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104)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104화(104/354)
#104화. 목욕
셋은 생활 구역으로 돌아왔다.
……사실 오늘 아침 일찍 떠났다가 저녁쯤에 돌아온 거지만, 왜인지 굉장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카르디아와 엘런, 시에나는 동문으로 들어온 후에야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전투로 한계까지 조여진 근육과 심장, 마력 회로는 뻐근해진 몸을 풀어 젖혔다.
시에나는 저린 어깨를 조금씩 돌리며 엘런에게 눈짓했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나눈 것이야?”
“뭐가.”
“아까 학생회장님과 골목 뒤로 사라지지 않았느냐.”
“맞다! 둘이서 무슨 얘기 했어?”
엘런은 근육이 굳은 목을 우득하고 풀었다.
“별 얘기 안 했어.”
“에이, 학생회장님과 둘이서 한 얘기면 무조건 별 얘기지!”
“카르디아의 말이 맞다. 혹 둘이서만 나누어야 했던 비밀스러운 얘기였느냐?”
“비밀스러운 얘기는 무슨.”
“그럼 말해줄 수 있지 않느냐. 올 때부터 궁금해서 몸이 들썩거렸느니라.”
“글쎄다. 그때 뭔 얘기를 했더라.”
정말 시답잖은 대화였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엘리스는 엘런의 안부를 묻고 또 물었으며 가족끼리 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이건 ‘가족’이기에 별거 아닌 얘기지, 저 둘이 듣는다면 대경실색할 만한 대화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말해줄 수 없었다.
엘런은 외투를 벗고 탈탈 털며 말을 이었다.
“그냥 나한테 학생회장 할 생각 없냐고 묻더라.”
“지, 지, 진짜……?”
“그래.”
“엄청나구나. 그래서 뭐라 대답했느냐?”
“관심 없다고 했지.”
엘런의 태연한 대답에 둘의 표정이 단숨에 어그러졌다.
“야, 야! 너 멍청이야? 븅신이야? 어떻게 그걸 거절해!”
“너는 어째 아까 괴물이랑 싸울 때보다 더 화낸다?”
“그, 그게 아니라 이건 그럴만하지!”
“카르디아의 말이 맞느니라. 누가 봐도 정말 좋은 기회이지 않느냐.”
“적어도 난 아니야.”
“아오!! 그럼 나한테 말하지! 나라면 당장 오케이 했을 텐데!”
엘런은 피식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학생회장 하면 아카데미 망하지.”
“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흠흠. 조용히 동의하겠느니라.”
“시, 시에나까지!”
카르디아는 억울해하며 이 뒤로 몇 마디 말을 쏟아냈다.
자신이 용병단에 있을 때 얼마나 뛰어난 분대장이었는지.
부하들이 얼마나 자신을 믿고 따랐는지.
아버지도 인정한 리더쉽을 보유했다고 떠들었지만 듣는 이는 아쉽게도 없었다.
어차피 엘리스는 엘런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기에 이 또한 영양가 없는 대화였다.
물론 엘리스는 엘런이 회장직을 달라고 하면 당장 넘겨줄 테지만…….
엘런은 조금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중앙 광장으로 나아가던 중, 카르디아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어? 욕탕이다!”
“가본 적은 없지만,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탕도 향기롭고 크기도 괜찮다고.”
“맞아, 맞아! 그래서 나도 가끔씩 들리는 곳이거든!”
“엘런, 어떠하냐. 여기서 씻고 가지 않겠느냐?”
“그럴까.”
어차피 중앙성에서 씻으려고 하면 또 귀찮음이 밀려올 것 같다.
이왕 바깥에 나온 거 잡다한 용무를 마치고 들어가는 게 더 낫다.
셋은 공중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좌우로 갈린 입구.
한쪽은 남탕이고 다른 한쪽은 여탕이다.
여탕 입구에 선 시에나와 카르디아는 반대쪽에 선 엘런을 쳐다보았다.
“엘런! 같이 들어오고 싶겠지만 참아라! 아쉬워도 어쩔 수 없잖아?”
“네건 이미 봐서 흥미 없거든.”
“야, 야! 그건 잊으라고! 당장 잊어버려!”
“두, 둘은 나체를 공유한 것이냐……?”
“아, 아,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 그냥 빨리 들어가자!”
카르디아는 괜히 툭 건드렸다가 되로 받으며 시에나와 같이 도망치듯 사라졌다.
엘런은 작게 미소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한 번 와본 만큼 어색함은 없었다.
제집처럼 옷을 벗고 보관함에 넣어둔 엘런은 그것의 열쇠를 뽑고 단단히 잠갔다.
거기다 이 보관함은 조금의 특별함이 담겨있다.
안에 옷을 걸어두면 자동으로 세척하고 구린 냄새를 빼며 건조까지 완료해준다.
물론 이런 성능을 지닌 만큼 무료는 아니었다.
그래도 방금 씻고 나왔는데 땀과 흙먼지로 절은 옷을 입고 돌아갈 순 없지 않은가.
엘런은 열쇠고리를 손목에 걸고 욕탕 안에 들어갔다.
안쪽은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안 보였다.
물론 사람이 많은 것보단 없는 게 좋으니까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쏴아아아아아아-
엘런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가만히 맞았다.
……조금 따갑다.
땅바닥에 구르고 돌부리에 부딪혀서 날아가길 반복한 몸은 성한 구석이 없었다.
이리저리 긁힌 상처에다 멍든 피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그래도 아직 엘릭서의 약효가 몸에 돌고 있기에 내일이면 상처는 흉터도 없이 아물 것이다.
샤워기의 물로 몸을 깨끗이 한 엘런은 이만 탕에 몸을 쑤욱 담갔다.
“하아아…….”
편안함이 담긴 숨이 입 밖으로 절로 나온다.
침묵과 뜨뜻한 탕 안에서 갖는 혼자만의 시간.
눈을 감고 편안히 이 순간을 만끽하는 엘런에게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격한 전투라도 하고 왔나 봅니다.”
건너편 탕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와 존대.
엘런은 눈을 떴다.
“오랜만입니다.”
“그러네.”
일전에 엘런을 턱밑까지 밀어붙였던 남자, 라제나 히로.
그는 탕 안에서 몸을 돌린 채 엘런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번에도 여기서 보지 않았나?”
“그랬죠.”
“우연도 이 정도면 의심해봐야 하는데.”
“그런 거라면 접어두셔도 됩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돈 욕탕에 오는 편이니.”
“……여기 직원이라도 되나?”
“목욕이 취미인지라.”
라제나는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저는 그보다 당신의 몸에 난 상처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만. 저와 싸울 때도 그런 상처는 없지 않았습니까.”
“보호 조끼를 찼는데 상처는 당연히 안 났지.”
“안 입어도 그만한 상처는 없었을 겁니다. 누굽니까? 그 상처를 낸 자가.”
“말하면 가서 붙어먹게?”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어보는 것이죠.”
엘런은 욕탕 끝에 머리를 기댔다.
“궁금 안 해도 된다. 걔 어차피 죽었으니까.”
“괴물이군요.”
“눈치 좋네. 맞아.”
다시 한번 침묵이 맴돌았다.
엘런도 입을 다물었고, 라제나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조금씩 달싹거렸다.
또한 엘런은 알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돈은 마련했냐.”
“……마련하는 중입니다.”
“할 수 있겠냐.”
“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는 놈들은 있냐.”
“…….”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엘런은 기억하고 있었다.
라제나를 돕겠다고 자신의 집에 넘어온 그 허당녀를.
“그레이스란 이름의 여자는 널 돕기 위해 열심이던데.”
“그녀가 또 무슨 실례를 저질렀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됐어. 이미 꽤나 지난 일이니까.”
엘런은 흐음 하고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볼 땐 말이야. 너 그거 못 갚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모았는데.”
“……30% 정도 모았습니다.”
“퀘스트 집회소에 남은 의뢰가 없다더니, 다 네가 했나 보네.”
30%라는 수치는 전체에 비해 작아 보이지만 이 정도만 해도 수십 골드에 달한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을 퀘스트 집회소에 들락거리며 쉬운 일부터 궂은일까지 도맡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 돈은 그냥 네가 가져라. 그리고 이제라도 빚의 부담을 다른 놈들과 나눠.”
“이미 한 번 제게 집중한 걸 어찌 또 나누겠습니까.”
“그건 네가 하는 게 아니야. 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 다만 너의 의사를 묻는 거다.”
엘런은 찰랑거리는 수면을 쓸어만 졌다.
“솔직히 화나지 않냐? 너는 발품 팔아가며 놈들을 도왔는데 그들은 입 씻고 널 버렸어.”
“…….”
“네가 빚을 모두 떠안자마자 모르는 사람인 척 멀리하고 있지 않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으면 알고 있는 대로 좀 행동해라. 네 자기만족인지 모를 것 때문에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 필요는 없어.”
젖은 적발 뒤로 보이는 그의 주홍색 눈은 일렁이는 탕을 향해 있었다.
그의 눈에서 속마음이 비쳐 보이진 않았다.
다만 끝이 어디인지 모를 깊은 번뇌가 엿보였다.
푸쉬이이이이-
욕탕 구석 사우나실에서 증기 흐르는 소리가 이 적막을 조금이나마 채워준다.
라제나는 젖은 적발을 뒤로 넘기며 탕에서 일어섰다.
주르르르륵-
뚝- 뚝- 뚝-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물들이 떨어지며 거울 같던 수면이 흔들린다.
다양한 길이와 굵기의 흉터로 가득한 라제나의 몸이 드러났다.
오밀조밀 균형 좋게 잡힌 근육은 말랐지만 압축된 듯이 질겨 보였다.
근육의 갈라짐 이외에도 그 위에 새겨진 흉터로 한 번 더 갈라진 피부는 멀쩡한 곳을 찾기가 더 힘들다.
라제나는 말했다.
“돈을 마련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 제가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
“이 흉터 중 가장 최근의 생긴 것이 어떤 건 줄 아십니까.”
그는 어깨 위에 가로로 새겨진 자상을 손으로 덮었다.
“1년 전입니다.”
“그래서?”
라제나는 흉터로 변하고 죽어버린 피부를 살짝씩 매만졌다.
“제게 흉터는 일상이었습니다. 매일 상처가 생겼고 작은 것은 아물었지만 커다란 것은 이렇게 흉터로 남았죠.”
하지만 그런 흉터도 이제 1년 넘게 생기지 않았다.
1년을 안전하게 살아왔다.
죽을 걱정 없이, 다칠 걱정 없이, 안전하고 또 안전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옛날로 돌아가 볼 생각이다.
“최근에 퀘스트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 퀘스트를 해결하면 돈도 마련될 듯하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퀘스트? 그런 고보수 퀘스트가 있다고?”
“있습니다. 여기엔 없지만요.”
라제나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긴 채 그를 지나쳤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그는 입가의 미소와 함께 욕탕에서 사라졌다.
***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주말.
엘런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자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입안에 과자를 넣으며 시간이나 때웠다.
뭘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일도 없지만, 더더욱 가만히 있는 중이다.
까아아악-!
그때 귀에 익은 짐승 소리가 들려온다.
흑탄을 치덕치덕 바른 듯한 까마귀가 창틀에 앉아 날개를 파닥거렸다.
“넌 왜 주말에도 오는 거냐.”
까아악-
까마귀는 발목에 묶인 쪽지를 부리로 빼내서 엘런에게 던지곤 그대로 날아갔다.
하여간 싸가지 없는 까마귀다.
엘런은 돌돌 말린 쪽지를 펴보았다.
[좋은 주말 보내고 있었는가? 주말에 편지를 보내서 미안하지만, 이렇게 따로 편지를 보내고 싶었네. 그곳에 오크 워로드라는 괴물이 있었음에도 동료들과 대승을 이뤄냈다 들었어. 자네의 성장 속도는 대체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군.]덩컨의 편지다.
이번 의뢰는 그와 몇몇 교수들이 신청한 의뢰라 그런지 이런 편지도 날아왔다.
[정말 잘 해내 주었어. 자네가 자랑스럽네. 이번 의뢰에선 오크 워로드라는 변수도 있었고 심지어 그걸 사냥까지 해주었으니 교수들끼리 보상 면에서 다시 한번 의논해 보았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과거에 내건 보상들은 너무 적은 감이 있으니 말이야.]일전에 덩컨이 말한 보상은 딱 세 가지였다.
100골드와 통화권, 마도구 교환권 세 장.
거기다 엘런이 추가한 보상인 개인용 냉동고까지가 보상 목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얹어준다고?
엘런은 쪽지의 밑단으로 눈을 내렸다.
[추가한 보상은 바로 마탑 견학이야.]“예……?”
엘런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편지 안에선 듣는 사람이 없는 걸 당연히 알고 있음에도 되물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보상의 정체가 도저히 현실처럼 믿겨지지 않았다.
엘런은 고개를 확확 돌리며 편지의 끝을 읽어보았다.
[이 보상은 학생회의 힘도 실려 있네. 왜인지 모르지만, 그 학생회장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더군. 자네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누나의 짓이었나.”
이 누님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가.
엘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탑 견학은 주말에 이뤄지지 않네. 주말은 마탑도 외부인에게 공개가 힘드니까. 그래서 평일 중 하나인 월요일에 출발하기로 했네. 그때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 늦게 귀환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네.]“그럼 수업을 빠지는 건가.”
이런 거라면 인정이다.
바깥에 나가는 것이 좀 껄끄럽긴 하지만, 오랜만에 사회에도 나가보고 나름 괜찮은 시간이 그려질 듯하다.
“난 또 주말에 가라는 건 줄 알았네.”
엘런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 잠시 가만히 있으니까 어떤 누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키아에 대적하는 초하이텐션의 소유자.
엘런은 배게 밑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썩 편안하진 않은 견학이겠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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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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