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5)
이세계 편돌이-94화(95/331)
94화. 잃어버릴 걸 잃어버려야지 (3)
돈 가방은 창고로 가지고 들어왔다.
편돌이가 카운터 위에 007 가방 올려놓고 만지작거리는 게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돈 가방 찾으러 올 다른 놈들한테는 특히 더.
창고로 들어온 경관이 돈 가방을 이리저리 뒤집어보고는, 잠시 뒤 비밀번호 부근을 손으로 톡톡 건드리며 무덤덤하게 말해왔다.
“다이얼 형식이군요. 여섯 자리. 일련번호는 훼손된 상태고….”
자주 거래되는 모델이라 추적이 어렵다, 여기서는 못 열고 조사과에 의뢰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는, 돈 가방을 머리맡에서 흔들며 분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내용물이 빈틈없이 들어있다는 점 정도. 흔들어 봐도 아무 소리가 나질 않습니다.”
“꽉 들어찼다구요? 지폐로?”
“예. 몇만 원권 지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방 두께가 어림잡아 20cm쯤 된다. 크기를 단순 비교한다면 고등학생 책가방 정도.
더 쉽게 표현하자면 지폐 1,000장씩 10묶음, 1만 장 들어갈 사이즈라는 소리다. 이게 만 원권이면 1억이고, 5만 원권이면 5억.
내가 돈 한 푼 안 쓰고 3년을, 혹은 15년을 굴러야 겨우 만져볼 수 있을 돈이 이 안에 들어있다. 도저히 실감이 안 나서 바라보고 있자니, 경관이 슬쩍 돈 가방을 내밀고는 내게 물었다.
“안쪽이 궁금하신가 봅니다.”
“어… 경관님께서는 어떠십니까.”
“보기는 봐야 합니다. 정확한 금액을 알아야 발생 경위도 가늠할 수 있는지라.”
“저는, 어… 안 볼 수 있으면 안 보고 싶네요.”
물론 호기심은 있다.
돈다발이라잖아. 작으면 1억, 크면 5억. 남자라면 한 번쯤은 돈다발 쌓아놓고 구경하거나, 방석 삼아 깔고 앉아보고 싶다는 생각 하지 않나? 난 그렇던데.
근데 울 엄니가 늘 하시던 말이 있다. 바닥에 떨어진 거 함부로 주워 먹지 말라고.
더럽잖은가. 안에 든 지폐가 어떤 경위로 발생한 돈인지는 몰라도, 깨끗한 돈이 아닐 것만은 확실하다. 깨끗한 돈이면 불법도박 사이트에서 수고비 줘가며 운반하려 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먹었다간 사회적으로 병들 게 뻔한 돈이고, 난 내 민증에 빨간 수술 자국 남기는 일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다. 머리로는 이걸 알지만, 돈 가방 내용물을 본 뒤에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난 못 그런다. 떡고물 떨어지는 건 없냐, 포상금은 없냐면서 한두 마디 툭툭 내뱉어댈 게 뻔해. 그럴 바에 아예 안 보겠다는 생각이고, 적당히 돌려서 말했다.
“보면 이상한 생각 들 거 같아가지고. 제가 더 도와드릴 일 있습니까?”
“…하나, 부탁드릴 게 더 있기는 합니다.”
뜸을 들이는 게 말을 억지로 삼켰다는 느낌이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이 돈 가방이 언제 저곳에 놓였는지를 여쭙고 싶습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오후 3시쯤, 아. CCTV 보시려구요?”
“예.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될 거 없다. 대답하자, 고개 꾸벅이고는 바로 CCTV 컴퓨터를 조작해 시간을 되감기 시작했다. 오후 2시 50분 즈음에서 멈추고는 32배속으로 재생하다….
특정 지점에서 멈추고는 콤마 초 단위로 스크롤을 조작. 미세하게 움직이는 화면 속에, 쓰레기봉투를 든 실루엣 하나가 뒷걸음질을 치거나 걷는 게 찍혀있다.
화질이 아주 좋은 건 아니라 이목구비가 뚜렷이 구별되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톤의 피부에 체구가 작아 뵌다. 이놈 딱 봐도 고블린이구만….
“실례하겠습니다.”
읊조리고는 주머니에서 USB 칩을 꺼내 컴퓨터에 꽂고, 수 초 뒤 뽑아서 챙긴 뒤 CCTV를 원상복구하는 경관. 영상 파일 복사한 건가 보다.
“다 끝나신 거예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협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뭐. 제가 한 것도 별로 없―”
“많습니다.”
한마디 내뱉는 게 단호하기 그지없다. 나는 진짜로 체감이 안 돼서 이러는 건데 말야.
“위장 마법 해제의 경우, 전문가를 수배하는 데에 최소 이틀가량 소요됩니다. 수배 자체도 어렵고요.”
“과정이 어렵다구요?”
“바쁘다고들 하더군요. 실제로 바쁜 것도 사실이고.”
수배 과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담배가 땡기는지, 입가에 손을 대고는 까딱여댄다. 손을 댄 자세 그대로 마저 말을 이어왔다.
“…돈 가방을 쓰레기봉투로 위장해 대로변에 방치했다는 발상도, 저는 신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해한다. 사람들이 길가면서 쓰레기봉투 유심히 쳐다보는 경우가 거의 없잖은가. 발견한 지금이야 ‘이건 굶은 길고양이들 아니면 절대 눈치 못 챈다’ 할 수 있는 거지, 이것도 결과론이고….
나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반신반의하기도 했고. 상황이 우연히 잘 맞아떨어졌단 소리다. 내 사고회로가 신제품이어서가 아니라.
“그래도. 덕분입니다.”
말하는 걸 보면, 내가 뭔 말을 해도 죄다 겸손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아예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근데요, 경관님. 제가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게 두 가지 있는데요.”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첫 번째는, 저 전봇대 밑이 안전한 장소가 절대로 아니라는 점.
쓰레기 수거하는 장소가 따로 있기는 해도, 누군가 치워버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다. 직업정신 투철한 환경미화원이라거나, 자원봉사자라거나.
나도 점장이 치우지 말라고 해서 안 치운 거지, 말 없었으면 새벽에 쓰레기 버릴 때 겸사겸사 같이 버려버렸을 거다. 봉투가 타의에 의해 치워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거나, 아니면….
“위험부담을 감수해서라도 이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단 말씀이시군요.”
“망상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다른 게.”
두 번째는, 이건 쓰레기봉투였다는 점이다. 돈 가방이 아니라.
그럼 지령도 다르게 내리는 게 맞지 않나? 분실물 돈 가방을 찾아오라 할 게 아니라, 편의점 가서 쓰레기봉투 있으면 좀 보여달라고 했었어야지.
이것도 이유를 떠올리려면 떠올릴 수는 있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건, 편돌이가 ‘쓰레기봉투요? 몇 L짜리 필요하세요?’라고 알아들을 경우.
내 경우엔 ‘저흰 쓰레기봉투 안 파니까 다른 매장 가보세요.’라고 대답했을 거고, 가방 찾으러 온 양반들은 ‘그 쓰레기봉투가 아니라, 그러니까―’ 하면서 말 더듬었을 거고….
쓰레기 버린 봉투를 보여달라는 부탁까지 해왔을 텐데, 이 시점이면 퇴직 직전의 만사 귀찮은 편돌이가 아니고서야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이걸 피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이유에서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아, 짐작 가는 게 있으세요?”
“그것보다는, ‘실수로 복지카드를 영수증과 같이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찾아봐도 되겠냐.’ 이 상황이라면 크게 의심받지는 않을 테니까요.”
꽤나 그럴싸한 변명이다. 나는 인생 살며 카드 버려본 적이 없어서 미처 생각을 못 했….
왜 하필 복지카드야. 설마?
“경관님, 혹시 비슷한 경험 있으십니까?”
“결국 못 찾아서, 시말서를 썼습니다.”
잠깐 엘프 경관이 쓰레기봉투를 헤집으며 자기 공무원 카드를 찾는 광경을 상상해 봤으나, 잘 안됐다. 적당히 위로해 주고 말았다.
“뭐,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죠.”
“예. 그리고, 개인적으로 짐작 가는 것도 있지만….”
이것도 설명을 해주겠거니 하며 기다렸는데,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리기만 할 뿐 말이 없더라. 이러다, 창고 문에 난 창문 밖을 슬쩍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선을 따라 창밖을 보니, 떡대 오크 하나가 문 앞에 서성이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오크는 멀쩡한 손님이겠거니― 하며 경관과 같이 로비로 나왔는데, 오크가 경관과 눈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피하고는 잰걸음으로 도망가더라고.
근무교대하고 손님 딱 다섯 받았는데, 그 손님들이 죄다 손놈이다. 오크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경관이 툭 던지듯 물었다.
“많이 불편하시겠군요.”
“예… 그러게 말입니다.”
저놈들이 찾는 돈 가방은 이미 회수했지만, 저놈들은 그걸 모른다. 오늘 하루, 어쩌면 내일까지도 뻔질나게 찾아오겠지.
더 걱정되는 건, 이제부터 찾아올 놈들한테는 내가 정말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 가방? 그거 경찰이 가져갔는데요? 말해버리면 나야 편해지겠지만―
아니지. 이걸 말한 다음엔 돈 가방 찾는 놈들이 아니라, 돈 가방 가져간 경찰을 찾는 놈들이 찾아올 거 아냐. 의뢰한 놈한테 보고할 테니까. 요 며칠간 얼굴에 철판이라도 좀 깔아야 할 것 같은데….
“흠.”
생각하는 와중, 경관이 작게 숨을 내쉬고는 대뜸 밖으로 나가버렸다. 1분 후, 경찰차 한 대가 스윽 나타나서는 코앞 갓길에 정차.
경찰차 운전석에서 엘프 경관이 내린 뒤, 바로 들어와서는 주차된 경찰차를 가리키며 말해왔다.
“오늘 밤, 저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야 그래 주면 감사한데, 경관님은요?”
“괜찮습니다. 긴급자동차의 경우, 교통 단속 등 목적에 한하여 주차 단속 구역에 주차하는 게 허용되기 때문에….”
앞유리창에 ‘교통 단속 중’이라 붙여놓으면 찾아올 놈들이 의심하진 않을 거라는 둥, 교통 단속 목적이어도 경찰이 코앞에 있는데 돈 가방을 찾으러 오지는 않지 않겠냐는 둥.
이런 얘기를 해왔는데, 난 이게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 좀 주무셔야죠. 어제도 잠 제대로 못 주무셨을 거 아닙니까.”
경찰과 민간인 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걱정이 돼서 이런다.
이 엘프 머리카락의 태반이 검은색이고, 다크서클은 화장품이 아니라 표백제를 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진하다.
막말로, 머리에 푹신한 거 닿는 순간 그 자리에서 폭삭 곯아떨어져 버릴 것 같다. 이번에 돈 가방 찾은 게 어떻게 보면 성과인데, 포상으로 잠 좀 자게 해달라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이 일은 딴 경관한테 인계하든지 하고 잠부터 자라. 말하려 했으나,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경관이 칼같이 고개를 저었다.
“협조해 주셨고,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해야 할 일이고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내가 걱정하는 게 싫으면 머리 염색이라도 좀 해라, 입을 열려다 말았다. 눈 게슴츠레 뜬 게, 더 말했다간 공무집행 방해로 연행해 버리겠다는 얼굴이야.
더 말해봐야 의미 없겠다 싶어 말을 바꿨다.
“그럼… 내친김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예, 말씀하십시오.”
“담배 생각나면 그냥 저 앞에서 피세요. 멀리 가지 마시고.”
아까 담배 피울 여유조차 없어 보였던 게 떠올라서였다. 이 경관 성격상, 담배가 땡겨도 지금은 자리 비울 상황이 아니라면서 참을 게 뻔해.
나도 흡연자였던지라 담배 피우고 싶어도 못 피울 때의 기분 잘 안다. 머릿속에 담배 생각밖에 안 나, 이때는. 지하철 타다가도 어느 역 앞이 사람들 덜 다닐지를 고민하게 된다든가.
“아무래도 그건 좀….”
“제가 협조해 드린 게 큰 도움이 됐다면서요. 안 들어주실 겁니까? 큰 도움 드렸는데?”
졸지에 흡연을 권장하는 모양새가 되긴 했지만, 난 성인 됐으면 금연 정도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엘프는 나보다 나이도 많을 거 아냐?
더해서 내가 이 경관 입장이었으면, 끊고 싶어도 못 끊었을 것 같다. 스트레스 태우려면 땔감도 필요한 거니까.
“뭐 꼭 그러시라는 건 아니고, 편하신 대로 하셔요. 저는 신경 안 쓸 테니까.”
새어 들어오는 담배 냄새야 뭐, 잠깐 환기시키면 될 일이고. 약간 순화해서 말해주자, 경관도 마냥 거절하기만은 그랬는지 시선을 슬쩍 피하고는 대답해 왔다.
“알겠습니다.”
“옙. 수고하십쇼.”
서로 고개 꾸벅인 뒤, 경관은 다시 경찰차로 돌아갔다. 이걸로 얘기 듣거나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고, 다음은….
상사한테 보고해야지. 바로 문자를 보낸 뒤 기다렸는데, 30분이 지나도 답장이 없었다.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안 됐다.
‘통화 중이어서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음성사서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