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82)
이세계 편돌이-81화(82/331)
81화. 묘약은 사랑을 싣고 (1)
실기 치르던 날, 이 뱀파이어랑 했던 질의응답이 아직도 기억난다.
‘얼마나 자기 한계를 깨닫고 포기할 수 있냐는 문제를 왜 하필이면 국가자격증 시험으로 내시는 건데요?’
내가 이걸 물었을 때, 이 양반이 이렇게 답했었다. ‘이런 중대한 시험에서도 포기할 수 있으면, 실무에서도 비효율적으로 굴지는 않을 거 아니냐?’
이런 작자였다. 국가시험조차 지 꼴리는 대로 내는 양반. 사수가 붙는 건 이해하겠는데, 왜 하필이면 이 자존감 쩌는 양반이 내 사수가 되는 거야. 내가 뭐 잘못했어?
“큰 간섭은 안 할 겁니다. 저도 제 일정이 있으니.”
그야 그렇겠지. 교수니까 자기 연구도 해야 할 거고, 휘하 대학원생들한테 모이도 줘야 할 거 아냐.
여기까지 말하고는 감독관이 내게 불쑥 손을 내밀어 왔다.
“휴대전화 좀 주시겠습니까.”
스마트폰 꺼내서 건네줬다. 받아 들어서는 잠깐 조작하고는 내게 돌려줬는데, 화면에 어플 하나가 막 실행되는 참이었다.
잠시 뒤엔 단출한 게시판 같은 게 떠올랐고, 화면 최상단 게시글의 제목이….
“마력 신소재 간의 반발 가능성 검토 요청? 이게 뭐예요?”
“제 랩실로 들어오는 협약 의뢰 목록입니다.”
듣고 나서 잠깐 벙쪘다가, 깨달았다. 내가 일 못 구하거든, 자기 랩실로 들어오는 과제들 받아다 하라는 소리다. 달리 말하면, 자기 몬스터볼에 들어오라는….
“강요는 안 합니다. 당신이 일을 못 구했을 때의 차선책 정도로 생각하십시오.”
“진심이세요?”
“진심이고, 전 그쪽이 오히려 낫습니다. 저는 이게 최선인 것보단, 차선인 자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감 못 구해서 빌붙는 놈보단, 제 살길 알아서 찾는 놈이 더 좋다는 의미 같다.
“이외에 궁금한 점 있습니까.”
“제가 채워야 하는 할당량이 정확히 어떻게, 얼마나 돼요?”
“한 달 최소 두 건, 국가에서 정한 기준치에 걸맞는 일.”
“그 기준은 누가 판단을….”
“제가 합니다.”
어디서 환청 같은 게 들리기 시작했다. 이 양반이 꼬장부리는 소리 같은 게….
“그러니 어떤 일이든, 맡는 즉시 제게 연락하십시오. 나중에 억울한 일 겪기 싫다면 말입니다.”
“…보고는 어디에 하면 됩니까. 톡?”
“게시판에 올리면 제가 보겠습니다.”
이것만은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스스로 기준을 맞출 수 있을 정도의 짬이 차야 해결될 문제 같다.
“다른 건?”
“이거 할당량 못 채우면 어떻게 돼요?”
“짤립니다. 다른 건.”
“…진짜요?”
“진짭니다. 다른 건 없습니까?”
없었는데, 짤린다는 말 듣는 순간 막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이거 말고도 벌여놓은 일이 몇 개 있는 상황이니….
“할당량만 채우면 딴 일 해도 돼요?”
“범죄에 연루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당신 자유입니다.”
“일하는 장소나 방식이라든가, 아니면 정해진 시간 같은 건….”
“이곳이든 제 랩실이든 상관없고, 무슨 방식을 쓰든 상관없고, 시간? 상관없습니다.”
듣고 나니 구체적으로 정리가 됐다. 깜빵 갈 짓만 안 하면 뭘 해도 상관없다. 대신, 매달 할당량만 채워와라. 못 채우면 자격증 다시 뺏어갈 거다.
“제가 일한 건 따로 기록이 되는 거고.”
“수첩 뒷면에 자동으로 기록될 겁니다. 다른 건?”
“…없슴다.”
더 이상 뭘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말하자, 잠시 말없이 날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감독관. 코트 앞섶을 여미고는, 툭 던지듯 말해왔다.
“연락처 남겨놨으니, 문제 생기거든 연락주십시오. 그리고, 저도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하십쇼.”
“이곳에서 일하려고 제 교수직 권유를 거절한 겁니까?”
이 얘기 언제 나오나 했다.
이게 이 양반 꼬장 1호가 되겠구나― 생각하며 얼굴을 봤는데, 교수직보다 편돌이가 더 중요하냐며 따지려는 건 아닌 듯 보였다. 이해가 안 돼서 묻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어쨌든 꼬장은 아닌데, 의도가 짐작이 안 된다.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 이것도 나중에 연락드려야 됐던 일이에요?”
“…아뇨. 문제 될 건 없습니다. 단지….”
이어서는 할 말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 되어, 말없이 카운터 쪽만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점장 얼굴을 말이다.
“…분명….”
읊조리고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멀거니 쳐다보다, 저 멀리서 점장이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고 나서야 자기 몸을 움직였다. 정문 쪽으로 가서는 날 바라보며 한마디.
“나중에 뵙죠.”
“넵.”
그러고는 가버렸고, 시간을 보니 10시 5분이었다. 바로 창고로 뛰어가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점장에게 물었다.
“인수인계 사항 있어요?”
“낮에 윤하 와서 담배랑 기프트카드 다 채웠으니까, 재고 걱정 안 해두 돼. 이걸로 끝.”
선택적으로 담배 팔 일 없다 하니 다행이다. 외에 분실물 같은 특이사항도 없어, 인수인계는 금방 끝이 났고….
“점장님, 혹시 궁금한 것 좀 여쭤봐도 될까요.”
“응. 어떤 거?”
“저분이 점장님 얼굴 아는 것 같아 보여서.”
방금 대화해보고 확신한 게 있다. 저 뱀파이어가 비효율적인 걸 싫어하는 양반이란 거다. 자기 할 말만 딱 하는 것 하며, 말투 하며.
그런 양반이 하던 설명도 멈추고 점장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봤으니, 분명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허나 점장 반응이 예상한 거랑은 좀 달랐다.
“음… 그건 나도 느끼긴 했는데….”
“점장님은 저분 모르시는 거예요?”
“낯이 익긴 한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 옛날에 협업했던 분인가? 마법사 일 할 때?”
협업했던 사이면, 오히려 기억 못 하기가 어렵지 않나….
이건 아닌 것 같고. 나도 회사 다닐 때 안면 텄던 거래처를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다. 그나마 큰 거래처나, 거래처 사장 경력이 화려할 경우 정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거래처 사장이 전직 교수였으면 잊고 싶어도 못 잊었을 것 같다.
“저분이 옛날엔 교수가 아니셨을 수도 있잖아.”
“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그래두, 뱀파이어 분들이랑 일 같이 했던 적은 있어. 그러니까… 몇 번이었더라. 스물세 번? 스물다섯 번인가?”
“그 정도면 기억 못 하실 만하네.”
저 뱀파이어는 점장을 기억하는 것 같단 게 문제지만 말이다. 현직이 교수인 양반이 아직까지도 얼굴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점장이랑 같이 일했던 게 꽤나 인상에 남았나 본데….
“나, 왕년에는 마법사 일 꽤 잘했거든.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그런 건 자랑 많이 하셔도 돼요.”
“싫어. 나이 들어 보이잖아.”
“걱정 마십쇼. 점장님께선 뭔 말 하시든, 제 눈엔 영원한 17세이십니다.”
“실제로도 17세인데?”
본인이 그렇다 하니 그런 줄 알란다.
“아무튼, 무슨 일 같이 했는지 알려주시면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억지로 기억 안 해주셔도 돼요. 그냥 호기심에 물어본 거라.”
다음으로 자격증 수첩을 꺼냈다. 저 뱀파이어 교수 왈, 내가 일을 하거든 뒷면에 자동으로 기록이 될 거라고 했었다.
“와, 엄청 공들여서 만들었다. 양피지도 아니구.”
양피지는 도대체 언제적… 아니지. 이건 말하면 꿀밤 맞는다.
“공들였단 게 눈에 바로 보이세요?”
“여기 봐봐, 찬아. 표지 마법진도 금도금해놨지, 용지 한 장 한 장에 손상 방지 마법 걸어놨지―”
“금도금요?”
“응. 순금… 아, 미안. 이거 물어본 게 아니겠구나.”
말하고는 수첩 뒷장을 펼친 뒤, 펜을 집어 뭔가를 그리기 시작하는 점장. 공을 들이길래 마법진 같은 걸 그리려나 싶었는데….
그냥 낙서였다. 스마일 그림.
“저도 웃으면서 사는 게 좋다고는 생각합니다. 근데, 이걸 왜 수첩에….”
“보고 있어 봐.”
보고 있으래서 계속 봤다. 잠시 뒤, 점장이 그린 스마일 그림이 점차 흐릿해지다, 사라졌다.
“이게 마법청 쪽이랑 연결되어 있는 거야. 여기에 뭘 적더라도, 마법청 쪽에서 필요 없는 내용이라 판단되면 지워지는 거지.”
“그 구조면, 방금 낙서도 그쪽에서 확인하고 지웠다는 게 되지 않습니까?”
“응. 그래서 좀 열심히 그렸어.”
확인하는 쪽에선 이건 뭐여? 싶었겠지만, 내 눈에도 잘 그린 낙서였다. 그러니까 괜찮겠지, 뭐.
“반대로, 적혀 있어야 될 내용들은 그쪽에서 입력해 줄 거구.”
대충 이런 순서인가보다. 내가 일을 마치고 교수 양반한테 보고를 하면 교수 양반이 마법청에 일한 내역을 전달하고, 그쪽에서 기준에 맞다 판단하면 여기에 새기는 거고.
“뒷면 다 채우면, 표지에 별 하나 새겨 줄 거야. 경력 인정용으로.”
“그것도 원격으로 해줘요?”
“아닐걸? 나 때는 직접 찾아갔거든. 상장 주고, 박수도 쳐주고 그랬어.”
상장이나 박수는 됐으니 피자나 한 판 사주면 좋겠다. 쿠폰북 쿠폰 다 모아가는 건데.
“그때 되면 같이 가줄게. 가는 길이 좀 복잡하거든.”
“그냥 순간이동으로 날아가면 되지 않나….”
“힘들어. 관공서로 좌표 설정하고 순간이동하면, 설정한 좌표랑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려서.”
“어디로 가는데요?”
“구치소.”
비슷한 연유로, 은행 금고 같은 곳에 좌표 설정해도 똑같은 곳으로 날아간단다. 언제가 됐든, 최소 한 번 이상은 그 마법청이란 곳에 들를 필요가 있다는 말 같다. 내 발로 직접.
“아니면 찬이가 수첩에 걸린 마법 실수로 풀어버리고, 다시 걸어달라고 찾아가게 될 수도 있구.”
“그건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됐구. 혹시 또 궁금한 거 있어?”
지금은 없다. 대신, 나중에 물어봐야 할 것 같은 게 하나… 음….
“시간 괜찮으세요?”
“다음 버스 10분 이따가 온대.”
“그럼 이것만 마저 부탁드리겠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아까 감독관이 깔아줬던 게시판 어플을 실행해 보여줬다. 잠시 화면을 바라보던 점장이 물었다.
“이 중에서 어떤 게 좋을지 골라달라는 얘기지? 실기 치렀던 때처럼.”
“네.”
예를 들면, 아까 봤던 마력 신소재 간의 반발 가능성 검토 요청? 난 그런 대단한 일 못 한다. 이론을 아는 게 있어야 검토를 해주든 말든 하지.
애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자체가 지극히 제한적이다. 몸뚱어리 말고 머리로 때워야 하는 일들, 멀리 가야 하는 일들, 하루 이상 걸릴 일들, 기타 등등….
내 본업은 어디까지나 편의점 매니저이니 말이다. 손님들 눈에야 편돌이나 매니저나 그게 그거겠지만, 아무튼.
“좀 까다로운 조건인 건 아는데… 당장은 이렇게 해보고 싶어서요.”
정확히는, 이 조건이 아니면 안 된다. 내가 나랏일 부업 뛰겠다고 며칠 뛰쳐나가면 매장은 누가 지켜. 점장이? 며칠을?
점장이야 자긴 매지컬 파워로 버틸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하겠지만, 내가 싫다. 내 생각이 빤히 보였는지,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점장이 말했다.
“빨리 알바생 들어오면 좋겠다. 그치.”
“구인광고 갱신하셨어요?”
“응. 매일 퇴근하고 집 가면 그것부터 하거든.”
대답하고는, 내게서 스마트폰을 받아 천천히 스크롤을 넘기는 점장. 이럴 거 같아서 나중에 부탁하려고 한 거다. 버스 놓치면 어쩌려고 이러냐?
점장이 말없이 스크롤 넘기는 동안, 난 버스 정류장 쪽만 쳐다봤다. 버스 오거든 바로 점장 내쫓으려고.
다행히도 버스 오기 전에 끝났다. 게시글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터치하고는 나한테 보여주며 묻더라고.
“이건 어때?”
“어떤 거요?”
“제약회사. 묘약 만드는 곳인데.”
제약회사? 묘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