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177)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177화(177/354)
#177화. 자유의 대가(4)
하아아-
누군가의 한숨 내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알렉산드라의 붉은 입술에서 빠져나온 숨은 총장실에서 영혼을 내뱉듯 깊게 내쉬어졌다.
“그 양반은 여길 갑자기 왜 찾아온다는 거야.”
오늘은 어제 오후부터 누군가 잡아둔 약속 때문에 그 시간 동안의 일정을 싹 비워두었다.
제국 아카데미 총장이라는 거물에게, 특히 알렉산드라라는 거물과 잡는 약속은 본래 한 달을 쏟아부어도 무리다.
그러나 어제 대면 만남을 잡아둔 자는 통보 없이 당장 저 문을 뚫고 들어와도 무리 없는 사람이었다.
전화로나마 약속을 한 건 최소한의 예의를 차린 것이다.
하여 알렉산드라는 그녀가 양반이라 칭한 자 때문에 본래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을 싸그리 갈아버렸다.
“쯧. 하여간 그 가문은 이게 문제야. 뭘 하든 다 제멋대로지.”
알렉산드라는 입버릇처럼 으레 하는 ‘그’ 가문 욕하기로 시간을 때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알렉산드라가 따뜻한 커피를 세 잔쯤 비울 때, 밖에서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총장님. 게르슐 경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와.”
끼이이익-
문이 둔중한 소리와 함께 열린다.
남자는 열린 문과 문틀을 넘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저벅- 저벅- 저벅-
분명 갑옷도 입지 않고 허리에는 남자의 장기인 칼도 차지 않았건만.
그 자체로도 세상을 광오하게 내려다보는 1인자의 눈빛이 저 인자한 인상에서 엿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알렉산드라 총장님.”
“헹. 그래도 내게 경어를 붙이긴 하는구나?”
“단순히 나이로만 따져도 그럴 이유는 충분하지요.”
“……나이 얘기는 빼줄래? 안 그래도 요즘 나이 때문에 민감하구만.”
“드래곤이 하는 농담치곤 재밌습니다. 그보다 여전히 취향은 확실하시군요.”
게르슐은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녀의 방은 말 그대로 화려, 화려, 화려, 화려했다.
화려하다란 말 하나로는 이 방을 표현하기에 충분치 않다.
분명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고 미량의 햇빛만이 방을 비췄음에도, 방을 장식한 수많은 보석들 덕에 전혀 어둡지 않았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잖아. 난 아직 죽을 때가 아닌가 보지.”
“예. 안 그래도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여길 찾아온 이유가 뭐길래, 천하의 게르슐께서 이리 혀를 놀려대실까? 요즘 부인이 통 상대해주지 않아?”
게르슐은 옅게 미소 지었다.
곧이어 그의 앞에 미리 타둔 커피가 놓인다.
알렉산드라는 어서 먹어보라는 듯 손짓했다.
“마셔. 내가 타준 커피 마셔본 사람 이 세상에 흔치 않다?”
“저희 선조 님도 드셔 보았을 맛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마시겠습니다.”
“씨펄. 뭔 경건까지야. 그냥 처먹어.”
“그럼.”
게르슐은 살짝 고개를 돌려 커피를 한 모금 맛보았다.
볼 한쪽이 살짝 차오를 만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양을 목구멍으로 넘겼으나 게르슐은 그 맛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커피란 게 말이야. 내가 근 600년을 타봤는데 여전히 맛있게 못 만들겠더라고.”
“…….”
게르슐은 텁텁한 커피의 맛에 입을 달싹였다.
커피가 아니라 어디 흙탕물을 퍼서 잔에 올린 듯, 입안에 살짝 까끌까끌한 것이 씹힌다.
“근데 데카마드는 이것보다 더 맛없는 걸 마셨다? 나름 발전한 거야.”
“저에겐 다행이지만 선조 님에겐 꽤나 불행한 소식이군요.”
“크흐흐흑. 그래서 뭔데. 이 맛 없는 커피를 참아가면서 나한테 쪼르르 달려온 이유가.”
“딸아이가 전화를 했습니다.”
“딸아이라면 이사벨은 아닐 테고. 아, 그런 의미가 아닌 건 알지?”
게르슐은 살짝 웃어 보였다.
“이사벨은 워낙 선머슴 같은 아이니 저도 이해합니다.”
“흠흠. 그래서 엘리스가 너한테 전화를 했는데 뭐?”
“전화 내용이 이렇더군요.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오, 무슨 일이길래 제국제일검의 도움이 필요했을까? 세상이라도 뒤엎으려 그러나?”
게르슐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알렉산드라의 손이 멈칫거렸다.
어?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되는데?
알렉산드라가 눈을 살짝 치켜뜨자, 게르슐은 말을 이었다.
“비슷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을 뒤엎는 것과 비슷한 일. 적어도 엘리스에겐 그렇게 느껴질 만 한 일이었죠.”
“……뭔지 대충 예상이 가네.”
“아마 그 예상이 맞을 듯합니다.”
“상부 때문이야?”
“그렇습니다.”
게르슐의 긍정에 알렉산드라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제 알렉산드라에게도 상부는 계륵 같은 존재였다.
예전에는 분명 필요했지만 600년의 역사 속에서 그 필요성은 점점 퇴색되고, 이젠 인간의 더러운 욕구만이 남아버렸다.
알렉산드라는 말했다.
“그래서 상부를 어쩌자고.”
“엘리스 그 아이는 저의 도움으로 상부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달라 하였습니다.”
“그럼 돌리면 그만이잖아.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을 텐데.”
허나 게르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리스가 말하길 자기 몸 정도야 자신 혼자서 충분히 지킬 수 있지만, 이젠 상부의 손이 엘런에게까지 닿으려 한다고 말하더군요.”
“호오, 그래서? 귀여운 막내아들이 상부의 손에 짓눌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여기까지 왔다?”
“아니요. 엘런의 상태 여부야 전혀 상관없습니다.”
“……?”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엘런 때문이 아니라, 엘런의 발전이 그 이유입니다. 엘런은 이 학교에 오고 반 학기 만에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운동도 하고 친구도 사귀며 사람답게 살기 시작했죠.”
헌데 그 변화의 서막을 지금 웬 같잖은 존재들이 엎으려 하고 있다.
이제 즐길 것도 다 즐기고 인생에서 남은 행복은 아이들이 잘 커가는 것밖에 없는데, 그런 아버지의 행복을 누군가 앗아가려 한다.
“엘런이 퇴학을 당하고 저의 기사단에 입단해도 여기 학교에서만큼 긍정적이고 자연스럽게 바뀌진 않을 겁니다. 이 학교는 엘런에게 꼭 필요한 장소입니다.”
엘런을 계약으로 학교에 입학시킬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차라리 얼른 퇴학당해서 집에 돌아오면, 기사단에 처넣은 다음에 대륙 원정을 시작할 계획으로 가슴이 충만했다.
그런데 이사벨의 실수 아닌 실수로 막내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날.
정확히 그날 게르슐의 마음은 바뀌었다.
“아들이 세상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있습니다. 그 똑똑한 머리를 자신을 위해서든 누구를 위해서든 이제 한 번 써보려 하는데, 여기서 외부의 손이 끼어드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크흐흐흣. 말은 빙빙 돌고 있지만 결국 막내아들이 인생을 열심히 보내는 게 좋다는 거 아냐.”
“그렇습니다.”
“이제 네 입으로 정확히 말해봐. 내가 눈치 없이 가만히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게르슐 폰 크레센티아.”
원하는 게 뭐냐?
알렉산드라가 물었다.
게르슐은 이 짧고도 굵은 물음에, 똑같이 짧고 굵은 대답으로 끝마쳤다.
“제초입니다.”
“……제초?”
“말 그대로입니다. 길게 자란 잡초들을 전부 쳐내고 마당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죠.”
“그 잡초들은 상부일 테고?”
“정확합니다.”
게르슐이 여기 온 목적.
그것은 상부를 전부 눈앞에서 치워버리겠다는 자신의 뜻을 알렉산드라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알렉산드라는 가만히 그의 말을 입에서 굴리다가 게르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고 있잖아. 학교 예산 중 절반은 상부가 수납하는 돈으로 굴러간다는 걸.”
“당연히 인지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상부는 거대한 조직이니, 그들의 빈자리도 커다랗겠지요.”
하지만 크레센티아보다 거대할 수는 없다.
게르슐은 이미 마음을 먹은 듯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저희 크레센티아가 제국 아카데미의 새로운 상부가 되겠습니다.”
“새로운 상부라……. 자신 있는 건가?”
“크레센티아의 칼날은 예리합니다. 그 어떤 것이라도 베어낼 수 있습니다.”
“그 칼날의 예리함을 의심하는 건 아니야. 내가 의심하는 건 놈들은 이 학교에 생각보다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거다. 눈앞의 거목을 베어냈다고 기뻐해선 안 되지. 그 뿌리는 거목의 기둥보다 더욱 비대할 테니까.”
알렉산드라의 말이 옳다.
또한 게르슐도 그 부분에 대해선 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커다란 만큼 일은 급히 진행하면 안 됐다.
오늘 게르슐이 여기 온 이유는 말 그대로 잡초들을 베어내기 위해 지주(地主)에게 허락을 맡고자 온 것이다.
“총장님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허락만 해주신다면 나머지는 저희 크레센티아가 알아보도록 하죠.”
“좋아. 제초를 하든 땅을 갈아엎고 화전(火佃)을 하든 맘대로 하라고.”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알렉산드라는 눈을 감고 자신이 탄 맛없는 커피를 음미했다.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잔에 따라 마시는 커피는 분명 대단한 맛이 날 것 같지만, 저 커피는 확실히 맛없었다.
게르슐은 뭔가 물어볼 게 있는지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딸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상부란 조직이 벌이는 행태가 꽤나 불결하던데, 총장님께선 왜 그들을 청소하지 않고 내버려두셨습니까.”
“날 추궁하는 건가?”
“당치도 않습니다. 어차피 곧 치울 쓰레기들인데 추궁하여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의문에 불과할 뿐입니다.”
알렉산드라는 게르슐을 바라보다가, 아니 정확히는 그의 은발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냥 무서웠다.”
“……예?”
“상부는 내 실패와 다름없으니까. 놈의 꿈에 내가 뿌린 오물과 다름없는 것이니 똑바로 외면하기 무서웠다.”
알렉산드라는 커피잔에 얼굴이 비쳐 보일 만큼 고개를 숙였다.
“그놈에게 미안해서, 이때 동안 외면하고 말았다. 그 외면과 무능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상부를 만든 것이지.”
알렉산드라의 턱은 여전히 틀어져 있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부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듯.
부모의 기대감을 저버린 아이가 고개를 숙이듯.
알렉산드라는 그 반짝이는 은발을 쳐다볼 수 없었다.
게르슐은 무겁게 고개를 주억였다.
“괜한 걸 물어봤군요. 죄송합니다.”
“됐다. 이제라도 내 무능을 치울 수 있다니까 다행이야.”
“그럼 이제 일어나 보겠습니다.”
“그래라.”
게르슐은 문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상부는 제가 내년 안에 학교에서 지워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십시오.”
쿵-
게르슐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다시금 방 안이 조용해진다.
알렉산드라는 그 속에서 조용히 웃었다.
오늘따라 그놈이 더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다.
***
학생회실.
평소 학생회 회의를 위해 모이는 방이지만 오늘은 징계 위원회 회의에 더 가까웠다.
부학생회장, 도르마 데 빈체로는 학생회의 임원들 앞에 섰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유는 1학년 엘런 이안느의 수사 때문이야.”
“1학년 생활 구역 서쪽 숲 파괴를 말하는 거구만. 근데 그게 정말 이놈이 한 짓이 맞아?”
“증거물과 정황을 보면 거의 확실해.”
“그럼 끝난 거 아니야? 징계를 어떻게 때릴지만 정하면 되는 거잖아. 굳이 수사가 필요한가?”
“거기서 뒷장에 보면 미켈레 건에 대한 징계도 같이 추가하라고 되어 있어.”
서쪽 숲 파괴와 미켈레 파괴.
미켈레는 테러리스트를 잡은 거니까 이걸 잘 어필하면 솔직히 1학년 정도에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수도 있다.
또한 그 처벌의 정도는 단 한 명에 의해 결정된다 봐도 옳았다.
모두가 고개를 틀어 한 명을 바라보았다.
회의실 중앙 상석에 앉은 엘리스는 그 시선들을 받아내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솔직히 이걸 아무런 처벌 없이 넘기긴 힘들다.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 했다.
삑-
그때 학생회 중 하나가 엘런이 찍힌 옵저버 영상을 틀어보았다.
중앙성 창문에서 빠져나가는 것부터 시작된 영상은 곧이어 그가 광장에서 춤을 추는 부분으로까지 이어졌다.
“크하하학! 저놈 춤 더럽게 못 추네!”
“그것보다 춤은 왜 춘 걸까? 저런 달밤에?”
“감성이 충만해졌나 보지. 그게 아니라면 무슨 병이라도 걸렸거나.”
“몽유병? 뭐 이런 거 말하는 거냐?”
“낸들 알겠냐.”
쿵-
누군가의 손이 책상을 내려쳤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의 진원지는 그 어떤 대지진보다 위험한 울림을 가져왔다.
“에, 엘리스. 미안해.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지?”
“야, 야 이 새끼야! 회의 시간에 누가 이렇게 떠들래?”
“너, 너도 같이 떠들었잖아!”
“몽유병.”
“으, 응? 뭐라고?”
중간에 끼어든 엘리스의 목소리에 모두가 다시금 조용해진다.
엘리스의 입가에는 어둠 속에서 광명을 찾은 순례자처럼 미소가 천천히 내리깔렸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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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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