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88)
이세계 편돌이-87화(88/331)
87화. 5살 차이는 친구 해도 돼 (2)
재차 물었으나, 멍멍이는 여전히 날 올려다보며 끙끙대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더해서 몸이 먼지투성이인 게, 꼭 공사판에서 며칠 구르다 온 모양새다. 이놈이 거친 거리 생활에 지친 끝에 실어증에 걸린 게 아니라면….
몸을 숙인 채로 한 번 더 물었다.
“안에 쟤 때문에 그래?”
“그렇소. 선객이 계셨을 줄은 미처 몰랐구려.”
이것도 기어들어 가기 직전의 목소리라, 알아듣는 데에 애를 좀 먹었다. 어디서 말 잘못 걸었다가 크게 데이기라도 한 건지, 뭔지.
“본견, 저분께서 나갈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소이다.”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쟤는―”
“아조씨, 무슨 일 잇으새여?”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꼬마가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왔다.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내가 바라보던 방향도 힐끔 바라보고는 대뜸 감탄을 했다.
“와아, 멍뭉이다.”
“…끼잉.”
“아조씨. 멍뭉이랑 얘기하구 계셨떤 거애여?”
그 나이 먹고 웬 주책이냐며 핀잔주려는 건 아닌 듯했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다. 잠깐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어. 얘가 말을 워낙 잘 해갖고.”
“말?”
“캐앵! 캐앵!!”
다급함 가득 담긴 울음소리였다. 이걸 사람 말로 치환하면 ‘그걸 니가 왜 말하냐??’ 같은 의미 아니었을까 싶다. 마저 말했다.
“야, 멍멍아. 전에 밤에 왔을 때 말해줬던 거 기억나냐? 거리에서 평생 아싸처럼 지낼 거 아니면, 믿을 만한 인맥 좀 만들고 그러라고 했던 거.”
“…….”
“그래서 점장님이랑 얘기해 보라고도 했던 거고. 얘도 믿을 만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이 꼬마랑 알고 지낸 지 3주가 넘었지만, 아직까지는 애 엄마가 비밀 친구 아조씨를 혼내주러 편의점에 찾아온 적이 없다.
이 꼬마가 엄마한테 얘기를 안 한 것이다. 내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으니까. 말 잘 듣는 애니까, 이 멍멍이가 말할 줄 안다는 사실도 말하지 말라면 말 안 하겠지.
물론 7살 꼬맹이가 떠돌이 생활에 유의미한 인맥이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그냥 둘이 붙여놓으면 서로 잘 놀 것 같다, 딱 이 정도.
이 둘이 내가 살면서 봐온 생명체들 중 가장 인체에 무해한 두 녀석일뿐더러, 수염 난 아재가 아닌 솜털 개털 보송보송한 녀석들끼리 노는 게 서로한테도 더 좋지 않겠어?
공통점도 있고 말이다. 친구라 부를 만한 게 나 하나밖에 없다는 점.
쉴 새 없이 끙끙대던 멍멍이는, 결국 결심했는지 긴장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에잇, 본견. 사장님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겠소이까.”
“에?”
“반갑소, 아가씨. 멍멍이라 불러주시오. 소개는 이상이오.”
꼬마는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됐는지, 어리둥절하다는 얼굴로 멍멍이를 뚫어져라 쳐다만 봤다. 그러다, 퍼뜩 떠오른 듯 외쳤다.
“우아! 멍뭉이가 말을 한다!”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 주시오, 본견 큰일 나오!”
“큰일? 멍뭉이, 말하면 안 대?”
“평소에도 안 됐지만, 오늘은 특히 더 안 되오. 아까 공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운을 떼고는 짧은 일대기를 들려줬는데, 오늘 공원에서 무슨 행사 같은 걸 한단다. 사설무대 비슷한 걸 설치하고, 아무튼 이종족이 무진장 많았다고.
그리고 하필이면, 자기가 자던 곳이 좌식 관람석으로 쓰일 예정이었다는 듯하다. 몸 웅크린 채로 곯아떨어진 와중, 행사 관계자 중 한 명이 ‘이 똥개는 뭐야?’라며 자기를 걷어찼―
“뭔 씹새가, 말로 하지 너를 왜….”
“띱때?”
“어허, 사장님.”
“나쁜 어른이네. 어.”
함묵하고 마저 들었다. 이 멍멍이가 외견상으론 무해해도 정체는 신묘한 영물이다.
재생능력이 있으니 이런 일 정도로 멍이 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고통은 느낀다. 심지어 한창 꿈을 꾸던 와중이라, 걷어차이는 동시에 무심코 비명을 질렀단다. 아이고!
“그랬더니 그 관계자가 ‘뭐? 아이고?’ 하며 본견을 바라보는 게 아니겠소?”
“그래서 어떻게 했냐?”
“하도 당황했던지라, 전속력으로 도망쳤다오. 허나, 하책이었소.”
그 자리에서 시치미를 떼고 개 소리를 냈다면, 그 관계자도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하며 넘어가게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허나 그러지 않고 바로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관계자가 ‘저 개 방금 말한 거 아냐?’라며 쫓아오기 시작했단다. 더욱 일이 꼬인 건, 그 관계자가 중간관리자급이었다는 것이다.
그놈이 자기 아랫사람들 보이는 족족 자길 잡으라며 명령을 내렸고, 5분도 안 되어 행사 관계자란 관계자들은 죄다 자길 쫓아오기 시작했다고.
“그걸 용케도 빠져나왔다.”
“커피자판기 밑에 숨어있었소이다. 천만다행히도 그곳까지 찾아 들어오지는 않더구려.”
이게 공원 시계탑의 시침이 7을 가리킬 때의 일이었고,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공원을 빠져나와 현재에 이르게 됐다.
“이런 이유로, 당분간은 공원에서 묵기는 힘들 듯하오. 행사가 언제까지인지를 모르니….”
“글쎄다?”
이건 내가 인터넷 검색해서 알아봐 주면 될 일이다. 물론, 행사 끝난 뒤에도 관계자들이 이 녀석을 로또 당첨 용지 찾는 마냥 찾아댈 수는 있겠지만….
“세상에 포메라니안이 너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관계자 놈들이 세상 포메라니안을 다 잡아들이려 들지도 않을 거고. 별문제 없지 않겠냐?”
이 멍멍이가 한쪽 발이 특히 하얗다는 식의 외형적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연갈색 털뭉치일 뿐이고, 입만 꾹 닫고 있으면 영물이란 걸 들키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사장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오?”
“어. 여튼, 고생했다 야.”
머리 쓰다듬어 준 뒤, 옆에 쭈그려 앉은 꼬마를 슬쩍 바라보았다. 꼬마는 우리가 한 이야기의 반도 알아듣지 못했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머지 반만으로도 꽤나 인상을 받은 듯했다.
“멍뭉아. 나쁜 아조씨가, 멍뭉이를 발로 찬 거야?”
“그렇소. 그래도 본견이 튼튼하니, 신경 안 써도 괜찮―”
“아팠겠다….”
안타깝다 못해 애틋함마저 느껴지는 어조다. 할 말을 잃었는지 입을 다물어버린 멍멍이의 몸에 손을 뻗은 꼬마는, 그대로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여기 아파? 호― 해줄까?”
“어… 하시는 건 상관없소만, 본견이 먼지투성이라….”
“갠차나.”
그 뒤엔 자기 손이 약손이라도 되는 마냥 쓰다듬으며, 먼지며 몸통이며 후후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발로 걷어차인 고통이 낫겠냐 싶었지만….
“…고맙소. 참 착한 아가씨구려.”
쓰다듬어지는 당사자가 만족하는 눈치라 신경 안 쓰기로 했다. 꼬마 입장에서도 이게 최선이라 하는 걸 테고.
이후, 둘이 대화 나누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멍뭉아. 멍뭉이는 어떠케 말을 하는 거야?”
“본견의 재주 중 하나외다. 별거 없는 재주이긴 하오만.”
“그치만, 유치원에서 배웟서. 멍뭉이는 다들 멍― 멍― 하고 짖는다구….”
“아, 그건 하수들의 짖음이오. 거리의 고수들은 그런 소릴 내지 않거든. 그르릉― 하고 위협을 주는 편이지.”
“어뜨케?”
“이렇게 말이오.”
라며 고수의 흉내를 내어 위협감을 유발하려는 듯한 소리를 냈는데, 내 귀엔 물 먹다 사레 들린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꼬마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중얼거렸다.
“멍뭉아, 목 아파? 힘드러 보여.”
“힘든 게 아니라, 컨디션이 좋지 않을 뿐이오! 본견이 자판기 밑에서 먼지를 많이 마신 탓에….”
“애구….”
“그래도 너무 심려치는 마시오. 아무 득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
“뭐 동전이라도 주웠냐?”
듣는 도중에 내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물음에 멍멍이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서는, 자기 뒤쪽 전봇대에서 종이 한 장을 물어와서는 웅웅댔다.
“으그슬 브드즈스으.”
이것을 받아달라는 말처럼 들려서 받아줬다. 살펴보니, 5천 원권 지폐였다.
“무려 5만 원이오, 사장님. 5만 원! 이거면 햄버거를 몇십 개는 살 수 있지 않소?”
“5만 원?”
“그렇소! 견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하였소. 1시간 반을 자판기 아래에서 버틴 본견에 대한 노고라 생각하여 물어왔소이다!”
나도 자판기 밑에서 5천 원 줍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 좋을 것 같긴 해. 이 생각을 하고 나니 이놈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이해가 됐다.
헌데, 이 멍멍이는 지가 5만 원권을 주워왔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둘이 색깔도 비슷하고, 뭣보다도 이 녀석은 글 읽을 줄을 모르니까.
0이 몇 갠지를 세보면 되겠지만, 꼴을 보건대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는 게 분명하다. 이거 말하면 이놈 나라 잃은 표정 지을 것 같은데….
“오늘은 본견이 사겠소. 매장 안에 있는 햄버거 전부 주시오! 일시불로!”
“나 밥 먹었어, 인마.”
“그럼 집에 가는 길에 하나 들고 가시고, 아가씨께서도 하나 잡수시오. 이곳 햄버거가 아주 맛이 좋소.”
“에… 멍뭉아.”
내가 알기로, 유치원 교육과정 중에 숫자놀이가 포함되어 있다. 내가 손에 쥔 지폐의 숫자를 하나씩 헤아리던 꼬마가, 멍멍이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이거, 5처넌이야. 처넌이랑 0 갯수가 똑같애.”
“뭣이?”
“5처넌이면, 햄버그 두 개 살 수 이써. 맞져, 아조씨.”
“맞어. 잘 배웠네.”
난 말 안 하려고 했다. 우리 둘 얼굴을 번갈아 보던 멍멍이는, 곧바로 나라 잃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본견이 그 고생을 했는데… 햄버거 두 개? 뭔 놈의 세상이 이러오?”
“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잔돈으로 마실 거리 하나 살 수 있어.”
“본견, 마실 거리는 물이면 충분하오….”
이놈에게 콜라와 햄버거를 동시 섭취했을 때의 상승효과에 대해 설명하려다, 말았다. 횡단보도 너머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서였다.
“아빠!! 나 콜라 사주면 안대?!!”
곧 있으면 저 애 아빠가 콜라 사주러 들어올 것 같다. 일단 멍멍이부터 들고.
“들어가서 마저 얘기하자.”
“내.”
“으….”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우선 실의에 빠진 멍멍이를 카운터 밑에 앉혀놓은 뒤, 꼬마를 의자에 앉혀놨다. 이후, 뿔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하나야. 이따가 애 들어올 건데, 너랑 나이가 비슷해 뵌다. 목소리가 그렇더라고.”
이 녀석이 와서 잠깐 흐름이 끊기긴 했지만, 손님 받는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이 꼬마 말주변 늘려주는 거.
이 꼬마가 태생이 용이라 동년배 애들이 무서워한다. 추측이기는 해도 이게 맞을 거고, 이 상황이면 이쪽에서 관심 가져봐야 역효과만 날 게 뻔했다.
“그 애가 저어랑 노라주까여?”
“그건 못 해주겠지. 걔도 바쁠 거잖냐.”
잠깐 얘기하다 애 아빠가 콜라 쥐여서 데려갈 테지만, 그 잠깐이면 경험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더해서, 가능하면 상대방 쪽에서 관심을 가져주는 게 베스트인데….
이 꼬마한테 관심을 가지게 할 만한 방법. 이게 잘 안 떠오른다.
나 어렸을 적엔 거품총 갖고 노는 놈들이 그렇게도 부러웠었는데 말야. 아예 편의점 거품총 포장을 하나 뜯어다 쥐여줘 버려?
“…사장님, 사장님.”
“왜?”
“아가씨가 놀 상대가 필요한 거면, 본견이 어울려 드리면 되는 일 아니오?”
“나도 아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서 그렇….”
…아니지?
이 멍멍이를 보니, 그럴싸한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