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98)
이세계 편돌이-97화(98/331)
97화. 장사가 안돼요, 자동차가 너무 커서 (2)
이 대리기사 늑대인간 어르신께서 찾아오신 게 오늘로 세 번째다. 첫 번째가 요 앞 도로에서 3중 추돌 사고 났을 때, 두 번째가 실기시험 직전에 조언 주셨을 때.
매 방문마다 충격과 공포를 한 아름씩 안겨주시는 분이셨고, 그 덕분에 못 잊어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몇 개 된다. 가령, 주로 피우시는 담배가 뭐인지라든가.
“원 블루 한 갑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있슴다.”
미리 그림 멀쩡한 걸로 하나 꺼내놨고, 거스름돈도 준비해놨다. 가격에 맞춰 거스름돈도 미리 꺼내 건네드리니, 난감하다는 듯 모자를 매만지시더라.
“배려는 감사합니다만, 정말로 아무거나 주셔도 괜찮습니다. 사장님.”
“다음부턴 그렇게 할게요. 여튼, 잘 지냈냐고 여쭤보셨잖습니까.”
그럭저럭 잘 지냈고, 증명할 증거품도 있다. 계산대 밑에서 자격증 수첩을 꺼내 올려놓자, 바라보는 어르신 눈이 살짝 커졌다.
“오오, 합격하셨나 봅니다.”
“예. 그때 조언 주신 대로 어떻게 하다 보니 됐어요.”
계기가 필요하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걸 실제 겪어본 경험을 섞어가며 조언해 주셨었다. 이 조언을 들은 덕분에 내 몸뚱어리 다루는 법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고―
용 꼬마도 도와줄 수 있었고, 실기 치를 때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르신 건강 챙기시라고 홍삼이라도 하나 달여드리고 싶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사장님. 제가 쓴 걸 잘 못 먹어서.”
사양하셨다. 홍삼이 선물이랍시고 대뜸 건네기엔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금액이긴 하다.
“그럼 커피 한잔이라도 사게 해주세요. 저도 마침 목마른데, 혼자 마시긴 좀 그래서.”
“그러시다면야.”
이 정도는 괜찮으신가 보다. 어르신 드시는 커피가 뭔지까지는 아직 몰라서, 고르는 건 각자 고르기로 했다. 난 늘 먹던 아메리카노.
잠시 뒤 어르신께서 가져오신 게, 핫초코였다. 어….
“이게 맛있더군요, 사장님.”
쓴 거 못 먹는단 말이 둘러대려고 한 말이 아니었어?
“얼음컵은 제가 사겠습니다.”
“…어. 아뇨, 같이 안 찍으면 100원 할인이 안 돼서. 저 주세요.”
도중에 정신 차렸다. 모자 쓴 은발 노신사가 핫초코 먹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 계산하고 얼음컵에 핫초코도 마저 담아서 드리자, 빨대로 순식간에 절반을 들이켜셨다.
이러고는, 정문 바깥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씀하시더라.
“처음엔 길을 잘못 든 줄 알았습니다, 사장님.”
“예?”
“이 편의점이 보이질 않아서 말입니다.”
밖의 봉고차 얘기하시는 건가 보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보자마자 막막한 기분이 확 몰려온다. 저거 진짜 어떻게 하냐?
“많이 불편하시겠습니다.”
“아무래도요.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거 생각해 보면, 다른 손님들도 똑같이 못 보고 지나칠 거 같은데.”
“신고는 하셨습니까?”
“안 하려고요. 경찰 부른다고 경찰이 견인까지 해줄 것 같지도 않고….”
경찰이 할 수 있는 거래 봐야 딱지 붙이고 차주랑 대신 연락해주는 정도일 텐데, 경찰도 어떻게 못 한다 이건. 차주 연락처가 없는데 어떻게 연락을 해?
행여라도 엘프 경관이 출동해 준다면 신경을 좀 써주겠지만, 이 동네 경찰이 그 경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 거잖은가. 나한테 기다리라는 말 하고 가는 게 고작이겠지. 그리고.
“딱지 붙으면 지한테 시비 건다고 생각할 게 뻔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축구 경기가 한창이라 돌아다니는 행인도 없고, 반경 20m 내에 술집도 하나 없다. 불 켜진 상가래 봐야 이 편의점 딱 한 군데뿐.
이 상황에서 자기 차에 딱지 붙으면 차주가 누굴 의심하겠냐고. 매장 안으로 쳐들어와서는 ‘야, 니가 경찰에 신고했냐?’ 하면서 따져대겠지.
난 진상 받는 게 싫고, 멀쩡한 놈을 굳이 진상으로 만들어 받는 건 더 싫… 아니지. 불 켜진 편의점 앞에 봉고차 파킹하고 술 마시러 가는 게 멀쩡한 놈이 할 발상은 아니다.
“어째 생각할수록 열받네. 그냥 신고하고 볼까요?”
“아뇨. 사장님 말씀대로, 구태여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뭐, 그냥 해본 말이긴 해요.”
신고해 봐야 뭣 하겠는가. 잠깐 기분 풀렸다가, 찾아올 놈이랑 말씨름한 뒤에 두 배로 다운되겠지.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차주 놈들이 와서 차 빼주는 걸 기다리는 것 말곤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반쯤 체념하려던 찰나, 어르신께서 조용히 날 부르셨다.
“사장님.”
“예.”
“이건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니, 사장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뭘 어쩌시려고?
들은 직후에는 이해가 안 돼서, 일단은 신경 안 쓰고 있어 봤다. 어르신께서 쓰고 계시던 모자를 벗어 내게 맡기신 뒤, 정문 밖으로 나가셨고….
봉고차 두 대 중 한쪽의 뒤편에 서서는 뒤 범퍼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하셨는데, 바라보시는 부분이 살짝 찌그러진 상태였― 잠깐만.
“어르신, 혹시 지금 하시려는 게―”
“이 부근이 괜찮겠군요.”
거기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좀 재고를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미처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어르신께서 한 손으로 범퍼를 부여잡고는 작게 “흡.” 기합을 넣으셨다.
이후, 들어 올리셨다.
들어 올리신 직후엔 생각하셨던 것만큼 무겁진 않았는지, 역도 선수마냥 범퍼를 쥔 손을 한 번 고쳐 잡으셨다. 잡은 그대로 몸을 슬쩍 옆으로 내밀려 하셨으나, 내 눈에도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사장님. 앞쪽이 안 보여서 그런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예. 잠시만요.”
염병, 나도 모르겠다. 다른 뾰족한 수 있어?
뒤 범퍼 부근에서 들려오는 우직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차량 앞쪽에 서서 바퀴 방향을 확인했다. 천만다행히도 이놈들이 바퀴를 꺾어놓고 가진 않았다.
“앞바퀴 평행이니까 그냥 쭉 오세요, 어르신! 멈출 때 되면 말씀드리겠슴다!”
“알겠습니다.”
작은 대답 소리에 뒤이어, 봉고차가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르신의 걸음걸이에 맞춰 1.8t 봉고차가 위아래로 흔들거려대는 게, 보면 볼수록 물리엔진에 버그가 발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살다 살다 별 광경을 다 보네….
밀려오는 인지부조화를 애써 털어내며 주차(물리)를 서른 걸음가량 유도하자, 편의점 앞 시야가 제법 트인 게 보였다. 곧바로 외쳤다.
“내려놓으셔도 될 것 같아요!”
말과 동시에, 쿵. 차체 구석구석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진동을 해댔다. 차가 완전히 멈춘 걸 확인한 뒤, 어르신께 안부를 물었다.
“몸 괜찮으십니까? 팔이든 허리든, 어디든 간에―”
“손에 먼지가 조금 묻기는 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손 두어 번 쥐었다 펴시고, 웃옷의 검댕을 툭툭 터는 게 끝. 봉고차가 뒤쪽이 훨씬 더 무거우니, 대충 1.2t 정도라고 치자.
이 어르신께서 방금 데드리프트 1,200kg을 해내셨단 소리다. 1대 1,200을 치셨다니까?
이러고는 하시는 말이, 손에 먼지 묻은 것 빼곤 괜찮으시단다. 이분은 대리기사 하실 게 아니라, 이름 걸고 헬스장을 하나 차리시는 게 맞지 않나? 3대가 노후 자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뒤쪽의 차량도 하나 치워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기까지는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매장 전체가 다 보이는 건 바라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 간판 절반만 보여도 여기에 편의점 있는 줄은 알 수 있을 테니까.
더해서, 똑같은 광경을 한 번 더 볼 엄두가 나질 않기도 했다. 어르신께서 잡고 들어 올렸던 뒤 범퍼 부근만 봐도, 아까 봤던 것에 비해 조금 더 찌그러진 상태….
“아니, 아닌가?”
내가 봉고차를 한 손으로 들어본 경험은 없어도 상상은 할 수 있다. 봉고차 하중이 성인 남자 손바닥 면적에 일제히 쏠리면, 정도가 어느 정도든 범퍼가 구부러지는 게 정상이잖아.
헌데 달라진 게 없다. 팔이 어르신 쪽으로 굽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한참 동안 바라보다, 겨우 그럴싸한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어르신.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게 마법을 쓰신 거예요?”
“마법 같은 거창한 것까지는 못 됩니다. 제가 마법 쪽에는 소질이 없기도… 물론, 순수 완력으로 들어 올렸다는 말도 아닙니다.”
도중에 덧붙이지 않으셨다면, 드시는 프로틴이 뭐냐고 여쭤볼 뻔했다. 설명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셨는지, 한쪽 소매를 슬쩍 걷으시는 어르신.
소매를 걷은 손을 내밀어 손바닥이 보이도록 펼친 뒤, 마저 말을 이으셨다.
“마력으로 살짝 잔재주를 부렸을 뿐입니다. 지금도 눈에 보이진 않으시겠지만―”
“이 안개 말씀하시는 건가 봅니다. 진한 파란색에, 드라이아이스 같은.”
이 말 말고는 표현할 말을 못 찾을 뭔가가 어르신 손에 감돌고 있었다. 아까는 주차유도 하느라 앞바퀴만 쳐다봤지만, 눈에 힘주고 보니 뭐가 보이긴 한다.
말하자, 꽤 놀라셨는지 눈을 크게 뜨는 어르신.
“…안 보이실 거라 생각했는데, 사장님께서 비범한 분이시란 걸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비범하긴요,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이런 것뿐인 거지. 마저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여하튼, 지금은 체내의 마력을 제 손에 집중한 상태고….”
수련하기에 따라 마력을 좀 더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손바닥이 아닌 봉고차 뒤 범퍼에 마력을 흘려보내, 경도를 강화한다든가―
원하는 지점에 마력을 집중해, 바닥 도보의 벽돌 하나만을 골라 빼낼 수도 있다.
“방금은 마력으로 지면을 살짝 진동시켜 본 것인데… 제가 설명을 잘한 건지 모르겠군요.”
설명이고 자시고, 이 어르신께서 진짜로 벽돌을 빼내셨다.
그것도 금 간 곳 하나 없이 깔끔하게. 이거 내가 끼워달라고 부탁하는 게 맞나? 행인들 무진장 자빠질 것 같은데.
다행히도, 어르신께서 직접 끼워주셨다. 바닥에 끼워 발로 한 번 비비자, 지가 언제 빠졌냐는 듯 벽돌이 조신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런 일에 대비하신다면, 간단한 마력 운용법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만.”
“전 괜찮아요. 렉카 회사도 먹고 살아야지.”
어르신께서 살짝 시무룩해진 눈치였으나,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내 몸뚱어리에 마력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마력 한 방울도 없는 놈이 운용법은 배워서 뭐 해?
정확한 원리가 뭔지도 쥐뿔 모르겠긴 하지만, 아무튼 지식은 늘었다. 마력이라는 게 단순히 마법 쓰는 데에만 쓰는 게 아니라 별짓이 다 가능하다는 것.
어쨌든 차도 옮겨놨고 범퍼도 무사하니 더 트러블 생길 일은 없겠지. 어르신과 다시 매장으로 돌아와 아까 사뒀던 음료를 마저 마셨다.
난 두 모금, 어르신께서는 남은 반 잔을 원샷. 어르신께서 컵을 버리시는 동안 폰으로 축구 경기가 얼마나 진행됐는지를 확인해봤다. 후반 43분이었다.
추가시간까지 생각하면, 7분 뒤면 바빠질 것 같다. 짧게 끝날 만한 대화 주제를 잠깐 고민하다, 어르신께 여쭤봤다.
“어르신께서는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아무렴, 잘 지냈고말고요.”
말은 잘 지냈다 하시는데, 어조에 묘한 위화감이 있다. 마저 말을 이으셨다.
“바둑도 두고, 게이트볼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