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85)
이세계 편돌이-84화(85/331)
84화. 묘약은 사랑을 싣고 (4)
내가 이 일 하는 데에 특별히 기를 모은다거나, 단전에 호흡을 집중해야 하는 건 아니다. 거창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늘 해오던 대로 마법만 슬쩍 지워놓은 탓인지, 서큐버스는 내가 뭘 했다고는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나 놀리려고 이러는 거든가….
“사장님, 이거 향수가 잘못된 거 같아요. 사장님께서 매력이 1도 없으신 분이 결코 아닌데!”
표정이 당황 반 진지함 반인 걸 보니, 놀리려고 이러는 건 아닌 거 같다.
“홈쇼핑에서 불량품을 팔진 않겠죠. 민사소송 걸릴 일 있나.”
계속 눈치 못 챌 분위기라 아예 말을 끊었다. 내 매력 스탯이 1 미만이긴 해도 소수점 단위로는 존재할 거고, 그 향수도 원래라면 제대로 작동했을 거다.
“제가 지운 거예요. 마법만 딱. 손님 반응 보시면 잘된 것 같고.”
“네? 어떻게요?”
“그건 말씀 못 드리겠네요. 영업비밀이라.”
어떻게 하는 거냐 물어봐도 난 모른다. 그냥 하면 된다고 해?
이게 전문가가 할 만한 대답은 아니잖은가. 앞으로도 영업비밀이라고 둘러대는 게 이 서큐버스든, 외에 협업하게 될 누구든 간에 편할 것 같다.
“아무튼 뭐, 이게 제 전공이에요. 마법 들어간 어지간한 일들은 다 처리 가능한 거.”
동의어로는 ‘몸으로 때운다’라는 표현이 있다. 허나, 서큐버스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리를 잘 모르겠긴 하지만요….”
그렇겠지. 필기 때든 실기 때든, 점장 말이든 감독관 말이든, 나처럼 무식하게 일 처리 하는 놈은 전례가 없다고 했었다. 이 서큐버스는 마법 전공이 아닌 만큼 특히 더할 거고.
그래도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는 듯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는 잘해 주실 거 같아요.”
“그렇게 보이세요?”
“네. 엄청 자신 있어 보이시거든요.”
난 모를 내용이었지만, 당사자가 그렇다니 그런 줄 알기로 했다.
“그런데요. 사장님 방식대로 하신다면, 제가 어떤 걸 도와드려야 할지….”
“있긴 합니다. 혹시 신약 가지고 나오실 수 있습니까? 회사에서?”
“어, 외부 반출 허가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아요. 그거.”
이건 반쯤은 기대 안 하고 한 부탁이었다.
왜, 그런 것들 있잖은가. 어느 (주)바이오에서 외부로 몇백억짜리 기술을 유출하다 걸렸다, 혹은 다른 벤처기업에 기술 팔아먹고 잠적하려다 걸려서 징역 15년을 살았다―
“이틀 뒤에는 가능해요. 계약서에 사인만 해주신다면요.”
“정말 된다고요? 이틀 뒤에 사인만 하면?”
“네. 보안 엄청 철저하거든요. 계약서도 잘되어 있고.”
보안마법 잘 되어 있고, 계약서도 마법 빵빵하게 걸려 있어서 외부 유출이 원천차단된 채란다. 마법짱짱맨이다.
물론 나처럼 마법 죄다 풀 수 있는 놈에겐 의미 없기는 하겠지만, 난 이 신약을 불손한 용도로 쓸 마음도, 어디 팔아치울 생각도 없다. 계약서 쓰라면 쓰지, 뭐.
“가지고 나오는 장소는 어디면 될까요, 사장님.”
“이 편의점이면 됩니다. 여기서 작업할 거라서.”
“여기서 작업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어… 심리적 안정?”
밖에서 일하면 카운터는 누가 봐? 보다는 이게 나아 보여서 둘러대 봤으나, 내가 느끼기에도 동기가 좀 부족해 보였다. 마저 덧붙였다.
“그리고, 손님께서도 요 앞 버스정류장서 환승 버스 타셔야 되기도 하고.”
이곳 입지가 편돌이 입장에선 열불이 터지는 곳이긴 해도, 직장인들 입장에선 지리적 요충지인 것도 사실이었다. 지하철, 버스정류장, 택시정류장 다 있으니까.
이 서큐버스에게도 전혀 나쁜 게 아니다. 너 좋고 나 좋자는 식으로 말해본 거였으나, 서큐버스는 이 점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저도 여기가 마음 편하기는 한데요….”
“밖에서 다 보여서 그러시는 거면, 커튼 잠깐 쳐둘 수 있는데.”
“그래서는 아니고, 나중에 담당자가 제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이러고는 해오는 말이, 자기가 소속 연구팀에서 서열이 높은 편이 아니란다. 밑에서 두 번째.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다른 담당 서큐버스가 배치되거든 자기는 손 놓을 수밖에 없다고. 바로 소감을 말했다.
“그건 싫은데.”
“네?”
정확히는 말한 게 아니라, 내 입에서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맥락 없이 싫다는 말을 내뱉은 탓인지 서큐버스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내뱉은 나도 마찬가지였고. 졸지에 서큐버스 직장상사들을 까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싫다는 말보다는 좀 더 완곡한 표현이 있지 않나?
“어, 그러니까….”
일단, 싫은 게 맞기는 하다. 이 서큐버스가 마음이 편하거든.
면식 없는 다른 담당자가 붙는 것보단, 몇 번 만나보기도 하고 잡담도 해 본 사이끼리 일하는 게 내 입장에서도 편하다. 이건 맞다.
근데 말이다. 타인 대상으로 [편하다]라는 표현이 절대 옳은 표현이 아니다.
편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1. 거북하거나 괴롭지 않아 좋다. 2. 쉽고 편리하다. 1로 받아들인다면 상대방도 좋아하겠지. 근데, 2는?
쉽고 편리하다. 이게 타인에게 칭찬 용도로 쓸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그렇다고 ‘손님이랑 일하는 게 거북하거나 괴롭지 않아 좋아요.’라고 말하자니 혓바닥이 길어지는 것 같고.
아예 다른 표현을 써야겠다 싶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만 해석 가능한 표현이라면….
“그러니까… 손님이 좋아서 그래요. 저는.”
“…….”
이거면 됐지 않나? 좋다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어디 있―
이런 씨.
“……네?”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손님께서, 예. 설명 잘해 주시고, 무리한 부탁도 들어주셨고, 또… 어… 직접 찾아와주시기도 하고 그러셨잖습니까?”
이 말 한마디를 세 번을 더듬어서 했다. 근데 다음엔 뭐라고 말해야 하냐. 내가 고백으로 혼내주려던 게 아니라고 해?
사람이 흉기를 아무데나 휘두르면 안 된다. 이걸 분명 알고 있었는데, 내 쌍판이 타인에겐 더없이 날카로운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그런 게 좋았고, 다음에도 부탁 좀 드리고 싶다, 딱 그 의밉니다. 그러니까 문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되고… 뭐… 그렇습니다.”
도중엔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는 것 같아 관뒀다.
‘어머, 그 인간이 너 좋아하는 거야, 얘~’라며 여자들 모임 놀림거리가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기분 상해서 나랑 일 안 하겠다 해도 할 말 없고….
나는 말을 해도 왜 이런 식이냐. 착잡함에 머리만 긁적이고 있자니, 서큐버스가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저도, 사장님이랑 같이 일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고는 침묵. 고백으로 얻어맞은 분노가 덜 풀렸는지 시선을 열심히 피하고 있고, 얼굴은 여전히 새빨갛다.
“선임연구원분껜 제가 메시지 남겨보겠습니다. 손님께서 설명해 주시는 게 괜찮았고, 믿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네.”
“저 일하는 방식도 다 말씀드렸고, 신약 얘기도 얼추 들은 것 같고… 슬슬 피곤하시지 않습니까?”
내일 출근해야 될 서큐버스를 위해서라도 마무리 짓고 싶었고, 당장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나머지는 실물 신약을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들이라 생각되어서다.
다 떠나서, 민망해서 같이 못 있겠다. 말실수한 것 때문에 등에 식은땀이 흥건하다.
“피곤…했었는데요, 잠이 확 깨버렸어요.”
“그래도 그냥 들어가십쇼. 가는 길에 커피 들고 가시고.”
말하며 테이블에 올려진 향수도 가방에 넣어주고, 커피도 뚜껑 닫아서 챙겨줬다. 이제 빼 먹은 게 뭐가 있나….
“…아. 명함 있으면 한 장만 주세요. 연락처 받긴 했지만, 형식상으로라도.”
“네.”
내가 닫아버린 핸드백을 다시 열고는 내게 명함을 건네줬고, 받아서 슬쩍 훑어봤다. (주) 에이메르 제약, 직책 전임연구원. 이름은….
엘레나. 이제야 통성명을 하게 됐네.
“저는 아직 명함 나온 게 없어서, 나중에 드릴게요.”
“어, 그럼. 저….”
“이찬입니다. 두 글자.”
“사장님 성함을 지금 처음 듣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긴 합니다.”
시간을 보니 막 11시가 된 참이었다. 늦긴 했어도 막차 끊길 시간은 아니다. 회사 재직하던 시절엔, 거래처 상대하고 나면 항상 주차장까지 따라가곤 했는데.
“바래다드릴까요? 코앞이긴 하지만.”
“아뇨, 괜찮아요. 그… 더워갖고.”
5월 중하순이니 덥다고 느낄 만해. 아니면 이 엘레나 양도 식은땀이 흥건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핸드백을 어깨에 걸치고는, 정문에 손을 얹고.
“음… 이찬 사장님.”
“이름이나 직책, 둘 중 하나만 해주십쇼. 어색해서.”
“어떤 걸로요?”
“편하신 걸로.”
이런 대화나 좀 나누다가….
“나중에 봬요, 찬이 씨.”
나갔다. 이제야 숨이 좀 쉬어지네.
* * *
서큐버스가 버스 타는 걸 확인한 뒤, 밖에서 바람 잠깐 쐬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유니폼을 걸친 뒤, 문자 두 통을 써서 보냈다. 하나는 점장한테, 하나는 자존감 덩어리 뱀파이어한테. 일 맡게 되거든 자기한테 보고부터 하라 했으니까.
잠시 후, 대답이 둘에게서 동시에 왔다. 우선 뱀파이어 양반 것부터 회신했다.
‘랩실 쪽 협업과제입니까’
‘예. 제약회사 쪽 일이고, 조건 적어두겠습니다’
편의점에서 실물 보면서 직접 일할 거다. 적어서 보내자, 이 양반 답장이 가관이었다.
‘그 편의점에 꿀이라도 발라놨습니까?’
‘금송아지 한 마리 기르고 있기는 해요’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럼 진지하게 답장을 보내주든가. 허나 마저 날아오는 메시지들을 읽어보니, 확실히 진지한 답변이기는 했다.
‘갑을관계를 따진다면 반마법사 측 입장이 유리하기는 합니다, 수가 적으니까. 그 유리함을 지나치게 남용하진 마십시오, 나중에 반드시 해가 될 겁니다’
나도 갑질한다는 느낌 주기 싫어서 먼저 양해부터 구했던 거고, 시간 맞추려면 맞출 수 있다고 언질도 해둔 건데 말이다. 괜히 귀 아픈 얘기는 왜 하나 싶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뱀파이어가 내 업계 선배이기도 하다. 흘려들으면 나중에 내가 피를 보겠지.
‘새겨들을게요’
‘그럼 됐습니다. 어쨌든, 바로 일을 골라 수락한 점은 마음에 듭니다’
‘랩실 쪽 일 받는 거 마음에 안 드는 짓이라 하지 않으셨어요?’
‘마음에 안 든다는 말 안 했습니다. 알아서 하는 쪽이 낫다고 말했었지. 그 말만 생각하며 계속 알아서 하려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는 생각이고.’
이 양반 아무리 봐도 참 피곤한 타입이다. 자기 말마저 기어코 재해석해서 사람 멕이려 드는 거….
‘적어놓은 것 외에 달리 알아야 할 사항 있습니까?’
‘아직은요’
‘경과 생기거든 보고하십시오. 끝입니다.’
지 할 말만 하는 것도 그렇고. 알았다고 답장한 뒤, 메시지창을 전환했다. 점장에게서 온 문자는 이러했다.
‘통화 되면 전화 걸어줘, 찬아’
바로 걸었다.
“점장님. 퇴근 잘하셨습니까?”
[ 잘했구, 찬이는? 잘 풀렸어? ]꽤 걱정이 실려있는 목소리였다. 나도 안부는 더 안 물었고, 말해야 한다 싶은 것들을 죄다 말했다. 얘기 나눴던 그 서큐버스 제약회사가 맞고, 그 서큐버스가 실제로 오기도 했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를 마저 말하자, 점장이 바로 되물었다.
[ 서로한테 좀 더 솔직해지는 묘약이고, 찬이가 직접 복용해 보겠다는 거. 맞아? ]“당장은 그렇게 됐는데, 문제가 될까요?”
[ 찬이 몸에는 문제가 없을 거야. 없겠지만…. ]걱정이 두 배가 된 목소리로 마저 말해왔다.
[ 그 묘약이 작동하는지 확인하려면, 찬이 말고도 묘약을 마실 누군가가 필요한 거잖아. ]“……어.”
[ 누가 마셔? ]그러게. 누구 멕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