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161)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161화(161/354)
#161화. 깃발 잡기 레이스(4)
엘런은 비수의 칼자루로 손을 뻗어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오직 팔심만으로 몸을 끌어올려 그보다 조금 더 위에 있는 칼자루를 쥔다.
발은 얼마 전까지 손에 쥐고 있던 칼자루에 디뎠다.
이걸 무한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몸은 땅과 꽤나 멀어졌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올리면 아직 올라야 할 절벽이 한가득이었다.
“엘런, 엘런! 멍때릴 시간 없어! 지금 같이 바람이 안 불 때 얼른 올라가야 해!”
“간다, 가.”
밧줄로 묶여 있어 한 명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한쪽도 움직일 수 없다.
엘런과 카르디아는 서로 한 발짝씩 떼어가며 절벽을 올랐다.
“아이언 컨트롤!”
카르디아는 50개의 비수를 차례로 움직여 처음처럼 균일한 간격으로 절벽에 꽂아 넣었다.
“엘런! 체인은 준비해뒀지?”
“그래. 장전은 완료해뒀다.”
“좋아. 솔직히 비수가 불안정해서 잘못 힘을 주면 빠질 수도 있거든. 그럼 꼼짝없이 추락이니까 조심해야 해.”
“걱정하지 마라. 밧줄로 묶여 있으니까 네가 떨어지면 나도 죽어.”
“흐헤헤헷. 그러니까 어떻게든 구할 거다?”
엘런은 침묵으로 대답하며 다음 비수로 손을 뻗었다.
몸은 그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전진을 거듭했다.
“어때? 운동해두길 잘했지!”
“마력을 써서 완력을 증가시킨 거야. 운동이랑 상관없거든?”
“에이. 몸의 가동 범위가 완전 차이나! 운동하기 전에는 그냥 살아있는 목각 인형이었잖아!”
“……사람한테 목각 인형이 뭐냐.”
하지만 엘런은 더 이상 부정하지 못했다.
몸이 달라진 건 엘런 본인이 가장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르디아에게 듣는 훈수는 상황을 막론하고 열 받았다.
카르디아는 옆에서 킬킬거리며 비수를 조종했다.
“그런데 시에나는 이걸 모르는 사람이랑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와아, 진짜 불쌍하다.”
“그건 좀 그렇네.”
“그치? 겉으로는 안 그런 것 같아도 낯 엄청 가리잖아!”
“음? 나는 시에나랑 여길 올라가야 하는 놈을 애도하고 있었는데.”
“뭐, 뭐야. 시에나가 아니라?”
엘런은 피식하고 웃으며 비수를 붙잡았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것이 부자 걱정하는 거랑 황궁 걱정하는 거랑 천재 걱정하는 거라고 한다.
헌데 시에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었다.
“걔 승부욕에 치일 다른 놈을 걱정하는 게 맞아. 분명 쉬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다닐걸?”
“그, 그러려나?”
“그래. 걔는 크레바스 밑이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면 주저 없이 뛰어내릴 놈이야.”
“어우, 무섭네.”
카르디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만 보면 시에나는 강철보다 뻣뻣하다.
그만큼 고지식하고 돌아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나마 네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계획이 계획인 둘은 은근히 맞아떨어지며 절벽을 전전했다.
***
잡담을 나누며 오다 보니 어느새 절벽의 중간 지점까지 도달했다.
슬슬 마력으로 완력을 강화시켜도 팔이 후들후들 떨려온다.
계속 부릅떴던 눈도 아려오고 몸이 지치니까 집중력도 덩달아 희미해져 버렸다.
말똥말똥했던 카르디아의 눈도 어느새 가라앉고 있었다.
턱-
“읏! 차가워!!”
“정신 차려.”
“나, 나 안 잤거든!”
“잔 게 문제가 아니라 마법의 정밀함이 떨어졌잖아. 이러면 비수가 깊숙이 안 박혀서 떨어진다고.”
엘런은 손에 쥐었다가 쑥 빠져버린 비수를 카르디아의 앞에 들이밀었다.
카르디아는 고개를 확확 저으며 손바닥으로 제 뺨을 착착 때렸다.
“좋아!! 정신 차렸어!!”
“그럼 이제 기감을 높여봐. 이 주변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다.”
“뭐, 뭐라고? 그냥 다른 학생들 아니야?”
“다른 학생들이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지?”
엘런은 손가락으로 가까운 허공을 가리켰다.
눈바람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들의 사이로 어떤 흐릿한 인형이 움직이고 있다.
언뜻 새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것은 엘런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설원 하피야.”
“하피라면……. 반인반조(半人半鳥)?”
“맞아. 근데 설원에 사는 놈들이라 덩치가 더 크고 억세. 발로 쥐는 악력은 오크도 들어 옮길 정도야.”
“……그럼 우리가 아무리 비수를 세게 붙잡아도 떨어지겠네?”
“그렇다 봐야지.”
엘런은 대답과 동시에 그림 리퍼를 뽑아 들었다.
다리 한 개는 비수에 걸치고 다른 한 손은 비수를 잡고 있다.
그런 불안한 자세에서 저리 빠르게 날아가는 것들을 사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이건 정확한 조준이 필요 없었다.
[그림 리퍼 – 산탄형]터어엉-!! 터어엉-!! 터엉-!!
멀리서 쏘면 더 많은 걸 맞춘다.
게다가 이 총알은 자연풍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파바바바박-!!
파바바박-!!
퍼버버벅-!!
하피들의 몸체에 조각조각 갈라진 총알이 박혀 든다.
새하얗기만 했던 세상이 일순간 붉은색으로 물든 것도 잠시, 주변은 더욱 많은 날갯짓 소리로 잠겨나갔다.
“……이거 문제네.”
“야! 하피를 더 불러오면 어떡해!”
“난들 저렇게 무리가 있을 줄 알았나. 이거나 몸에 묶어둬.”
“체인?”
“아무래도 한바탕 해야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카르디아와 엘런은 멀린 수식으로 강화시킨 체인을 허리에 단단히 묶었다.
그녀는 절벽에 꽂아두었던 비수를 대부분 회수해서 허공에 띄웠다.
“그럼 가볼…….”
“잠깐.”
“또 왜!”
“조심히 움직여라. 우리가 묶여 있다는 걸 잊지 마.”
카르디아는 그 사실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지 스프링처럼 튕겨 나가려 했던 몸을 가라앉혔다.
“……그럼 어떡하지?”
“흐음, 사실 방법이 있긴 한데. 너도나도 밧줄에 구애받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방법이야.”
“빨리 해봐! 하피들이 점점 더 모여들고 있어!”
엘런은 제자리에서 가볍게 움직였다.
“이제 됐다.”
“……?”
카르디아의 등에 엘런이 업혔다.
종종 그를 들어 올렸던 만큼 무겁진 않았으나 그보다 훨씬 커다란 당혹스러움이 그녀를 덮쳤다.
“이게 방법이야?”
“응. 너는 너 맘대로 움직일 수 있고 나는 내 맘대로 싸울 수 있어. 이게 최선의 방법이다. 게다가 너도 아까 내 등에 탔잖아. 이건 쌤쌤이야.”
“하, 씨. 묘하게 설득되는 게 빡치네.”
“그럼 출발.”
“씨발.”
카르디아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몸을 조금씩 움직여 그를 등에 안착시켰다.
엘런은 그 탑승감(?)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확실히 프로스트 골렘보다 따뜻하고 안정성도 훨씬 좋네. 골반에 다리도 걸칠 수 있고. 예상대로 편안한 승차감이야.”
“……사람을 마차 시트 평가하듯 말하지 말아 줄래?”
“집중. 하피가 온다.”
“이 새끼, 지 불리할 때만 말 돌리는 것 봐.”
카르디아는 투덜거리며 비수를 움직였다.
슈슈슈슈슈슈슉-!!
50개의 비수는 확실히 많은 숫자였지만 물량 공세라면 저쪽이 몇 수나 더 위였다.
안개 같은 바람 너머로 하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놈들은 털갈이하는 개처럼 날개를 마구 털어댔다.
아까 카르디아가 비수를 뿜어냈던 것처럼, 하피의 예리한 깃털들이 폭우가 되어 내려왔다.
“이런 젠장!!”
“절벽을 타고 움직여. 체인이 받쳐줄 거야.”
“알았어!”
카르디아는 등에 엘런을 업고 절벽의 벽면을 마구 질주했다.
칼날 깃털은 애꿎은 절벽을 때리기 일쑤였고 현재의 카르디아는 공방 일체다.
“엘런! 쏴!”
“알고 있어!”
“6시 방향!”
“그것도 알고 있어.”
터어엉-!! 터엉-!! 터어엉-!!
깃털을 뿌리는 것보다 방아쇠를 당기는 게 훨씬 쉽다.
맞추기도 훨씬 쉽다.
정확한 조준 없이 겨누고 쏘기만 하면 하피들은 땅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12시 방향! 하피들이 더 몰려온다!”
“……이것들은 자꾸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피 냄새를 맡고 오는 건가 봐!”
카르디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주변을 살폈다.
아까부터 계속 체인을 몸에 묶은 채 절벽을 내달리고 있긴 하지만 이건 시간 끌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피 떼들을 전부 죽이는 건 무리.
그럼 결국 저 추적을 떼어내야 한다는 건데 이렇게 훤히 드러난 절벽에선 무리.
엄폐물 하나 없이 훤한 절벽에서 몸을 숨기는 것도 무리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엘런! 나한테 방법이 있어! 협력해!”
“뭔지 알려주고 협력하라 하는 게 보통 아니야?”
“상황이 상황이잖아! 오크 워로드의 심장을 뚫을 뻔했던 총알! 그게 필요해!”
“준비할 순 있어.”
“좋아! 그럼 내가 신호하면 절벽에 쏘는 거야!”
카르디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주먹 위로 마법이 장갑처럼 덧씌워진다.
엘런은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하피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매섭게 추적해오고 있다.
저 정도면 정말 둥지에 있는 무리 전부가 왔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카르디아. 계획이 뭔지는 몰라도 얼른 해야 할 것 같은데.”
“보채지 마! 지금 바로 할 거니까!”
카르디아는 ‘흐읍!’ 하고 숨을 삼켜내며 발을 디딘 절벽을 강하게 박찼다.
그녀의 몸이 공중에 부웅 떠오른다.
촤르르르르르-
그녀의 몸을 묶고 있던 체인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마치 그네를 타는 것처럼, 카르디아의 몸은 부채꼴을 그리며 다시 절벽과 마주했다.
하지만 그냥 바라보고만 있진 않았다.
한껏 당겨져 있던 주먹이 가공할 힘을 담은 채 끝으로 집중된다.
“지금!!”
[그림 리퍼 – 관통형]철컥-
투콰아아아앙-!!
조각 쉴드로 똘똘 뭉친 총알이 나선형으로 날아가며 절벽에 처박혔다.
외벽은 쩌저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지만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벽면에 못을 가져다 댔으면 이제 망치가 나설 차례.
“흐아아압!!”
카르디아는 포효를 내지르며 허공에서부터 받은 추진력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꽈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르르-!!
절벽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언제부터 쌓인 지 감도 안 잡히는 눈더미가 진동으로 울부짖었다.
“숙여!!”
“이게 뭔……!”
카르디아는 등에 있는 엘런을 앞으로 옮겨서 절벽으로 바짝 붙었다.
쿠과과과과과과과-!!
하늘이 무너졌다.
눈으로 만들어진 해일은 천장에서부터 쏟아져 주변의 모든 걸 파묻어버렸다.
절벽과 가까운 곳에서 날고 있던 하피들은 그 파도에 휩쓸려서 어딘가로 떠밀려 내려갔다.
몇 초간의 굉음과 함께 재해가 지나가니, 세상은 한껏 깨끗해졌다.
눈 덮인 바람이 사라지고 깨끗한 하늘이 인간 따위 가볍게 압도할 것처럼 펼쳐져 있다.
그 위에 뜬 태양은 모든 것을 굽어살피며 밝게 비추었다.
“하하하하핫!! 엘런! 엄청 재밌었다! 그치?”
지금 자신을 절벽에 밀어붙인 채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밀착해 있는 여자 또한 태양은 밝게 비추었다.
눈사태로 떨어진 눈송이들이 그녀의 상앗빛 머리카락에 아이스크림 토핑처럼 얹어져 있다.
여자는 언제나와 같은 천진한 미소와 함께 깔깔깔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르디아는 말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남자를 불렀다.
“엘런……?”
“응.”
“혹시……. 화난 거야……?”
“내가 왜.”
“그, 그냥 내가 아무 말 없이 이런 눈사태를 일으켜서……?”
엘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화를 낼 이유를 굳이 찾아야 한다면 지금 우리가 너무 가깝다는 것뿐이야.”
“……가깝다고?”
카르디아는 지금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았다.
상체는 바짝 그에게 밀착시키고, 이마를 그와 맞대었으며 손은 그의 허리를 감고 있다.
“커흐으음……. 이, 이 정도야 전투 중에 우발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지?”
제발 그렇다고 해줘!
엘런은 지금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카르디아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질 것 같아 이내 긍정했다.
“그럴 수도 있지.”
“마, 맞아. 그러니까 이제 다시 올라가자.”
얼마나 당황한 건지 하이톤 보이스를 유지하던 카르디아가 갑자기 중저음을 찾게 되었다.
“이제 정상까지도 얼마 안 남았네. 아까워. 네 등에 올라타는 건 생각보다 편했는데 말이야.”
그 말에 카르디아의 혀는 제 주인도 모르게 움직였다.
“가, 가끔 태워줄게.”
“뭐……?”
“아, 아,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혹시나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 타도 된다는 거야!”
엘런은 피식 웃으며 카르디아가 절벽에 꽂은 비수로 손을 뻗었다.
“나도 평소 아무 때나 네 등에 올라탈 생각은 없어.”
“그,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 다시 등반에 집중하라고!”
“집중은 너가 더 못하는 거 같은데.”
카르디아는 부끄러움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수업하러 왔다가 흑역사만 잔뜩 만들고 가는 기분이지 않은가.
그녀는 오늘의 사실이 바깥으로 퍼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절벽을 올랐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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