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8)
이세계 편돌이-7화(8/331)
7화. 납품받는 편돌이 (1)
고글을 벗은 여자의 눈은 갈색이었다. 사람처럼 보였단 뜻이다. 오늘 오전만 해도 썩어지게 본 게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사람이 반가운지 모르겠다.
“그럼 언니 지금 쉬는 거예요?”
“퇴근하긴 하셨어요. 뭐 하시는진 모르겠고.”
“와… 언니 쉬는 건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데.”
중얼거리며 페가수스에서 내리는 여자를 보며, 아까 잠깐 궁금해하고 말았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이 편의점은 초코우유를 팔고, 담배도 판다.
이건 누가 나르든 그러려니 하겠는데, 혈액팩이나 말편자, 시체 같은 비정상적인 물류는 대체 누가, 어디서 구하는 거며 어떤 방법으로 옮겨다 놓는 것인가?
이 여자가 그 해답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되겠다 싶었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도 도검 소지 허가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쓰는 걸 굳이 차고 다닐 이유도 없겠지.
그 외에 여자를 보며 느낀 점은, 아무리 봐도 물류 운반하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다는 것.
페가수스에서 내리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늘씬하기 그지없었다. 입고 있는 가죽 재킷과 청바지가 어우러지는 게 특히나. 모델 일이 더 적성에 어울릴 매무새였다. 맞을 듯했다.
더해서 넉살도 좋아 보였고. 씨익 웃으며 내게 넌지시 물어왔다.
“편의점 일 어때요. 할 만해요?”
“그럭저럭요. 좀 더 해봐야 알 것 같긴 한데.”
대답하는 지금도 하늘엔 하피가 날아다니고 거리엔 켄타우로스가 내달리고 있었으나, 이젠 별 감흥도 없다. 이게 적응이 돼서 이런 건지, 넋이 나가서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어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편의점 일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언니 도와줄 때 잠깐 해보긴 했는데.”
“여기서 일하셨었나 봅니다.”
“며칠요. 진상들 때문에 그만뒀고.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니까.”
편의점 일이 접하기도 쉽고 업무도 편하긴 하지만, 적성에 안 맞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한 자리에 오래 있질 못하는 성격이어서, 얕보이는 게 싫어서, 페이가 약해서 등등.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놈의 진상들이 짜증 나서고. 길에 널린 똥은 피해 걸을 수 있다지만, 이 똥 덩어리들은 걸어서 날 찾아오는 것이다. 더럽고 밟기도 싫은데 피할 수도 없으니, 사람이 미쳐버릴 수밖에.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더 좋기도 하구요.”
“물류 일이요?”
“아뇨. 헌터.”
헌터는 또 뭔데?
슬금슬금 궁금증이 일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더 끌 상황이 아니었다. 여자가 가져온 물류를 행인들이 피해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중에도 페가수스는 손바닥만 한 깃털을 휘날려대고 있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일단 그것부터 안에 좀 들여놔야 할 것 같은데. 카트 가져올까요?”
“네? 아뇨, 괜찮아요. 이거 갖고 뭐.”
사실 카트로도 되겠냐 싶었다. 물류가 내려진 도보에 금이 가 있었으니까. 저거 대체 몇kg짜리냐.
“읏차.”
근데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기합 한 번 주고는 물류를 들어 올렸다. 물리법칙이 고장 난 듯한 광경이었다. 난 나대로 폐문 잠금쇠를 풀어 연 뒤에 물었다.
“진짜 안 도와드려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둘이서 들면 더 번거로워. 사무실 문만 좀 열어주셔요.”
문은 아까 열어놨다.
사무실 문을 열어둔 건, 편의점 창고가 사무실 안쪽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이 대체로 다 이런 구조다. 그 창고 안엔 냉장 보관이 필요한 음료수들을 채워 넣는 편이고.
왜, 그런 경우 있잖은가. 편의점 들어갔는데 카운터에 점원은 없고, 콜라 사러 냉장고 가보니 뒤편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들릴 때. 그 소리가 창고 뒤편에서 점원이 쌔빠지게 창고 음료수들 매대에 채워 넣으면서 나는 소리다.
그걸 하려면 당연히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는데, 편의점에서 물류 채우라고 따로 시간을 주는 게 아니라서 어쩔 수가 없다. 24시간 영업하는 곳에서 따로 시간을 어떻게 줘?
그러니까 점원 없을 때 사장님 어딨냐고 소리 안 질러도 된다. 점원들도 일부러 손님 안 받는 게 아니라, 손님 좀 덜 온다 싶을 때 그때그때 하는 거란 말야. 이건 부탁이다. 살살 불러도 알아서 나오고, 보통은 CCTV 힐끔힐끔 보면서 손님 있나 없나 알아서 확인한다.
근데 이 편의점은 그건 못 할 것 같다.
음료 창고 문을 열어보니, 창고 끝에 지하로 통하는 듯한 계단이 떡하니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지하창고 있는 편의점은 살다 살다 처음 본다.
여자는 사무실 앞에서 잠깐 짐을 내려놓고는 내게 물었다.
“아, 그리고. 음… 어, 사장님?”
“이찬입니다.”
그냥 이름 말해줬다. 물류 하는 분이니 앞으로 어머니보다 더 자주 뵈겠다 싶어서였다.
“미안해요. 언니 말고 다른 분한테 사장님이라 하려니 어색해서.”
“미안하실 것까지야.”
“네. 그럼 이찬 씨, 이거 지하창고 안쪽 네 번째 칸에 놔두면 될까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아직 창고 안쪽을 못 가봐서.”
솔직히 아직은 엄두가 안 난다. 점장이 시체 보관했다고 한 곳이 저 안쪽일 것 아닌가. 언제 한번 저 안에 대체 뭐뭐가 들었나 확인을 하긴 해야 되는데….
“맞다, 일 두 시간 됐다 하셨지. 그럼 같이 들어가 보실래요?”
“얼마나 걸리나요?”
“음, 내부 구조 생각하면… 한 5분?”
“그 시간 동안 카운터 비우기는 좀 그런데.”
5분이면 진상이 개진상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다. 낮에 점장이랑 교대할 때에나 들어가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인 여자는 종이를 하나 꺼내 내게 내밀고는, 상자를 들어 올리려다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날 돌아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몇 살이세요?”
“29살입니다.”
“제가 한 살 많네. 서윤하예요. 편하게 부르셔도 돼요. 누나라고 하셔도 되고.”
“어… 노력해 볼게요.”
아까도 느꼈지만 참 넉살 좋은 여자다. 누나라는 단어 써본 게 한 20년은 된 것 같은데….
서윤하, 그러니까 윤하 누나가 창고로 물류를 집어넣는 사이, 받아 든 종이를 한번 살펴봤다. 원래라면 들어온 물류가 주룩 적힌 목록이어야 하는데, 물건이 하나밖에 안 들어왔기에 적힌 것도 한 줄이 끝이었다.
적혀 있는 건, 어… 드래곤 비늘?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확인해 봤다. 개수는 하나, 몇 그램인지 적혀 있어야 할 규격 부분은 공백란이었으며, 가격도 안 적혀 있다.
그래도 일단 받긴 했으니 펜으로 동그라미 쳐놓고, 카운터로 와서 점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점장님. 물건 받았는데, 이제 어떻게 하면 돼요?”
[ 받은 전표에 바코드 찍고, 점도착 증명 출력된 거 포스기 밑 금고에 넣어두면 돼. ]“그건 그렇게 할게요. 근데, 이거… 신품인 거 같은데, 어따 진열해야 됩니까?”
알바생에게 여러모로 골치 아픈 순간 중 하나다. 신품 들어올 때.
그냥 채워 넣으면 되는 거 아니냐 하면 또 할 말이 있는 게, 보통 편의점 진열대는 항상 꽉꽉 채워져 있단 말이다. 쉽게 진열할 자리를 만들 수가 없다.
억지로 자리 만들어서 진열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대신 균형이 깨지고 점장 마음에 안 들면 욕을 먹게 된다. 대부분은 그렇더라.
이걸 갖고 점장이 내게 욕을 할 리는 없을 테지만 이건 그, 드래곤 비늘이다. 대분류로 나누면 파충류 허물. 이걸 어떤 코너에 진열해야 좋을지도, 할 수 있을지도 떠오르는 게 없다.
[ 진열 굳이 안 해두 돼. 이번 주엔 안 팔 거라서. ]“아, 그런가요.”
[ 아, 내친김에 지금 말해줘야겠다. 계산대 밑에 닫힌 사물함 보여? ]듣고 나서 밑을 내려다보니, 세로로 긴 사물함 하나가 보였다.
“네.”
[ 한번 열어볼래? 안에 버튼들은 누르지 말고. 절대. ]열어보니 점장이 말한 대로 버튼 수십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버튼들 지금 보고 있는데, 이게 다 뭐예요? 전등 스위치는 아닐 테고.”
[ 그 버튼 하나하나마다 좌표를 지정해 뒀거든. 누르면 그 좌표에 해당되는 지점으로 편의점이 이동하게 돼. 진열된 상품 목록도 거기에 맞춰서 바뀌고. ]“누르면 바로?”
[ 누르면 바로. 그러니까 절대 누르지 마, 알았지? ]누르지 말라니까 왠지 눌러보고 싶어진다. 한 번만 눌러보면 안 되나? 아무 데나 갔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는 버튼 누르면 되는 거 아니야?
물론 누르진 않았다. 그러면 안 되니까 하지 말라는 거겠지. 대신 아까 하던 생각을 이어서 질문했다.
“오늘 들어온 드래곤 비늘은 그… 어느 좌표 손님들이 사 간답니까. 아니, 사 가긴 사 가요?”
[ 그거 없어서 못 파는 거야, 찬아. 공방 수백 곳 뭉친 지역이 있는데, 보통 그쪽에서 일하는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많이 사 가. 외에는 학원 지구 쪽에서 견본으로 사 가고…. ]학원 지구는 또 어디야.
“용도가 뭐길래….”
[ 보통 헌터들 장비나, 장신구 보석 대용으로 쓰여. 아카데미에서 견본으로 사 가는 건 그쪽 학과 지망생들 견학할 때 쓰려는 용도. ]“보니까 가격도 안 적혀 있는데, 비싼 건가 봐요.”
[ 응. 한 번에 팔면 몇천만 원 정도? ]세상에. 난 시바스 리갈 17년산 양주 정도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외에 편의점에서 파는 비싼 거라면, 전자담배 기기 정도?
[ 물론 한 번에 팔지는 않고. 그때그때 잘게 나눠서 낱개로 팔고 있어. ]“듣고 있자니 여기가 편의점이라기보단 만물상처럼 느껴지는데 말입니다….”
[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긴 해. 근데… 아무래도 만물상보단 편의점이 장사는 더 잘될 것 같아서. ]나도 굳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편의점을 고를 것 같다. 만물상은 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만 오실 것 같잖아… 잠깐만.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점장이 편의점이랑 만물상 둘 중 어떤 걸 선택할까 고민까지 했다는 건, 어느 쪽이든 장사를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뜻 아닌가?
“점장님. 오해는 마시고, 이건 순수하게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요. 편의점 오픈하신 이유가 따로 있나요?”
[ …어, 왜? ]대답이 좀 느렸다. 정말 이유가 있긴 한가 보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
[ 돈 벌려고 시작했지. 왜? ]점장은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던 사람이다. 어째 눈치를 잘 봐야 할 타이밍 같아 얼버무렸다.
“중요하죠. 돈.”
[ 응. 중요하지. 돈. ]점장 목소리가 아직 부드럽긴 했지만, 살짝 가라앉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그런 질문을 하냐기보다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들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굳이 깊게 캐묻진 않았다. 사회생활 하려면 직장 상사 눈치를 잘 봐야 한다. 그 사람이 직통으로 월급 주는 사람이면 특히 더 그렇고.
얼굴 본 지 하루도 안 된 관계에서 이런 것까지 묻기엔 시기상조이기도 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겠다 싶어 먼저 말을 꺼냈다.
“점장님. 전표 뽑아서 뒀고, 이제 따로 할 건 없나요?”
[ 응. 손님은 이제 좀 덜 와? ]“아직은요. 이제 적응이 좀 되는 것 같기도….”
대답하는 도중 사무실 문이 열렸다. 여자, 윤하 누나가 막 나온 참이었다.
근데 표정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날 보고는 미안한 듯 말해온다.
“아… 이찬 씨. 미안한데, 언니랑 통화 중인가요?”
“네. 바꿔 드릴까요?”
“아뇨, 바꿔주실 필요는 없고… 언니한테 이번 물류 다시 가져간다고 좀 말해줄래요?”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불량품이라서 그래요. 정제가 덜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