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4)
이세계 편돌이-93화(94/331)
93화. 잃어버릴 걸 잃어버려야지 (2)
암시장. 꽤 오래전에 들은 단어긴 해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 암시장이란 곳에서 거래됐다던 매지컬―불법 지갑, 매지컬―위조여권을 내가 터트려 먹었고, 그걸 이 경관에게 들켰고….
그게 발단이 되어서 자격증까지 따게 됐으니까. 나중에 또 사고를 치더라도, 무면허로 사고 치는 것보단 면허증 달고 사고 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사고 흐름에 의해서였다.
어쨌든 그때 느낀 소감은, 이런 일에 엮이는 건 두 번이면 충분하단 것이었다.
직역하면 검은 시장. Black Market인데, 어감부터가 불길하기 짝이 없다. 29년 살며 경찰과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모범 청년이 이딴 것과 엮일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이유로 난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고, 더해서 이 얘기를 내가 들어도 되는 건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내친김에 물었다.
“저, 경관님.”
“예.”
“지금 하실 말씀들, 제가 들어도 되는 게 맞아요?”
경찰 일에 대해 아는 건 쥐뿔 없지만, 이거 하나는 알고 있다. 경찰이 외부에 수사 정보를 공개하는 게 함부로 해선 안 될 일이라는 거.
지금 하시려는 게 그거 아니냐. 내 질문에, 경관이 잠시 뜸을 들이고는 대답해 왔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사건관계인에게 7일 이내로 수사 진행 상황을 통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허어….”
“여기서 사건관계인이라 함은 고소인, 고발인, 피해자를 포함합니다.”
돈 가방 찾는 이상한 놈들이 있다고 고발한 놈이 나고, 7일 이내로 통지할 의무가 있으니 겸사겸사 지금 통지도 겸한다는 거다. 이렇게 들으니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합니다. 그중 하나가 고발인이 통지를 원치 않을 경우.”
“허어….”
“원치 않으신다면 저도 이만 줄이겠습니다.”
듣기 싫으면 말 안 하고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소리 같다. 말하고는 다크서클 짙은 눈으로 날 바라보길래, 슬쩍 시선을 피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관여하지 않고 싶은 게 사실이다.
난 한낱 편돌이잖은가. 수사학의 수 자도 모르는 놈이 이야기를 듣는다고 뭐가 달라질지도 모르겠고, 이런 걸 들었다가 괜히 큰일이 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경관님.”
그래도 여긴 내 직장이다. 내가 매니저고, 내가 책임자.
점장이 야간 12시간 동안 매장 책임지라고 날 뽑았고, 난 근무 중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질 의무가 있다.
이 빌어먹을 돈 가방의 정체가 대체 뭐고, 어떻게 됐는지를 듣고 인수인계를 하는 것도 내 일이라는 뜻이다. 이걸 제대로 전해야 점장도 안심할 수 있을 거고….
나도 좀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자 경관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현 상황이 이렇습니다. 전혀 다른 넷이 시간 차로 매장에 찾아와, 분실한 돈 가방을 찾으러 왔다― 고 말해오는 상황. 동의하십니까.”
“예.”
“그럼, 이 넷이 잃어버린 돈 가방이 각기 다른 돈 가방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없겠지. 돈 가방 잃어버리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잖은가. 그게 한 지점에서 하루 만에 4번이 발생했다고는 억지로라도 생각 못 하겠다.
“저도 똑같은 생각이니, 이 가능성은 배제하겠습니다. 이 넷이 찾는 돈 가방이 똑같은 돈 가방이라 친다면, 이 넷이 서로 어떤 관계인 것 같으십니까. 협력 관계?”
“…아뇨.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넷이 협력 관계면, 맨 처음 들어온 놈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다른 셋에게 연락을 했겠지. ‘그 편의점엔 돈 가방이 없다―’라고.
그럼 나머지 셋이 연달아 찾아와서 헛물켤 일도 없었을 거고.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든, 아예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든.
“비협력관계라 치고, 그럼에도 넷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편의점에서 돈 가방을 분실했다고. 제가 직접 들은 건 한 번뿐입니다만.”
“똑같이 말한 거 맞아요. 어조가 살짝 다르긴 했는데….”
“그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튼, 그 넷이 어떻게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 신경삭이 존재하는 게 아닌 이상,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다. 누군가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듣고, 그대로 실행했기 때문인 거다.
근데 말야. 이 부분에 이해가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다.
분실된 돈 가방을 찾아오라고 각개 명령을 했단 건 알겠다. 근데 이딴 비효율적인 짓을 대체 왜 하는 거냐?
이후 얘기를 마저 들어보니, 수사의 영역이었다.
“수사 과정에 혼선을 빚기 위해서입니다. 이건 짐작입니다만, 제가 직접 보지 못한 셋도 돈 가방을 운반하는 일과 연관성이 있을 인상착의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직장인 샐러맨더, 파인 옷 입은 하피, 허리 꼬부라진 양서류 할머니. 나도 이 셋이 멀쩡한 민간인 손님들인 줄 알고 받았다. 입 열기 전까진.
“제대로 된 직장도 있을 거고, 이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증언해 줄 지인도 있겠죠. 암시장에서는 이런 자들을 운반책으로 씁니다. 정체가 들통나더라도 그 정체 자체가 별 볼 일 없는 자들.”
“그… 모집은 어디서 어떻게 한답니까.”
“인터넷에서, 수고비를 줍니다. 거래는 불법도박 사이트를 이용했을 테고… 하아….”
도중에 말을 멈추고 짙게 한숨을 쉬는 게, 이 경험을 쌓으려고 고생을 꽤나 해온 듯 보인다.
덕분에 잠깐 텀이 생겨서, 나는 나대로 상황을 짧게 머릿속에 정리해봤다.
인터넷 암시장 사이트에서 ‘알리바이가 뚜렷한 민간인 최소 넷’을 단기고용해, 돈 가방을 회수해 오는 일을 시켰다. 돈 가방의 위치는 하필이면 내가 일하는 이 편의점.
그리고 이 넷은, 돈 가방의 생김새나 안에 담긴 금액 등의 정확한 정보까지는 듣지 못하고 찾아온 것 같다. 알았으면 분실물 얘기할 때 설명에 보탰을 테니까.
명령한 놈이 이걸 말 안 한 이유는… 두 가지가 떠오른다.
평범한 편돌이가 봐도 ‘아, 혹시 그 돈 가방인가?’ 하며 꺼낼 정도로 돈 가방처럼 생겨서거나, 아예 설명할 필요 자체를 못 느꼈다거나….
이 경관이 말한 대로, 수사 과정에 혼선을 빚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 근데 말이다, 이것들 모두 대전제가 하나 빠져있다.
“경관님. 한창 생각하시는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아까 제가 욕했던 중년 엘프 분이 말했었잖습니까. ‘아냐, 분명 여기에 있다고 했어―’라고. 경관님께서도 언급하셨고.”
“예. 했습니다.”
“근데 진짜로 없거든요?”
그놈들이 여기서 돈 가방을 찾는 것도 있어야 찾을 수 있는 거잖은가.
근데 없단 말이다. 내 원룸 보증금에 건강보험 다 걸고 없다고. 있지도 않은 걸 도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찾겠다는 거야?
“저희 매장이 2교대로 돌아갑니다. 점장님이랑 저요. 12시간씩 나눠서 주 7일 근무라, 정보 공백이 생길 일이 아예 없어요.”
“그건 근로기준법 위반….”
“경관님께서도 근로기준법 준수랑은 거리가 멀게 살고 계시잖습니까. 저희 합의된 거고, 이 얘기 하려던 것도 아니고, 여튼.”
요점은, 이 매장 안에 뭐가 생기고 사라지거든 내가 모를 수가 없다는 거다. 점장이 다 말해주니까.
허나 찾아오는 놈들은 내가 쥐뿔도 모르는 돈 가방을 여기서 잃어버렸고, 내놓으라고 아우성을 쳐대고 있다. 얘네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
“…흠….”
이 점은 경관도 당장 짚이는 점이 없는지, 얕게 주먹을 쥐고는 자기 머리를 콩콩 두드리기 시작했다. 경광봉이 없을 때의 차선책인가 보다.
한참을 이러다가, 다소 자신 없다는 듯 말을 읊조려왔다.
“…이 편의점의 근무 구조를 전 방금 알았습니다. 덕분에 이 매장 안에 돈 가방이 없다고 확신하시는 이유도 알게 됐고.”
“그거야, 제가 방금 처음 말했으니까….”
“이것 외에도, 사장님께서만 알고 말씀하실 수 있는 정보가 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짐작 가시는 점 없으십니까.”
있으면 내가 진즉에 말을 했겠지요, 나도 답답해 죽겠는데.
방금 정보 공백이니 뭐니 거창하게 말은 했지만, 사실 크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거래 봐야, 이 돈 가방 문제가 일어난 게 오늘 일이라는 정도.
어제는 돈 가방 찾으러 온 놈이 없었으니까. 외에는 점장한테 인수인계 딱 하나 받은 게 전분데, 받은 거래 봐야….
[ 보이네요. 근데 저기 쓰레기 배출하는 곳 아니잖습니까? ] [ 응. 낮에 3시쯤 보니까, 어느 순간 생겨 있더라구. ]…….
이건가?
“사장님?”
“…경관님. 이건 좀 딴 얘기이긴 한데요.”
“상관없습니다.”
“좀 있다가 편의점에서 보자― 라는 만남 약속을 막 잡으셨다 치고, 경관님께서는 이 상황에서 어디 서 있으실 것 같습니까.”
뜬금없는 질문이라 여겨졌는지 살짝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는 대답해 왔다.
“저라면… 편의점 코앞 거리에 서 있을 것 같습니다. 구매할 것 없이 들어가서 서성이기는… 좀….”
말하는 도중 목소리가 줄어들고, 느려진다. 나중에는 아예 말을 멈추고 날 바라보길래, 대꾸해 줬다.
“저랑 똑같으시네. 저도 그거 못 해요. 눈치 보여서.”
“…예. 그리고, 그 앞도 편의점이 아닌 건 아니니까요.”
편의점의 영역이 어디까지냐. 난 이걸 정문 반경 5m 내외로 잡고 있다.
왜냐고? 이 반경의 거리 청소를 안 해놓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편의점은 청소를 제대로 안 하냐면서.
지금이 바로 이 상황 같다. 명령한 놈이 생각하는 편의점과, 명령을 듣는 놈이 생각하는 편의점의 범위가 달라서 오해가 발생한 상황.
물론 돈 가방이 걸린 일이니만큼, 명령한 놈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딴 소릴 하진 않았을 거다. 최소한의 확신이 있었겠지.
자기 딴에는 ‘아무리 봐도 여긴 편의점 맞다’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매장 안은 아닌 어딘가. 이 기준이면 반경 5m까지 갈 것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정문 코앞 1m 거리, 전봇대 밑. 쓰레기봉투.
엘프 경관과 얼굴을 잠깐 마주 본 뒤, 서로 말없이 밖으로 나와 쓰레기봉투 앞에 몸을 숙였다. 묶인 부분을 잡아 들어보고는, 이리저리 돌려보는 경관.
“내용물은 평범한 쓰레기들입니다. 다른 지역의 쓰레기봉투도 아니고요. 허나….”
“마법이 걸려있나 봅니다. 위장 마법 같은 거.”
“예.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 마법인지는 조사과 쪽에 의뢰해야 하지만―”
“경관님. 그거 저 잠깐만 줘 보십쇼.”
어떻게 작동하는 마법인가? 나한텐 상관없다. 관심도 없고.
경관이 고맙게도 쓰레기봉투를 내어주었고, 받아 들며 한 가지만 생각했다. 이 쓰레기봉투 여기에 투척하고 간 놈이 누군진 몰라도, 평생 되는 일 하나 없이 전부 말아먹으면서 살라고.
그러자 봉투에서 푸석 먼지가 피어올랐다. 손으로 휘저어 털어내자, 쓰레기봉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각진 검은색 가방만 남았다.
첩보 영화나 봐왔던 딱 그 생김새다. 다시 경관한테 건네주려 했는데, 경관이 받아 들질 않고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더란다.
이번엔 또 왜 이래. 생각하다, 떠오르는 게 있어 바로 주머니를 뒤졌다.
“경관님, 저 이거 무면허 아닙니다. 자격증 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