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
이세계 편돌이-8화(9/331)
8화. 납품받는 편돌이 (2)
알바 도중 불량품을 발견한다면, 알바생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팝콘을 사서, 뜯으면 된다.
아니, 이거 진짜다. 이게 공정 과정에서 물품에 구멍이 뚫리든 운반 과정에서 상자째로 찌그러지든, 우리 선량한 알바생들은 아―무런 죄가 없어요. 그냥 불량 생겼다고 점장한테 보고하고, 손님 눈길, 손 안 닿는 곳에 보관해 두면 나중에 환불이 되든, 버려지든 한다.
다만 매장 내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엔 좀 문제가 되는데, 예를 들자면, 애가 콜라 가져오다 떨궜는데 콜라병이 터졌다? 그땐 그 애한테 물건값을 물리는 게 맞다. 만취한 아재가 소주병 들고 오다 깨 먹어도 마찬가지고.
대신 자기 콜라 못 먹는 거 아니냐며 애가 울먹인다거나, 어차피 깨진 거 하나 더 깨져도 상관없지 않냐며 소주병 거꾸로 집어 온다든가 하는 걸 상대해야 하긴 한다.
이 경우에 가장 원만한 해결 방법은… 떡대를 키우는 것. 오래 걸리긴 해도 이게 제일 확실하다.
근데 지금은 그러진 못할 것 같다. 불량이라고 말해오는 표정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점장한테 보고했다.
“점장님. 이번 물류 반품해야 할 것 같다는데요.”
[ 어? 왜? ]“정제가 덜 됐다고 하는데.”
[ 음… 정확히 어떤 식으로? ]“그냥 스피커폰 해놓겠습니다.”
스피커폰으로 바꿔놓고 계산대에 내려놓자, 윤하 누나는 계산대에 몸을 기댄 채로 설명을 시작했다.
옆에서 듣자 하니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드래곤 비늘을 공수해 온 위치가 북부의 높은 산. 드래곤과 다이다이를 까서 벗겨온 건 아니고, 그쪽 지방에 귀농한 드래곤들의 벗겨진 비늘이 방치되다 뭉친 걸 통째로 구해온 거라고 한다.
이 부분을 들은 직후엔 송이버섯 따는 일이랑 크게 다를 거 없지 않나 싶었으나….
[ 요새 몬스터들은 별로 없구? ]“아휴. 말도 마, 언니. 비늘 주변에 기웃거리던 것만 수십 마리였어. 어째 요샌 더 심해지는 것 같다니까.”
일반인은 못 하는 일이란다. 드래곤 비늘이 몬스터들이 먹기 딱 좋은 먹이라, 주변에 필연적으로 몬스터가 들끓고 있기 때문이라나.
그 몬스터들한테 비늘이 뜯어 먹힐 경우에도 비늘이 불량품이 되어버린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기 전에 몬스터들을 다 구제하긴 했으나… 문제는 다른 부분이었다.
“비늘 내부에 고름이 생기고 있더라고. 소리 들려?”
말하며 윤하 누나가 꺼낸 건 기름 범벅이 된 진흙 덩어리 같은 것이었는데, 표면에 기분 나쁜 무지갯빛이 감도는 것에 더해서 이 진흙 덩어리가 글쎄… 꾸물거리고 있다.
[ 응, 잘 들려. ]“미안, 언니. 허가가 오늘 낮에 떨어져서 급하게 구해온 거라, 정제를 좀 적당한 곳에 맡기긴 했는데… 일 처리를 이런 식으로 할 줄은 몰랐어.”
[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지, 뭐. 아니면 아주 못 쓸 정도야? ]“그 정도는 아니고. 바로 가져가서 정화하고 고름 긁어내면 남은 부분은 쓸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시각이 오전 1시라 작업장 돌아가는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두 사람 입장에선 어지간히도 골치 아픈 상황이겠다 싶었다. 수천만 원이 날아가게 생긴 거잖아.
그나저나 저 진흙 덩어리 이리저리 막 꾸물대는데 말이다. 손님이 들어와서 보면 좋은 소린 절대 못 듣는다.
“얘기 중에 죄송한데, 이거 좀 치워도 됩니까? 계산대 더러워질 거 같아서.”
“네? …아, 참. 정신없어서 그냥 올려놨네. 제가 치울게요, 찬이 씨.”
“아뇨, 치우는 건 제가 치울게요.”
별생각 없었다. 서큐버스 오바이트도 치운 마당에 이거라고 못 치울까.
그래도 맨손으로 만지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 빗자루 집어다가 계산대 밑에 쓸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 진흙 덩어리가 내 반대 방향으로 슬금슬금 도망가는 게 아닌가.
방향 없이 움직이던 놈이 딱 나만 피해서 도망쳐 대는 탓에 쓸어내리기가 영 애매했다. 내가 뻘짓 하는 걸 바라보고 있던 윤하 누나가 진흙 덩어리를 슥 집고는 말을 꺼냈다.
“이게 찬이 씨만 피해서 도망치는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그거 맨손으로 만져도 돼요?”
“마력 내성 있으시면요. 전 나중에 손 씻으면 되고.”
[ 찬아. ]조용히 있던 점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예, 점장님.”
[ 음… 혹시 그거 한번 집어볼 수 있니? 맨손으로. ]“어… 저걸요?”
사정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래? 내성 있어야 된다잖어.
[ 싫으면 안 해도 되는데… 혹시나 싶어서. ]뭐가 혹시나 싶다는, 아. 아까 그건가? 내 몸이 마력이 안 통하는 체질이라는 거?
“제가 만져도 괜찮다 생각하세요?”
[ 내 생각엔 그래. ]“그렇다면 뭐.”
모르겠다. 월급 주는 사람이 까라면 까야지, 뭘 어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하 누나가 내 쪽으로 고름을 슬쩍 들어 보였다. 내가 손을 들이밀자, 진흙 덩어리는 나한테 만져지는 게 그토록 싫은지 몸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나도 싫어, 인마.
그래도 집었다. 내 손이 닿은 진흙 덩어리는 몸을 부르르 떨며 회색빛으로 바래지다가, 이내 딱딱한 돌멩이로 변해버렸다.
바라보던 윤하 누나가 짧게 감탄했다.
“오?”
“점장님. 이거 만지니까 그냥 돌멩이가 돼버렸는데요?”
[ 검진기도 한번 대볼래? ]시키는 대로 검진기를 꺼내 대봤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짐작하던 게 맞는 것 같다.
“그, 아무 반응 안 나오게 되긴 했는데요. 이거 아까 얘기하신 그거의 연장선인 건가?”
[ 응. 그런데, 아예 아무런 반응이 없어? 하나도? ]“네.”
[ …찬이 네 체질이 좀 많이 특이하네. 상상 이상으로…. ]이후 분위기가 어째, 좀 이상하게 흘러갔다.
스피커폰 너머의 점장 목소리는 또 나한테 뭔가를 시키려는 눈치였고, 윤하 누나는 이젠 날 보며 눈을 반짝여대기 시작했다. 말이 나오는 건 못 막겠다 싶어 아예 선수를 쳤다.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지금 막 생겼죠. 찬이 씨, 잠깐 내려가서 물건 한번 같이 보시죠?”
“글쎄요. 점장님이 허락하시면 모르겠는데.”
점장도 똑같은 뉘앙스로 말을 했다.
[ 그 고름이 쉽게 말하면 오염된 마력 덩어리 같은 거라서, 정화 작업을 거치면 딱 그런 모습이 되거든? ]“전 만지기만 했을 뿐인데요.”
[ 그러니까 더 신기한 거지. 잠깐 문 잠가놔도 되니까, 내려가서 같이 한번 봐줄 수 있어? ]영 내키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편돌이 업무는 아닌 것 같아서 그렇다. 편돌이가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좋긴 한데, 바코드 잘 찍고 근무 빵꾸 안 내고 라면 박스로 테트리스만 잘해도 충분하단 말야.
“점장님. 죄송한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정화 작업이 편돌이 업무는 아닌 것 같거든요….”
[ 잘되면 금일봉 줄게. ]“옙.”
그럼 해야지. 나 돈 벌어야 된다.
카운터 구석에 놓인 A4 용지 하나를 집어다 ‘화장실 다녀옵니다’라고 적어놓고 문짝에 붙여놓고 문을 잠갔다. 여기서 팁을 하나 더 주자면, 행여라도 편의점 문짝에 이런 게 붙어있거든 그냥 다른 편의점을 가라.
이게 대부분은 화장실 가는 게 맞는데, 이거 붙여놓고 지 친구 불러다 밖에서 빈둥대는 불량 편돌이들도 가끔 있어서 그렇다. 이런 놈들은 전화번호 적어놓고는 받지도 않어,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라.
사무실 창고로 향해 계단을 내려가는 사이 윤하 누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는데, 적잖이 관심이 생긴 것 같았다. 내 체질 말고, 나란 인간 자체에 대해서.
“찬이 씨, 알바 전엔 무슨 일 했어요?”
“회사 다녔어요. 망했지만.”
“어머. 뭐 하는 회사였길래.”
“시키는 일은 다 했죠. 사람 만나라면 만나고, 공사판 가서 구멍 뚫으라면 뚫고, 기계 다루는 법 물어보면 알려주고….”
“그런데 망했다고 하니, 견실한 회사는 아니었나 보네요.”
견실하긴 했다. COVID―19라 명명된 핵폭탄이 회사 머리통을 박살 내기 전까지는 말야.
물론 이 부분까진 말 안 했다. 이 얘길 꺼냈다간 내가 이세계 출신 편돌이라는 것까지 밝혀야 하는데, 그걸 아는 건 점장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뭐… 그랬던 것 같아요.”
“아. 이런 것까지 물어보면 좀 실례인가?”
“딱히요. 지금은 거기 일 안 하니까. 대신 저도 여쭙고 싶은 게, 알바 전에 무슨 일 했는지는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별거 아녜요. 그냥, 회사 일 하기엔 아까운 사람 같아서.”
아까 정화 작업을 보고 하는 말이겠거니 했다.
물어보려 했는데, 창고 밑에 도착해서는 입이 열리질 않았다. 창고 내부가 꼭 지하 던전의 일자 통로처럼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조명이 있어서 그럭저럭 밝긴 했지만, 여길 돌아다니려면 철검과 방패, 포션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돌아다니다 보면 슬라임 나올 것 같어.
“이건 또 뭔….”
“나중엔 익숙해질 거예요. 나도 처음엔 언니가 대체 뭔 짓을 해놓은 건가 싶었거든.”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혼자 들어왔으면 오줌 지렸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윤하 누나는 말한 대로 이곳에 익숙한 듯, 앞장서서 나아가며 통로 벽면에 뚫린 방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숫자를 헤아렸다. 따라가며 방 내부 하나하나를 힐끗 쳐다봤는데, 알아볼 수 있는 건 뭔 무기가 가득한 방 한 곳뿐이었다.
네 번째 방 안으로 들어간 누나를 따라 들어가자, 온갖 상자가 가득 쌓인 구석에 포장이 벗겨진 물류가 바로 보였다. 보면서 느낀 건, 드래곤 비늘보다는 잘라낸 거목 몸통처럼 생겼다는 것.
“어때요? 이거 구하려고 고생 엄청 했는데.”
“글쎄요. 비늘처럼 보이진 않는데.”
“수십 개가 뭉친 거라 그래요. 겉 부분 살짝만 긁어내도 바로 멀쩡한 부분 나오고.”
긁어내는 일은 사가는 놈들이 알아서 할 일 같고, 이제 내가 뭘 해줘야 되냐.
묻자, 비늘에 가까이 다가간 누나는 비늘 한가운데에 난 구멍을 가리켰다. 내 주먹만 한 직경에, 구멍 언저리에 기름기 같은 게 남아 반들거려 보기 좋지는 않았다.
“아까 퍼낸 고름이 이 안쪽에서 나왔던 거거든요?”
“음… 예….”
“그러니까, 아예 이 안에 팔 집어넣으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뭘 어떻게 생각해, 하기 싫어 죽겠다는 생각이지.
그래도 내 금일봉이 걸린 문제다. 어차피 할 거, 우선 이부터 악물고….
주먹을 쥐어 구멍 안에 냅다 쑤셔 넣자, 아까 덩어리를 집었던 느낌이 팔 전체에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옆에서 보면 연필깎이에 연필 깎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다행히도 내 팔이 깎이진 않았고. 그랬으면 산재 신청했지.
대신 박힌 팔이 안쪽에 그대로 박혀버렸다. 도저히 빠지질 않아, 아예 거목을 양발로 디뎌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한참 동안 끙끙대어 겨우 팔을 빼낸 뒤 한 번 바라보니, 시멘트 포대에 담갔다 뺀 듯한 꼴이었다.
“어… 이거 잘 된 겁니까?”
“찬이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잘 된 것 같아?”
쥐뿔 모르겠어서 고개를 젓자, 잠깐 고민하던 누나는 창고 위로 쏜살같이 올라가서는 검진기를 가져와 내 팔과 구멍 안쪽에 대고 삑삑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내게 엄지를 척 들어 보였고. 난 스마트폰을 꺼내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하인데 전파가 통하긴 하네.
“잘 됐는진 모르겠고, 일단 검진기에 반응은 없어요, 점장님.”
[ 와, 그거면 됐어. 고마워, 찬아. 진짜로. ]“근데 지금 팔에 뭐가 묻어서 씻어야 할 거 같은데, 제가 세면대에서 비누는 못 봤거든요?”
[ 진열대 바디워시 하나 집어서 계산하고 그걸로 씻어. 영수증만 보관해 두면 돼. ]“네.”
[ 그리고… 아, 문자로 계좌 찍어줘. 돈 바로 보내줄게. ]해냈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