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77)
이세계 편돌이-76화(77/331)
76화. 영물 상담 편의점 (5)
아침 7시, 고래가 돌아왔다. 오자마자 우렁차게 울음소리 한 번.
―부오오오.
“그, 미안한데… 뭔 소리냐?”
멍멍이가 새벽 2시쯤 잠들었고, 지금도 꿀잠을 자고 있다.
억지로 깨울 수는 있었지만, 요 며칠 길바닥에서 날잠 자던 놈을 깨우기는… 좀 그렇더라. 그래서 통역이 없고, 대화도 못 한다.
말해주자, 이 녀석이 머리를 위아래로 까딱였다. 알아들었다 치고 마저 말을 이었다.
“오래 얘기하기도 힘들 거 같고.”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해가 뜬 뒤로는 이종족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너 나 할 것 없이 편의점 앞에서 멈칫하더라고?
문제는 이 양반들이 고래가 아니라, 나를 보고 멈췄다는 것이다.
왜인지는 이해가 된다. 이 세상은 대왕고래가 방역하는 건 늘상 있는 일이어도, 그 고래한테 말을 붙이는 건 늘상 있는 일이 아닌 거지. 미쳐 돌아가는 세상이야, 아주.
잠깐 정도는 호기심에 그랬다며 넘어간다 쳐도, 계속 이러고 있다간 의심받을 게 뻔했다.
“그러니까 등 대봐. 빨리.”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지.
이해했다는 듯 고래가 곧바로 등을 들이밀었다. 손을 가져다대자 밤에 그랬듯 꽃가루가 퍼석 쏟아졌다. 양이 밤 때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고는 바로 숨을 들이켜 꽃가루를 빨아들였는데, 반대편 도보서 잘 걷고 있던 고블린 하나가 풍압에 못 이겨 나뒹구는 게 보였다.
“이런 젠장할!”
고함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얼른 고래에게 말했다.
“험한 꼴 보기 전에 헤어지는 게 좋겠다. 혹시라도 누가 그랬냐 물어보면 내 얘기 하지 말고….”
―부오오오.
“어, 그래. 미안하다.”
이후 몸을 돌려 떠나려던 고래는, 도중에 날 돌아보고는 마지막으로 울음소리를 냈다.
―부오.
뭔 소린지.
고래가 떠나는 걸 확인한 뒤, 몸을 털고 계산대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둘러댈 말들을 생각했는데, 고래랑 뭘 한 거냐고 물어볼 손님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도 그런 손님은 없었고, 대신 다른 걸 묻더라.
“왜 카운터 위에 강아지가 자고 있어요?”
그야, 찬 바닥에서 재울 수는 없잖아. 입 돌아가니까….
라고 농담을 하면 넘어가 줄까― 아니면 클레임을 걸어올까. 생각하며 손님 눈치를 봤는데, 딱히 불쾌해하거나 더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 손님이 보더콜리 코볼트였는데, 멍멍이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귀를 쫑긋거렸다. 클레임 걸려고 물어본 게 아니었나 보다.
“사장님께서 기르시는 거예요?”
“아뇨. 떠돌이견이고, 올 때마다 조금씩 챙겨주는 정도예요. 애도 온순하고, 말도 잘 듣고.”
“어머. 사장님 엄청 착하시다… 아, 제가 카드 드렸나요?”
“아직 안 주셨습니다.”
대부분이 이런 반응이거나, 혹은 눈치도 못 채고 자기 볼일만 보고 나간 덕에 9시 직후까지도 별문제는 안 일어났다.
9시 넘어서는 늘 그랬듯 쓰레기통 비우고, 담배 검수하다가….
“찬아, 나 왔어!”
교대 10분 전, 점장이 왔다. 오늘따라 기분이 꽤 좋은지,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생글생글하다. 인사할 겸 물어봤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봅니다, 점장님.”
“현재진행형이지. 찬이, 오늘 아침 뉴스 봤어?”
“안 봤죠. 근무 중인데.”
“그럼 다시보기로 보여 줄게, 한번 봐봐. 담배 이따가 세구.”
아직 근무 중인데, 대놓고 농땡이를 피우래. 이래도 되냐?
그래도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점장이 내민 패드 화면을 바라보니, 밑의 헤드라인에 이런 늬앙스의 문구가 적혀있었다. 방역 조기 종료.
뉴스 내용은 ‘방역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났으니, 현시점부터는 야외 활동을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라는 거였고.
말인즉, 장사 공치는 것도 오늘로 끝이라는 것이다.
“나 이제 매출전표 보면서 안 울어도 돼.”
“그거참 다행이네요….”
점장은 여전히 생글생글했지만, 난 마냥 웃지는 못하겠다. 뉴스 말미에 무척 신경 쓰이는 내용이 나와서였다.
[ 기존 예상에 비해 지나치게 이른 시점에 사태 정상화가 발표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방역이 조기 종료된 겁니까. 다른 형태의 방역 계획을 도입한 건가요? ] [ 그건 아닙니다만, 기존 방식을 좀 더 효율적으로― ] [ 효율적이라면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 [ 그게… 어…. ] [ 방역이 ‘종료’되었다는 명확한 근거가 있나요? ]리포터들이 생각을 말하는 게 엄청 거칠다. 하긴, 자기들도 방역이 왜 일찍 끝났나 궁금하긴 할 터다. 이 양반들도 꽃가루 무진장 마셨을 거 아냐.
반면 발표를 하는 대변인은 불안 가득한 눈빛이었는데, ‘우리도 잘 몰라’라고 말하려는 걸 꾹 참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사정을 아는 내 입장에선 그렇더라고.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나는… 솔직히 좀 쫄렸다.
“찬이, 안색 엄청 안 좋다. 뭐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어?”
“그렇게 보이세요?”
“응.”
정말 그래 보이나 싶어 거울을 봤다. 쌍판이 수준 미달이라는 점 빼곤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게 점장 눈엔 다르게 보이나 보지. 더 숨길 자신도 없어서 그냥 이실직고했다. 어젯밤에 잠깐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이 뉴스 같다.
다 들은 점장이 역으로 물었다.
“어떤 게 걱정이길래.”
“밤에 카운터 안 보고 땡땡이쳤냐고 혼내시는 거요.”
“그거야, 뭐… 사연이 있었잖아.”
근무태만 얘긴 안 나올 것 같아 다행이다. 마저 물었다.
“다른 건… 제가 도와줬다고 누가 알게 될 게 걱정입니다.”
말하자, 점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지는 못할걸? 반마법을 쓰면, 썼다는 흔적이 남는 게 일반적이지만… 찬이는 그런 건 없었으니까.”
“그건 처음 듣는 얘기네요.”
“반대로 흔적이 없는 게 흔적이 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건 그거구.”
일 처리를 내가 한 것만큼 깔끔하게 해낼 수 있는 양반들이 몇 없고, 그래서 들킬 수도 있다. 실감이 잘 안 나긴 하지만, 통째로라도 암기해야 할 내용같다.
“CCTV에 찍히긴 했겠지만, 저건 방범용이니까… 찬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구. 오히려 칭찬을 하면 또 모를까.”
“알아봐야 좋을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오전에 받은 손님들도 그렇고, 밖의 행인들도 그렇고, 마스크를 거의 안 쓰고 다니더란다.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알겠더라고.
헌데 그 해방감이 시청이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공신력이라고는 쥐뿔 없는 편돌이 한 놈과 떠돌이견 한 마리가 호기심에 저지른 짓이란 걸 알게 된다?
“신뢰가 바닥을 칠 거 같아서요. 그럴 바엔 차라리 말 안 하는 게 낫지.”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거구나.”
“그런 셈이죠.”
“…이해는 되지만….”
납득은 안 된다는 얼굴로 한마디를 더 덧붙여오는 점장.
“그래도 시청 직원분들한텐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딱히요? 둘러댈 말 없어서 고생하는 거야, 그 양반들이 예산을 잘 썼으면 애초에 이럴 일 자체가 없었을―”
“그거 말구. 내가 시청 관계자였으면, 고마워서라도 찬이한테 감사패 정도는 줬을걸?”
감사패를 내가 받아서 어디에 써먹냐고. 냄비받침이라도 하나 주면 모를까.
싫다고 하자, 점장은 고개를 한 번 더 갸웃하고는 이런 소릴 했다.
“뭔가… 찬이 성격이 슬슬 감이 잡히는 것 같아.”
“제 성격이 어떻길래.”
“최소한, 생각이 깊다는 거 하나만큼은 잘 알겠어.”
“전 나댄다는 소리 듣기가 싫은 건데요.”
“부끄럼 많이 탄다는 것도 알겠구.”
“예….”
굳이 반박은 안 했다. 얘기하는 사이 10시가 다 돼서다. 인수인계는 금방 끝났고, 딱 한 가지만 남았다.
멍멍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얘 깨울까요?”
“그냥 자게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많이 피곤할 텐데.”
강아지 평균 수면 시간이 13시간가량 된다. 이제 겨우 절반 잤으니 피곤하긴 하겠지.
이 생각이었는데, 점장 말로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이 애가 어제 고래 애 말을 통역해 줬다구 했잖아. 그것도 엄청 잘.”
“네.”
“근데 통역 마법이, 잘하기가 엄청 힘든 마법이거든.”
고유어를 포함해 어투, 사투리, 늬앙스 등등 변수가 많고, 이것들을 파악 못 한 상태에서 시전할 경우 질 나쁜 번역기를 돌린 것만도 못한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멍멍이는 어제 고래를 태어나서 처음 본 녀석이다. 파악하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었음에도 그만치를 해낸 것이다.
“피곤하기도 하고. 어지간한 마법사가 똑같은 수준으로 구사하려 했다간… 며칠은 앓아누울걸? 뇌에 과부하 와서.”
“이 녀석이 마법을 쓴 건 아닐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한데, 지금 이 애 자는 게 통역 마법 쓴 마법사들이랑 느낌이 딱 비슷해갖구.”
원리나 과정은 달라도 피곤해하는 모습이 똑같댄다. 지 이야기 하는 게 들리기라도 한 건지, 멍멍이가 타이밍 좋게 잠꼬대를 해댔다.
“사장님… 본견, 더는 못 먹소….”
“허어….”
점장 이야기를 듣고 나니, 참 태생을 잘못 타고난 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놈이 포메라니안으로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대사관에 지원서를 쓸 수 있었을 텐데….
“점장님. 얘 일어나거든 햄버거 한두 개만 먹이고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돈은 제가 내고.”
“내가 살게. 이 애도 고생했으니까, 나름대로 보답도 해주고 싶구….”
“그리고요?”
“그게 이 애랑 얘기할 때도 좀 더 편할 것 같아.”
그냥 이야기하면 어색할 테니 밥상이라도 깔아두겠단 소리 같다. 말하며, 카운터 밑에서 내 지갑과 스마트폰을 꺼내 내밀어오는 점장.
“찬이도 고생했구. 그래서 그런데, 뭐 필요한 거 있어?”
“퇴근하는 거요.”
“아이, 참….”
“진짜 그거 말고는 더 없어요.”
“더?”
“네.”
방역도 끝났으니, 당분간 점장 죽상 볼 일은 없겠지. 난 그거면 됐다.
* * *
자고 일어나니 9시 반이었고, 그대로 출근했다. 워라밸? 그게 뭐냐?
출근해서는 점장이 외투를 건네줬는데, 받아서 이리저리 뒤집어보니 개털 한 올 없이 깔끔했다. 은은하게 섬유유연제 냄새도 나고 있고.
혹시나 싶어 물었다.
“이거 점장님께서 세탁하신 거예요?”
“응. 마법으로 살짝.”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는다. 고용주가 피고용인 옷도 세탁해 주고.
“감사합니다, 점장님.”
“감사는 뭘. 오늘 손님 엄청 많았거든.”
방역이 끝난 덕인지 이종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그게 편의점 매출에도 무척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보너스라도 주고 싶었는데… 주면 받을 거야?”
“아뇨.”
“그럴 것 같아서, 그냥 옷만 세탁했어.”
이건 이것대로 부담스럽긴 하지만….
점장이 이래야 직성이 풀릴 사람이란 걸 이젠 나도 안다. 그래서 더 말은 안 했고, 대신 멍멍이가 누워있던 카운터를 바라보며 물었다.
“걔랑 얘기는 잘 하셨어요?”
“이것저것 했어. 찬이 얘기도 좀 하고.”
내 얘기는 왜 했대?
싶었는데, 둘 사이의 공통점이 나를 알고 있단 것 말곤 다른 게 없어서였단다. 첫 만남에 어색함을 풀려고 말을 꺼냈다가, 30분 넘도록 내 얘기만 하게 됐다고.
“그 애, 찬이 엄청 생각하더라구. 은혜를 갚고 싶다고도 했고.”
그야 그렇겠지. 그 녀석이 말문 트이고 처음으로 대화해 본 게 나였고, 지금까지 알고 지낸 것도 나 말고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길래… 건강하게 지내는 게 보답이 될 거라고 해줬어.”
“걔는 뭐랍니까.”
“그걸로 보답이 되겠냐고 다시 묻길래, 당장은 그게 최우선이라고 했지.”
똑같은 생각이다. 다음에 찾아왔을 때 또 어디를 물리기라도 했다면, 그땐 내가 시청에 신고를 넣을 것 같으니까. 아니 글쎄, 공원 똥개들이 우리 개를 막 문다니까요?
“그랬더니, 노력하겠다 말하고는 갔어.”
“그 노력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 녀석이 알고 지낸 게 나밖에 없어서 내 생각만 하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정작 이 세상에서 아는 얼굴이 몇 안 된다. 잘되면 좋겠다 생각하는 게 욕심은 아니겠지.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손님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근무 교대까진 10분가량 남았고, 눈치껏 점장 일을 도우며 인수인계 사항을 전달받았다.
“특별한 건 없고… 손님이 한 분 올 거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데?”
“하라고 했다고요? 누가요?”
“윤하가 그랬어. 엄청 다급한 목소리로.”
이건 또 뭔 소리야. 내가 오늘은 또 무슨 말썽을 부린 거지?
그리고 손님이 오면 오는 거지, 마음의 준비는 왜 해. 생각하고 있자니, 쇼윈도 밖에 거대하고 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처음엔 헛것이라도 봤나 싶었는데, 그게 편의점 정문 앞에서 멈추더라.
멈춰서서는 위를 슬쩍 올려다보고는 매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무척 쫄깃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손님이, 그… 불곰이었기 때문이고….
“네놈이 이찬이냐?”
“……예?”
“네놈이 이찬이냐고 물었다.”
다른 하나는, 이 곰 입에서 내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