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124)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124화(124/354)
#124화. 외박(5)
엘런은 침묵했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방에서 벌어진 참상은 다분히 시끄러웠다.
방에 놓여 있던 고풍스러운 꽃병은 와장창 깨져나가고, 벽에 걸려 있던 얼마인지 모를 그림들은 잔뜩 헤집어졌다.
식탁이나 의자 같은 기본적인 가구들은 물론이거니와 벽면마저 사선으로 깊은 자상이 새겨졌다.
아주 안타깝고도 불운한 사실이지만, 천하의 크레센티아 저택마저 이런 소음을 감출 방음 스킬은 갖추지 못했다.
벌컥-!
카르디아와 시에나를 방에 두고 한달음에 이사벨이 달려왔다.
“에, 엘런!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고!”
“폭탄 같긴 했지.”
“대, 대체 뭔 짓을 해야 방이 이렇게 돼……?”
“뜻하지 않게 비기 연습을 조금 했더니.”
지금으로부터 더도 말고 딱 10초 전.
엘런은 빈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리곤 여태까지 모은 단서를 취합해서 크레센티아의 제1비기를 펼쳐보았다.
사실 별다른 기대도 하지 않고 쓴 기술이었다.
설마 되겠어?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크레센티아의 음기를 움직였다.
그러했다.
정답의 열쇠는 크레센티아의 음기에 있었다.
하지만 보통 음기로는 불가능했다.
‘크레센티아가 타고난 음기 중에서도 이물질 하나 없이 깨끗한 음기.’
2차 각성을 이루지 않는 이상 아무리 크레센티아의 성을 달고 태어난 자라도 탁한 음기를 띄기 마련이다.
그러나 엘런은 2차 각성과 숱한 싸움으로 음기를 자연스레 정제했다.
‘애초에 마법적인 지식을 비기에 대입하니까 안 되는 거였어.’
크레센티아라면 마력 운용, 수식, 이론 검증, 지혜 이딴 거 필요 없이 음기 하나만 따지면 됐던 것이다.
마법사와 기사를 구분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은 무의식적으로 마법사처럼 음기를 움직였다.
그런 이유로 여태까지 계속 실패를 반복했고, 방금 제대로 된 비기를 펼쳐 보였다.
그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다.
“야아, 이건 나도 커버 못 치겠는데?”
“대충 덮어두고 나 떠나면 누나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줘.”
“그, 그렇게 떠넘기면 나는 어떡하라구!”
“누나도 마탑으로 도망치면 되잖아.”
엘런은 어깨를 으쓱이며 방금 비기를 펼쳐낸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어?”
그리곤 자연스레 단말마를 내뱉었다.
이사벨은 또 뭔 일이 터졌나 싶어 엘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이 이 지경으로 터져버렸을 때보다, 더욱 대경실색한 이사벨의 얼굴이 그의 손으로 돌진했다.
“에, 에, 엘런……!! 괜찮아? 어떡해! 어떡해!”
이사벨은 엘런의 손을 부여잡았다.
방금 크레센티아의 제1비기, 빙살(氷殺)을 펼친 손바닥은 농익은 딸기처럼 붉었다.
다 찢어진 살갗에서 우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마냥 핏방울이 줄기차게 떨어진다.
그 주변은 피범벅이 되어있고 손목에서 팔뚝까진 핏기가 완전히 빠져 시체같이 창백했다.
“이, 일단 이거라도 마셔!”
이사벨은 아공간을 열어서 비상용 포션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됐어. 한 병이면 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이 바보 멍충아!”
“언제는 천재라더니.”
엘런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이사벨이 꺼내 든 포션을 입에 털어 넣었다.
마탑의 학파장답게 비상용 포션들은 당연히 상급 중의 최상급이다.
“더 마셔! 더!”
“오줌 나오겠어. 뭘 자꾸 마시래.”
엘런은 팔에서 살짝의 따가움을 느꼈다.
이 미약한 통증은 치료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다.
아까까진 누군가 팔을 쉴새 없이 난도질하는 듯한 격통이 치밀었으니까.
포션은 예리하게 베이고 갈라진 피부를 빠르게 봉합해나갔다.
“하여간 돈이 좋긴 좋아. 이런 상처도 손쉽게 회복시키고.”
“그러게 누가 가문의 비기를 준비도 없이 멋대로 쓰래!”
“나는 뭐 이렇게 성공적일 줄 알았나.”
“성공적? 하아!”
이사벨은 한숨 아닌 한숨을 푸욱 내쉬며 엘런의 팔을 들고 흔들었다.
“네 눈에는 이게 성공으로 보이니?”
“아아. 아퍼. 흔들지 마.”
“네 몸을 좀 소중히 여겨! 크레센티아의 육체는 무적도 아니고 불사도 아니야!”
“그에 버금가긴 하잖아.”
“아오! 무슨 말이라도 못 하면!”
엘런은 슬쩍 이사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말은 저렇게 하면서 이목구비에 가득 끼어있던 걱정이 점차 가시는 게 느껴졌다.
귓가에 닿을 것 같이 커다랗게 울렸던 이사벨의 심장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엘런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흐, 흥! 그런 말 하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역시 나 걱정해주는 건 누나밖에 없네.”
“그거야……. 그렇지.”
묘한 뿌듯함과 함께 이사벨의 콧대와 어깨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니까 방에서 있던 사고는 대충 책장 하나를 엎어버렸다고 치자.”
“사방에 낀 성에 자국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글쎄. 어차피 저 옆 방에 있는 둘만 속이면 되는데 그런 변명까지 필요할까. 가족들에겐 사실대로 말해도 별 상관없잖아.”
“빙살을 성공시켰다고?”
“이 기술 이름이 빙살이구나.”
엘런은 이제서야 알게 된 제1비기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렸다.
“정말 살육만 생각하고 만든 것 같은 기술이긴 하네.”
“정확히는 살인이야.”
“살인?”
이사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엘런의 말을 정정했다.
“크레센티아의 비기는 모두 초대 가주님이 만들었지만, 그분이 살아있던 시대에선 인간끼리 전쟁을 벌여서 온 대륙이 피로 물들어졌던 시대였지.”
과거 비기를 배울 때 같이 들었던 가문의 역사.
엘런 또한 그걸 알아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었다.
“그때 초대 가주님은 제 몸과 가족을 지켜야 했고 그 이유 하나로 본인이 타고난 음기를 기술화시키기 시작했어.”
“똑똑한 분이셨네. 이해만 하는데도 어려운 걸 창조까지 하시다니.”
“맞아. 어찌나 똑똑하셨는지 대륙 전쟁마저 화합과 평화로 종식을 이끌어내시지. 하지만 엘런도 알고 있을 거야. 힘 없이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당연한 이치니까.”
이사벨은 어찌 보면 쓰게 느껴지는 미소와 함께 손바닥을 펼쳤다.
그 위로 방금까지 엘런을 상처 입혔던 빙살이 쩌저적 올라왔다.
정확히는 빙살의 힘을 담아낸 비수 모양의 얼음 조형.
“초대 가주님은 평화를 추구했지만, 사실 모두가 그분의 말에 동의한 건 아니야.”
“그러면?”
“하지만 반기를 들지 못했지. 그들은 이 비수가 너무너무 무서웠거든.”
이사벨의 검지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빙살의 비수.
“고대의 기록에 의하면 초대 가주님이 전장에 등장할 때는 그곳이 사막이건 대밀림이건 상관없이 극지대의 폭풍이 불어닥쳤다고 해.”
“아버지랑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할까?”
“흐음, 글쎄? 그건 정말 모르겠는걸? 아마 비슷할 거라고 추측은 되는데.”
이사벨은 갑자기 옆으로 새버린 주제에 고개를 재빨리 젓고 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 하여튼 잘 들어봐. 크레센티아의 비기는 오직 살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만큼 굉장히 파괴적이고 시전자를 죽이기에 충분한 기술들이야.”
“그래 보여.”
“그렇게 어물쩍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니까? 진지하게 들어줘. 엘런.”
“나 엄청 진지해. 내 팔이 다 아작날 뻔했는데 어떻게 진지하지 않겠어.”
엘런은 이제 생채기 정도만 남은 팔을 이사벨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크레센티아의 육체니까 그나마 버틴 거야. 다른 몸이었으면 상반신이 날아갔을걸?”
“크레센티아가 아니면 쓸 수도 없는 기술인데 뭘.”
“그래서 더 위험한 거지. 너한테는 더더욱.”
엘런은 한 꺼풀 뒤에 숨겨진 속뜻을 곧장 알아들었다.
“잘 숨기고 있으니까 그런 걱정은 마시고.”
“그래. 엘런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이사벨은 엘런의 머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엘런은 대번에 문밖에 있는 사람이 카르디아와 시에나라고 생각했지만, 여긴 크레센티아의 본가다.
“누구니?”
“이사벨 아가씨. 지명 퀘스트를 수락한 자가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지금 아가씨를 만나 뵙기를 원하는데 어찌할까요.”
“지금 만날 테니까 내 세 번째 방으로 안내해.”
“알겠습니다.”
이사벨의 하인은 그녀의 명령을 하달받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
언뜻 흥미롭게 느껴지는 둘의 대화.
“지명 퀘스트? 이게 뭔데?”
“아아. 별건 아니고. 최근에 제국 수도 인근 마을에서 가축을 훔치는 놈들이 있거든. 근데 그놈 수법이 워낙 교묘한지 몇 달째 잡히질 않고 있어. 그래서 우리 크레센티아까지 의뢰가 올라왔고, 아카데미에 의뢰를 넣어두었지.”
“아카데미라면 설마 우리 아카데미를 말하는 거야?”
“물론이지! 내 모교이기도 하고 우리 후배들 커리어 좀 쌓아주려고 넣어둔 퀘스트야.”
확실히 크레센티아가 발주한 퀘스트를 클리어했다는 건, 그 내용이 고양이 잡기라도 다른 퀘스트와 격을 달리한다.
하지만 이사벨은 분명히 지명 퀘스트라고 했다.
지명 퀘스트라 하면 어떤 특정인 한 명에게 개인적으로 신청하는 형식의 퀘스트였다.
“지명한 학생은 누군데?”
“딱히 누구를 특정한 건 아니야! 그냥 최근에 가장 많은 의뢰를 높은 신뢰도로 해결했고 교수들 사이에 평판도 좋은 학생이라면 아무나 할 수 있도록 했지. 아마 그런 학생들에게만 까마귀가 연락을 넣었을 거야.”
“신기하네.”
“그럼 나는 손님이 온 것 같으니까 이만 가볼게. 오늘은 그 팔 되도록 쓰지 말고 자중해. 알겠지?”
“알겠다니까 그러네. 어서 가봐.”
이사벨은 문으로 나가는 마지막까지 엘런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사라졌다.
어차피 방이 이렇게 된 이상 쓰지도 못한다.
밖으로 나온 엘런은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2인조와 딱 마주쳤다.
“야! 대체 뭔 미친 짓을 했길래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
“그냥 가구 좀 엎었어.”
“어휴! 이 모지리 새끼!”
“……너한테 들으니까 좀 모욕적이네.”
시에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사벨 학파장님께 엄청 혼났겠구나.”
“혼나기야 했지.”
“그럼 기분도 많이 꿀꿀해졌을 테니 우리랑 같이 가겠느냐.”
“어딜?”
“시에나가 이 저택에는 엄청 커다란 온실이 있대! 학생회장님이 식물을 기르는 걸 즐기신대서 게르슐 님이 선물해줬다고 하던데?”
아아, 그 대형 온실을 말하는 건가.
엘런은 당연히 그 온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실제로 엘리스의 손에 이끌려 가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왔는데 크레센티아 저택 명물들은 전부 봐줘야겠지.
“그래. 같이 가자.”
“이사벨 학파장님이 이쪽이라고 하셨느니라. 날 따라오거라.”
“이야아. 역시 부잣집이 좋긴 좋아! 볼 게 엄청 많네!”
셋은 아까의 작은(?) 소란을 뒤로하고 저택의 복도를 거닐었다.
***
이사벨의 세 번째 방.
보통 손님을 들이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는 이곳에 한 적발의 남자가 앉아있다.
하인의 안내로 먼저 방에 도착한 남자는 자신의 홍안을 이리저리 굴리며 방의 내부를 바라보았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교복과 함께 남자는 등을 꼿꼿이 펴고 의뢰인을 기다렸다.
벌컥-
“아아, 죄송해요! 제가 조금 늦었죠!”
“아닙니다.”
“그럼 늦은 만큼 빨리빨리 시작하겠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이사벨은 남자의 앞에 앉아서 그의 서류를 펼쳐 들었다.
“성함은 라제나 히로 씨! 학년은 1학년이네요?”
“의뢰를 클리어할 만한 실력은 충분히 갖췄습니다.”
“네네! 1학년이라곤 해도 제국 아카데미의 1학년이니까요! 의심하지 않았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벨은 몇 번 서류를 들먹이더니 이만 내려놓았다.
그리곤 옆에 있던 의뢰 관련 서류를 꺼냈다.
이것이 이번 만남의 본론이다.
“최근 수도 인근 마을에 있던 가축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놈들이 이젠 겁도 없어졌는지 1주일마다 가축을 훔치고 있죠!”
“따로 발견된 흔적이 있습니까.”
“놈들이 지나가고 나면 일정한 흔적이 있어요! 늘 작은 동물부터 시작해서 큰 동물을 훔친다니까요? 거기다 끌려가는 가축들이 우는 소리마저 들은 사람이 없다고 해요!”
라제나는 수첩을 꺼내 그 흔적의 정체를 기록해나갔다.
“놈들이라고 하셨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빨라요!”
“……네?”
“훔치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마을의 가축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어요! 여럿이 아니고서야 그런 작업 속도는 불가능하잖아요!”
“맞습니다.”
라제나는 들을 건 다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의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넘어갔다.
“만약 놈들을 생포해 온다면 의뢰금에 두 배를 얹어주시겠다는 말. 사실입니까?”
“크레센티아의 이름을 걸고요! 범인을 생포한다면 100골드의 두 배인 200골드를 드리도록 하겠어요!”
이사벨은 꽃같이 화사한 미소로 방긋방긋 웃어 보였다.
딱히 신뢰가 가는 표정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성이 모든 신뢰를 책임져주었기에 딱히 상관은 없다.
“범행 장소로 가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라제나가 미련 없이 방을 떠난다.
이사벨은 또한 그처럼 멈추지 않고 방에서 나왔다.
다시 귀여운 막냇동생과 그의 친구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 시간이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