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170)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170화(170/354)
#170화. 미켈레(4)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엘런은 딱 한 번 목도했던 변화였다.
일전에 심장이 뜯긴 오크 워로드가 광폭화할 때, 엘리스가 전투에 난입한 순간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렸다.
어떤 성의 없는 화가가 완성된 풍경화에 흰색 물감과 붓만 들고 나타난 것처럼, 세상은 더없이 하얗게 칠해졌다.
엘런은 2차 각성을 완료하고 음기 회로를 구축하여 이젠 크레센티아의 비기를 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엘리스가 세상을 하얗게 칠해버린 이유를.
“이 공간 안에서 빙속성의 위력이 말도 안 되게 오르고 있어.”
“병법에 이르길, 뛰어난 장수는 질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 크레센티아도 마찬가지야.”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은 아닐 텐데.”
병법서는 질 게 뻔한 싸움이라면 어떤 치욕이 있더라도 돌아가란 뜻에서 그런 말을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크레센티아는 이걸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질 싸움을 하지 않아야 한다면, 질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엘런이 이걸 곧이곧대로 따라 하긴 어려울 거야.”
[세부 특성 – 무채색]쩌저저저저저적-
색깔을 가졌던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엘리스의 얼음으로 물들어간다.
하얀색으로 칠해져 간다.
엘런은 주변에 눈짓하며 엘리스의 말을 이해했다.
“누나의 세부 특성이구나.”
“맞아. 내 세부 특성은 빙속성 마력을 주변에 원하는 농도로 입힐 수 있어. 사막의 모래도 내 세부 특성이라면 극지대로 만들 수 있지.”
“그래서 누나가 항상 최강일 수 있는 환경이 나오는 건가.”
엘리스는 조금 전까지 극대노로 분노가 만연했던 표정은 어디 가고, 살짝 고개를 돌려 엘런의 볼을 쓰다듬었다.
“나뿐만이 아니야. 내 옆에 있는 모든 크레센티아가 최강이 되는 거지.”
“역시…….”
엘런은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제껏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강한 힘이 손바닥에 맴돌았다.
여기서라면 그 어떤 빙속성 마법을 펼쳐도 자신을 단단히 뒷받침해 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여기 남매의 우애가 고깝게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 여기 저도 있는데요? 무시하시는 건가요?”
“그게 마지막 유언인가.”
“어머, 무서워라. 남매의 우애가 보기 좋아서 냅뒀더니 이젠 살짝 깨기 시작하네요. 형제님에겐 미안하지만 마경에 필요한 건 사제뿐이니까, 쓸데없는 가축은 죽이도록 할게요?”
“그렇겐 두지 않아.”
엘런은 엘리스의 뒤에서 나와 그녀의 옆에 섰다.
“……엘런. 머리카락이.”
“응. 알아.”
그의 머리카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찬란한 은발로 밤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마경에 노출되면 이런 염색 마도구 같은 것들은 힘을 잃고 그 색이 빠져버린다.
가짜 마경 정도야 염색 마도구가 버텨줬지만, 눈앞에 사제 같은 농도 짙은 마경의 힘에는 염색약이 버티질 못했다.
엘런은 말했다.
“누나.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알고 있어.”
베시미아는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은발의 인간을 눈여겨보았다.
저 은발이 무슨 특징이라도 되는 걸까?
옆에 형제님도 그렇고 가축년도 그렇고 절대 만만히 볼 수 없는 힘을 가졌다.
“정말로 형제님 옆에 있는 가축은 죽여야 하겠는데요? 사제의 자격도 없으면서 사제를 위협할 힘을 갖추다니. 이건 위험해요.”
“그렇게 입만 털 거면 이쪽에서 먼저 친다.”
“엘런. 보조해줘.”
엘리스가 손을 사선으로 그어 내렸다.
[크레센티아 제2비기 – 진눈깨비]쏴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내려오던 큼지막한 눈 결정들이 엘리스의 손짓에 따라 좌우로 불어닥친다.
그 물기 섞인 결정들은 어깨에 하나씩 더하면 더할수록 그 무게를 미친 듯이 늘렸다.
“이런 공격은 또 처음이네요. 속박기인가요?”
“진짜 속박기는 이거거든.”
[체인 – 멀린 수식]촤르르르르르-!!
허공에서 마법진이 꽃처럼 피어난다.
그 속에서 사람 주먹만 한 사슬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베시미아의 사지를 결박했다.
죄인을 묶고 사형대에 올렸으면 이제 집행인이 나서야 하는 법.
집행인은 칼날을 들어 올렸다.
[크레센티아 제1비기 – 빙살(氷殺)]서걱-!!
베시미아의 목이 잘렸다.
그것은 바닥으로 통통하고 떨어져 눈 위를 몇 바퀴 굴렀다.
후드에 가려진 얼굴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후드의 깊이 탓에 잘린 얼굴은 그 안에 봉지처럼 담겨 있었다.
콰가가강-!!
저벅- 저벅- 저벅-
베시미아가 일어섰다.
목 위로는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 깨끗하게 사라진 베시미아가 일어섰다.
그녀는 크레센티아의 속박을 몸의 떨림 한 번으로 부숴버리고, 떨어진 목을 아무렇지 않게 주웠다.
그리고선 후드에 묻은 눈을 탈탈 털더니, 이내 목으로 가져갔다.
턱-
탁자에 물건 올려두는 소리가 목에서 난다.
엘리스는 침묵하고 있던 입을 열었다.
“정말 괴물은 괴물이구나.”
“나는 이제 익숙해졌어. 목 한 번 잘린 것 정도로는 죽지 않나 봐.”
“그렇다면 어딘가 핵이 있을 거야. 골렘도 신체를 부수는 것 정도로는 죽지 않으니까.”
둘의 목소리 사이로 베시미아가 끼어들었다.
“와아. 역시 남매라 그런가요? 호흡이 좋네요! 끼어들 틈을 못 찾겠어요.”
“마음에도 없는 칭찬은 그만두지.”
“아니에요! 마음에도 없다뇨! 엘런 형제님을 사제로 각성시키면 그 옆자리에는 이제 제가 있게 될 텐데, 그때도 좋은 호흡을 보여주실 거잖아요. 그렇죠?”
“……그럴 일은 없어.”
“그건 모르는 일이죠. 혹시 알아요? 제가 강제로 데려가지 않아도 엘런 형제님이 자진해서 제 품에 안길지.”
“이만 닥쳐라.”
이제 헛소리는 충분히 들어줬다는 듯 엘리스는 제 손을 뻗었다.
무언가를 쥐듯이 허공을 움켜잡은 그녀는 크레센티아의 음기를 끌어모았다.
[크레센티아 제3비기 – 습설(濕雪)]베시미아의 몸에 묻은 축축한 눈들이 삽시간에 얼어붙기 시작했다.
물은 얼으면서 부피를 늘려나가고 그 위에 또 다른 눈 결정을 얹으니, 베시미아는 삽시간에 새하얀 얼음 동상이 되었다.
“얼어붙은 건 유리 같아서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지.”
엘리스는 손가락을 말아 허공에 튕겼다.
그 조그마한 손짓은 뾰족한 바늘이 되어…….
와장창창창-!!
베시미아란 풍선을 터뜨렸다.
살점과 내장이 한데 뒤섞여 구토감을 일으키는 끔찍한 사람의 얼음 파편이 바닥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파편들은 신기루처럼 흐릿해졌고 곧이어 멀쩡한 베시미아가 다시 나타났다.
“재밌네요. 가축이 선사하는 것치곤 신선한 경험이기도 하고요.”
“……분명 핵이 통째로 얼려져서 파괴되었을 텐데. 어째서 살아 있는 거지.”
“핵이요? 마경의 사제들이 그런 질 낮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줄 아시나요?”
베시미아는 후드 안에서 배시시 웃더니 사제들이 기도하듯 손바닥을 마주 붙였다.
“그렇게 이해가 안 되면 한번 느껴보세요. 마경의 힘을.”
온다.
일전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기절시켰던 그 힘이 오려 한다.
엘리스는 처음과 같은 시릴 듯한 무표정으로 베시미아를 마주했다.
올 테면 와보라는 듯, 그녀는 한 치의 물러섬도 떨림도 없는 표정으로 사방에 혹한의 와류를 불러일으켰다.
“주먹 크기로 잘라도 회복한다면, 이젠 분자 단위로 파괴해주마”
[크레센티아 제2비기 – 진눈깨비] [프로스트 스크림 – 멀린 수식] [다이아몬드 엣지 – 멀린 수식] [블리자드 – 멀린 수식] [눈보라 – 멀린 수식]…….
크레센티아의 비기부터 온갖 고등위 마법이 엘리스의 손에서 쏟아졌다.
엘런은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수준의 마법진들이 사방에서 펼쳐졌고, 그것들은 성공률 95% 멀린 수식과 더해져 더욱 광포한 위력을 뽐냈다.
사방에서 얼음과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귀곡성처럼 울려 퍼졌다.
뭐라 알아듣기도 어려운 굉음, 폭음, 파음과 한 몸이 되어 베시미아는 겨울에게 덮쳐졌다.
***
시간이 멈췄다.
이 세상이 멈췄다.
사방에서 해일처럼 밀어닥치던 혹한의 폭풍은 시간의 통제하에 제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정지된 세계를 자유롭게 거니는 건, 오직 마경의 사제복을 차려입은 베시미아가 유일했다.
그녀는 겨울 사이를 걸어 다니며 기다란 은발을 바람결에 휘날리는 여자 앞에까지 왔다.
“흐응, 솔직히 샘난단 말이죠. 형제님 옆자리가.”
고작 가축 따위가 차지하고 있을 가치가 아니다.
이 자리는 똑같은 사제의 자격을 가지고 그런 사제들조차 내려다보는 위치인 자신이 있어야 올바르다.
베시미아는 이만 엘리스에게서 눈을 돌려 그녀와 똑같이 멈춰선 엘런을 바라봤다.
“이번 건 저항하기 힘들죠? 완전히 사제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걸려들 수밖에 없도록 제가 기운의 밀도를 엄청나게 높였답니다. 형제님의 저항이 워낙 거세니까 어쩔 수 없었다구요. 그러니까 이건 제 책임이 아니에요.”
그녀의 기다란 소매에서 손가락 하나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 손가락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했고 잿가루를 칠한 듯 새하얬다.
쑤우욱-
마치 창날을 벼리듯, 베시미아의 손가락과 손톱이 기형적으로 길어진다.
손가락의 관절을 따라 낫처럼 휜 그것은 손톱 끝이 엘런의 이마로 올라갔다.
“제가 이제 뭘 할 거냐면요. 형제님의 이마를 뚫어서 뇌까지 손가락을 집어넣을 거예요. 그다음에는 뇌 안에 직접 마경의 기운을 불어넣어서 세뇌를 시킬 거랍니다?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예? 맞춰보세요!”
베시미아는 언뜻 신나 보이는 목소리로 엘런의 이마를 살살 긁었다.
“제가 원하는 대로 뇌가 짜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완전한 제 인형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제 꼭두각시가 되고 나면, 저와 함께 옆에 있는 가축을 공격하는 거죠!! 어때요?! 듣기만 해도 대단하지 않나요?!”
상상만 해도 황홀하다.
사랑해 마지않는 동생을 눈앞에서 빼앗기면 이 고고한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 눈에서 어떤 게 흘러나올까.
저항은 할까?
아마 못하겠지?
손가락 하나로 눌러 죽일 수 있는 동생이라도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려댈 거야.
베시미아는 입 밖으로 흘러나온 침방울을 닦아냈다.
“그럼 이제 시작하……기 전에. 그래도 보호자 동의는 받아야겠죠?”
그녀는 제 얼굴을 엘리스의 눈 가까이 들이밀었다.
손가락 한 마디 차이로 그녀와 붙은 베시미아는 말했다.
“저기요, 가축 씨? 제가 이제부터 가축 씨의 잘난 동생분을 세뇌하려 하는데, 동의하시나요?”
──묵묵부답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저기요~? 계속 대답이 없으시다면 제가 가축 씨의 귀하신 동생분을 제 맘대로 세뇌해버려요!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베시미아는 자신의 귀에 손바닥을 감싸고 엘리스의 입에 가져갔다.
엘리스의 분홍빛 입술은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애초에 움직일 리가 없지.
베시미아는 입꼬리를 틀어 올리며 엘리스의 은발을 손으로 쓸어넘겼다.
그 새하얀 피부와 함께 신이 직접 조각칼을 들고 나선 듯한 미모가 월광 밑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가축이면 가축답게 찌그러져 있었어야죠. 세상의 적통한 주인에게 어딜 이빨을 드러내요?”
짜악-!!
엘리스의 고개가 무표정으로 반쯤 꺾여졌다.
그녀의 뺨을 거세게 후려친 베시미아는 다시 엘리스의 얼굴을 똑바로 돌리고 내려치길 반복했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짜악-!!
그렇게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고 나니, 엘리스의 뺨은 어느새 퉁퉁 불어있었고 입술은 새빨갛게 터져 있었다.
그럼에도 표정은 처음과 같이 고고하다.
시간이 정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시 말 안 듣는 가축에겐 채찍이 필요하죠.”
베시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그럼 이제 얼굴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게 바꿨으니까, 다시 한번 물어볼까요? 가축 씨! 제가 엘런 형제님을 세뇌시켜도 될까요?”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엘리스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그리곤 거칠게 흔들었다.
엘리스의 머리가 베시미아의 손짓에 따라 위아래로 마구 털렸다.
“어머, 어머, 어머!! 이렇게 격한 동의를 해주시다니! 한 명의 사제로서 너무 감동이에요!”
베시미아는 양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과장되게 호들갑을 떨었다.
“가축 씨에게도 저에게도 오늘은 무척 기쁜 날이니까! 그런 무표정 대신 스마일~!”
베시미아의 손가락이 엘리스의 입꼬리를 잡고 위로 끌어당겼다.
엘리스의 표정은 베시미아의 뜻대로 반죽되었다.
베시미아는 그제서야 다시금 빙그레 웃으며 손톱의 끝을 엘런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자자~! 보호자 동의도 얻었으니까 이제 합법 세뇌를 시작해볼까요?”
쿠욱-
엘런의 이마로 손톱이 한 움큼 들어갔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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