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2)
이세계 편돌이-91화(92/331)
91화. 초고속 승진,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2)
예상 못 했던 대답이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러니까, 불법체류자를 잡은 건으로 서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이 엘프한테 책임 좀 주고.
그 결과가 이거란 소리야? 경찰 부서에란 부서에는 죄다 책상 하나씩 갖다 놓은 게? 이게 말이 되냐?
황당함에 더해 어이가 없기까지 해서, 눈썹 찌푸린 채로 엘프 경관의 얼굴만 바라봤다. 이러다 눈이 마주쳤는데, 내 표정을 보고는 다시 자기 경광봉을 꺼내 들더라고.
그 경광봉 끝으로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리다, 멈추고는 대답했다.
“제 딴엔 농담이라고 해본 건데, 별로 재미없으셨나 봅니다.”
“어… 일감 늘어났단 게 농담이었다는 말씀이신가?”
“그건 사실입니다. 승진한 것도 사실이고. 단지… 이 소식을 동료 경찰들에게 들려줬을 때, 다들 웃더군요.”
“웃었다고요?”
“그래서, 제 승진이 재미있는 농담거리가 될 줄 알았는데….”
그 경찰 양반들이 웃은 게 농담이 우스워서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 이 엘프가 맡게 된 일을 듣고, 나랑 똑같이 어이가 터져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사람이 할 말이 없어지면 보통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것도 그런 연유가 아닌가 싶은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농담을 잘 못해서.”
“아, 예….”
“괜한 말 꺼내서 죄송합니다.”
이러고는 눈을 내리깐다. 자기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 엘프와 대화를 나눈 게 몇 번 안 되긴 하지만, 이젠 성격이 좀 분류가 된다. 융통성이 좀 딸리고, 고지식하고, 일 처리도 철저하게 매뉴얼대로 하는 스타일.
싫다는 소리가 아니다. 나도 매뉴얼대로 일하는 거 좋아하기도 하고, 농담 잘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래도 워낙 미안해하는 눈치라, 위로도 축하도 할 겸 말해줬다.
“제가 여쭤봤던 건데 사과는 왜 하십니까. 아무튼, 승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러고는 대화가 끝났고, 조용해졌다. 이런 분위기 좀 그런데….
조용한 걸 풀어보려 해도, 공권력과 대화해 본 경험이 많질 않다 보니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할 말을 고르는 사이, 엘프 경관이 중얼거렸다.
“…밖의 도로 공사. 소음이 심하진 않을 겁니다. 제가 통제할 거라서.”
“아. 그거 말인데, 언제쯤 끝납니까? 아까 저분들 담배 사러 오셨을 땐 오전 2시쯤이라 말씀하시던데.”
“그쯤 끝날 겁니다. 끝날 거고, 문제가 생기거든… 직접 와 주십시오. 저 앞에 있겠습니다.”
설마 코앞에 경찰 있는데도 진상 짓을 하겠냐― 싶었으나, 그냥 수긍하고 말았다. 어투에 ‘마무리 짓고 각자 할 일 하자’라는 낌새가 보여서였다.
“옙.”
“그럼… 수고하십시오.”
이러고는 고개 꾸벅이고는 밖으로 나갔고, 나가서는 돛대만 남았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어 까딱이고.
그러다 공사 현장 쪽을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배를 다시 집어넣고 걸어간다. 정황상 담배 피울 여유조차 없다는 몸짓처럼 보이는데….
이젠 이 생각밖에 안 든다. 저 경관 대우가 너무 박한 거 아닌가?
점장이 말한 게 있긴 하다. 엘프 종족이 옛날에 전쟁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인식이 좋지 않다. 때문에 회사, 공무원 등에 지원할 때도 알게 모르게 차별을 많이 받는다.
이에 대한 내 의견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 할 수 있지만….
글쎄다. 생명체의 DNA 구조는 현대까지도 완벽하게 분석된 게 아니다. 선대가 꼴통 짓을 했다고 후대까지 꼴통 짓을 할 거라는 근거가 있나?
물론 나도 귀쟁이 손님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긴 한다. 허나 이건 귀쟁이들 대부분이 내게 꼴통 짓을 했기 때문이고, 내가 이 세상 역사를 가슴으로 이해해서가 아니었단 말이지….
좋은 엘프들이 오면 나도 좋아할 수 있단 거다. 그리고 저 엘프 경관의 경우, 난 마음에 드는 편이다.
융통성이 살짝 모자라긴 해도, 트러블을 일으킬 만한 성격도 아냐. 내게 죄송하단 말을 해 온 엘프 종족은 저 경관이 처음이기도 하고.
지금 일폭탄을 껴안게 된 것도 평소에 서에서 밉상 짓을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여기에까지 생각이 닿으니, 서에서 승진 소식을 들려줬을 때 동료 경찰들이 보였다는 웃음의 의미도 지금은 다르게 해석됐다.
그게 헛웃음이 아니었던 거지. 그것보단 좀, 꼴 좋다는 의미의….
“사장님, 생수 어디 있어요?”
이러는 도중 손님이 왔다. 정장을 입은, 허우대 멀쩡한 샐러맨더.
생각 그만하고 나도 내 일이나 하련다. 음료 진열대 위치를 알려주자, 가서는 생수 한 병을 가져왔다. 계산해 주니 그 자리에서 뚜껑 비닐을 뜯으며 내게 말을 건네왔다.
“날씨 참 덥네요. 그쵸?”
“예. 슬슬 6월 돼서 그런가 봅니다.”
말을 걸어오길래 대답했는데, 맞대답은 안 해오고 물만 벌컥벌컥 들이켜댄다. 절반쯤 마실 때만 해도 목이 어지간히 말랐겠거니― 정도였는데, 뚜껑을 닫은 뒤에도 가질 않더라.
더해서 날 힐끔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면 자기가 시선을 피한다. 이 양반은 또 왜 이래?
“손님?”
“저, 사장님.”
답답함에 재촉하자, 샐러맨더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여기에 물건 하나를 놓고 갔는데.”
“아. 분실물 말씀이시면….”
점장에게 인수인계받은 게 있나? 없는데?
물론 편의점에서 분실물 인수인계가 안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라면 먹고 테이블 밑에 조그마한 우산 두고 간다든가, 과자 진열대 밑에 교통카드를 떨군다든가.
이런 건 작정하고 찾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어렵다. 지금이 그 경우이겠거니― 싶어 물어봤다.
“어떤 분실물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내 물음에 또 말을 늘인다. 이 양반아, 잃어버린 게 뭐든 간에 말을 해줘야 찾아주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
“돈 가방인데요.”
들은 뒤,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되물었다.
“돈 가방이라고 하셨습니까? 돈 담는 그 가방?”
“예. 그래서, 있나요?”
있겠냐? 아니, 것보다 돈 가방을 편의점에서 왜 잃어버려. 은행이랑 헷갈린 거 아니야?
이 생각이 들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은행에서 돈 가방 찾는 짓도 제정신으로 할 짓은 아니었다. 출금하자마자 까먹은 꼴이잖아. 금붕어가 아니고서야….
반신반의하는 마음에 샐러맨더를 쳐다보았으나, 자기는 진지하게 꺼낸 말인지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다. 일단은 있는 사실 그대로 대답해줬다.
“아뇨. 편의점에 돈 가방 들어온 건 없습니다.”
“정말이죠?”
“정말이에요. 아예 분실물 자체가 없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내가 미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안색을 싹 바꾸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 나가더라. 샐러맨더가 사라진 걸 확인한 뒤, 바로 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응, 찬아.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다기보단, 인수인계 사항이 좀 있어서.”
[ 헉. 설마, 아까 바코드 두 번 찍힌 게 맞아? ]“아뇨. 시제나 재고는 잘 맞아요. 그거 때문은 아니고, 매장에 분실물 없었슴까?”
[ 분실물은 없었는데. 뭐 잃어버리셨대? 카드? 우산? ]“돈 가방이요.”
매장에서 돈 가방이 발견됐으면 점장이 모를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물론 혹시가 역시였다.
[ 돈 가방? 돈 담는 가방 얘기하는 거야? ]“그 가방 맞는 거 같아요. 아마도.”
[ 어… 없었어. 내 기억으로는. 것보다, 돈 가방을 왜 내 매장에서 찾으신대? 어떻게 생겼구? ]“제 말이 그 말입니, 어떻게 생겼냐고요? 돈 가방이?”
점장한테 이 얘기를 듣고 나니, 이 상황 자체가 좀 수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보통 분실물 찾거든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설명하는 게 맞지 않아?
심지어 돈 가방이다. 현대사회에서 돈을 가방에 담고 다니는 경우가 흔한가― 흔하지 않은가는 둘째 치더라도, 집 보증금이든 뭐든 들어있을 거잖은가. 액수도 꽤 될 거고.
그걸 ‘없는데요?’ 한마디에 쿨하게 뒤도는 건 또 뭔지 모르겠다. 나였으면 손짓 발짓 해가면서라도 돈 가방 생긴 걸 어떻게든 묘사하려 들었을 것 같은데.
“제가 그건 못 들어서 모르겠… 잠시만요.”
말하는 도중 또 손님이 왔다. 화장이 진한 데에 더해, 여기저기 파인 옷을 입은 하피 손님.
맨살이 보여야 할 자리들에는 맨살이 아닌 깃털이 돋아나 있었는데, 가닥마다 윤기가 아주 잘잘 흐르더라고. 샴푸 좋은 거 쓰나 보다.
“사장니이임, 보습제 어디에 있나요오?”
“저기 거울 밑에 한번 찾아보십쇼.”
보습제를 사면 사는 거지, 앙탈은 또 왜 부리는 거야.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보습제가 있는 곳 알려준 뒤, 계산해 줬다. 8,600원.
헌데 이 하피가 계산한 보습제를 손에 쥐고는, 내 눈치를 보며 떠나기를 주저하는 게 아니겠는가. 어째 데자뷰 같은 게 느껴지는데….
“손님. 혹시 봉투 필요하세요?”
“아니요오, 그건 아니구요. 저어, 사장니이임.”
“예.”
“혹시요오… 여기, 분실물 있나요오…?”
데자뷰에 뒤이어 불안감이 엄습해 왔으나, 꾹 참고 물어봤다.
“어떤 분실물 말씀이십니까.”
“그게, 저어… 돈 가방인데요오.”
미치겠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양복 입은 샐러맨더, 윤기 잘잘 흐르는 하피. 이족보행을 한다는 것 외엔 공통점 하나 없는 둘이 똑같은 소릴 해대고 있다. 여기 돈 가방 있냐고.
그래도 똑같은 질문을 연달아 들은 덕인가, 아까보다는 정신력에 좀 더 여유가 있다. 잠깐 생각하다, 점장이 가졌던 의문부터 해소해 봐야겠다 싶었다.
“그 돈 가방이 어떻게 생긴 겁니까? 크기라든가, 형태라든가.”
이 질문에 대한 하피의 반응이 또 예상 밖이었다.
“그게요오, 저도 잘은 몰라요오. 부탁받은 거라서어. 보면 알 거 같은데에―”
편돌이가 손님에게 분실물을 건네줄 때 무작정 건네주지는 않는다. 우산 건네줄 때는 가능한 우산 생김새가 어떠한지를 유도심문하고, 지갑 돌려줄 땐 신분증 확인하는 정도.
노리고 이 짓을 하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우산이나 지갑 가져다가 지가 쓰려고.
지갑이야 대부분 검은색 가죽 계통이니 ‘검은색 가죽 지갑’이라 말하면 되고, 우산은 ‘저도 집에서 아무거나 가져온 거라 잘 기억이 안 나서, 보고 확인해 봐도 되나요?’라고 말을 해온다.
지갑 대부분이 다 검은색 가죽 계통이잖은가. 우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고.
여기에 속아 넘어간 편돌이가 ‘아, 이분이 잃어버리신 거 맞나 보다―’ 하고 돌려주면? 그냥 가져가는 거다. 깔끔.
걸리면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 할 수 있는데, 걸릴 일 자체가 없다. 잘 안 풀리더라도 ‘제가 편의점을 착각했나 보네요’ 내뱉고 돌아가면 그만이거든. 착각한 거라는데 뭐 어쩌겠어.
이 하피가 유도하는 게 딱 이거 같다. 돈 가방 보여주면 아, 맞아요! 이게 그 돈 가방이에요, 하고 가져가 버리는 거. 근데 말이야.
“오늘은 저희가 분실물이 없어서요.”
“없다구요오…?”
“예.”
“…뭐야.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없다는 말에 안색을 싹 바꾸고, 앙탈 섞어가던 목소리마저 저음으로 깔아 내뱉고는 나가버렸다. 나간 걸 확인한 뒤,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점장님. 지금 얘기 들으셨어요?”
[ 살짝 멀긴 했지만 잘 들렸어. 방금 그분도 돈 가방 찾으러 오셨던 거지? ]“예. 이게 대체 뭔 상황인지 모르겠네.”
[ 그러게 말야…. ]단순히 돈 가방이 분실됐다, 이런 수준의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점장과 의견이 일치했고, 결론도 똑같이 낼 수 있었다.
[ 이건 경찰분들께 신고하는 게 맞아 보여. 찬아.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생각이긴 한데… 좀 애매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 애매해? ]내 말은 이거다. 지금 저 둘이 왔다 가긴 했지만, 이걸로 상황이 끝났을 경우.
그럼 경찰 왔을 때 뭐라고 얘기하냐고. ‘좀 전에 이상한 손님 두 분이 오셔서 돈 가방 찾다 가셨어요.’라고 할 순 있겠지만, 이게 다잖은가?
편돌이와 편의점 점장의 손에서 벗어난 일은 맞아도, 경찰이 개입하기엔 애매하지 않냐는 거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저 둘이 정신병동 갓 탈출한 신선한 환자일 수도 있고….
[ 그것두 신고하는 게 맞지 않아? ]“그렇네요? 어쨌든 상황이 이상하긴 해도 큰일이 일어난 건 또 아니니까, 좀 더 지켜보자는― 잠시만요.”
말을 끊었다. 손님이 와서였다. 손에 보따리를 쥔, 연배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
종족이 양서류에 속한다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뭔지는 내가 개구리 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잘 모르겠다. 정문으로 들어와서는 보따리를 내려놓고, 허리를 툭툭 두드린다.
“에구, 허리야….”
인자함 가득 담긴 목소리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되더라. 허리에 붙일 파스를 사면 샀지, 돈 가방 있냐는 식의 해괴망측한 말은 안 해올 것 같아서였다.
끙끙대며 굽은 허리를 펴시고는, 내게 느릿느릿 물어보셨다.
“저기, 총각. 나가 찾는 게 있는디 말여….”
“예. 어떤 거 찾으세요?”
“그기… 돈 가방이여. 분실물이고―”
“없는데요.”
앞의 둘은 최소한 물건 사는 성의라도 보였다, 이 할망구야.
대답하자, 어린놈이 뭐 그리 말이 짧냐며 툴툴대고는 허리 쭉 펴며 나가버렸다. 할망구가 쇼윈도 오른편으로 사라진 걸 확인한 뒤, 점장에게 말했다.
“그냥 경찰 부르겠습니다.”
[ 응. 내가 전화할까? ]“아뇨, 전화까진 안 해도 될 것 같고….”
마침 밖에 아는 경찰 한 명 있다. 출동은 빠를 테니 편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