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2)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2화(2/354)
#002화. 나태한 천재(2)
나태한 천재와 그랜드 소드마스터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다.
성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꼴에 부자지간이란 것인지 입가에 그려진 진한 미소는 판박이었다.
아주 서로가 서로의 승리를 확신하는 승자의 얼굴들이다.
‘아버지는 절 너무 만만히 보셨습니다.’
‘평생 가문의 힘에만 기대온 네가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엘런은 얼른 졸업하고 띵가띵가 잔소리 없이 놀 생각에 싱글벙글.
게르슐은 엘런이 성적 미달로 퇴학당하거나 쫓겨나면 기사단에 박아넣고 제대로 굴릴 생각에 싱글벙글.
크레센티아의 부자(父子)는 정말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 보며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마침 제국 아카데미는 현재 입학 시즌이다. 입학시험 신청은 내가 넣어둘 테니 넌 시험 준비를 하거라.”
“알겠어요.”
“시험은 5일 후에 열리니 준비 시간은 많지 않다. 자신 있느냐?”
누군가는 5일이 아니라 다섯 달, 5년을 때려 부어 준비하는 제국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그러나 엘런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일이다.
마법이고 병기술이고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있는 엘런에겐 가혹하리만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천재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다.
“물론이죠.”
“그리고 잊지 말아라. 입학시험을 보러 가는 길도 마찬가지로 여길 나가는 순간 넌 크레센티아가 아니다.”
“알고 있어요.”
“가문은 철저히 널 모른 척할 것이고 넌 백작가 귀족이 아닌 단순한 평민이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거라.”
게르슐은 이 부분에서 엘런에게 특히 주의를 주었다.
앞으로 엘런이 살아가야 할 평민의 삶과 크레센티아 백작가 막내아들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이 다르다.
그렇기에 거기서 온 좁힐 수 없는 차이는 내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었다.
예를 들어 바깥에서 다른 귀족에게 반말을 사용한다거나, 하대한다거나 하는 실수는 평민의 인생에선 다시 없을 대참사다.
그 자리에서 뺨을 처맞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게 신분의 격차.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아버지는 걱정 마시고 나가 주세요. 저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 알겠다.”
게르슐은 막상 내기를 걸긴 걸었지만 걱정되는 마음을 완전히 죽일 수 없었다.
저런 것도 아들은 아들이라고 찝찝한 기분이 영 가시지 않는다.
그는 결국 아들이 아니라 아들의 두뇌를 믿기로 하며 방에서 나왔다.
덜컥-
게르슐이 사라지고 다시 엘런만이 남게 된 방.
그 안으로 누군가 후다닥 들어온다.
하얀 앞치마와 검은 메이드복을 깔끔하고 단정하게 차려입은 하녀, 멜리는 묶은 머리가 휘날리게 뛰어왔다.
“도, 도련님! 어떻게 되셨어요? 백작님이 이제 집 밖으로 나가래요?”
“비슷했지.”
“허, 허어억!!”
쓸데없이 풍부한 표정 변화는 보는 사람도 재미가 쏠쏠할 만큼 다양했다.
엘런은 책상 위에 올려둔 아이스크림을 들며 덤덤히 말했다.
“아버지가 날 아카데미로 내쫓으시려나 봐.”
“아, 아카데미면 제국 아카데미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거, 거기 듣기로는 입학시험이 일주일도 안 남았다던데……?”
“응. 그렇다더라.”
엘런은 태연히 대답하면서 남은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었다.
그러니 보는 사람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지, 지,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니에요! 어서 시험 준비와 실전 평가 준비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떤 학과를 넣을 지부터 정해야……!”
“천천히 해라. 천천히. 내가 다 숨이 차네.”
“지금 그러게 생겼어요! 도련님도 어서 일어나세요!”
“아, 잠깐만. 여기 아이스크림 좀 더 남았어.”
엘런은 아이스크림의 콘 부분까지 와구와구 부숴 먹었다.
역시 콘 아이스크림은 남은 아이스크림과 콘을 같이 씹어먹어야 진리다.
그가 한껏 바삭함과 달달함의 조화를 입안에서 느끼고 있을 때.
그 사이 멜리는 소파 옆에 시험 때 유용할 만한 참고서들을 성벽처럼 쌓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건 그저 자신만의 생고생이란 걸.
크레센티아 백작가에서도 엘런 전담반에 소속된 하녀들은 그가 얼마나 나태한지 똑똑히 알고 있다.
어쩌면 벌써 입학시험을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른다.
봐라, 봐라. 지금 또 아이스크림 먹고 굼벵이처럼 꾸물꾸물 누우려 하고 있다.
“도련님!!”
멜리의 일갈에 엘런은 소파 팔걸이에 뉘였던 머리를 일으켰다.
“자려고 한 거 아니야.”
“자려고 한 거 아니야!”
두 명의 목소리가 한 번에 겹쳤다.
멜리는 하! 하고 코웃음 치더니 말을 이었다.
“변명이라도 좀 다르게 해보세요! 어떻게 몇 년 동안 똑같은 말로 둘러대실 수 있어요! 진부하지도 않으세요?”
“알고 있어. 입학시험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까먹진 않으셨네요? 그러니까 이제 정말 공부를…….”
“싫어. 내가 하고 싶을 때 할래.”
엘런은 멜리의 말을 칼같이 끊고 반쯤 일으켰던 머리를 다시금 눕혔다.
벌써 잠든 건지 눈은 감아버렸고 일정한 간격으로 숨을 내쉬고 있다.
저 숨구멍이라도 콱 막아버릴까?
멜리는 정말로 크게 갈등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타깝게도 신분이 깡패인지라 그럴 배짱은 멜리에게 존재치 않았다.
“그럼 도련님? 정말 오후에만 주무시고 밤에는 공부하시는 거예요? 아셨죠? 제가 검사합니다?”
“그래…… 알겠으니까 좀 냅둬…….”
엘런은 잠꼬대하듯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휴…….”
멜리의 한숨과 함께 방은 다시금 적막을 되찾았다.
그렇게 4일이 지났다.
***
제국 아카데미 입학시험 1-Day
엘런은 해가 중천으로 뜬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입가에는 어제 먹은 디저트 가루가 가득하고 손에는 소설책이 덜렁덜렁 매달려있다.
결국 보다 못한 멜리가 사자후를 내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도련님!!”
“으, 응? 나 안 잤어…… 흐아아아암…….”
“입에 침이나 닦고 말하세요!!”
“아, 미안.”
엘런은 추릅 하고 침을 삼키며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났다.
멜리는 그의 눈앞에 달력을 들이밀었다.
“이거 보이세요? 입학시험까지 이제 하루 남았어요! 하루! 근데 도련님은 나흘 동안 뭐하셨어요? 과자 먹고! 잠만 자고! 별 쓸데없는 소설만 읽고! 참고서는 들춰보기라도 하셨어요?”
“응? 저런 게 여기 있었어?”
“아오오!!”
진짜 대귀족만 아니었다면 어디 뒷골목에 데려가서 존나 후드려 깠다.
그만큼 이 빈대 도련님은 그 어떤 성인군자도 주먹을 부르게 했다.
엘런은 멜리가 들이민 달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또다시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말했다.
“하아암…… 정말 얼마 안 남긴 했네.”
“그렇다니까요! 이제 다 망했어! 흐아아앙!”
“……왜 네가 울어. 기사단에 끌려가는 건 난데.”
엘런은 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우는 멜리의 머리를 토닥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멜리는 코를 훌쩍이며 나를 따라나섰다.
“어,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아버지의 개인 창고.”
“거, 거, 거기는 출입 금지잖아요……!”
“내 알 바야? 입학시험 떨어지면 나도 너처럼 울 거다.”
엘런은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눈을 덮은 은발을 쓸어올렸다.
저택에서도 깊숙하고 으슥한 곳.
게르슐 폰 크레센티아가 살면서 모은 전리품과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다.
그러나 이 안에선 어떠한 보안장치도 찾아볼 수 없다.
세상에서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물건을 훔칠 만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다 못해 탭댄스를 추는 도둑은 없을 테니까.
가문 사람들도 여기 들어가면 게르슐의 호통이 돌아왔기에 엘런은 살짝 뒷감당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겁이 없어지는 법이다.
“아버지가 절 여기까지 내모셨습니다. 그러니 용서해주시겠죠?”
엘런은 변명하듯 허공에 중얼거리며 창고의 문을 열어젖혔다.
휘오오오오오오-
안에 쌓여있던 오래되고 묵은 공기가 코로 쑤욱 들어온다.
엘런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창고 안에 발을 들였다.
“너는 여기서 망을 봐. 누가 오는 것 같으면 곧바로 나한테 알려.”
“네, 네!”
그는 멜리를 밖에 보초병으로 세워둔 후 창고의 문을 닫았다.
끼이익거리는 소음과 함께 문이 둔중하게 닫히고 조그마한 전구들이 켜졌다.
그 빛이 안을 환하게 비추니 엘런의 입가에도 밝은 미소가 번졌다.
“역시 아버지야.”
게르슐은 높은 위험도의 몬스터와 숱하게 싸웠고 던전 파괴는 물론 광신도와도 싸워본 기사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물건들은 전부 천하의 보물이라 할 만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건만 해도 드레이크 로드의 심장이 있다.
“이걸 몸에 받아들인 이는 용의 비늘처럼 단단한 피부를 갖게 된다고 했었지.”
과연 세상 모두가 탐낼만하지만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보통 이런 보물 창고는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귀한 것이 나오는 법.
엘런은 그 끝에 있는 물건 중 딱 하나만 가져갈 생각이었다.
“이 보물들을 다 가져가면 아무리 아버지라도 검을 뽑으시겠지.”
보물 하나 정도가 파문당하지 않고 딱 죽기 직전까지만 혼날 수 있는 적정선이다.
엘런은 창고의 더욱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목적한 물건은 저 끝에 있다.
저벅- 저벅- 저벅-
평소 엘런이 먹고 자는 방보다 다섯 배는 넓은 듯한 창고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걸었을까?
엘런은 발걸음을 멈췄다.
이 안은 정말 정말 귀한 것들의 집합이란 걸 암시라도 하듯 전구도 불안하게 깜빡거린다.
아무리 도둑 들리 없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창고라도 여기부턴 함정이 있었다.
엘런은 함정의 정체를 오래된 기억의 저편에서 건져냈다.
“분명 이렇게였지.”
앞으로 발을 뻗는다.
다만 끝까지가지 않고 반만 내민다.
애매하게 뻗은 발걸음은 한 번씩 뒤로 빠지고 똑같은 자리를 두 번 이상 걷기도 했다.
그렇게 몇 미터를 걸으니…….
턱-
“통과했어.”
엘런은 안도의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처음 설정해둔 순서대로만 걷고, 멈추고, 움직여야하는 함정.
조금이라도 틀린다면 그 순간 차원의 저편으로 날아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엘런의 기억력은 몇 년 전에 자신이 했던 사소한 걸음마저 떠올려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엘런은 창고 더욱 깊숙한 곳까지 발을 들였다.
입구 가까이에선 고개만 살짝 돌려도 즐비했던 보물들이 이젠 정말 몇 개 안 남았다.
그 하나하나가 진열대 위에 자리한 모습은 게르슐이 물건의 가치를 생각해 한 땀 한 땀 전시해둔 것이다.
엘런도 시간을 두며 천천히 보물들을 살펴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찾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엘런의 눈에 정확히 들어오는 길쭉한 시약병.
마개로 단단히 막혀 있는 그것은 안에서 신비한 기운의 푸른 액체가 발광하고 있었다.
엘런은 조심스레 시약병을 집어들었다.
손에 쏙 들어올 만큼, 크기는 작았지만, 안에 담긴 건 절대 무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 액체의 정체는…….
“용혈(龍血).”
이름 그대로 드래곤의 피다.
아마 이 창고에서 존재하는 것 중 가장 귀할 게 틀림없다.
책에 쓰여있길, 이걸 마시고 받아들인 자는 몸에 강대한 마력을 품을 수 있다고 한다.
“이걸 먹고 마법을 독파한다.”
솔직히 이제부터 검을 배우기엔 늦은 감이 있었기에 엘런은 아카데미에서 마도학과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카데미에서 ‘염동력’ 같은 걸 배우면 움직이지도 않고 물건을 끌어올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 생각하면 마법을 배운다는 게 은근 기다려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 용혈은 최상급 영약으로 분류되니 마시면 드래곤처럼 마법과 찰떡궁합인 몸으로 변모할 수 있을 거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본가에서 나가는 순간 너는 이제 크레센티아가 아니라고.
그러니 엘런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나가기 전까진 가문의 힘을 마음껏 써도 된다는 거겠죠?”
용혈은 아버지의 물건이고 나아가 가문의 물건이니 그 말인즉슨 가문의 힘과 동의어가 된다.
말을 조금만 길게 하면 용혈은 곧 가문의 힘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이 행동은 무죄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잘 들은 것뿐이다!
……라고 엘런은 생각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뻐엉-
오래되고 잘 숙성된 와인을 연 듯한 소리가 시약병의 마개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와 함께 용혈의 향 또한 이 주변을 가득 메꿨다.
“피라고 해서 비린내가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솔 향처럼 시원하고 대초원에 서 있는 듯이 자연의 풍취가 느껴졌다.
엘런은 시약병을 와인잔처럼 들고 거들먹거리며 시원하게 외쳤다.
“내 자유로운 인생에 건배~!”
꿀꺽-! 꿀꺽-!
그렇게 귀하디귀한 용혈은 그의 목구멍으로 막힘 없이 쭉쭉 들어갔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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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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