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84)
이세계 편돌이-83화(84/331)
83화. 묘약은 사랑을 싣고 (3)
지하철 안이라 길게 통화는 못 하고, 20분 뒤에 도착한다 하더라. 알았다고 했다.
이후 정확히 20분 뒤에 서큐버스가 매장에 들어왔는데, 나랑 눈 마주치자마자 입을 굳게 다물고는 무척 침울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우선 인사부터 건넸다.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손님.”
“…….”
대답도 없고. 서로 가만히 바라만 보기를 수 초, 그냥 내가 사과했다.
“알았어요. 앞으로는 부침개 얘기 안 꺼낼게요.”
이 서큐버스는 자기가 한식 조리 기능사로 기억되는 게 싫은 거겠지. 말하자, 서큐버스가 바로 반색해서는 되물어왔다.
“정말요?”
“예, 정말로.”
나는 이런 건 오히려 꾸준히 언급해야 당사자가 경각심을 가지고 실수를 안 한다는 생각이지만…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대답하자, 이제서야 표정을 풀고는 카운터로 총총 다가왔다. 인사나 마저 해야겠다.
“요 며칠 못 뵌 것 같은데,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엄청요! 질병 타겟 물색하고, 논문도 작성하고, 제안서도 작성하고….”
그 외에도 나는 들어도 모를 일들 하느라 무진장 바빴다는데, 나는 제약회사는 취직하고 나서도 논문을 써야 돼요? 라는 의문밖에 안 들더라고. 가방끈 짧은 티만 낼 말 같아 묻지는 않았다.
“최근 이틀은 거의 퇴근도 못 했고요! 신약 1상 시험 준비하느라―”
여기까지 말한 직후엔 뚝 말을 멈추고, 날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살짝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해왔다.
“사장님께서 반마법사셨을 줄은 몰랐어요. 자격증 따는 거, 경쟁률 엄청 세다고 들었는데.”
“모르실 만하죠. 마지막에 뵀을 땐 아니었으니까.”
“네? 그럼….”
“자격증 딴 지 5일 됐거든요. 이번 일이 사실상 처음이고.”
같이 일해야 할 상황에 꺼내기 좋은 말이 아니란 건 알지만, 그래도 말했다. 경력 속여봐야 자격증 한번 들여다보면 들킬 게 뻔하기도 했고….
이 서큐버스가 경력 짧다고 누굴 무시하거나 할 성격도 아니고. 서큐버스는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해왔다.
“그럼, 제가 엄청 잘 설명해 드려야 되는 거네요. 그쵸?”
“어… 그러셔야겠죠?”
“걱정 마세요! 저희 회사 신입 연구원들 교육도 제가 하거든요.”
내 걱정 덜겠다고 한 말이 아니라, 쌩초짜랑 일해야 할 당신 걱정돼서 꺼낸 말이었는데 말야….
“매번 사장님께서 제 얘기 잘 들어주셨으니까, 그 값도 하고 싶고.”
값을 받겠다고 얘기 들어준 것도 아니다, 말하려다 말았다. 서큐버스가 의욕 가득한 얼굴이 돼서다. 붙은 의욕을 굳이 꺼뜨릴 이유도 없지.
“그럼, 저희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뭐 좀 마시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목 탈 것 같은데.”
자기가 사겠다 하길래, 됐다고 하고 음료 가판대에서 아메리카노 두 캔 가져와 계산했다. 이후 유니폼 벗어서 계산대 밑에 둔 뒤,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사장님께는 항상 얻어만 먹는 것 같은….”
“신경 쓰지 마시고. 그, 묘약이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겁니까?”
사랑의 묘약 만드는 회사니 그쪽 계통이겠지, 여기까지는 짐작하고 있다. 헌데… 사랑의 묘약이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것인가?
내 머릿속 잡학사전, 서양 전승 항목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남녀가 한 병의 물약을 서로 반씩 나눠 마실 경우, 물약을 마신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
이 전승을 이 세상에 그대로 대입한다면, 사랑의 묘약은 복용약이다. 그리고 서로 간의 합의가 끝났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깜빵 갈 거 아냐.
그리고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서로 합의하에 약 먹고 사랑할 거면, 약 안 먹어도 어차피 사랑하게 될 운명 아닌가? 왜 굳이 묘약을 먹어?
옛날 서양이야 뭐, 띠띠동갑 정략결혼도 집안 가장이 까라면 까야 하는 막장 세계관이었으니 쓸모가 있기는 있었을 거다. 어차피 해야 할 결혼, 약 먹어서라도 사랑하는 게 정신건강엔 좋겠지.
근데 스마트폰 버젓이 쓰고 다니는 이 세상에도 사랑의 묘약이란 개념이 존재한다는 게 영 의문이다. 이 의문에, 서큐버스가 명쾌하게 대답해줬다.
“없는 사랑은 못 만들어요. 약사법 위반이라서.”
“그럼, 어… 이미 있는 사랑이 유지되는 걸 돕는다, 이런 느낌인가?”
“비슷해요. 이 신약의 효능은, 서로한테 좀 더 솔직해지는 거고요.”
“서로한테 좀 더 솔직해진다….”
듣자마자, 머릿속에 비슷한 효능을 가진 다른 물약이 떠올랐다.
“자백제 아닙니까, 그거?”
신혼부부 냉장고 속 물병보다는, 심문실 책상 위 종이컵에 담겨있는 광경이 더 개연성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실 만해요. 근데 혹시 자백제의 원리를 아세요?”
“솔직히, 잘 몰라요.”
“자백제는 솔직하게 만들어 주는 약이 아니에요. 뭐라도 말하게 만들어 주는 약이지.”
여러 대중매체에서는 자백제를 함묵증 치료약이라도 되는 마냥 묘사하지만, 아니다. 정확히는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향정신성 약물을 투여해 사고를 저해하는 약물.
이것만 투여한다고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아니라, 빠따나 전기지짐이, 혹은 어금니 발치 등의 다른 함묵증 치료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는 말들이 솔직한 말일 거란 보장도 없고요.”
사고를 저해시키는 약인 만큼, 꺼내게 될 말들도 정상적인 사고를 통해 나온 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을 하는 당사자조차도 자기가 뭔 말 하고 있는지 모를 테니까.
“흠….”
지식이 늘었다. 근데 이 서큐버스는 이런 걸 왜 알고 있는 거야?
“마법청에 허가받을 때 똑같은 클레임을 받았었거든요. 자백제로 사용될 우려가 있지 않냐고. 그래서 반박 자료 찾다 보니….”
“아하. 그래도 용케 허가를 받으셨네.”
“사실, 허가받게 된 건 전혀 다른 이유이긴 했어요.”
“어떤 이유요?”
“이게 서로한테 솔직해지는 약이니까, 효과를 발휘하려면 피심문자가 아닌 심문자도 약을 복용해야 하잖아요?”
말인즉, 피심문자가 ‘솔직하게 말하면 나 보내주냐?’라고 질문하면 심문자가 ‘아니? 내가 미쳤게?’라고 대답하게 된다는 것.
심문하는 입장에서 그걸 반길 리도 없거니와, 피심문자의 반발심리가 자극되어 약효가 떨어져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반박 자료로 제출했고, 어찌어찌 통과가 됐단다.
“신약에 보호제를 몇 종류 섞어놨기도 하구요.”
“보호제?”
“네. 사실, 이게 사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점이기도 하고.”
약병 라벨에 명시될 용도는 ‘사랑하는 두 대상이 서로를 솔직하게 대하는 것.’
말은 쉽지만,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크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서로에게 정확히 얼마나 솔직해지는가?’, 두 번째는 ‘사랑하는 사이라면 어느 문제든 모두 솔직해야 하는가?’
첫 번째의 경우를 예시로 든다면, ‘너는 날 사랑하니?’라는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하면 솔직한 거라 칠 수 있겠지.
반면, ‘내가 오빠 말고도 사랑하는 사람이 몇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중에 오빠가 제일 좋아’라고 대답하면. 상대가 솔직하게 대답했다고 좋아해 줄까? 각혈할 것 같은데?
약효가 세면 이게 문제가 된단다. 해도 될 말 안 될 말 구분을 못 하게 된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섞는 보호제가 ‘질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하게 만들어 주는 보조 마법제’다.
두 번째 문제의 경우도 예시를 든다면,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반드시 숨기고 싶은 점이 최소 하나는 있을 터다.
예를 들면, ‘오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어?’
여기에 ‘나는 사실 어렸을 때 엄마 지갑에서 돈 훔쳐다가 문화상품권을 샀던 적이 있어. 바지에 오줌도 몇 번 지렸었고’라는 대답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숨기던 사실은 맞잖아.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대화 주제에 관해 서로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마법 보조제가 추가로 첨가된단다. 모호한 질문에도 원하는 대답을 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내가 뭘 하게 될지도 어렴풋이 짐작이 됐다.
“그것들 말고도 들어가는 게 좀 많을 거 같은데….”
“맞아요. 말씀드린 것들 빼고도 첨가된 보조제가 좀 많아서―”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걸 나랑 협업해서 미연에 좀 방지해보겠다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부작용이 일어날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단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생기리라 예측하고는 있지만, 딱 여기까지.
“언제까지 하면 되는 거예요?”
“아, 정해진 기한은 없어요. 어디까지나 상용화가 목적이거든요.”
이러고는 덧붙인 내용이, 신약 상용화의 평균 성공률이 9.6%가 채 안 된다고. 서둘러봐야 좋을 것도 없고,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말 같다.
“그러니까, 사장님께서도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승인 거부가 일상인 업계니까.”
“허어….”
업계 사정과는 별개로, 나는 기왕 하는 일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내 잘못으로 일이 엎어져 버리면 마법청 양반들이 기록으로 쳐주지도 않을 것 같고.
“당장은 여기까지인데, 혹시 더 궁금한 점 있으세요?”
“있기는 한데… 잠깐 생각 좀 해 볼게요.”
이야기는 얼추 들은 것 같으니, 이젠 견적을 내봐야겠다.
우선, 나는 신약 개발 과정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더해서, 부작용 관련된 마법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 신약 말인데, 제가 직접 볼 수는 있는 거죠?”
“그야 물론 보여드려야죠.”
“먹어볼 수도 있는 거고.”
“그것도 물론… 네?”
스스로 뭘 할 수 있는지는 안다. 마법을 지우거나, 필요 없는 마법만 지우거나, 마법이 걸려있다는 걸 눈으로 직접 보거나.
부작용도 마법일 터다. 그럼 내가 지울 수 있겠지.
필요 없는 부작용만 지울 수도 있을 거고, 부작용이 발생하는 걸 눈으로 볼 수도 있을 거다. 약품 부작용이 눈에 보이는 게 말이 되는 현상이냐 싶기는 하지만….
말이 되고 안 되고를 따진다면, 내 몸뚱어리로 이 세상서 겪었던 일들 전부가 말이 안 되는 일들이었다. 하나 더해진다고 달라질 거 있나.
“사장님. 이게, 아직 1상도 시행 안 된 약품이라서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니긴 한데….”
허락받아야 할 곳들에선 다 허락받았고 임상실험 공고만 안 올려둔 상태라, 나중에 지원자에 포함해 버리면 상관없다. 편법이긴 하지만―
이라고 말한 후에는 걱정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바로 표정의 의미를 이해했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대체 뭘 어쩌려고 그러냐?
말로 설명하기보단 한 번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다.
“혹시 마법 관련된 물건 갖고 계신 거 있어요? 아니면 약품이라든지.”
“어… 잠시만요.”
이러고는 자기 핸드백을 뒤져서 꺼낸 게 향수였다. 꽤나 고급져 보이는 병에, 용량이 꽉 차 있다. 한 펌프도 안 써본 것 같다.
“네. 홈쇼핑에서 호기심에 샀던 거라서요.”
“효과가 뭐길래.”
“누가 자신을 바라보거든, 시선을 쉽게 못 떼게 만들어 준대요. 효과 반경은 3m고, 자신을 매력 있다 여길수록 효과가 세고….”
“3m면 의미가 있어요?”
“옛날에는 반경이 넓었는데, 교통사고가 많이 나서….”
하여 전량 리콜 후 반경을 줄여 재판매를 시작했고, 교통사고까지 유발할 성능이라는 점을 역으로 바이럴마케팅 수단으로 삼고 있다나. 이게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그건지, 뭔지….
“그거 저한테 몇 펌프만 뿌려 보십쇼.”
어쨌든 지금 당장 써먹을 만해 뵌다. 말하자, 서큐버스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뚜껑을 열어 내게 향수 몇 펌프를 뿌려줬다.
“다 뿌리셨어요?”
“네.”
“이젠 어떠십니까. 시선 집중이 좀 돼요?”
묻자, 날 가만히 바라보던 서큐버스가 시선을 오른쪽으로 홱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날 보다가, 왼쪽으로 홱.
잘된 것 같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를 설명해 주려는 찰나, 서큐버스가 재차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효과가 없네요. 사장님한테 매력이 1도 없는 건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