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7)
이세계 편돌이-96화(97/331)
96화. 장사가 안돼요, 자동차가 너무 커서 (1)
간단한 상황 설명. 켄타우로스가 전봇대에 청테이프로 묶여있다.
정확히는 머리끝에서부터 앞다리 상반신까지. 하반신까지 다 묶어버리려면 말 몸통과 뒷다리 부분을 전봇대에 꽁꽁 말아야 하는데, 말의 신체 구조상 그게 불가능하잖은가.
그래도 묶을 수 있는 부분은 아주 꽁꽁 묶어놔서, 콧구멍 두 개를 제외하면 맨살이 드러난 부분이 없다. 전봇대에 묶인 것만 아니었으면 반신 깁스한 줄 알았을 거다.
저 양반은 대체 왜 저러고 있는 거냐. 묻자, 점장이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아까 친구로 보이는 분들이랑 싸우시다가 저렇게 되셨어.”
“뭐 때문에 싸웠대요?”
“저분이 엄청 놀리시더라구. 너희 팀은 팀의 탈을 쓴 조기축구 동호회라면서, 막….”
축구 때문이었고, 이후에 점장이 내용을 마저 보충해 줬다. 오늘 이 세상 축구 경기 중에서 나름 중요한 라이벌 매치가 있다.
이 경기 때문에 오만 놈들이 다 축구 보러 술집에 갔고, 온 힘을 다해 술집 맥주통을 비워대고들 있다는 게 점장의 설명. 더해서 방금 전이 하프타임이었다고.
“난 축구 안 봐서 잘은 모르지만 말야.”
“그럼 전반전 끝났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한창 경기 중이었으면 저분도 안 묶이셨을 거 같아갖구. 축구 봐야 되잖아?”
“듣고 보니 그렇네.”
이러는 도중에도 바깥 먹자골목 쪽에서 간간이 함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골목까지 거리가 제법 되는데도 이렇게 크게 들리는 걸 보면, 막 역전골이라도 들어간 모양이다.
“궁금하면 경기 보면서 근무해두 되는데.”
“딱히요? 저도 축구 안 봐서.”
고블린이나 드워프가 축구에서 어떤 포지션을 맡고 있을지가 살짝 의문이긴 하지만….
손님 받아야지 축구는 뭔 놈의 축구야. 각설하고, 점장에게 인수인계 사항을 물었다.
“특별한 건 없어, 찬아. 밖에 저분 빼고.”
“돈 가방 어딨냐며 따지러 온 놈들은 없던 거고요.”
“응.”
“다행입니다. 그럼 저 밖에 분 테이프는 지금 뗄까요?”
그러자 점장이 어리둥절해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굳이? 경기 끝나면 친구분들이 알아서 떼주시지 않을까?”
“손님분들이 무서워하실 거 같아서요. 당장 저도 무섭고.”
전봇대에 켄타우로스가 묶여있는 게 흔한 상황은 아니잖은가. 만약 이게 나 살던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면, 여기 사람 묶여있다고 바로 신고부터 했을 거다.
“에이, 설마. 30분 동안 손님분들도 거의 안 오셨어. 축구 보시느라.”
“밖에 저분 때문에 안 오신 건 아니고요?”
여기에 반박하려던 점장이 말을 멈추고는, 잠시 뒤엔 퍼뜩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설마 그래서 안 오신 건가?”
“가위 어디 있습니까, 점장님.”
장사 더 공치기 전에 얼른 보내야겠다. 점장이 건네준 가위를 받아 켄타우로스 앞으로 가자, 이 양반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우물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읍, 으읍.”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입 주변의 테이프부터 떼어줬다. 떼어낸 테이프의 접착면을 확인해 보니 털이 그득하다. 내가 지금 왁싱을 하는 거야, 뭐야….
입이 자유로워진 켄타우로스가 내게 바로 말을 건네왔다.
“지금 어느 팀이 이기고 있어요?”
“저도 몰라요. 축구 안 봐갖고.”
테이프를 떼 내는 도중 알게 된 사실. 이 켄타우로스도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 진상짓 하기 전에 빨리 내보내겠다는 심정으로 눈가 쪽의 테이프도 자르고, 왼쪽 팔 부근도 자르고….
오른쪽 팔 부근도 마저 잘라내자, 자기 힘으로 몸의 테이프를 죄다 뜯어낸 뒤 시속 40km/h는 족히 될 속도로 달려가 버렸다. 저거 음주운전 아냐?
점장과 나란히 켄타우로스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다 물었다.
“이제 들어가셔요, 점장님.”
“응. 아, 인수인계는 아닌데, 찬이한테 전달할 말 있어.”
“전달할 말요? 누가?”
“윤하가 자기 톡에 답장 좀 해달라 하더라구. 오늘 당직이라 외로울 예정이래.”
“알겠슴다.”
이렇게 점장도 퇴근하고 혼자 남게 됐는데, 외로울 예정은 또 뭔 소린가 싶다. 누나가 나이 서른에 벌써 갱년기가 찾아오기라도 한 것인가?
바로 톡을 확인했다. 하루 단위로 톡이 딱 4개 올라와 있었고, 3일 전 톡이 ‘야근한다’, 2일 전 톡이 ‘야근한다’, 어젯밤에 온 톡이 ‘야근ㅋ’.
오늘 오후 9시경 도착한 톡이 이러했다.
[ 이찬, 난 왜 매일 야근만 하냐 ] [ 낸들 알아? ] [ 와, 이제야 답장을 하네. 편의점엔 손님 많아? ]바로 답장해온 걸 보면 외롭기만 한 거지, 바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편의점에 손님이 많냐 묻는다면, 지금은 손님이고 행인이고 없지만….
[ 지금은 한가한데, 좀 있다가 몰릴 것 같음 ]곧 축구 경기 끝날 테니 말이다. 이제 후반전 시작했을 테니까.
지금부터 딱 50분 지나고 나면 술집 TV 보던 양반들이 죄다 뛰쳐나올 텐데, 거리가 엉망이 되지 않겠는가. 자기 팀이 이긴 양반들은 이긴 대로, 팀이 진 양반들은 진 대로 난동을 부릴 거고.
먹자골목에서 난동 부리는 거야 난 신경 안 쓴다. 이 양반들이 술에 꼴은 채로 2차, 3차 하겠답시고 찾아와서는 소주 사갈 게 걱정돼서 그렇지….
[ 자기 팀 지는 게 난동까지 부릴 일이야? 난 축구 안 봐서 모르겠네 ] [ 나도 마찬가지임 ]난 특정 축구팀을 응원해 본 경험이 없고, 내 세상서 한일전 축구 경기 보며 치킨을 뜯어본 적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치킨집에서 치킨을 튀기는 쪽이었지. 돈 벌려고.
때문에 직접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는데, 불과 20분 전만 해도 바깥 전봇대에 켄타우로스가 묶여있었다. 전반전 결과로 친구들 놀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이세계에선 축구 경기가 그만큼 중대 사항인 거겠지. 아니면 술집 TV에 과몰입 마법이 걸려있어서든, 뭐든….
[ 나도 할 거 없는데 축구나 한번 볼까 ] [ 누나 당직 선다며, 축구 보면 소장이 뭐라 안 해? ] [ 나 혼자밖에 없는데 뭐. 비상전화만 잘 받으면 돼 ] [ 일요일 밤 10시 반에 비상전화 올 일이 뭐가 있길래 ] [ 게이트 열리면 애들 깨워야 되니까 ]이러고는 톡으로 마저 덧붙이길, 이 게이트 자체로는 크게 위험한 게 없단다.
내부에 갈기 활활 타는 지옥마나 손바닥만 한 이빨 가진 늑대가 싸돌아다니기는 해도,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고. 문제는 게이트를 방치했을 때다.
[ 게이트가 길면 며칠, 짧으면 몇 시간 정도 열려있는데, 안에 코어라는 게 있단 말야? 이 코어가 제거가 안 된 채로 닫히면, 음…. ] [ 닫히면 뭐 ] [ 지진 일어남 ]메시지를 확인한 뒤, 눈 두 번 비비고 되물었다.
[ 지진이 일어난다고? ] [ 아니면 화재든, 태풍이든, 뭐든 ]우리가 자연재해라 부르는 일들이 일어나고, 이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오늘도 헌터들이 불철주야 게이트를 닫아대고 있다는 소리였다. 열린 게이트가 언제 닫힐지를 모르니 당직까지 서는 거고.
“흠….”
여기에 대한 내 소감은, 전혀 실감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달 동안 지진이나 태풍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게 있었나? 없었는데?
더해서, 점장이나 손님들에게 게이트에 대한 언급을 들은 기억도 없다. 이게 위험한 거였으면 누구라도 한 번은 언급을 했을 것 같은데 말야….
[ 자주 있는 일은 아닌가 보네 ] [ 아무래도? 지금은 이것저것 잘돼 있어서 ]옛날에는 시스템이 갖춰진 게 없어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이었으나, 최근에는 거의 없는 일이 되었다고. 인력 충원도 제법 잘 되어 있고, 헌터 사무소도 많고.
지진이 발생하는 것도, 인적 드문 시골에서 연 단위로 한 번 일어날까 말까인 정도란다. 듣고 나니, 점장이 구태여 말을 안 한 이유도 짐작이 됐다. 얘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드문 일이니까.
[ 요새는 좀 빡세긴 하지만 ] [ 5월엔 게이트 잘 안 열린다며, 누나 ] [ 맞아. 맞는데, 내가 이번 주에만 두 건을 뛰었거든? ]누나 얼굴 마지막으로 본 게 닷새 전이었으니, 5일 동안 게이트 두 곳을 닫았다는 얘기다. 요 며칠 톡 한 줄씩만 달랑 보낸 이유가 이거인 듯하다.
[ 심지어 죄다 도심지 쪽이고. 위험등급 낮은 곳들인 게 위안이라면 위안인데 ] [ 그게 등급으로 또 나뉘는 거임? ] [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느낌 쎄하니까 너도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건 좋은데,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조심을 하든 말든 하지. 이걸 톡에 적어 물어보려 했는데, 누나가 바로 대답을 안 해줬다.
잠시 뒤, 톡 두 줄.
알았다고 했다. 이게 당장 닥칠 일은 아닐 테니 급할 것도 없고, 나도 곧 있으면 올 손님들 받아야….
“뭐야?”
정문 밖이 묘하게 어둡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검은색 봉고차 두 대가 갓길에 차를 대놓은 채였다. 두 대를 합친 길이가 딱 쇼윈도 끝에서 끝까지.
정문 열릴 때 벨소리 들릴 것만 생각했지, 주차까지는 미처 신경 못 썼다. 아예 밖으로 나와서 확인해보니 갓길에 주차된 게 딱 이 봉고차 두 대뿐이다.
차 댈 곳이 근처 유료주차장 한 군데뿐이니 돈 아끼겠다고 근처에 아무렇게나 대고들 술 마시러 간 듯싶다. 이것 자체는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밖에서 이 편의점을 볼 수가 없다는 것.
이러면 매출이 떨어진다. 건너편 도보에서 편의점 찾는 양반들이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고, 차 끌고 잠깐 담배 사려던 양반이 주차할 곳 없어서 그냥 가버릴 수도 있고.
내 신분이 알바생이었으면 그러려니― 하고 말았겠으나, 이젠 정직원이잖은가. 점장이 명목상이긴 해도 매니저 직함 달아줬으니 그 값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여 차주 연락처를 확인할 양으로 앞 유리 안쪽을 확인해봤는데, 연락처가 없다. 뒤쪽 봉고차도 똑같이 없고. 넓고 넓은 갓길에서 왜 하필이면 우리 편의점이고, 코앞이야?
“한번 해보자는 거야, 뭐야.”
코앞 전봇대에 CCTV 달려있고, 용도가 불법주차 단속용. 이대로 신고만 하면 경찰이 와서 주차 딱지 붙여주기는 할 거다. 그러고는 돌아갈 거고.
이럼 본말전도다. 난 이 차를 치우고 싶은 거지, 차주와 쌈박질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연락 한 통 없이 냅다 렉카를 부를 수도 없고….
“혹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어이 씨, 깜짝이야.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중년 신사복을 입은 은발 어르신께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인기척이 전혀 없었던 탓에 얼굴을 보고 나서도 누군지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알아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울프 어르신, 오랜만에 뵙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