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222)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222화(222/354)
#222화. 마경 사냥(4)
체력이 없다.
마력도 없다.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머리는 어지러운데다, 설상가상으로 시야마저 흐려져 갔다.
숨은 턱 끝까지 차고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지금, 유일하게 충만한 건 태어날 때부터 지녔던 음기뿐이었다.
본래는 이런 음기조차 마력과 섞어 쓰지만, 지금은 그럴 마력조차 존재치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한 개밖에 없는 이때, 정신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지 않고 음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도 오직 공격.
[크레센티아 제1비기 – 빙살(氷殺)]레드가 몸의 습관을 바꿔놓은 빙살은, 이전보다 더욱 흉포한 기세로 날아갔다.
슈화아아아아악-!!
짐승의 발톱 자국처럼, 빙살은 마경의 대지에 치유하지 못할 흉을 남겼다.
사제는 차고 넘치는 마수들을 끌어모아 발판으로도 삼고, 방패로도 삼았다.
터어어엉-!!
서거거걱-!!
마수 수십 마리가 잘려 나가더라도 사제는 그 뒤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렇게 밀려나는 것처럼 보여도 이곳은 마경이었다.
자신의 영역에 발을 붙인 사제에게 공방일체는 숨 쉬듯 할 수 있었다.
쿠오오오오오오-!!
하늘에서 마수들이 뭉쳐진 덩어리가 운석처럼 떨어진다.
하지만 이쪽도 공방일체라면 만만치 않다.
“엘런은 공격만 해.”
[빙하(氷河)] [그레이트 아이스 월]고등급 빙속성 마법들이 지면에서 솟아오른다.
차디찬 얼음은 무채색 세부 특성 아래에서 더욱 몸집을 불렸다.
두 사람을 대신하여 부서져 내린 얼음벽은 반짝이는 얼음 조각이 되어 허공을 부유했다.
──마경은 조금씩조금씩 차가워진다.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마경의 주인도, 마경의 손님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얼음만이 알고 있었다.
쩌저저저적-
공격과 방어로 번진 눈꽃들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더 큰 눈꽃을 바닥에 그려낸다.
살얼음이 퍼지고, 입김을 나오게 만들었으며, 이것에 익숙지 못한 것들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크레센티아 제3비기 – 습설(濕雪)]콰지지지지직-!!
눈이 어깨에 살포시 쌓여있던 거라면 마수, 사제, 돌멩이 할 것 없이 전부 얼어붙었다.
입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엘런은 아까보단 기분 좋은 박동으로 울리는 심장을 느꼈다.
‘힘들지 않아.’
이렇게 비기를 남발하면 본래 몸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야 정상인데…….
갑자기 이상한 습관을 몸에 들인 뒤부터는 비기들이 숨 쉬는 것처럼 편해졌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알 수는 있었다.
이렇게 하면 이길 수 있다는걸.
우뚝-
아까 습설의 사용으로 거의 살아있는 얼음 동상이 되어버린 사제는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끝을 맺어야 한다.
스으윽-
턱-
엘런이 앞으로 뻗어 올린 손 위로, 또 다른 새하얀 손이 부드럽게 올라온다.
“엘런.”
“……이럴 시간 없어. 얼른 마무리를 지어야 해.”
“놈을 자세히 봐봐.”
연속된 공격에 치우친 시야는 볼 수 있던 것도 흐릿하게 넘기고 지나가 버린다.
다만 방어에 온 힘을 쏟았던 엘리스는 그와 달리 모든 전황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사제는 조금 전부터 묘하게 방어에 더 힘을 쏟았어. 충분히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놈이, 방어에만 몰두한 거야.”
“공격 대신 신경 쓸 게 있던 거구나.”
“내 생각도 그래. 그리고 곧, 그게 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아.”
“……놈의 몸이.”
엘리스의 예상은 조금을 가지 못하고 곧장 들어맞았다.
습설로 놈의 몸을 가두어 두었던 얼음이, 과자처럼 바사삭 깨져나갔다.
정확히는 얼음 안에 가두었던 사제의 몸이 부서져 나갔다.
그 모습에 엘런과 엘리스는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나비의 변태(變態).
애벌레는 고치로 자신을 꽁꽁 동여매고 인고의 세월을 견딘 끝에, 하늘에서 자유롭게 팔랑이는 나비가 된다.
쩌저저적-
“엘런. 뭔가 온다.”
“누나, 내 뒤로 와.”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엘런은 내가 지킬 테니까.”
엘런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남은 음기를 확인했다.
─아직 여유롭다.
뭐가 나와도 승부를 걸어볼 만한 정도다.
하지만 누나는?
엘런은 조용히 엘리스의 등에 손을 올려 그녀의 남은 음기를 확인했다.
“……누나. 음기가 얼마 남지 않았잖아.”
음기의 질은 엘런 이전에 엘리스가 크레센티아 최고 수준이라 인정받았다.
그러나 절대적 총량만큼은 다른 이들과 평범했기에, 총량과 질 모두 비교할 자 없는 엘런의 템포를 따라가는 건 무리였다.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정 안되면 마력과 섞으면 되니까.”
“순수 음기가 아니면 놈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그건 누나도 알잖아.”
“…….”
까드드득-
엘리스는 이빨을 거칠게 갈았다.
마경. 마경. 마경. 마경. 또 마경이다.
자신을 자꾸만 약자로 깎아내리게 만드는 놈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엘런에게 있어서 가장 든든한 우군이기도 했다.
믿을 수 있고 등을 기댈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기에, 엘런은 말했다.
“누나. 지금 형과 누나들에게 가서 이쪽에 지원을 부탁해줘. 누나는 나보다 훨씬 빠르잖아. 그렇지?”
“……나. 더 강해질게. 앞으로는 이따위 창피한 이유로 엘런을 혼자 두지 않을게.”
“그건 누나 마음대로 하고, 지금은 내 말에 따라줘야 해. 할 수 있지?”
“할 수 있어.”
엘리스는 울먹이는 눈가를 들키지 않기 위해 팔로 감싸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학생회에서나 다른 학생들 앞에선 눈물은커녕,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사람이 눈물을 보였다.
엘런은 그에 반해, 되려 웃어 보였다.
“눈물 뚝 그치고 어서 달려가. 나도 여차하면 완드로 도망칠 테니까, 별 쓸데없는 걱정은 말고.”
“응. 그럴게. 엘런은 다치지 마.”
“참내. 내가 어디서 다치는 꼴 봤어? 그렇게까지 싸울 성실함은 내게 존재하지 않아.”
피식-
엘리스의 입꼬리가 짧게 올라갔다.
“어어? 웃다가 웃으면 안 되는데?”
“장난, 치지 마.”
울음 너머로 힘없는 웃음기가 입가에 걸린다.
엘런은 양 엄지로 그녀의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얼른 가. 슬슬 이렇게 떠들 시간도 없어지니까.”
“알겠어.”
그의 실 없는 말장난 덕분인지, 눈물도 마르고 몸에 힘도 돌아온 엘리스는 지면을 거세게 박찼다.
사실 저런 사제와 엘런이 조우하게 된 건 다 자신 때문이다.
엘런의 실력이 보고 싶어서, 마경 깊숙한 곳에 대책도 없이 들어와 버렸다.
그래서 이런 질 나쁜 장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모자라 자신은 어느새 동생을 남겨두고 다른 형제들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수치다.
인생에 다시 없을 오점이다.
만약 상대가 마경의 사제가 아니라 다른 괴물이나 강력한 인간이었으면, 능히 자신이 나서 적을 찢어놓았을 것이다.
“나도 마경 대항책이 필요해.”
엘리스는 입술에서 피가 날 것처럼 깨물며 마경을 질주했다.
***
엘런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정처 없이 멀어지는 엘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쯤 저기 앞에 얼음 동상도 눈에 띄는 변화를 일으켰다.
자신의 몸을 깨부수고, 그 몸을 감싼 얼음을 깨부수고, 무언가 쑤욱 튀어나온다.
천천히, 천천히, 어떤 눅진한 점액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놈은 억지로라도 유지하던 인간 형태를 내다 버렸다.
“……참 개 같은 모습이네.”
갑각류 같은 외골격, 곤충 같은 팔다리, 그리고 어지럽게 달린 조류의 날개.
얼굴은 뭉툭한 타원 모양에다 눈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 수십 개의 눈동자는 전부 엘런을 바라보았다.
“이런 주목은 싫어하는데 말이야.”
엘런은 한숨을 내쉬며,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더듬기 시작했다.
“난 분명 방학을 시작했고, 지금은 내 방학 시간이야. 방학은 분명 쉬라고 있는 거 아닌가? 근데 나는 왜 학교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지?”
끄르르르륵-
사제인지 괴물인지, 이젠 뭐라 불러야 할 지도 애매한 놈이 목을 거칠게 떤다.
사람의 목소리 대신 저런 괴물의 울음소리를 더 많이 들었다는 현실은, 분노만 흥겹게 차오르게 했다.
─곱씹을수록 화가 제곱으로 늘어난다.
“심지어 나는 방학 숙제도 남아 있어. 놀고 싶어도 놀 수가 없단 말이지. 게다가 방학 숙제는 문제 푸는 게 아니라 어떤 퀘스트 형식이더라?”
숙제로 지정된 지역으로 이동해 모종의 미션을 클리어하면 방학 숙제가 완수된다.
아주아주 귀찮은 형식임이 틀림없다.
“근데 또 웃긴 건 방학 숙제 지역은 같아도 미션은 다 달라. 대충 묻어가지도 못하게 해놨어.”
엘런의 푸념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것은 어떤 영창처럼, 어떤 버프 마법처럼, 신기하게도 몸의 고통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분노에 몸이 젖어가면서 자잘한 고통은 희미해져 아예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다.
엘런은 그 신기한 현상에 감탄할 새도 없이, 또 다른 현실에 분개해야 했다.
“근데 제일 빡치는 건, 내가 오늘 아침에 먹을 디저트를 카르디아가 먹었다는 거야. 내가 냉장고에 넣어둔 걸 걔가 먹어버렸어.”
키르르르륵-?
“하필 아누비스라 걔를 죽일 수도 없고, 또 걔가 사준 거라 화내기도 뭐하고. 하아……. 아니 근데 걔는 자기가 사준 걸 왜 자기가 먹은 거야? 괴물아. 넌 이해가 되냐?”
괴물은 갑자기 상담을 하게 되자, 애꿎은 날개만 위협적으로 펼쳐 들었다.
자신이 적인 걸 잊었냐는 듯한 그 몸짓은 마경의 자색 하늘도 반치나 가려버렸다.
도시의 건물들을 한껏 뭉쳐도 지금 눈앞에 괴물보다는 작을 것이다.
그러나 엘런의 눈은 그딴 것들이야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화풀이를 좀 해야겠다. 아누비스로 돌아가면 전갈 배송으로 시켜둔 디저트가 도착해 있을 거거든.”
괴물은 고개를 틀었다.
아까부터 이 새끼가 뭔 말을 하는지 조금도 알아듣지 못하겠단 표정이었다.
저런 면상에서 표정을 읽을 수 있단 것조차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엘런은 왠지 그렇다고 느껴졌다.
그는 작게 웃으며 앞으로 몇 걸음 걸었다.
“크레센티아의 비기는 초반이 얼음이라면 후반은 달을 향한다고, 누가 내 기억에 그리 박아두었어.”
범인은 꽤나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엘런은 본능 너머 확실한 기억 속에 저장된 무의식을 한껏 뒤져보았다.
“몸이 개같이 힘드니까 알아서 무의식을 찾게 되는군.”
시에나가 곁에 있었다면 상스러운 말이라며 눈살을 찌푸렸을 테지만, 뭐 어쩌겠나.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정말 개같을 뿐이다.
초단위로 무의식에 무의식까지 기억을 훑다 보니, 누군가 깊숙이 처박아놓은 잔재들이 눈에 띈다.
“그래. 이게 크레센티아의 비기들이구나.”
정확히 알겠다.
이제서야 정확하게 알 것 같았다.
여태까지는 본능에 기댔다면 지금부터는 철저한 계산 속에서 움직인다.
평소에 싸워왔던 방식대로 말이다.
“처음은 이거다.”
[크레센티아 제5비기 – 빙월(氷月) 얼어붙은 달]1형부터 4형까지는 얼음을 찬가한다면, 5형부터 10형까지는 달을 찬양한다.
──하늘에 새로운 달이 떴다.
그것은 자색이 아니라, 초연하고 맑디맑은 청색을 품은, 커다란 초월(初月)이었다.
누군가 한 입 크게 깨물어 먹은 듯한 달은 날카로우면서, 앞에 있는 게 무엇이든 무릎 꿇릴 만치 커다랬다.
그건 사제의 몸에서 뻗어 나온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크르르르르륵-
그것은 자신을 압도하는 크기의 달에게 짓눌려 몸을 낮추다가, 이내 입을 크게 벌려 거친 울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에 쫄아버릴 심장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엘런은 말했다.
“이달은 단순한 관상용이 아니거든?”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본 적 없고 본 적도 없으면서, 비기에 대해 논하는 말은 순 허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엘런은 알 것만 같았고, 또 알고 있었다.
“이 초승달을 어떻게 쓰는지.”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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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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