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87)
이세계 편돌이-86화(87/331)
86화. 5살 차이는 친구 해도 돼 (1)
아침 8시 반, 문제가 발생했다. 직장인들 때문은 아니었다.
“엄마, 나 솜사탕 머꾸시퍼.”
해가 뜨고 나서도 거리가 한산하길래 ‘이게 웬일이야?’ 하면서 포스기를 봤는데, 토요일이더라? 요 며칠 요일 감각도 없이 살아서 몰랐다.
아침에 샌드위치 포장지나 흘린 커피 닦을 일은 없어 편하겠다 싶었는데, 오늘이 단순한 토요일이 아니었다. 무려 5월, 가정의 달의 토요일.
그래서인지 가족 손님들이 좀 많이 들어왔고, 특이사항으로는 애들이 많이 어렸다. 애들 엄마도 어렸고.
“사장님, 혹시 편의점에 솜사탕 있나요?”
“저희 매장에는 없습니다.”
솜사탕 파는 편의점이 있기는 하다. 기계 돌리는 건 아니고, 종이컵에 담아서 숟가락으로 퍼먹게 만들어 놓은 거.
다른 데 가보시면 있을 거다. 내 입장을 말하자, 젊은 애 엄마가 애한테 내 말을 곧이곧대로 해버리고 말았다.
“아가, 여긴 솜사탕 없대.”
“시러시러, 솜사탕 머꾸싶단 마리야.”
“안 사주겠다는 게 아니고, 사장님께서 솜사탕 없으시다잖아. 딴 데 가자.”
“시러, 솜사탕 머꾸싶단 마리야! 솜사탕!”
아니, 아가야. 엄마가 안 사주겠단 게 아니라, 딴 데 가서 사주신다잖냐?
나는 이 점을 애한테 최대한 이해시키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는데, 정황상 이 애가 엄마한테 떼쓰는 일이 꽤나 자주 있었던 듯했다. 애 엄마가 다짜고짜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딴 데 가서 사준다고 말했잖아! 자꾸 떼쓰면, 여기 두고 가버릴 거야!”
“시러시러!! 솜사탕!! 솜사타아앙!!”
“자꾸 그렇게 떼쓸래!! 놀이공원 안 갈 거야?!”
“솜사타아아앙!!!”
이런 식으로 애랑 애 엄마가 가창력을 뽐내는 상황이 자주 있냐면, 편돌이 하면서 겪는 건 처음이다. 키즈카페 알바할 적엔 이 광경 매일 보기는 했는데….
그때 내 대처법은, 늬들끼리 알아서 하라며 방치하는 것이었다. 애 좀 어떻게 해 보라고 주의도 줘보고, 애를 직접 달래보려고 했는데, 두 방법 다 안 통했었다.
전자의 경우엔 애 엄마가 ‘아는데, 날 보고 어쩌라고요’라고 날 바라볼 뿐이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애한테 두들겨 맞았다. 애가 매콤주먹이더라고. 여하튼.
“솜사탕 머글 거란 마리야. 솜사탕. 솜사타아앙….”
애가 목소리 데시벨이 낮아지고, 자세도 덩달아 낮아지기 시작했다. 내 경험상, 드러눕기 직전의 준비동작이 분명했다.
이 상황에 질려버린 건 애 엄마도 마찬가지였는지, 거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더라.
“너, 계속 이러면 하늘에서 용이 날아와서 물어가. 엄마가 전에 말했지!”
뭐가 날아와서 물어간다고?
무척 질문이 마려웠지만,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당사자가 직접 찾아왔기 때문이다.
정문 벨이 딸랑 울리고, 형광등과 비슷한 명도의 피부를 가진 꼬마아이가 하나 들어왔다. 날아 들어온 게 아니라 사박걸음이긴 했지만….
“에….”
호박색 눈으로 나를, 그 뒤에는 애 엄마와 애를 차례로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해 온다. 일단은 늘 하던 대로 했다.
“오랜만이다, 꼬… 하나야.”
꼬마가 자기 이름을 하나라고 했었다.
인사를 한 뒤 솜사탕 애 쪽을 보니, 울음을 뚝 그쳐버린 채였다. 애 엄마는 말이 반쯤 씨가 됐단 점에 놀란 표정이었고.
용과 꼬마의 공통점이래 봐야 작은 뿔 한 쌍 달린 게 다였지만, 이 세상 이종족들은 이것만으로도 용이란 걸 알 수 있나 보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린 애 엄마가, 아이를 부여잡고는 말했다.
“아가, 솜사탕 사줄게. 나가자.”
애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자기 엄마 손 잡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둘이 사라진 바깥 방향을 쳐다보던 꼬마가, 날 보며 다시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솜사탕이 왜여?”
“저 애가 솜사탕이 엄청 필요했는데, 여긴 솜사탕이 없거든.”
“애구, 큰일이내여….”
“큰일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사탕 먹을래?”
“사탕을여?”
소음공해를 처리해 준 데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어서였다. 과정에 다소 찜찜한 점이 있긴 했지만, 이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저, 돈 업는대….”
“혼자 먹으면 외로워서 그래.”
“외로우신 건여, 저 왔스니깐 걱쩡 안 하셔두 대여.”
“그러게. 괜한 걱정 했다.”
그래도 사탕은 돈 없으니 사양한다길래, 냅다 사다가 입에 욱여넣어 줬다. 꼬마는 당황한 표정이긴 했으나, 오렌지 맛 사탕의 달달함을 이기기는 힘든 듯했다.
“잘 머글개여, 아조씨.”
이 꼬마 가고 나면, 아예 알사탕 몇 봉지를 사두든지 해야겠다. 공짜로 협찬받은 거니까 돈 안 내도 된다고 둘러대고.
사탕을 우물대기 시작한 꼬마를 계산대 의자에 앉혀두고, 나도 테이블 쪽에서 등받이 의자 하나 끌어와다가 앉고. 바깥 거리가 한산한 걸 확인한 뒤 꼬마에게 물었다.
“하나야, 요 며칠간 뭐 하고 지냈냐.”
꽃가루 때문에 이틀간은 밖에 못 나왔다, 여기까지는 짐작하고 있다. 그 뒤에 왜 못 나왔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으음, 집이랑여, 엄마야 회사랑….”
“유치원 안 가고?”
“에… 꽃까루가여, 큰일 난다구. 쫌 더 안에 있으라 하셔갖구, 그래서여.”
하긴. 애 엄마들한테는 애 건강이 제일 중요한 문제다.
그러니 TV에서 꽃가루 사태가 끝났다고 말을 하든 말든, 밖에서 직접 숨 쉬어 본 애 엄마들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 유치원 며칠 덜 보내려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집이나 엄마 회사 숙직실에 있었다 하니, 엄마가 전화기도 안 줬을 거고. 연락 안 한 게 천만다행이네.
“그럼 애들이랑도 얘기는 많이 못 해봤겠다.”
이 꼬마는 다른 이종족의 마음을 볼 수 있다. 뿔을 통해서.
헌데, 저세상 출신인 나로선 모를 이유로 인해 애들이 이 꼬마를 싫어한다. 때문에 유치원 동기 애들이 이 꼬마를 바라볼 때면 마음이 새카매지고, 이 꼬마는 새카만 건 나쁜 거라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말을 못 붙이고, 친구 사귀기도 힘들어하던 꼬마였다. 그게 안타까워서, 내가 직접 지워줬다. 타인의 몸에 손대서 마법을 지울 수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고.
원래라면 조금이나마 진척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꽃가루 때문에 유치원엘 못 갔다 하니 그것도 힘들었을 것 같은….
“해밧어여. 얘기.”
“어, 그래?”
“내. 모형놀이도 하구, 모래놀이도 하구.”
뭐야. 이 정도면 꽤 충실하게 보낸 거 아닌가?
“근대여… 애들이… 에….”
“문제가 있었어?”
“표정이.”
안 좋더라. 아무래도 자기랑 노는 게 재미가 없는 것 같다.
이게 이 꼬마의 자체 해석인 듯했는데, 난 좀 다르게 본다. 3D 말고.
“혹시, 애들이 너 말하는 것들 잘 들어주진 않았어? 어떤 모형 좀 달라고 하면 바로 준다든가.”
“에, 어뜨케 아셧어여?”
“다 아는 방법이 있지.”
인생경험이라는 방법이다. 예시를 든다면, 학교에서 덩치 큰 녀석이 공책 빌려달라고 하면 난 바로 빌려줬다. 왜냐고? 무섭잖아.
이 세상에서 용이 덩치 큰 녀석 취급을 받는 것이다. 용. 무서운 존재.
아까 애 데리고 나간 엄마가 했던 말도 그래. 자꾸 떼쓰면 용이 날아와서 물어간다.
겁주려고 꺼낸 말일 텐데, 고양이나 햄스터가 물어간다 하면 애가 무서워하겠어? 이 세상에선 용을 인용해야 애가 겁을 먹으니 용 얘길 꺼냈겠지.
더해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색을 부여한다면 분명 어두운 계통에 속할 것이다. 어쩌면 순수하게 검은색일 수도 있고. 밉다, 싫다는 감정보다도 제어하기 힘든 감정이니까.
“저가 잘못한 걸까여…?”
“네 잘못 아냐.”
이 애 잘못이 아니란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문제가 좀 더 커졌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 뭘 무서워하는 게 죄는 아니잖은가.
잘못이 아니기에 개선할 수도 없다. 극복을 해야만 한다. 유치원 다니는 7살 꼬맹이들이 말이다.
“…네 잘못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건 떠오른다.”
“할 쑤 잇는 거?”
“뭐… 개인기를 하나 가진다든가….”
광대 짓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주의를 분산시키면 어떻겠냐는 거지.
예를 들어, 이 꼬마가 카드 마술을 할 줄 안다면. 그땐 뿔보다는 카드에 더 신경을 쓰지 않을까? 이런 거 보여주는 애가 나쁜 애일 리 없다는 생각까지 해주면 더 좋고.
“아니면, 공통점을 찾는다든가.”
“개인기? 공통쩜?”
“미안, 좀 어려운 얘기를 했네.”
잘 풀어서 설명해야 할 부분이었다. 현실적으로 이 꼬마한테 개인기를 배우라고는 말 못 하겠고,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는 게 맞아 보이는데….
“…아조씨.”
“왜.”
“고마어여.”
“하나야. 이건 네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냐.”
“그럼여?”
“다른 사람들이 너한테 미안해해야 할 일이지.”
7살. 중요한 시기인데, 유치원 선생님들이나 애 엄마나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지. 시간이 지나면 개선될 문제인 게 맞긴 하다.
내가 나이 들며 덩치 큰 사람보단 머리 큰 사람이 더 무섭단 걸 깨달았듯, 그 꼬맹이들도 철이 들고 나면 외관, 종족만으로 누군가를 무서워하는 게 의미가 없단 걸 알게 되겠지.
하지만… 유년 시절은 안 돌아온다. 어쩔 수 없다고 넘겨버리면, 추억 하나 없이 사라질 이 꼬마의 유년 시절은 누가 보답해 주나.
“잘 모르갯지만여, 그래두… 어….”
“뭐. 왜 이 아조씨는 날 도와주나― 그런 게 궁금한 거냐? 혹시?”
“…….”
떠오르는 대로 말해본 건데, 대답이 없다. 내가 말한 게 맞나 보다.
좀 민감한 내용이라 말하기가 좀 그런데 말이다. 고민하다, 그냥 대답해 줬다. 언젠간 잊어주겠지.
“나도 친구가 없었어. 네 나이 때.”
비슷한 사유에서였다. 스스로 극복하기 힘든 문제. 두려움, 집안 재산 환경.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말이라는 것도 알지만… 집에 돈이 없는 게 7살 꼬마 잘못은 아니잖은가.
딴 놈들과 다를 거 없이 태어났고, 축구도 농구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운동화 주워 신는 놈이 축구나 농구를 어떻게 하냐고들 그러더란다. 제화 기술을 배울까, 진지하게 고민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지.
심지어 그때 난 이 꼬마만큼 조신하지도 못했다.
선생님께 가서 저 새끼들이 나랑 안 놀아줘요― 라고 울면서 따졌었고, 어머니께는 우리 집엔 정말 운동화 살 돈조차 없냐고 울면서 따졌었고.
그러면 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나는 너희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차별하진 않았으면 좋겠다’라느니 뭐니 했다. 이게 맞아? 선생님이 애들한테 일러바치는 게?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아무 말 없으셨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근하셨고.
이제 와서는 다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긴 하다. 7살 때 놀았던 친구들과 아직도 어울리는 놈들이 몇이나 될 것이며, 이딴 거 일일이 기억하는 놈은 또 몇이나 되겠어?
나 빼고 말야. 나는 기억한다. 도저히 잊히질 않아서.
그때의 감정도 못 잊어서 기억하고 살고 있다.
“친구가 없었어서, 누구라도 좋으니 좀 도와줬으면 했었어. 어른이 말야.”
“…….”
“근데… 이젠 내가 어른이 되어버렸네.”
너랑 똑같은 상황일 때, 난 힘들었다. 너도 힘들겠지.
알아먹지도 못할 소릴 괜히 한다 싶어 말을 돌렸다.
“자기만족이니까, 너도 너무 마음 쓰진 말고.”
“…아조씨.”
“왜.”
“저이, 친구애여.”
“친구라고 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 근데, 나보다는 더 좋은 친구 만나는 게 맞지 않냐?”
띠띠동갑 아조씨가 아닌, 한창 파릇파릇한 동년배들 말이다. 내가 요새 7살 소꿉놀이 트렌드를 알기를 해, 줄넘기 잘 넘는 법을 알기를 해?
“저어는, 아조씨가 진짜루 조은대….”
“그래, 고맙다. 근데, 너 뿔은 이제 어때. 다시 마음 보이고 그래?”
꼬마는 마저 이야기하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후 덧붙이길, 다음 날 아침에 눈 뜨니까 엄마 마음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단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났는데?”
“아침 8씨여.”
내가 마법을 지웠던 게 오전 10시였으니, 최대 20시간까지는 유지가 된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아니면 잠을 자는 게 조건이든, 뭐든.
“한 번 더 해줄 테니까, 뿔 대봐.”
“아조씨, 저. 오늘은 유치원 안 가갖구….”
“나도 알아. 아는데, 지금 여기가 물이 괜찮아.”
애 딸린 가족 손님이 체감상 10팀이 넘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데, 오는 애들한테 죄다 말 붙여보면 한 번은 성과가 나오지 않겠어?
공통점 찾는 것도 내가 도와주면 한결 쉬울 거고. 애가 뭘 원하는지 빤히 보일 테니, 장난감이든 과자든 언질을 줄 수 있다.
“물이 갠차나여?”
“네 나이 또래 애들이 좀 자주 오고 있다는 얘기야. 지금이 9시 거의 다 됐으니까….”
근무교대 1시간 동안 5팀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정문 밖을 바라보니, 마침 이 꼬마랑 나이가 비슷한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 상태였다.
잠시 뒤, 이 손님이 앞다리를 들어서는 정문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일단 다가가서 문을 열어준 뒤, 말을 걸었다.
“아니 멍멍아. 니가 왜 지금….”
“끼잉….”
“사람 말을 안 하고 왜 개 소리를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