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6)
이세계 편돌이-95화(96/331)
95화. 잃어버릴 걸 잃어버려야지 (4)
20분 간격으로 두어 번 전화를 걸어봤는데, 계속 통화 중이더라.
나중에 알아서 연락하겠거니― 하고 스마트폰 내려놓고, 이것저것 생각하며 새벽을 지새웠다. 오전 6시 해 뜰 즈음까지 찾아온 손님이 총 여덟 명.
“막걸리 많냐?”
“저녁엔 많았는데, 손님들께서 죄다 드셔서 지금은 거의 없어요.”
“에이.”
“아깝네.”
“남은 거 줘, 그럼.”
그중 일곱은 밖의 도로공사를 끝낸 드워프들이었고….
“돌아가기 전, 몇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나머지 한 명이 엘프 경관이었다. 차에서 대기하는 내내 눈 한번 안 붙였는지, 그나마 남아있던 금색 머리카락들마저 반쯤 변색된 상태였다.
말을 붙였다간 이 경관 근무 시간만 늘리겠단 생각이 들어, 가능한 한 고개만 끄덕여 줬다. 우선, 밤중에 찾아온 거동 수상한 행인이 11명.
“마지막 한 명이 오전 5시에 다녀갔고 이후로는 찾아오는 자가 없었으니, 오늘은 이걸로 끝이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돈 가방 건은 돌아가는 대로 바로 수사 착수할 예정이고, 시작하는 대로 바로 찾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란다. 이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솔직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경찰들이 수사에 착수한다 쳐도, 돈 가방 찾으러 올 놈이나 찾으라고 시킨 놈은 그걸 알 수가 없잖은가?
돈 가방이 경찰서에 회수되었단 것도 모를 테니, 계속 편의점 와서 돈 가방 어디 있냐 헛물이나 켜대겠지. 오늘 밤이야 이 경관이 불침번을 서줬다지만, 내일이고 모레고 그럴 수도 없을 테고―
“뭘 걱정하시는지는 압니다만, 아마… 더 찾아오진 않을 겁니다.”
생각하는 도중, 경관이 바로 덧붙여왔다.
“곧 알아낼 테니까요. 그쪽도.”
“그쪽이라면, 암시장 놈들 말씀이십니까?”
“예. 그놈들.”
대답하는 게 탐탁지 않다는 뉘앙스가 가득하다.
더 말하고 싶다는 기색도 아니어서 나도 더 묻지는 않고 머릿속에 기억만 해뒀다. 그놈들도 경찰이 수사에 들어간다는 걸 알 수 있고, 따라서 더 찾아오지도 않는다.
“수사가 시작되는 대로 바로 보고하러 찾아올 듯하고… 그 외에 하나 더, 개인적으로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쇼.”
“반마법 쪽 일은 많이 바쁘십니까?”
많이 바쁘냐. 이걸 내게 왜 묻는지를 잠깐 생각해 봤다.
밤에 경관이 말하길, 반마법 쪽 전문가들이 대체로 바쁘다고 했었다. 수배도 어렵다고 했었고, 수배 과정도 무의식적으로 담배가 땡기게 될 만큼 어려운 걸로 보이고.
헌데 때마침, 전문가 한 놈이 나타난 거다. 편돌이 일이랑 병행하는 걸 보면 아주 바쁘지는 않은 것 같고, 일 처리도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깔끔한 편이니까.
이런 연유에서 해온 질문이 아닐까 싶다. 혹시라도 경찰 쪽에서 협조 요청을 할 경우, 받을 의향이 있냐. 에둘러 질문해온 만큼, 나도 에둘러 대답하기로 했다.
“바쁘지는 않고, 어떤 일 할지 고민 중입니다. 할당량 때문에.”
“할당량?”
“아. 자격증 유지하고 싶으면 매달 두 건씩 나랏일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마법청 일이든, 소방청 일이든….”
경찰청 일이든. 이 부분은 일부러 말 안 했다. 알아서 알아듣겠지.
“뭘 하기는 해야 해서, 건강 안 해칠 일들 골라다가 해볼 생각이에요.”
쉽게 말해, 협조하겠다는 소리다. 경찰 일도 어쨌든 나랏일이잖아?
이쪽 일들은 어디까지나 부업이고, 가능한 한 편하게 임하고 싶다. 몸도 마음도 편한 일들만 골라서 할 수 있으면 베스트지만, 세상일이 늘 잘 풀리는 게 아니다. 내 삶이 특히 그랬고.
미루고 미루다 불편한 일 하게 될 바에, 아예 마음이라도 편한 일 잡아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 경관이랑 같이 일한다거나….
배려는 잘해줄 것 같아서다. 많이 바쁘냐― 라고 돌려 말해온 것도, 내 귀에는 편의를 최대한 봐주겠다는 의도에서 꺼낸 질문처럼 들렸거든.
건강 얘기를 꺼낸 건 내가 거는 최소조건이다. 마법을 풀어달라 하면 풀어주겠지만, 나한테 강력범 머리를 같이 뽀개러 가자는 식의 협조는 바라지 말라는 것. 난 응애라서 그런 거 못 한다.
“그러십니까.”
다른 의문 없이 바로 수긍하는 게, 이 경관도 내 말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다. 경광봉으로 자기 머리를 두드리는 일 없이, 바로 고개를 꾸벅여왔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살펴 가세요.”
“사장님께서도, 좋은 하루 되시길.”
옅게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는 나갔고, 잠시 뒤 경찰차가 출발했다. 이때의 시각이 오전 6시 20분경.
이후 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은 늘 해왔던 대로 주말 오전 손님들 받고. 할 일 좀 하다가….
근무교대 10분 전에 점장이 왔다. 쇼윈도 너머 끝자락에서부터 눈가를 계속 비비적대며 들어오는 게 무진장 졸려 뵌다.
“안녕하십니까, 점장님.”
“으응… 안녕. 좋은 아침.”
“뭐 잠이라도 설치셨어요?”
“설친 건 아니구, 늦게 잤거든. 윤하랑 통화하느라.”
밤에 점장이 통화하던 게 윤하 누나였나보다.
진열대에서 생수 하나를 가져와 벌컥벌컥 마시고는 말해오는 게, 윤하 누나가 요 며칠 야근하느라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누나 아직도 잔업한대요? 5월에는 일도 한가하다고 지 입으로 그러더니.”
“잔업은 아니구, 사무소 직원 중 하나가 입원해서 그 직원 일 대신 하구 있대. 오늘은 당직.”
“하이고. 누나는 그 일 중독 기질 좀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그 얘기 했지! 죄다 흘려들었지만.”
이러고는 남은 물 반병을 마저 들이켠 뒤, 냉수에 머리가 찡한 듯 부르르 떠는 점장. 이후엔 잠이 좀 가셨는지, 한결 또랑또랑해진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아, 찬아. 어제 돈 가방은 어떻게 됐어? 잘 찾아가셨대?”
“잘 찾아가셨죠. 경관분께서.”
“? 주인분이 아니라?”
바로 인수인계했다. 어제 돈 가방이 분실물이 아니라, 암시장서 돈 몰래 운반하려고 꼼수를 쓴 거였다. 그 중간 지점이 재수 없게도 우리 편의점이 된 거고.
돈 가방 찾으려고 온 손놈들 여럿 받다가, 돈 가방 찾아서 경관한테 신고하고 끝냈다. 나중에 찾아올 거라더라. 이 뒤에 덧붙였다.
“어제 쓰레기봉투 얘기하셨잖습니까. 그게 위장 마법 걸려있는 돈 가방이더라고요.”
여기까지 말한 직후, 조용히 듣고 있던 점장이 질문해 왔다.
“위장 마법은 찬이가 도와드린 거구?”
“네.”
“고생했어. 찬이가 직원이니까 엄청 편하네.”
내게 해오는 칭찬과는 별개로, 점장 목소리가 심통이 가득 난 채였다.
표정은 좀 더 심각했는데, 얼굴 구석구석에 불만이 꽉꽉 들어차 있는 상태다. 눈썹은 있는 힘껏 찌푸린 채고, 입은 삐죽 튀어나와 있고.
딱 봐도 점장이 화가 엄청 많이 난 것 같다. 화를 잘 못 내는 사람이라, 표현하는 것도 여고생이 투정 부리는 수준으로 보일 뿐이지.
부하직원으로서 장단을 맞춰야 할 타이밍 같다.
“실례지만, 지금 불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점장님.”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화났어.”
“그러십니까.”
“찬이도 알겠지만, 내 편의점은 함부로 불법 금융거래 해도 되는 곳이 아냐.”
“맞죠.”
“소중한 곳이란 말야. 내 가게구, 찬이 직장이구.”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지, 깡통을 차듯 발치의 타일을 툭툭 걷어차 댄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범죄에 휘말린 게 아니니 그나마 다행 아니냐는 생각이지만….
이건 내가 소시민이어서 이런 거고, 점장은 여러 일 해온 마법사인 만큼 나랑 관점이 다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암시장 관련해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고.
“경관님께서 돈 가방은 어떻게 하신대?”
“돌아가는 대로 수사 시작하신대요. 진척 있거든 직접 찾아오신다고도 했고.”
“혹시 언제 오시는지도 얘기 들었어?”
“그건 못 들었는데… 최대한 빨리 찾아오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사 시작하는 대로 찾아온다 했으니까. 말하자, 팔짱을 낀 채로 곰곰이 생각하던 점장이 중얼거렸다.
“3일… 걸리시겠네. 길면 4일.”
“그게 견적이 나와요?”
“옛날에 경찰분들 일 도와드린 적이 몇 번 있거든.”
점장이 안 해본 일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몇 달 더 있으면, 내가 옛날에 전투기 만드는 것도 도와드렸어― 같은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것 같아.
“그때 나도 같이 있을게. 얘기도 직접 듣고 싶구.”
“그러셔요. 근데 점장님. 경찰 일 해보신 거면, 제 얘기도 잠깐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들어줄 수 있지. 어떤 거?”
“경찰분들 일을 한번 받아서 해볼 생각이라.”
경관과 나눴던 대화를 언급하자, 점장 반응이 꽤 긍정적이었다.
“위험한 일 하는 것만 아니면, 난 찬성.”
“찬성하시는 이유도 따로 여쭤볼 수 있을까요?”
“내 경우엔, 좋은 경험이었거든. 경찰서에서 형사분들이랑 밥도 먹구, 나쁜 분들도 만나구 그랬어.”
여러 경험을 쌓아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었고, 몇 개월가량은 일하면서 별별 경험을 다 했다고. 듣고 나서는 형사랑 밥 먹고 범죄자 면담하는 게 인생 경험에 어떤 도움이 되겠냐 싶었으나….
이것들 외에도 여러 일이 있었는지 말하는 도중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어 버리는 점장. 내버려 두자 잠시 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말을 맺었다.
“잠복 수사 도와드리다가 힘들어서 그만뒀지만 말야.”
“도중에 그만두는 건 자유롭게 그만두신 거고요.”
“응. 계약을 했던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조 관계였으니까. 찬이도 똑같이 하면 되지 않을까?”
마음대로 발 뺄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내게 좋은 경험이 될지는 잘 모르겠고, 할당량 채우려고 하는 일에 굳이 뭘 바랄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지만―
아니지. 굳이 따진다면 하나 있긴 하다. 엘프 경관.
그 경관이 멀쩡한 얼굴로 찾아오는 걸 내가 한 번도 못 봤다. 이번에 일 돕는 걸로 그 경관 업무량이 줄어든다면, 다크서클도 그만큼 줄어들 테고….
그건 그것대로 보람은 있을 것 같다. 적당히 생각을 마친 뒤, 점장에게 대답했다.
“그럼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점장님.”
“응. 슬슬 들어가구. 교대 시간 다 됐다.”
* * *
자고 다음 날 일어나 매장에 오니, 전봇대 앞에 이상한 게 또 하나 생겨있었다.
“찬이 잘 잤어?”
“잘 잤습니다, 점장님. 근데 오자마자 죄송한데요.”
“응.”
“저 밖에 켄타우로스 말입니다.”
머리부터 앞다리 끝까지 청테이프로 칭칭 감겨 전봇대에 묶인 켄타우로스를 바라보며 물어봤다.
“저분은 저기 왜 묶여계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