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178)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178화(178/354)
#178화. 자유의 대가(5)
오늘도 여느 때처럼 피곤하디 피곤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엘런은 오늘도 덩컨의 수업에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사실 거기서 실패한다 해도 죽진 않았겠지만 죽을 만큼 아팠을 것이다.
게다가 아픈 건 죽도록 싫으니까 죽도록 고생해서 그 난관들을 헤쳐나왔다.
“교수님이 북부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가. 왜 이렇게 추운 걸 좋아하는 거야.”
추운 걸로 투덜대기엔 본인부터가 빙속성과 얽히고설킨 게 많았지만, 엘런은 그 모순을 나태함 하나로 지워버렸다.
“지난번에는 크레바스를 피해서 움직이라더니, 이번엔 크레바스에 빠뜨리고 시작하는 게 어딨어.”
엘런은 옷 사이사이 끼어들어 간 눈더미를 탈탈 털어냈다.
머리카락 끝에는 땀이 얼어서 살짝의 단단함마저 느껴진다.
엘런은 머리카락을 확확 털며 텔레포트 마법진에서 내려왔다.
아니 내려오려고 했다.
철컥-! 철컥-! 철컥-!
갑자기 마법진의 좌표 설정이 제멋대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평소 저 좌표 설정은 학생이 마음대로 건들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교수들이 수업 장소의 좌표를 설정하면 알아서 뒤바뀌는데, 그 현상이 엘런의 눈앞에 다시 한번 더 벌어졌다.
“……뭐야, 이거. 날 어디로 보내는 건데.”
좌표는 난생처음 본 곳이었다.
즉, 교수실이나 어디 강의실은 아니란 소리인데.
화아아아악-!!
텔레포트의 청광이 평소보다 더 찬란하게 자신을 덮친다.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나 엘런을 맞이하는 건 여전히 눈을 감은 것 같은 어둠뿐이었다.
엘런은 그림 리퍼를 손에 쥐고 마력을 전신으로 활발하게 돌렸다.
뭐가 나오든 머리를 날려버린다.
딸깍-
천장의 조명이 갑작스레 켜진다.
엘런은 그제서야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간호실?”
“응. 맞아. 장학생. 여긴 간호실이야.”
엘리스의 목소리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장학생이라 불렀다.
평소와 달리 아주 건조한 호칭이다.
엘런은 본능적으로 이 상황이 매우 공적임을 알 수 있었다.
‘덩컨 교수님 때와 같은 상황인 것 같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림 리퍼를 다시금 홀스터에 집어넣었다.
“학생회장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겁니까?”
“그래.”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지로 입술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이제부터 말을 조심하라는 수신호다.
동시에 그 검지는 천장의 구석구석을 콕 하고 가리켰다.
역시 예상대로다.
‘덩컨 교수님의 교수실에서 봤던 그 조그마한 수정구들이다.’
즉, 여기 간호실에서의 상황은 저 수정구에 의해 어딘가로 녹음, 녹화, 전송되고 있었다.
엘리스는 말했다.
“우리 학생회는 너에게 두 가지의 처벌을 내려야 한다. 하나는 서쪽 숲 파괴, 다른 하나는 미켈레 테러리스트 진압 도중 벌어진 과도한 파괴.”
둘 다 1학년이 벌였다곤 생각하기 힘든 스케일이다.
또한 둘 모두 상상만으로도 험한 처벌이 나올 것 같은 죄명이었다.
그러나 엘리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내가 곁에 같이 있었고, 너가 한 행동은 명령을 따른 것밖에 없다. 또한 결과적으로 미켈레의 테러리스트를 제압했지. 그리하여 너는 후자에 대해 교내 봉사 일주일이라는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엘런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
아마 저 교내 봉사 일주일도 엘리스가 정말 깎고 깎아서 만든 처벌 수위일 것이다.
예상해보길 이전에는 최소 정학에다 심하면 퇴학일 수도 있었겠지.
상부는 그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는 전자의 처벌 여부였다.
엘리스는 말했다.
“또한 너는 1학년 생활 구역 서쪽 숲 일대를 대부분 파괴했다. 우린 그 증거물을 확보했고 확인 또한 끝마쳤지.”
“…….”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점도 포착했다. 네가 몽유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학생회 회의 중에 나왔어.”
“몽유병……이요?”
“그래. 만약 병으로 인해서 생긴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면 처벌보다는 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너도 모르고 있는 병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전문의를 초빙했다.”
덜컥-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후다닥 안으로 들어온다.
오자마자 엘리스에게 90도 인사를 한 남자는 엘런을 자리에 앉히고 가져온 가방을 열었다.
의사는 손가락만 한 주사를 꺼내 들며 엘런의 소매를 걷어붙였다.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걸 맞으시면 잠깐 졸리실 겁니다. 그러면 편안하게 주무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여기 의사가 가져온 주사 용액은 몽유병 확인용 포션이다. 이걸 맞고 잠든 네가 일정 시간 내에 일어나게 되면 그건 몽유병의 증상이지.”
꾸욱-
그의 팔로 포션 용액이 주입된다.
엘런은 그때까지도 의사의 얼굴을 조금씩 곁눈질했다.
분명 정확하다.
자신의 기억이 틀릴 리는 없다.
이 의사는 분명 크레센티아의…….
“눈을 뜨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그대로 편안하게 잠드시면 됩니다. 뒤로 누우시죠.”
의사는 엘런의 몸을 잡으며 간호실 침대로 그를 눕혀주었다.
얼마 안 가 엘런의 정신은 깨어났다.
정확히는 무의식이 깨어났다.
레드가 몸을 침식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눈을 뜨긴 떴는데 시야가 흐릿하고 몸을 움직이긴 움직이는데 통제를 벗어난 느낌이었다.
곧이어 물속에 있는 것처럼 엘리스의 목소리가 웅웅 울려서 귀에 들어왔다.
“흐음, 확실히 너는 몽유병을 앓고 있는 것 같군.”
“맞습니다. 용액에 이렇게 빨리 반응하는 걸 보면 중증 중의 중증인 것 같군요.”
“치료가 시급하단 소리입니까?”
“제가 약을 놓고 갈 테니 적어도 오늘 하루 정도는 여기서 푹 쉬는 게 좋겠습니다.”
“시간 내서 여기까지 와주시고 감사합니다.”
의사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학생회장님 부름이면 자다가도 와야지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의사는 약을 놓고 이만 간호실에서 사라졌다.
엘리스는 다시 엘런의 몸을 잡고 침대에 곤히 눕혔다.
“이로써 장학생 엘런 이안느의 처벌은 무기한 연장시키겠다. 전문의 소견으로 치료가 우선이라는 결과가 나왔으니, 그 명분은 충분하다.”
그러니 여기서 심문을 종료한다.
엘리스는 중얼거리는 듯한 혼잣말과 함께 주먹을 꽈악 쥐었다.
쿠웅-! 쿠웅-! 쿠웅-!
방 천장 구석구석에 있던 수정구들이 모두 추방당하듯 간호실에서 사라졌다.
이제 완벽히 둘만 남게 된 방 속에서 엘리스는 의사가 두고 간 약을 손에 쥐었다.
사실 의사가 엘런에게 놓은 건 몽유병 확인용 포션이 아니라, 몽유병 유발 포션이다.
그러니 방금 엘런이 보인 행동은 진짜 몽유병 환자들이 보이는 모습인 것이다.
벌떡-
……엘런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아직 엘리스는 몽유병약을 먹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엘런은 몽유병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멀쩡히 일어났다.
허공에서 약을 든 엘리스의 손이 정지한다.
엘런의 입이 열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깨어나고 싶진 않았는데. 밤이 아닌 세상도 보고 싶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오긴 했다만.”
“……너, 누구야?”
“꽤나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졌네.”
엘런, 아니 레드는 고개를 틀어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
레드와 엘리스는 간호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자초지종을 레드에게 짧게 들은 엘리스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제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너는 오리하르콘 완드라는 것이로군. 과거 우리 선조 님의 손에 들렸던 완드이기도 했고.”
“그런 셈이지. 알렉산드라의 손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잠깐 깨어났더니 또 크레센티아의 손에 있었어. 그리고 또 잠들고 일어나니까 마경의 사제들이 눈앞에 있었고.”
“그때 놈들을 잡아줘서 고맙다. 솔직히 말하면 내 힘의 바깥에 있는 자들이었어.”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럴 수밖에 없지. 놈들은 완벽한 인외(人外)야.”
둘 사이에 짧은 적막이 흐른다.
그래서 엘리스는 불편했다.
이 침묵이 불편한 건 아니었다.
침묵과 조용함이야 평소에도 숨 쉬듯 즐기던 거였으니까.
그녀가 불편한 건 엘런의 몸을 차지하게 되는 세 시간이, 하필 오랜만에 동생과 둘만 남게 된 합법적인 시간에 나타났단 것이다.
그건 레드도 어물쩍 눈치채고 있었다.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그 세 시간쯤이야 다 채우지 않고 들어가 줄 수 있어.”
그 순간 엘리스의 목소리가 빛살처럼 끼어들었다.
“부탁이 무엇인데.”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
“……의외로군.”
“완드가 음식을 탐할 거라는 거?”
“그래. 첫 번째 출현에도 숲을 파괴했으니 이번에는 산을 파괴하고 싶다고 말할 줄 알았건만.”
레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나는 파괴자가 아니다. 나를 파괴자로 만드는 건 이 몸을 손에 쥔 자의 마음이지.”
“헌데 숲을 파괴한 건 너의 의지 아닌가?”
“……그건 이유가 있었다. 이놈에게도 좋은 것이니 넘어가라.”
“그렇다면야.”
엘런에게 좋은 것이라도 하니 엘리스는 질문 한번 없이 주제를 넘겼다.
엘리스는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음식은 어떤 걸 좋아하지? 완드의 입맛은 잘 모른다.”
“그냥 인간의 보편적인 입맛을 따지면 돼. 대신 달달한 건 싫어. 이 육신과 다르게 난 그런 취향과는 거리가 머니까.”
“…….”
“왜 그러지?”
“그냥 엘런의 몸으로 달달한 게 싫다고 하니까 괴리감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말이야.”
엘리스는 간호실 침대에서 일어나 소매를 걷었다.
푸른 보석으로 찬란히 빛나는 금팔찌가 새하얀 손목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랑 가자.”
“……어딜?”
“맛집.”
슈욱-!!
레드는 엘리스와 함께 어딘가로 텔레포트했다.
레드의 입장에서야 정말 어딘가로밖에 표현 못 할 곳이었다.
반면 엘리스에겐 이곳이 익숙한지 그녀는 레드를 능숙하게 안내했다.
“따라와.”
“여긴 어디지?”
“어디 같은데?”
“그냥 멋진 집으로밖에 안 보이는군.”
레드는 어떤 집에 와 있었다.
조금의 표현을 덧붙이자면 저택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커다란 집에 와 있었다.
엘리스의 뒤를 따라 마주치는 방마다 중앙성의 거실 만하다.
“여긴 학생회장에게 학교가 주는 기숙사다. 여길 누굴 데려온 건 처음이군.”
“중앙성 같은 것인가.”
“그렇지. 사실 중앙성은 나도 써본 적 없다. 그건 장학생의 상징이거든. 학칙을 보니까 그렇게 되어있더군.”
“그럼 2학년 생활 구역이나 3학년 생활 구역에도 장학생을 위한 건물이 있는 건가?”
앞에서 걸어가던 엘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정확히 밝혀진 건 중앙성뿐이다.”
“그보다 맛집을 데려가겠다면서 왜 네 기숙사에 온 것이지.”
“내가 호출하면 이곳으로 맛집에서 일하던 요리사들이 달려오니까.”
“……그렇군.”
“밖에서 누군가 우리를 보면 썩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진 않아서.
“그 요리사들은 믿을 만한 건가?”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는 물론이고 입도 무거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군.”
레드는 엘리스가 안내한 방에 와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만 보면 엘런과 아주 판박이다.
만찬장처럼 보이는 이곳은 커다란 식탁이 있고 의자 또한 많았다.
“요리사들은 곧 올 거다.”
“나야 천천히 와도 크게 상관없어.”
“내가 빨리 오라고 했으니까 10분 안에는 온다.”
“……권력이란 참. 알면 알수록 무서운 것이로군.”
레드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창문으로 바깥을 살펴보았다.
아마 여기가 3학년 생활 구역일 것이다.
……1학년 생활 구역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그 수준이 대단해 보인다.
거기다 분명 인구수도 1학년과 비교도 안 되게 작을 텐데 인프라도 훨씬 잘 구축되어 있었다.
칙칙하기 그지없는 무채색이 아니라 3학년 생활 구역은 밝음과 생기, 희망으로 가득 차 있어 보였다.
1학년의 눈으로 보면 부당하다고 생각될 만큼 이곳은 멋진 도시였다.
레드의 옆에 엘리스가 와서 앉는다.
“좋은 풍경이지 않나.”
“정말로 그렇군.”
“왕좌 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다양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경우도 흔치 않지. 언젠가 엘런과 같이 보고 싶었는데.”
레드는 연한 미소를 입가에 걸며 소파에 몸을 기댄 엘리스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뭔가 살짝 놀려주고 싶은데.
역린을 조금만 건드리면 곧장 어떤 재밌는 게 나올 것 같다.
이 상태로 타인과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건 어려우니, 이런 세상의 참맛도 느껴봐야 하지 않겠나.
레드는 목을 흠흠 하고 풀며 주제를 틀었다.
“그거 알고 있나?”
“그거라고만 하면 모른다만.”
“최근 이 육신이 얼굴을 붉히는 상대가 나타났는데.”
“……!!!”
살짝만 건드리려고 했던 역린.
레드는 의도치 않게 부숴버리고 말았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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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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