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1)
이세계 편돌이-90화(91/331)
90화. 초고속 승진,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1)
내일이 일요일인데 공사는 왜 한다는 거야. 평일엔 뭐 하고?
이 의문을 가진 채로 퇴근해 다음 날 근무 10분 전에 출근했다.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인 게, 털북숭이들이었다. 일곱 드워프.
“체인지 줘.”
“네, 체인지 시크릿 말씀이시죠?”
“힐 한 갑.”
“네, 지금 드릴게요.”
드워프들 특, 말이 무진장 짧다.
이 드워프들 결혼식 미사는 어떻게 하나 몰라. 둘이 사랑하냐? OK, 미사 끝. 뭐 이런 식인가?
그래도 당장은 점장이 여유가 있어 보여서 나도 유니폼을 챙겼는데, 다시 계산대로 돌아와 보니 이 양반들 복장이 살짝 신경 쓰였다. 죄다 노가다 복장이었거든.
정황상 이 양반들이 오늘 도로 공사 인원들인 듯 보였다. 헌데, 이 양반들 하는 말이 좀 이상했다.
“막걸리 있어?”
“네. 저기 유제품 코너 쪽, 구석에 한번 보시겠어요?”
“알았다.”
이러고는 죄다 막걸리 쪽으로 몰려가 양손에 막걸리 하나씩을 집어 들어 왔는데, 줄을 서서는 서로 이런 대화들을 나누는 게 아니겠는가?
“언제까지지?”
“새벽 2시.”
“중장비는?”
“내기 진 놈.”
“좋아. 내기는.”
“속도.”
이걸 대화라고 불러도 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어진 단서들만 가지고 추론을 좀 해봤다. 우선… 언제까지지? 이건 주어가 도로 공사 같고.
새벽 2시, 이건 2시까지 끝내야 한다는 말 같고. 중장비는? 하는 건 술 먹고 중장비 몰면 음주운전이니 술 안 마실 놈 정하자는 얘기 같고, 내기 진 놈은 내기로 정하자는 얘기 같고, 내기 종목은 아마 원샷 속도 대결 같고….
근데 씨, 술 더 빨리 못 마시는 쪽이 중장비 모는 내기면, 내기를 이기든 지든 술을 먹기는 먹는다는 거잖아. 이러는 게 의미가 있긴 한 거야?
갈수록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졌으나, 막걸리를 계산하는 점장 반응은 태연했다. 일곱 드워프에게 막걸리 열네 병을 전부 팔아치운 뒤, 점장이 POS기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길 수 초, 날 바라보며 물었다.
“찬아. 막걸리 몇 병 남았어?”
“잠시만요.”
가서 개수를 세보니, 안쪽 구석에 딱 3병이 남아있었다. 바깥쪽으로 위치를 옮겨놓은 뒤, 점장에게 보고했다.
“3병 남았슴다.”
“다행이다. 바코드 두 번 찍히는 소리 들려서, 계산 실수한 줄 알았어.”
“점장님,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딱 봐도 저 드워프들 공사 뛰러 갈 것 같은데, 공사 뛰어야 할 양반들한테 막걸리 팔아치운 게 실수 아니냐? 술 먹고 일을 어떻게 해?
난 이게 당연한 의문이라 생각했으나, 점장 말로는 아니란다.
“드워프분들은 술 드셨을 때 정신이 더 또렷하시거든.”
“아… 제 세상서도 그런 부류가 몇 있기는 했는데.”
술 안 먹었을 땐 헛소리만 하던 놈이 술 먹고 나면 말이 조곤조곤해지고, 성격도 침착해지는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니는 왜 그러냐? 묻자 당사자들 왈, 지들 술버릇이라나 뭐라나.
허나, 그놈들이 그걸 믿고 PT 발표 직전에 소맥을 까거나 하지는 않았다. 혈중알코올농도가 일종의 거짓말 지수 같은 거라, 높으면 높을수록 말이나 행동에 신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저러다 사고 내면 가중처벌 받는 거 아녜요?”
“그땐 그렇겠지만, 나는 드워프분들 일하면서 사고 내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갖구.”
“허어….”
“그리구, 한 병 드신다잖어. 그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실걸?”
막걸리를 스무 병은 마셔야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1% 올라갈 거라나, 뭐라나. 음주운전 최소기준이 0.03%다.
이 주당 기질도 서큐버스, 고블린들처럼 종특에 가까운 거라, 드워프가 인부로 들어가는 작업장들에서는 술을 양동이에 담아 먹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묵인해 준다고들 한다.
아무리 그래도 무슨무슨 법에 걸리는 게 아니냐 싶긴 했지만… 적당히 결론짓고 말았다. 저 드워프 양반들도 저러는 게 익숙하니까 저러는 거겠지.
결론짓고 나니 더 할 말도 없어져서, 가져온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인수인계를 받았다. 매장 자체엔 별일 없었고, 주의사항이 하나 있었다.
“찬아. 저기 전봇대에 일반쓰레기 보여?”
말하며 밖을 가리키는 점장. 정문 밖 전봇대를 보니, 일반 쓰레기봉투 하나가 전봇대 밑에 기대어져 있는 채였다. 20L 사이즈.
“보이네요. 근데 저기 쓰레기 배출하는 곳 아니잖습니까?”
“응. 낮에 3시쯤 보니까 어느 순간 생겨 있더라구.”
우리 편의점은 매장이 원체 큰 탓에 쓰레기가 좀 많이 발생한다. 많은 날엔 100L 종량제 봉투 두 개가 꽉꽉 채워지는 정도.
때문에 매일 새벽 2시 즈음 문 걸어 잠그고, 30m 정도 걸어 나가서 쓰레기 버리고 온다. 그곳에 쓰레기 적재함이 있기 때문이다.
어기적어기적 걸어가서 쓰레기 버리고 손 털고, 고개 들면 딱 보이는 문구가 하나 있다. ‘일반쓰레기 배출 장소 위반 시,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저거 치울까요? 누가 보면 저희가 버린 줄 알 텐데.”
편의점 앞 전봇대에 딱 기대어진 쓰레기봉투. 편의점 야간알바가 멀리 나가기 귀찮다고 무단투기한 쓰레기 그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안 보일 것 같다. 허나 점장은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에는… 당장은 안 치우는 게 맞을 거 같아.”
“글쎄요. 미관상으로 좀 보기 안 좋아서….”
“그렇기는 한데, 저걸 치운 뒤가 생각나갖구. 쓰레기 버렸던 분이 지나가다 보거든, ‘아, 여기다 쓰레기 버려도 치우는구나’라고 여기시지 않을까?”
이 일이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일어날 거고, 그때 가서 내버려 둔다 한들 그 양반 혼란스럽게만 만드는 게 아니겠냐는 게 점장 의견. 음….
“무단투기 한 놈 사정을 지나치게 봐주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 근데 다른 이유도 있어.”
“어떤 이유 말씀이십니까.”
묻자, 점장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툴툴대며 답해왔다.
“찬이도 알겠지만, 내 편의점은 쓰레기장이 아니야.”
“저도 알죠.”
“그리고, 저게 찬이가 할 일도 아니잖아. 쓰레기 버린 분이 다시 가져가는 게 맞지.”
“그것도 맞고요.”
묘하게 날이 선 어투였다. 얼굴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어도, 점장이 저 쓰레기봉투 때문에 꽤나 화가 난 듯 보인다.
“그러니까, 찬이도 치우지 말구 냅둬. 혹시라도 쓰레기 버린 분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잖아?”
“버린 쓰레기 다시 가지러요?”
“그것도 있구, 다른 쓰레기 또 버리러 오실 수도 있구.”
점장치고는 살짝 감정적인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주 가능성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쓰레기 무단투기한 놈이 집으로 돌아가다, 우연히 쓰레기 적재함과 눈이 마주쳤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러고 나면 양심 찔려서라도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 설령 아니더라도, 난 화난 상사 속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 모르겠고 ㄹㅇ ㅋㅋ나 칠란다.
“다시 오시거든 어떻게 할까요. 맛소금 포장 하나 뜯을까요?”
“소금 뿌리는 건 좀 그렇구, 주의만 드려.”
인수인계는 이걸로 끝났고, 점장은 입을 삐죽 내민 그대로 퇴근. 나는 나대로 담배랑 현금 세고, 할 일 끝낸 뒤엔 가만히 앉아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근데, 한가하더라.
일요일 야간 근무가 원래 이렇긴 하다. 여기가 손님 대부분이 직장인들일 수밖에 없는 입지고, 일요일 밤에 술 약속을 잡거나 놀러 나올 생각 하는 직장인들이 흔할 리도 없고….
오늘은 특히 다른 이유가 있다. 20분 정도 더 앉아있다가, 하도 지루해서 바람 잠깐 쐴 겸 밖으로 나와 거리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에 아까 막걸리 사 갔던 드워프들이 보인다. 수는 일곱.
일곱 명 모두 안전모를 쓴 채고, 각자 할 일들을 하고 있다. 라바콘을 깔거나, 안전테이프를 치거나, 막걸리로 병나발을 불거나, 트럭이나 롤러를 몰거나….
트럭 모는 드워프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다. 저 양반이 내기에서 진 모양이다.
어쨌든 도로공사로 인해 거리가 막힌 상태고, 돌아다니는 차가 없으니 손님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행인들도 뭐, 굳이 도로공사 하는 거리 쪽으로 다니고 싶지도 않겠지.
새벽 2시까지 공사한다고 했으니, 오늘은 이렇게 계속 한가할 것 같다.
이 생각을 하며 공사 현장을 계속 쳐다보던 와중, 일곱 드워프 말고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경찰 제복을 입고, 입에 호루라기 물고, 모자는 벗은 상태.
교통정리 하러 나온 경찰로 보인다. 차도 한 대 없으니, 저 양반도 참 편하겠….
어째 내가 아는 경찰 같다?
금색과 검은색이 반반 섞인 머리카락, 뾰족한 귀. 옆얼굴로 보이는 눈가는 피곤기가 가득하다. 그러니까, 이름이….
“이루엘 경관님?”
이거였다. 엘프 경찰. 거의 읊조리듯 중얼거렸을 뿐인데, 내가 중얼대자마자 저 멀리 엘프 경관이 내 방향으로 홱 고개를 돌려왔다.
그러고는 날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도 눈을 마주쳤더니, 잠시 뒤에 허리춤의 경광봉을 집어 들어서는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뭔가를 떠올렸다는 듯,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내가 선 정문 앞까지 걸어와서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내게 물었다.
“부르셨습니까.”
“어… 그건 아니고요.”
아는 얼굴 같아서 반사적으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왔다. 이후 물끄러미 날 바라보고, 제복 가슴팍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열더라. 돛대만 남아있었다.
“…레드 한 갑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정문 열고 같이 들어와서 담배 한 갑 계산해 건네줬다. 받아들자마자 익숙한 손놀림으로 비닐, 종이 포장을 뜯어서는 자기 주머니에 욱여넣더라.
“저 주세요. 제가 버려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잘 지내셨습니까.”
목소리 지분이 각각 무미건조함 10%, 피곤함 90%이다. 나 잘 지냈냐고 물을 게 아니라 자기 걱정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저는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경관님께서는―”
“해코지하러 온 인원은 없습니까. 중인족이라든가.”
이 엘프 경관을 마지막으로 봤던 게 중인족 진상 놈들 때문이었다. 테이블에 자리 잡아서 웃통 벗고 떠들고, 저건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말리러 갔고.
도중에 엘프 경관이 방문해 중재를 시도했으나 잘되진 않았다. 도중에 변수가 발생해 강제 폭발 엔딩 루트에 진입해 버렸기 때문이다.
중인족 진상 놈들이 여권을 마법으로 위조한 불법체류자들이었고, 그 여권을 내가 터트려 먹었다. 그 직후에는 이 엘프 경관이 중인족들 제압하는 매드무비를 찍었었고….
“아직은 없었던 거 같아요. 근데 그 중인족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강제퇴거, 10년간 입국 규제 조치했습니다.”
“어….”
대응 칼같네. 짧게 말을 마친 후에는 날 보고 고개를 꾸벅였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리기 위해서라도 한번 방문했어야 하는데.”
“아뇨, 뭐. 바쁘실 텐데.”
“이곳 점장님께 포션 고맙다고 인사도 드려야 했고….”
“그건 신경 안 쓰실걸요? 오히려 드셔주셔서 고맙다고 할 분이라.”
“그렇습니까. 나중에 뵙거든, 감사하다고 전해주십시오.”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후, 또 정적.
어색함에 머리 쪽을 슬쩍 올려다보니, 이젠 거의 금발이 20%, 흑발이 80%가량으로 변색된 상태였다.
엘프들은 스트레스, 혹은 피곤한 정도에 따라서 머리색이 흑발로 바뀔 수 있다고 점장이 말했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엘프가 지금 약 80%가량 쓰러지기 직전인 상태라는 게 된다.
하려면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엘프가 이 상태면 이것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분위기의 이야기를 꺼내야 분위기가 풀어지겠다 싶었다.
지금 밖에서 일 안 하셔도 괜찮으시냐, 이건 아니고. 음….
“아, 경관님. 불법체류자 잡으면 서에서 경관님께 포상 같은 거 안 해줍니까? 휴가를 준다든가.”
“휴가? 처음 듣는 단어인데, 그게 뭡니까.”
“어… 이때까지 안 줬어요? 아무것도?”
“받은 게 있냐 물으신다면….”
잠깐 생각하는 듯하다, 자조하는 어투로 대답해 왔다.
“승진했습니다. 일도 좀 늘었고.”
“오메. 호봉 올라가신 거예요? 그거참 희소식―”
“교통안전과, 정보관리과, 아동청소년과, 범죄수사과, 사이버범죄수사과, 경비과, 형사과, 안전기획과….”
뭐? 뭔 과?
“…그리고 장비담당과.”
“…….”
“이렇게 맡게 됐습니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