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79)
이세계 편돌이-78화(79/331)
78화. 여긴 난장판이지 편의점이 아니에요 (1)
“찾는 것 있으십니까?”
“…….”
이 양반들은 내 질문에도 반응이 없었고, 나도 그러려니 했다. 말할 성대가 아예 없는 양반들이었기 때문이다. 개구리 군복 입은 스켈레톤들.
문제는, 이 양반들 머릿수가 좀 과하게 많았다는 것. 당장 매장에 들어온 게 다섯, 들어오려고 대기 중인 양반들이 열다섯쯤 됐고….
이어서 눈에 들어온 게 갓길에 세워진 관광버스였는데, 불이 켜져있는 덕에 버스 내부 복도가 훤히 보였고, 복도 끝에서 끝까지 줄이 늘어선 채였다. 저거 45인승 버스 아냐?
머릿수를 세보니 45인승 버스가 맞았고, 동시에 깨달았다. 이 해골바가지들, 계곡 같은 데에 중대 출타 나갔다가 복귀 도중에 뭐 좀 사러 들른 거다.
거기에 재수 없게도 이 편의점이, 정확히는 내가 얻어걸려버린―
“스스페페셜셜레레드드….”
“?”
와중에 담배를 찾는 듯한 소리가 들려서 카운터를 바라보니, 좀 더 빅 사이즈인 해골바가지 하나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이즈 외의 특이사항으로는 머리며 어깨며, 음울함인지 괴랄함인지 모를 테마의 견장 같은 게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건 또 뭐야. 전역모 선물 받은 거야? 탈부착식 성대 포함해서?
“한한 갑갑 주주시시오오….”
“아… 스페셜레드. 알겠습니다.”
말투가 많이 고풍스럽다. 전역 전날이어서 차림새가 이런 게 아니라, 이 양반이 중대장 되는 양반인 듯했다. 그러니까, 데스나이트.
담배 계산해 건네주자, 주변 해골 중 하나에게 명령으로 들리는 말을 하기도 했고.
“인인원원체체크크 하하고고… 다다 탑탑승승하하면면 보보고고하하도도록록….”
“…….”
“허허가가하하겠겠다다….”
말이 어떻게 통하는 건지는 둘째 치고, 대체 뭘 허가한다는….
이건 금방 알 수 있었다. 명령을 받은 해골이 다른 해골들 앞에서 입을 딸칵였고, 그 딸칵임에 맞춰 건빵주머니에서 뭘 하나씩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메모지. 이런 젠장, 나 큰일 났네….
“…….”
“예, 보고 찾아드릴게요.”
편의점에서 군복 입은 양반이 메모지를 내밀어올 경우, 목적은 하나뿐이다. 싸제 담배 잔뜩 사서 돌아가려는 거.
헌데 이 짓을 군대에선 못 하게 틀어막는다. 왜냐? 군인 월급이 나랏돈으로 주는 거라 그렇다. 국가 세금으로 외국산 싸제 담배 사다가 피우면, 사실상 세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셈이 되잖은가?
이왕 담배 피울 거, 국산 담배로 우리 강산 더럽게 더럽게 만들자는 소리다. 다른 싸제품 허용을 거의 안 해주는 것도 이 맥락에서고.
형평성이니 통일성이니 뭐니,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이긴 하지만… 느그 아들 취급당하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그딴 논리가 귀에 들어오겠냐?
그래서 나도 반항심리로 꿋꿋이 싸제 담배를 반입했고, 대부분은 위병소 입구컷을 당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과정에서 깨닫게 된 방법이 두 가지.
그중 하나가 위병소 위병한테 뇌물 뿌리는 거고, 두 번째가 중대장한테 허가받고 손 꼭 잡고 입장하는 거. 위병소 대빵 근무자가 높아 봐야 소대장이기 때문이다. 지가 뭐 어쩔 건데. 개길 거야?
방금 허허가가했다는 게 이거 같았다. 오늘은 애들 싸제 담배 사도 된다는 거. 중대장이 휘하 부대원들 생각하는 게 보기 참 좋다.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여기냐고. 여기 담배 맛 좋다고 누가 소문이라도 냈어?
“225,000원입니다. 영수증 필요하세요?”
“…….”
필요 없다는 것 같아서, 영수증은 떼다 버리고 담배 다섯 보루 쥐여줘서 보냈다. 다음 해골이 내민 메모지를 받아서 읽어보니 총 일곱 보루였다.
이 일곱 보루가 도합 320,000원. 한 갑당 5,000원짜리 담배 한 보루가 섞여 있어서였다. 이렇게 둘 보냈고, 이제 남은 해골이 마흔셋….
그, 적당히 좀 사주면 안 돼? 이러면 나중에 우린 뭐 팔라고?
해골 하나 내보낼 때마다 담배 재고 칸이 10%씩 비어가고 있다. 이 편의점이 제법 큰 편이라 그나마 버티는 거지, 다른 구멍가게였으면 진즉에 푯말 걸었을 거다. 오늘 담배 다 팔려서 없다고.
그리고 대부분의 편의점은 여러 손님에게 물건을 골고루 파는 것을 선호한다. 언제 누가 단골이 되어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쉽게 찾아오는 만큼 떠날 때도 쉽게 떠나기도 해서다. 이 업계가 원래 좀 매정하다.
이런 이유로 가능한 나중에 팔 걸 남겨놓고 싶었는데, 이 해골들이 칼 대신 지갑만 들었지 순 날강도들이다. 이 양반들이 잘못한 게 아닌 만큼 뭔 말도 못 하겠….
“저기, 젊은 청년.”
어르신은 또 누구세요?
나도 모르는 새 뉴페이스 어르신이 한 분 들어오셨다. 종족이 뭔지는 몰라도 키가 작았고, 나이를 무진장 드신 분 같았다. 흰 머리카락과 수염이 얼굴과 목 언저리를 죄다 덮은 채였기 때문이다.
어디서 도 닦는 분이신가― 싶었는데, 입고 있는 건 또 헐렁한 츄리닝이다. 공원에서 허리 운동 하다 오셨나 봐. 계산대로 슥 와서는 내게 말을 걸길래, 담배 보루 바코드를 마저 찍으며 대답했다.
“네, 어르신. 어떤 거 찾으세요?”
“그, 기프트 카―아드를 찾고 있는데 말여….”
하필이면 찾는 게 또 그거야?
편의점에서 문화상품권을 비롯해 이런 결제 수단들을 취급하고는 있다. 주로 미성년자들이나 노인분들이 주로 사 가신다. 이유야 뭐, 가챠겜 돌리려고 사는 거겠지.
더해서, 편돌이가 신경 써서 팔아야 하는 몇 안 되는 상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여러 장을 갖고 올 경우가 문제인데, 손님이 자기가 의도한 금액보다 많게 가져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고….
결제하는 편돌이가 바코드 잘못 찍어서 보내주는 경우도 잦고. 카드가 금액 부분 제외하고는 죄다 똑같이 생겨서, 따로 구분을 안 해두면 ‘방금 결제한 게 어떤 거야?’ 하며 헤매게 된다.
이러다가 재수 없으면, 10만 원 받고 12만 원어치 카드 쥐여서 보내는 거다. 정신 똑바로 차리면 안 일어날 실수이긴 하지만, 세상에 실수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저기 유제품 코너 쪽 한번 가보시겠어요?”
내가 디펜스 하는 중이라 직접 안내는 못 해주겠다. 내 말에 어르신께서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버렸고, 담배 재고의 30%가량을 팔아치울 즈음 다시 돌아오셨다.
“그, 기프트 카―아드는 있는데 말여… 내가 찾는 금액이 읎네.”
“얼마짜리 찾으시길래. 5천 원?”
실물 기프트카드는 최소 금액이 만 원이다.
만 원 미만 소액권을 찾는 거면 온라인 구매밖에 안 된다, 설명해 주고 얼른 보내려 했는데, 이 어르신께서 사려는 금액이 내가 생각한 금액과 차이가 좀 있었다.
“아니, 5천 원 말구.”
“그럼 3천 원?”
“아아니, 200만 원.”
“…예?”
“200만 원짜리 카드 살려는데 말여, 아무리 찾아봐도 읎어.”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최대 금액이 20만 원이니까….
실례되는 생각인 줄은 안다. 아는데, 처음엔 이 어르신 치매 들린 거 아닌가 싶었다. 기프트카드를 뭔 200만 원어치를 사, 가챠겜 골드랑 헷갈린 거 아냐?
“…저, 손님. 혹시나 싶어서 여쭙는 건데, 신용카드 결젭니까?”
“아닌디? 이 기프트 카―아드가, 현금결제밖에 안 된다며? 그래서 현금 갖구 왔어.”
이러고는 자기 수염 밑을 걷어냈는데, 주머니 달린 복대가 하나 둘러져 있었다. 지퍼를 열고 그 안을 뒤적거리더니, 그 안에서 두툼한 뭔가를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만 원권 다발. 짧은 고무줄로 구겨지듯 묶여있다. 현금결제만 된다는 걸 알고 찾아온 걸 보면 제정신은 맞으신 것 같은데, 제정신이면 돈은 왜 이렇게 묶은 거야. 이러면 돈 상하는데….
“…….”
“…아, 죄송합니다. 계산해 드릴게요.”
인지부조화 때문에 손이 멈췄다. 바로 해골한테 사과했다.
마저 메모지를 보고 담배를 계산하며, 머리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걸 내가 해주는 게 맞냐, 안 하는 게 맞냐.
내가 하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고… 아니지, 솔직히 하기 싫은 거 맞다.
200만 원어치 팔면 그게 다 매출 아니냐? 할 수 있는데, 맞는 말이다. 마진율이 1%밖에 안 된다는 게 문제지. 200만 원 팔면 2만 원 남는다니까?
4만 원어치 사탕 한 통 파는 거랑 남는 게 똑같단 소리다. 파는 번거로움은 몇 배를 더하고. 실물 기프트카드 최고가가 20만 원이니, 200만 원어치 팔려면 10장을 긁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괜찮은데, 지금 그 10장이 없단 말야. 내 기억으로는 진열대에 20만 원권이 2장 걸려있었을 거다. 15만 원권이 3장이고, 나머진 다 짤짤이.
그 짤짤이로 200만 원을 마저 채울 수 있나? 진열대 탈탈 털면 될 것 같긴 한데… 모르겠다.
이런 사유를 제쳐놓더라도 걱정되는 게 하나 더 있다. 눈앞의 해골을 보낸 뒤, 다음 메모지를 건네받으며 어르신에게 물었다.
“어르신. 그만큼 사서 어디다 쓰시려고요?”
기프트카드 보이스피싱 당하는 어르신들이 꽤 돼서 그렇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엄마, 나 아들인데, 기프트카드 사서 번호 좀 보내주면 안 돼? 폰을 잃어버려서 지금 다른 분 폰 빌려서―’
일련번호만 알면 누구라도 쓸 수 있고, 되파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중고장터에 가격 후려쳐서 등록해놓으면 되니까. 개인적으로는 보이스피싱을 당해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다만….
이건 내가 이쪽 눈치가 빨라서 그랬던 거겠지. 내 물음에, 어르신이 의아해하며 되물어왔다.
“그거 말해야 살 수 있는겨?”
“네.”
실제로 이런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귀찮아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어르신은 별거 아니라는 듯 자기 폰을 꺼내 조작하고는 내게 내밀어왔다.
“내가 요새 이 께―임에 빠져갖구 말여.”
화면 중앙에 무협스러운 복장을 입은 아낙네가 서 있고, 그 밑으로 로딩바 한 줄이 서서히 채워지고 있다. 사기꾼이 아니라, 2D캐릭터한테 코가 꿰이셨던 거구만….
“돈 쓰면 쎄진다 해갖구 좀 쓸라구 하는데. 안 디야?”
“안 될 건 없죠.”
자기 돈 어떻게 쓰던 자기 맘이고, 내가 사기에 관여하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다. 2천 원짜리 소주 1,000병 파는 거라고 생각하지, 뭐.
담배를 찍으며 어르신께 말했다.
“어르신. 200만 원짜리 기프트카드 찾으셨는데, 그게 없어요. 애초에 만들질 않아서. 최대가 20만이에요.”
“아, 그려? 그런 말은 아무도 안 하던디. 다들 없다구만 하고….”
이미 다른 매장 편돌이들 괴롭히고 오셨나 보다. 마저 말했다.
“그래서 여러 장으로 결제해야 되는데, 그게 시간이 좀 오래 걸려요. 그리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도 지금 좀 바빠서.”
“괜찮어, 나 시간 많으니께. 근디.”
주저하듯 말꼬리를 늘이다, 옆에 선 해골을 슬쩍 올려다보고는 내게 물었다.
“그, 20만 원짜리 한 장만 먼저 팔아줄 수는 읎나? 한 장 미리 써보구 싶은디.”
20만 원어치 가챠 미리 돌리고 있겠다는 소리 같다. 해골 눈치를 본 건 도중에 끼어드는 게 미안해서인 거 같은데, 해골도 눈치를 챘는지 스리슬쩍 뒷걸음질을 쳐주더라고.
“가져오시면 바로 결제해서 드릴게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열대로 가서는 기프트카드를 가져오셨다. 보루들 찍어놓은 것들을 결제취소 한 뒤, 기프트카드 항목으로 들어가서 결제 등록.
영수증을 출력해 기프트카드와 같이 건네줬는데, 받아 들어서는 미동을 안 하고 가만히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속으로 참을 인 자를 한 번 새긴 뒤 물었다.
“…그거 쓰는 법 아세요?”
“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