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3)
이세계 편돌이-92화(93/331)
92화. 잃어버릴 걸 잃어버려야지 (1)
매장 밖으로 나와, 도로 공사 현장까지 직접 찾아갔다.
찾아가 보니 아까 안에서 봤던 거에 비해 현장이 꽤나 요상해져 있었는데, 엘프 경관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드워프들을 쳐다보고 있고….
드워프들은 술판을 벌이고 있다. 공사하다 말고 웬 술판이야?
각자 손에 막걸리 한 병씩 쥐고 도보, 롤러 바퀴, 공구함 등등에 앉아서 떠들어대는 게 공사 현장인지 노가다 뒤풀이 현장인지 분간이 안 된다.
아니면 아스팔트에 막걸리를 섞는 게 이세계식 도로포장 공법이기라도 한 건지, 뭔지. 아무튼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엘프 경관이 소리 없이 다가와서는 이런 말을 해왔다.
“빈 병은 직접 치우신다 하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빈 병요?”
“저는 그 이유로 찾아오신 줄 알았습니다만.”
매장 정문 앞에서 갓 산 음료 다 마시고 버리고, 담배꽁초 투척하는 게 편돌이 입장에서 짜증 나긴 한다. 그것들 안 치우면, 찾아온 손님들이 ‘이 매장은 청소를 제대로 안 하나?’라고 생각할 테니까.
듣고 나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알아서 잘 치운다고 하니 일단은 넘기고.
“…사장님 표정을 보아하니, 다른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 아까 경관님께서 문제 생기면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랬죠.”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어리둥절해하는 눈치라 바로 사정을 설명했다. 경관님 나가신 직후에 손놈이 연달아 셋이 왔는데, 다들 똑같은 소릴 하더라. 매장에 돈 가방 분실된 거 있냐고.
더해서 돈 가방 찾던 손놈들 연령이나 인상착의도 제각각에, 돈 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또 말을 안 해준다. 나는 이게 수상하다 생각하는데, 경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냐.
“…흠….”
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는 않고, 자기 경광봉을 들어서는 머리를 톡톡 두드려댄다. 이게 생각할 때의 버릇인가 보다.
그러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매장 쪽을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합니다만….”
“정말요?”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 봐야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 협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야, 협조를 해 달란다. 이게 진짜 사건이 맞긴 맞는 건가? 경찰 입장에서?
혼란스럽긴 해도, 협조해 달라면 못 해줄 것도 없긴 했다. 난 내가 일하는 직장에 정체도 모를 놈들이 정체도 모를 돈 가방이 있냐며 물어보는 이 상황 자체가 더럽게 싫었기 때문이다.
매장 주인인 점장도 마찬가지일 거고. 당장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나중에 사후 보고를 하든 해야겠다. 헌데….
“제가 어떻게 협조를 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정황상 돈 가방을 찾으러 오는 게 세 번으로 끝날 것 같진 않습니다. 네 번째, 다섯 번째가 찾아오겠죠.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말을 할 거고.”
“아, 그걸 보고 싶다는 말씀이신가? 손님 받는 거?”
“예. 늘 하시던 대로, 평범하게 응대해 주시면 됩니다.”
말하고는 몸에 걸치고 있던 야광 교통조끼, 근무복, 모자를 하나씩 벗기 시작한다.
벗고 나니 남방에 검은색 근무복 바지만 남았는데, 복장이 어떻게 보면 갓 퇴근한 직장인으로 보이기도 했다. 눈가에 다크서클 진한 게 특히나.
“인수인계 무전 마친 뒤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알았다고 대답했다. 경관이 떠난 직후, 우리가 얘기하는 걸 전부 들었는지 드워프 중 한 명이 막걸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잔 줘?”
“저 근무 중이라 술 먹으면 안 돼요.”
술이 몹시 땡기는 상황이긴 하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매장 카운터로 돌아온 후엔, 가능한 머리를 비워보려 노력했다. 전의 세 번이야 별놈이 다 있네― 하고 말았다 쳐도, 지금은 이게 경찰이 협조를 구할 정도의 사건이란 걸 들어버린 상황이다.
이 상태로 돈 가방 있냐는 말을 들었다간 안 해도 될 말들까지 다 튀어나와 버릴 것 같다. 돈 가방을 대체 여기서 왜 찾는 거냐, 찾아서 어디 쓰려고 그러냐― 이런 것들.
이게 경관이 바란 ‘평범한 응대’는 아닐 터다. 내가 과민반응 한다고 해도 할 말 없긴 하지만, 편돌이 근무하면서 돈 가방 달라는 놈들을 태어나 처음 보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니지. 이게 혹시 그건가? 기프트카드 잔뜩 사 갔던 어르신이 말한, 큰일 몇 개 겪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을 멈췄다. 손님이 둘 들어와서였다. 한 명은 남방만 입은 엘프 경관, 다른 한 명은 위아래로 추리닝 입은 중년 엘프.
“사장님, 피로회복제 있습니까.”
그중 엘프 경관이 카운터로 와서는 바로 묻길래, 평범하게 응대해 줬다.
“저쪽 반사경 밑에 한번 보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손님은 제가 경찰이란 걸 전혀 모르는 눈치입니다.”
“어… 그래요?”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하단 말 뒤로는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데시벨이었는데, 여태 들어본 것들 중 가장 의욕 가득한 목소리다. 이 경관, 즐기는 자 모드에 돌입해 버린 건가?
그래도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경관이 피로회복제를 가져와 계산하고, 테이블에 앉아 홀짝이는 동안에도 추리닝 입은 엘프는 내 눈치만 볼 뿐, 딱히 뭘 사려고 들지는 않았다.
테이블 쪽의 경관 눈치를 슬쩍슬쩍 보는 게,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손님이 지나치게 서성일 경우, 편돌이 쪽에서 보통 하는 질문이 있다.
“손님, 혹시 찾는 물건 있으십니까?”
“어, 나? 어. 그러니까… 홍삼 엑기스 있어?”
“예. 짜 먹는 형태고요, 이겁니다.”
반응을 보니, 이 양반도 돈 가방 타령하러 온 게 맞아 뵌다. 찾는 물건을 직접 집어 들어 보여줬는데, 이 양반이 오히려 당황을 하더라.
아예 지갑조차 안 들고 왔는지, 주머니를 한참 뒤적거리고는 어색하게 한숨을 푹 내쉰다. 이러고 나서야 내게 말을 해왔다.
“아이고, 내가 지갑을 안 가져왔네. 미안하다.”
“아뇨,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 그런데 말야… 혹시 여기 분실물 있어?”
이런 젠장, 또 시작이구만.
“어떤 분실물 말씀이십니까?”
“돈 가방. 돈 가방이야.”
“정확히 어떻게 생긴 돈 가방입니까.”
“나도 부탁받은 거라서 생긴 건 잘 몰라. 보면 알 것 같은데….”
아까 왔던 하피랑 레퍼토리가 똑같다.
여기서 호기심 왕성한 편돌이였다면, ‘잃어버리셨던 분에게 부탁받은 게 정말 맞냐’ 혹은 ‘돈 가방을 보통 타인에게 찾아달라고 하냐?’ 정도의 질문을 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오늘은 저희 편의점에 분실물이 없어서요. 다른 곳이랑 착각하신 게 아닐까요?”
심문은 경찰이 할 일이지, 협조하는 입장인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대답이다 싶었는데, 이 엘프가 내 대답에 고개를 가로젓더란다.
“아냐. 분명 이 편의점에서 잃어버렸다고 했어.”
“그…렇게 말씀하셔도, 오늘은 저희 편의점에 분실물이 없어서요. 정말로.”
“니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예?”
“니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고, 가방 꿀꺽하려고.”
지금 장난하나, 내가 가방을 왜 처먹어?
나도 내가 거짓말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돈 가방이 있으면 냅다 줘버렸지, 없다고 버티고 있겠냐? 누가 보관료 주는 것도 아닌데?
앞선 셋은 첫 몇 마디에 예의 바르게 굴려는 시늉이라도 냈지, 이놈은 그것조차 없다. 내가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있지도 않은 돈 가방 때문에 거짓말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하냐?
여기에 생각에 닿는 순간 열이 확 차올라서, 나도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고, 저희는 분실물 있으면 신원만 간단하게 확인하고 바로바로 드립니다. 보관한다고 무슨 득이 있어서 억지로 보관을 합니까?”
“그거야, 어. 돈 가방이잖아. 돈 많이 들었을―”
“그것도 전 잘 모르겠고, 원하시면 카운터 안쪽을 보여드릴 수도 있고, 재고 창고 쪽을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 대신, 없으면요. 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됩니까?”
“뭐, 뭐? 내가 분실물 찾으러 온 건데, 뭘 어쩌려고….”
“없다는 말에 니가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잖아요. 제가 영업방해죄로 신고하는 거 말고 뭘 더 합니까? 전 다른 손님 받아야 되고, 손님께서는 제가 앞으로 뭔 말을 더 해도 다 거짓말이라면서 버티실 것 같은데.”
이 엘프가 여기서 말을 더 하게 뒀다간, 필시 언성 높일 게 분명했다. 근무 경험상 대부분 엘프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저 뒤에 앉은 경관 딱 한 명 빼고 말이다.
그 지경까지 가면 어차피 경찰 부르게 될 거, 내가 먼저 물어뜯기로 했다. 어차피 난 경찰 불러도 손해 볼 거 없거든. 오히려 니가 더 후달리는 거 아니냐?
“…에이 씨. 없으면 없는 거지, 뭔 말을 그렇게 해.”
이 귀쟁이는 경찰 불러가면서까지 돈 가방을 찾을 용기는 없는 듯했다. 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리고는 나가버렸으나….
주먹으로 좀 세게, 카운터를 내리찍었다. 나가는 등짝을 보니 괜히 더 화가 치솟더라.
여기가 편의점이지 사채 쓰는 곳도 아니고, 그 빌어 처먹을 돈 가방이 편의점에 있을 이유가 뭐가 있다고 찾아대. 뭔 말을 그렇게 해? 그럼 말을 어떻게 하라는 건데?
예의라도 좀 갖춰주면 모를까, 찾아온 네 연놈들이 참 다채로운 방식으로 싸가지 없게 굴고 있다. 날씨 묻다 안색 바꾸질 않나, 교태 부리다 안색 바꾸질 않나, 말투가 싸가지가 없다 하질 않나―
“지들이 헛소리하는 거면서 나한테 신경질은 왜 부리냐고, 왜. 아예 흰 가루도 찾고 그러지? 뇌 녹이게 본드도 좀 사가고?”
“편의점에서 정말 흰 가루도 취급하십니까?”
“당연히 취급하죠. 뭐 필요하십니까. 박력분? 맛설탕?”
요새는 제과가 취미인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편의점에서 박력분도 취급을 한다. 중력분은 안 팔고. 제면용 밀가루가 중력분인데, 제면이 취미인 사람들은 별로 없잖은가.
“아. 그 흰 가루.”
수긍하는 엘프 경관의 목소리가 살짝 힘이 빠진 느낌이다. 그럼 뭔 가루를 기대한 거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해피 파우더?
그나저나 이 경관은 언제 소리 없이 온 거야. 짙게 다크서클 깔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를 냈던 상황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
“죄송함다, 경관님. 괜한 소리 해가지고 얘기 더 못 듣고 보내버렸….”
“아뇨. 저는 충분히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그게요?”
“그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화를 냈을 테니까요. 저도 마찬가지고.”
화를 내는 게 지극히 평범한 상황이니, 내가 방금 했던 응대가 평범한 응대라는 논지였다. 이 경관이 농담은 못해도 위로는 잘한다.
“그리고… 덕분에 추가로 알게 된 사실도 있고.”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분명 이 편의점에서 잃어버렸다고 했다. 가방에 돈 많이 들었을 거 아니냐. 지령을 받은 겁니다. 앞선 넷 모두.”
방금 일상생활에서 들을 일 없을 단어가 튀어나오지 않았나? 지령?
“경관님. 방금 지령이라고 하셨어요?”
“예. 지령. 제가 전에 암시장에 관해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