 즈음. 그간 해온 대로 해수면에 숨을 쉬러 나온 그 순간 몸이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버렸다고 한다.
당시엔 꽤나 난감했단다. 자기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자기도 바닷속으로 들어가질 못하니 미칠 노릇이고.
그렇게 몇 시간 씨름하다가, 그냥 ‘엄마, 내친김에 저 그냥 독립할게요’ 하고 인사하고 떠났다고.
얼떨결에 독립을 하게 된 뒤, 자기 나름대로 하늘에서 살아보려고 시도해 봤으나 잘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먹을 게 없어서였다.
대왕고래가 크릴새우를 먹고 사는데, 하늘엔 새우가 없다. 그러니 새를 잡아먹어야 할 텐데, 고래의 헤엄 속도가 시속 30km/h가 약간 넘는 정도다.
그런 놈이 어떻게 새를 잡아? 알아서 입에 들어와 주는 거면 모를까.
때문에 바다 위로 나와 3주가량을 쫄쫄 굶으며 날아다니다 도착한 곳이 이 도시의 해안가라는 것이다.
―부오오.
“그다음엔 별거 없었다고 하오. 잡히고, 시설에 들어가고, 자기 몸을 갖고 이것저것을 연구하는 듯하다가, 시청에서 관리한다며 데려갔다고….”
“별거 없었던 게 아닌 거 같은데?”
“본견도 똑같은 생각이오만, 하도 무덤덤하게 얘기를 하셔서 말이오.”
그 이후로 주욱 시청 관리하에 살았고, 올해로 22년 차가 됐단다. 다 듣고 나서 물었다.
“너 그런 얘기 해도 되냐?”
술 없이 듣기 거북한 얘기 같아서였다. 영문도 모른 채로 헬륨 풍선이 되어버리고, 부모님이랑 생이별하고, 쫄쫄 굶으며 싸돌아다니다 잡혔다잖아.
바쁜 녀석 붙잡아다 괜한 소리 하게 만든 건 아닌가 묻자, 이놈이 더욱 찝찝한 말을 해왔다.
―부오오오.
‘매일 하고 살았어. 알아듣는 게 늬들이 처음이라 그렇지.’
이 녀석이 팔다리가 달려있었다면 ‘힘내, 짜샤’ 하면서 소주 한잔 건네줬을 것 같다.
―부오.
“아. 계기를 여쭤본 이유는… 그, 본견이 시청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오.”
고래는 눈을 치켜뜨고, 멍멍이는 마저 말을 이었다. 자기도 집을 나왔고, 나와서는 늘 굶고 산다. 어떻게든 먹고살아 보려고는 하는데, 영 힘들더라.
멍멍이가 말을 맺자, 고래가 바로 대답해 왔다.
―부오오오.
“추천할 만한 일이 못 되오?”
―부오오.
“확실히… 그건 좀 그렇구려.”
“왜. 월급 짜대?”
“봉급은 잘 챙겨주신다 하오. 일 시작한 후로 굶어본 적은 없다고 하시고.”
허나 자격요건이 까다롭다는 게 문제다.
시청 소속이 되기 전, 이 고래는 어떤 시설에 들어가 영물로서 이런저런 연구의 대상이 되었었다고 했다. 7년 정도.
그리고 포메라니안 평균 수명은 15살. 취직하자마자 정년퇴직하게 생겼다. 이걸 빼더라도 큰 문제가 남아있다.
“재수 좋게 시청 공무원이 된다 쳐도, 너 뭔 일 하려고 그르냐?”
매정한 소리지만, 이 녀석은 말할 줄 아는 걸 빼면 이렇다 할 특기가 없다. 상처가 빨리 낫기는 하지만, 그걸로 뭐. 헌혈 홍보대사라도 시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민원실 힐링용 마스코트 외엔 마땅한 직책이 안 떠오른다. 의견을 말하자, 멍멍이가 중얼거렸다.
“본견에게 서류작업을 맡기진 않을 것 같소. 까막눈이니….”
나지막이 내뱉고는, 잠시 뒤 고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르신, 방역을 하시는 재주는 어떻게 익히시게 된 것이오?”
드디어 이야기가 내가 원하던 주제로 흘러가는구만.
―부오.
“아니외다. 모르신다면 어쩔 수 없지.”
근데 3초도 안 돼서 끝나게 생겼다. 얼른 끼어들었다.
“계기가 있었을 거 아니냐. 뭐, 방역방역 열매를 먹었다든가….”
그렇게 묻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고래가 짧게 울음소리를 냈다.
―부오오.
연구실에 들어가고 며칠 안 되어, 연구원들이 자신을 대상으로 이런 논지의 대화를 했다고 한다. ‘이놈 날아다니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처음엔 흘려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더란다. 더 연구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방생하자는 둥, 먹잇값이 장난 아니라는 둥….
위기감을 느꼈단다. 비록 끌려온 신세지만 밥은 안 굶고 살고 있었는데, 쫓겨났다간 그땐 정말로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겠다 마음먹은 그때가 마침 봄이었는데, 연구소 건물 주변에 벚나무가 몇 그루 있었단다. 그 벚나무가 풀풀 꽃가루를 풍겨댔고, 연구원 몇몇이 비염으로 고생하고.
“이걸 어떻게든 처리하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보셨다 하오. 그러다 된 거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맞는데, 듣고 나니 더 모르겠다. 몰랐던 능력을 깨닫게 됐다는 건지, 없던 능력이 생겼다는 건지.
그나마 확실한 게 있다면, 이 재주는 고래가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깨닫게 된 재주라는 점이다. 못 그랬으면 굶어 죽었을 거라잖아.
간절하다고 다 초능력 쓰면 세상에 굶어 죽는 놈이 있기나 하겠냐마는….
“음….”
“사장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외까.”
“잘 모르겠다는 생각 하고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 못 할 내용 같다. 영물들은 이상한 세상에서도 유별나게 이상한 녀석들이다, 이게 고작이야.
더 생각한다고 다른 결론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아서 주제를 돌렸다.
“그, 고래야.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
―부오.
“아까 뉴스에서 그랬는데, 방역하는 데에 5일에서 7일 걸린다 하더라.”
물으며 거리를 슬쩍 둘러봤다. 도로, 간판, 저 멀리 먹자골목 등등.
시야에 닿는 어지간한 곳들 모두, 방역 이전에 비해 무척 말끔해진 상태다. 고작 호흡 한 번에 말이다. 걸린 시간은 10초도 채 안 되고.
이 정도 오버스펙을 가진 녀석인데, 방역에 왜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지 모르겠다. 이 녀석 혼자서 도시를 통째로 방역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야….
―부오.
“우선, 혼자서 다 하는 게 맞다는구려.”
“오메.”
“그리고, 방역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오.”
작정하고 일한다면, 도시 전체를 방역하는 데에 하루면 충분하다고.
허나 오늘 예정된 작업량은 도시의 절반. 여기까지 말한 고래가 자기 몸을 뒤집어 우리 쪽으로 등을 보였는데….
“야이 씨, 등이 왜 이러냐?”
보자마자 탄식이 나왔다.
등짝이 온통 꽃가루 범벅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말끔했던 배면이나 옆면에 비해, 원래 색이 뭐였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이 상태로 한마디.
―부오.
“참… 힘드시겠구려.”
“등짝 청소해야 된다는 얘기겠네.”
“그렇소이다. 말만 안 했지, 지금도 무척 가렵다 하시고.”
과정이 상상이 됐다. 고래는 등에 뚫린 분수공을 통해 호흡한다.
그 분수공으로 꽃가루를 빨아들일 때, 일부 꽃가루들이 미처 빨아들여지지 못하고 등에 달라붙어 버린 거다. 그게 쌓이고 쌓여 이 꼴이 난 거고.
지금은 견딜 만해도 퇴근할 즈음이면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가려워진단다. 그 때문에 한번 닦아내야 하는데, 여기에 걸리는 시간이 딱 5일에서 7일.
그래서 5~7일이다. 오늘 하루 방역하고, 청소 끝난 뒤에 마저 절반 방역하고.
“마법으로는 어떻게 안 되는 거고?”
―부오.
자기한테 해준 적이 없어서 모르겠단다. 시청 예산 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데, 자기도 주워들은 거라 잘은 모른다 하고….
그나마 지금 등 닦아주는 것도, 주변 건물에 등 긁어대며 한바탕 난동을 부리고 나서야 겨우 받게 된 조치란다.
두 번 그랬다간 작살맞을 것 같아서 못 그러고 있다 하고. 들으면 들을수록, 참….
“막막하네.”
이 녀석 성격이 무덤덤한 이유도 이젠 알겠다.
연구소에 끌려간 3살부터 25살까지.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을 못 하고 살아온 것이다. 진짜로 말을 못 하니까.
그러니 어쩌겠는가. 꾹꾹 눌러담고 살 수밖에. 눌러담고 살다 보니, 감정도 그 밑에 깔려 굳어버린 듯하다.
다시 몸을 돌린 고래는, 내 품에 안긴 멍멍이를 바라보며 작게 내뱉었다.
―부오오….
“부럽다고 하셨소이까? 본견이?”
―부오.
“그, 그리 대단한 능력이 아니외다. 어차피 들어주는 분도 사장님 한 분뿐이고….”
‘난 그 한 명도 없어.’
짦은 울음소리로 마저 말한 뒤, 침묵. 멍멍이도 더 할 말이 없었는지, 애먼 바닥만 뚫어져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아니면… 뭔가를 느낀 걸지도 모르고.
둘이 한참 동안 아무 소리를 안 내길래, 어색함에 편의점 내부의 시계를 곁눈질했다. 30분가량이 지나 있었다.
“고래야. 지금 30분 정도 지났는데, 너 더 있어도 괜찮냐?”
―부오.
“슬슬 가봐야겠네, 라고 하셨소. 그리고, 어….”
“그리고?”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웠다고 하시는구려.”
“고맙긴 무슨.”
나도 좋은 경험 했다. 앞으로 인생 살면서 대왕고래랑 얘기해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
직후엔 몸을 돌려서 날아가려 하길래, 불러세웠다.
“고래야.”
―부오.
“등 한 번만 더 보여주라. 뭐 좀 해보게.”
큼지막한 눈으로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등을 보인다.
“어… 좀 더 낮게 날아봐. 손 닿을 정도로.”
“뭘 하시려고 그러시오?”
“효자손.”
고래가 슬슬 몸을 움직여, 까치발을 하면 손 닿을 위치까지 내려왔다. 가까이서 보니, 꽃가루가 아주 단단히 굳어있다.
좀 더 집중해서 바라봤다. 마나를 아주 잔뜩 머금었는지, 농구 코트만 한 등짝 전부가 빠진 곳 없이 일렁이고 있다.
고래 말대로 아주 단단히 굳어버린 듯하다. 어제 청소할 때처럼 구석구석 만지지는 않아도 될 거 같다.
작게 숨을 들이쉰 뒤, 고래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푸석. 눈 쌓인 지붕의 눈이 쏟아지듯, 굳어있던 꽃가루들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이게 내 머리와 어깨에 죄다 쌓였는데, 순간 폭포 밑에서 득도 수련하면 딱 이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겁나게 무거웠어서다.
그래서 머리를 숙인 채, 십수 초 동안 꽃가루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잠잠해진 듯해서 올려다보니, 이제야 등이 제대로 보인다. 잘 된 것 같다. 내가 몸으로 받은 덕인지, 멍멍이는 그럭저럭 깔끔했고….
“사장님, 뭘 어떻게 하신 것이오?”
“그야 보면 알… 아니지.”
생각해 보니, 멍멍이한테 내 얘기를 해 준 적이 아직 없다.
짤막하게, 고래도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내가 야매이긴 해도 반마법을 조금 할 줄 알고, 그걸로 자격증도 따고 편의점 정직원 취직도 하고 그랬다고.
“본견이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한 재주라는 것만은 알겠구려.”
―부오.
“고래 어르신도 마찬가지라 하시고.”
“대단은 개뿔, 다 야매야 이거. 여튼….”
이후엔 고래에게 일정을 물어봤다.
“혹시 이따가 한 번 더 와줄 수 있냐? 해 뜨기 전에.”
온 사방이 꽃가루로 난장판이 됐는데, 난 이거 죽어도 못 치운다. 이병 시절에 연병장 눈 치우던 트라우마가 재발할 게 뻔해.
―부오.
“된다고 하시는구려.”
“그럼 지금은 여기 냅두고, 퇴근하기 전에 들러서 좀 치워주라. 등 한 번 더 털어줄게.”
―부오오….
“그냥 치우고 가면 안 되겠냐 하셨소.”
“마음은 고마운데, 됐다. 굳이 일 두 번 할 필요 없잖어.”
난장판인 동안 손님은 안 오겠지만, 이건 별걱정 안 한다. 손님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걸?
―부오….
“그래도 그러고 싶다고 하시는데….”
“정 찝찝하면 새우버거라도 하나 사가든가. 나 두 시간 반 동안 아무것도 못 팔았어.”
―부오오.
“지갑을 안 갖고 왔다 하시는구려.”
“그럼 그냥 가라….”
우린 외상 안 받는다.
애초에 뭘 받겠다고 한 짓도 아니었다. 의도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말야.
방역이 늦어지는 게 등짝이 가려워서고, 등을 닦는 데에 5~7일 걸린다고 했다. 그걸 내가 대신 해 줬으니, 방역이 오래 걸릴 이유도 사라진 거잖아?
그때면 거리도 정상이 될 테니, 얼른 방역 끝내주는 게 나한텐 최선의 보답이다. 월급 루팡질도 양심 찔려서 못 해 먹겠어.
입장을 말하자, 잠시 뒤 고래가 대답했다.
―부오.
“이따가 보자 하셨소.”
“그래. 수고해라.”
그러고는 가버렸다.
다시 정적만 남았고, 속이 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꽃가루를 잔뜩 먹어서인지, 고래 울림통 소리를 수십 번을 들어서인지.
와중에 멍멍이가 읊조렸다.
“…사장님.”
“왜.”
“저 고래 어르신이, 본견에게 부럽다고 말하셨잖소. 말하는 재주가.”
“말했지.”
“본견, 이게 부러운 재주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소.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상황을 너무 자주 겪었으니.”
그야, 니가 말 안 통하는 개진상들만 만나고 살았으니까 그렇지….
대꾸하려다 말았다. 아직 말이 안 끝나서다.
“허나, 방금 어르신과 대화하고 나니… 이것도 썩 나쁘진 않은 것 같소이다. 사장님이 방금 하신 것만큼 대단하지는 않아도 말이오.”
“야. 니가 쟤 말 통역 안 해줬으면, 애초에 방금 한 것도 못 했어.”
거 울음소리 한번 참 크다― 하고 말았겠지. 저게 울음소리가 아닌 울음 섞인 목소리란 걸 이 녀석이 없었으면 난 몰랐을 거다.
“내 말 틀려?”
“…아니오. 맞소이다.”
“그럼 너랑 나랑 반반씩 한 건데, 뭐가 대단한지를 굳이 왜 따지냐.”
과장과 중2병을 좀 많이 섞자면, 편돌이와 털뭉치 둘이서 거리의 생태를 지켜낸 것이다.
물론 등골 휘도록 일하는 건 저 고래 녀석이긴 하지만… 솔직히 나랑 이 녀석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하긴 했잖아?
그러니 이번 일로 자존감이 어느 정도 회복됐을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소.”
답답하다가도, 잠깐 생각해 보니 차라리 이편이 낫겠다 싶더라고. 단숨에 회복될 자존감이었다면, 다시 무너질 때도 단숨에 무너질 테니까.
“그러든가. 졸리면 자고.”
어쨌든 이제 겨우 새벽 1시다. 이 녀석한텐 시간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