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103)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103화(103/354)
#103화. 오크 군락 토벌(10)
도르마는 한숨을 길고도 길게 내쉬었다.
만약 아직도 입김이 나왔다면 그의 입김은 지면까지 닿았을 것이다.
도르마는 말했다.
“엘리스. 너 그건 알고 있지? 저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게 친상부파 마법사라는 거.”
“몰랐는데.”
“아니. 넌 분명 알고 있어. 정치에 관심 없는 척해도 다 알고는 있잖아.”
“……그건 당하지 않기 위해서야.”
도르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앞에 섰다.
“근데 지금 우리가 당하게 생겼어. 이 문제를 어물쩍 넘기잖아? 상부가 앞으로 우리 일에 어떤 브레이크를 걸어올지 몰라. 어떤 보복이 올지 모른다고.”
“…….”
둘의 대화는 엘런과 카르디아 시에나가 퍼뜩 이해하기 어려웠다.
애초에 이제 막 1학기가 시작된 파릇파릇한 1학년과는 상관없는 대화였기 때문이다.
이건 어른들의 대화였다.
누가 누구의 뒤를 봐주고, 누가 누구를 등에 업었고, 내가 무엇을 가졌으며 상대의 무엇을 빼앗을 수 있을까.
끝없는 정치와 손익 계산은 절대 학생들과 관련 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학생들의 일과 더불어 교내의 일도 도맡아 하는 학생회는 더더욱 그러했다.
도르마는 엘리스가 계속 우묵히 입을 닫고 있자 엘런에게로 말끝을 돌렸다.
“이봐, 장학생.”
“네.”
“설마 아닐 것 같긴 한데 내가 혹시 몰라서 묻는다. 거짓말 칠 생각은 하지 말고.”
“부학생회장 앞에서 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입은 잘 터네.”
턱-
도르마는 엘런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겔릭. 네가 죽였냐?”
“아닙니다.”
엘런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도르마는 그가 질문한 이후로도 뚫어져라 엘런의 검푸른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 개의 동공 안에서 대답의 진위보다 더 묘한 것을 느꼈다.
“닮았네.”
“네……?”
“내 상사랑 너. 닮았어. 아주 묘하게.”
“……쓸데없는 말이야, 도르마.”
“그냥 닮았다는 말도 못 하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도르마는 김이 샜다는 듯 쯧 하고 혀를 차며 엘런과 한두 걸음 떨어졌다.
“그래. 저놈이 거짓말하는 게 아니란 건 알겠어. 근데 상부가 그걸 믿어줄까?”
“믿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어.”
엘리스는 자신이 목을 벤 괴물에게로 다가갔다.
보통 오크라곤 상상할 수 없이 장대한 체격.
심장이 뽑힌 흔적이 있음에도 몸을 움직인 투지와 살육의 본능.
숲의 일대를 차지할 만큼 거대한 군락의 규모.
엘리스는 이 모든 걸 종합하여 말을 이었다.
“저 셋은 오크 워로드가 완전히 힘을 키우기 전 싹을 잘랐어.”
“오크 워로드라고 완전히 단정 짓는 거야? 아직 조사도 안 했는데?”
“도르마. 괴물 관련 수업에서 내 점수가 몇 점이지?”
“……실기, 필기 다 포함해서?”
“그래.”
“싸그리 100점이었지.”
대답은 이것으로 되었다.
엘리스는 말했다.
“여기 1학년들은 상부의 조사를 받아야 할 몸들이 아니야. 우리 학생회가 상을 주고 치하해야 할 존재들이지.”
“그래. 어차피 덩컨 교수님이 공식 의뢰서를 내민 거 보면 교수님들도 동의하신 상황 같으니까 일은 편하게 진행되겠다.”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세 명에게 다가갔다.
“이름을 말해봐라.”
그녀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자기소개를 시켰다.
“엘런 이안느입니다.”
“카르디아 아누비샨입니다!”
“시에나 카이저 아인티제입니다.”
그래, 너희가 카르디아와 시에나구나.
둘을 보는 엘리스의 눈매가 일순간 날카로워졌다.
과거 엘런이 자신을 귀찮게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도움을 준다는 여자들.
엘리스는 시선을 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했다.
겨울의 시작을 담은 듯이 깨끗한 청안은 먼저 카르디아를 담았다.
‘외가가 열풍 사막에 있으면 엘런이 내려가기 힘들어. 게다가 엘런은 더운 것도 싫어해. 외모는 나쁘지 않지만, 엘런은 나처럼 하얀 피부를 선호하니까. 크레센티아의 아내가 되기엔 부족하네.’
다음은 시에나.
‘집안이 좋은 건 인정하지만 장인어른이 황제면 엘런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게다가 얼굴에서부터 보이는 원리원칙과 지배자의 고집.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런만 기가 죽을 거야. 엘런보다 한참 부족해.’
카르디아와 시에나는 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시험에서 탈락했다.
그 시험은 엘리스가 속마음으로 조용히 진행하고 조용히 점수를 매기며 조용히 결과를 내었다.
‘둘 다 엘런의 신붓감은 아니야. 결국 내가 옆에 더 있어줘야겠어.’
열풍 사막 지배자의 딸과 제국 1황녀가 탈락한 이 시험에서 누가 합격할진 모르겠지만, 엘리스는 자신의 손을 셋에게 내밀었다.
“학생회장, 엘리스 폰 크레센티아. 정식으로 인사할게.”
“자,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도르마는 ‘허’ 하고 숨을 내쉬었다.
“신기한 일이네. 엘리스가 먼저 악수를 다 청하고.”
평소라면 절대 없을 일이다.
애초에 타인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일이 드문 엘리스로선 이것조차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엘리스와 악수를 나눈 후, 시에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학생회장님.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야.”
“회장님의 남동생분과 관련된 것입니다.”
“……내 남동생이 지금 그대와 무슨 상관이 있지.”
시에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꼭 묻고 싶습니다.”
그녀는 교복 셔츠 속에 넣어두었던 ‘용기의 반지’를 손으로 꽈악 쥐었다.
“1황녀로서 시간이 통 나지 않았던지라 그에겐 편지 한 통 쓰지 못했지만, 그의 안위라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
“하지만 그 누구에게 물어도 모른다 하고, 알아오라 해도 모른다 하고. 가끔 게르슐 경을 만나 여쭤보면 그분조차도 대답을 회피하셨습니다. 저는 너무나 알고 싶습니다.”
시에나는 엘리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엘런이 살아는 있는 겁니까? 혹 어떤 커다란 병에 걸렸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바로 옆에 있다만.
엘런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딴청만 피워댔다.
자신의 이름이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니다.
지금의 엘런에게 엘런 폰 크레센티아는 쳐다도 볼 수 없을 만큼 격조 높은 가문의 막내아들이다.
최초의 장학생이란 타이틀도 크레센티아란 이름 앞에선 빛을 잃었다.
그만큼 이름의 크기는 대단했고, 그들이 무엇을 숨기고자 하면 그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다.
현재 엘런 폰 크레센티아의 위치와 상태가 그러했다.
‘공식적으로’ 엘런은 현재 아직 그의 방에서 과자나 뜯어 먹으며 띵가띵가 놀고 있는 중이다.
크레센티아가 그렇게 상황을 짰고 모두가 그리 믿게 만들었다.
그러니 엘리스가 할 수 있는 대답 또한 정해져 있었다.
“아무 탈 없이 본가에서 쉬고 있는 중이다.”
“……그렇군요.”
“또한 내 남동생에 관한 질문은 지금 이것을 마지막으로 해라.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있는 한 바깥에서의 친분은 들이밀 것이 못 된다.”
“그렇다면 이 말 하나만 전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시에나는 셔츠 속에서 용기의 반지를 꺼냈다.
공장에서 부품 조일 때 쓰는 육각 너트에 불과했지만, 이거 하나로 시에나는 바뀌었다.
훗날 이 용기의 반지의 정체를 깨달았어도, 이 육각 너트가 지닌 가치는 시에나에게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엘리스는 여전히 용기의 반지를 손안에 쥔 채 그녀를 향해서 말했다.
“너무 고맙다고. 네 덕분에 나는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고. 언젠가……. 꼭 보고 싶다고. 이렇게 전해주십시오.”
엘런은 가만히 선 채로 그녀의 말을 묵묵히 귀담아들었다.
“전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은 해두겠다.”
“감사합니다.”
“장학생은 잠시 나를 따라와라. 개인적으로 더 묻고 싶은 게 있다.”
“……예.”
엘런과 시에나가 잔해 너머로 사라졌다.
***
학생회장의 업무실.
엘리스는 매일 같이 앉는 의자에 앉아 매일 같이 먹는 블루베리 생과일주스를 꺼내 들었다.
쪼옥- 쪼옥-
두꺼운 빨대를 통해 블루베리 과육과 눅진한 주스가 쭉쭉 밀려올 때마다 스트레스는 눈 녹듯 사라진다.
똑똑-
하지만 그런 스트레스는 사라지기가 무섭게 또다시 쌓이려 했다.
엘리스는 들고 있던 주스를 구석에 밀어 넣고 자세를 고쳐앉았다.
“들어오십시오.”
끼익-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척 봐도 부유함과 재산의 여유가 몸에서 흘러넘치는 자다.
몸을 치장한 장신구만 보아도 평민들이 평생 일해도 사기 힘든 고가의 보석들.
엘리스가 보기엔 반짝이기만 하고 별 가치 없는 돌이었지만, 방금 들어온 자가 속해 있는 곳에선 매일 같이 사들이는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엘리스 학생회장.”
“예. 오랜만입니다, 로랑.”
“이렇게 둘이서 독대하는 건 근 한 달 만이죠?”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영양가 없는 인사치레 대신 곧바로 들어가는 본론.
로랑은 끝이 휘어 들어간 콧수염을 매만지며 씨익 미소 지었다.
“징계로 군락에 보냈다는 겔릭이 죽었단 보고가 방금 상부에 올라왔더군요.”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 학생회장께선 작금의 상황이 그리 심각하게 와 닿지 않으신가 봅니다.”
“와 닿을 게 뭐가 있을까요.”
엘리스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가만히 다리를 꼬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풍겨오는 아우라는,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고 모든 걸 발아래 두는 포식자의 것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배자의 것이었다.
동시에 엘리스는 눈앞에 남자, 로랑에게 묻고 있었다.
그래서 뭐 네까짓 것들이 어쩔 테냐.
로랑은 눈가의 끝을 살짝 떨며 말을 이었다.
“겔릭은 저희 상부가 눈독을 들이고 있던 마법사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상부에게 좋은 투자자이기 때문이겠죠.”
“……아닙니다. 그는 토속성 중에서도 희귀한 ‘지진’ 세부특성을 개화했고, 그 특성을 아주 잘 활용하는 좋은 예시였습니다. 잘만 키운다면 좋은 인사가 됐겠지요. 헌데 그가 뭣도 아닌 오크 군락에서 허무하게 죽어버렸습니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로랑은 씨익 미소 지었다.
“저희 상부는 의심이 간다는 말입니다. 고작 오크 군락에서 명을 달리할 정도로 겔릭은 유약하지 않을뿐더러, 듣자 하니 그의 옆에 동행한 이들이 셋이나 있다죠?”
“…….”
“장학생, 엘런 이안느와 제1황녀, 엘리스 카이저 아인티제. 그리고 사막의 딸, 카르디아 아누비샨. 모두 요주의 인물들입니다. 이 셋의 조사권을 저희 상부에게 온전히 넘기시죠. 만약 살인사건이라면 학생회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닙니다.”
쿡-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소리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엘리스의 입가가 명백히 초승달과 같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농익은 석류같이 붉은 그녀의 입술은 명백히 아름다웠으나, 로랑의 눈에는 기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가 웃기십니까?”
“죄송합니다. 저희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느라 뒤따라온 두 번째 보고서를 보내드리지 못했군요.”
“두 번째 보고서요?”
스윽-
엘리스는 책상 끝으로 그 두 번째 보고서를 밀었다.
“보시죠.”
로랑은 보고서와 엘리스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헛기침하며 그것을 펼쳐 들었다.
얼마 안 가 보고서 뒤 로랑의 눈이 대번에 커진다.
“오, 오크 워로드……! 지, 지금 이 보고서에 적힌 말이 사실입니까!”
“예.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모두 진실입니다. 저희가 이미 오크 워로드의 시체를 입수했고, 부검까지 마쳤습니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오크 워로드가 정확했고, 위 안에서 겔릭의 유골까지 발견했습니다.”
“…….”
“이걸로 상부가 그 셋을 조사할 명분은 없겠죠. 그들이 죽인 게 아니라 오크 워로드가 겔릭을 깨끗이 발라먹은 게 명명백백하니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로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를 품속에 넣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는 짧은 인사와 함께 몸을 돌렸다.
“잠시.”
“예?”
“개인적으로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하시죠.”
엘리스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로 로랑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겔릭이 토속성 중에선 희귀한 지진 세부특성을 개화했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셨죠. 잘 키워보려고 했다 하셨고요.”
“그랬습니다. 이젠 그가 죽어버려서 할 수 없게 되었지만요.”
“그럼 저는 뭡니까.”
“예……?”
“저는 뭐냐고 물었습니다.”
로랑은 순간 벙쪄서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벌렸다.
자신이 뭐냐니.
그걸 내게 왜 묻는 것인가.
엘리스는 당황해서 한껏 쪼그라든 그의 뇌가 완전히 펴지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고작 지진이라는 세부특성 하나 개화했다고, 상부의 재력과 지지가 쏟아지는 거라면 저는 왜 적으로 돌리시는 건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저, 적으로 돌리다뇨! 천부당만부당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학생회가 하려는 일마다 상부는 퇴짜를 놓으십니까.”
“그, 그건…….”
“보나 마나 상부 쪽으로 돌아가는 이득이 다른 것보다 적어서겠죠.”
“그,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는 듣기 싫다는 듯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엘리스는 말했다.
“세부 특성을 언급하시지만, 그 뒷배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 딱 잘라 말씀드리겠습니다.”
벌떡-
엘리스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
“…….”
“황제의 아래에서 가장 높고, 당신들이 매일 밤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달. 그것이 우리 크레센티아입니다.”
저벅- 저벅- 저벅-
엘리스가 걸을 때마다 유리 같은 얼음 조각이 자박하게 튀었다.
그 조각들은 금방이라도 로랑의 심장에 박힐 것처럼 날카로워 그는 엘리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을 움찔거렸다.
엘리스는 로랑의 어깨 옆에서 멈춰 섰다.
“크레센티아를, 나 엘리스 폰 크레센티아를 적으로 두지 마십시오. 달은 인간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
“그럼 저는 용무가 바빠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시길.”
뒤에서 주먹을 움켜쥔 로랑을 지나치고, 엘리스는 업무실에서 사라졌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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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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