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226)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226화(226/354)
#226화. 선물 경쟁(2)
엘런은 본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본가에 와서도 방심할 순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가장 위험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크레센티아의 수행인들과 하녀, 시종들에게 은발을 들켰다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럼 최상층으로 가야겠다.”
최상층에는 기본적으로 크레센티아를 제외한 자는 누구라도 발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니 본가에서 이 머리카락을 숨기기에 가장 안전한 장소 또한, 최상층임이 틀림없다.
사그락-
엘런은 드넓은 정원과 정원사가 잘 다듬은 풀숲 안에 몸을 숨겼다.
“젠장……. 내가 왜 내 집에서 잠입을 하고 있어야 되는 거야.”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엘런은 이제 머지않은 저택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정문은 기사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당연히 못 들어갈 테고. 그럼 창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건 바깥에서 열 수 없는 구조야.”
아니면 차라리 정문으로 대놓고 걸어가 볼까?
엘런은 조금 생각을 이어 나가다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 엘런 본인이 기사라고 해도 후드를 벗겨 얼굴을 확인해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감시가 덜한 별채를 통해서 본채로 들어갈까.”
의미 없이 뱉고 본 말이었지만 그 말은 생각보다 현실성 있었다.
그 귀찮은 놈들 셋만 어떻게든 피해 가면 다리를 건너 저택으로 들어가고, 계단을 빠르게 빠르게 올라 최상층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다.
“좋아. 계획은 완벽해.”
엘런은 저 혼자 고개를 주억이며 정원을 삥 돌아가 별채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친 한숨 소리가 꽃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시야를 가리는 덩굴을 헤치며 고개를 앞으로 쭉 뺀 엘런은 미간을 좁혔다.
“하여간 우리 집 존나게 안전하네. 뭐, 뚫고 들어갈 틈이 없어.”
이래서 우리 집에는 도둑이 없었구나.
새삼 크레센티아의 치안을 확인한 엘런은 별채를 가로막은 경비들을 살펴보았다.
아까까진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기사들이 별채까지 빡빡하게 막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한 기사들의 근무 시간.
이제는 본채와 비슷한 경비가 별채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거기다 두 집을 이어주는 다리도 기사들이 막고 있네. 이러면 별채를 통해서 들어가는 것도 기각해야겠어.”
연속되는 작전 실패에, 엘런은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으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냥 귀찮더라도 수도 바깥까지 나가서 ‘개구멍‘을 써야 하나.”
개구멍은 처음 베시미아를 만나고, 전부 잠들어버린 셋과 이동했던 크레센티아의 비밀 통로다.
그 통로라면 크레센티아의 저택까지 누구의 방해도 없이 갈 수 있었다.
“아니야. 그건 너무 귀찮아.”
여기서 편하게 누워 있다가 가족들이 귀환하면 그때 조용히 불러내어, 같이 들어가는 게 더 낫다.
─이렇게 누워 있으니 마경의 차디찬 대지 위에 누워 있던 며칠 전이 불현듯 떠오른다.
피곤의 극에 달했던 몸은 땅이 푹신푹신한 침대인 줄 착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치지 않고 편안히 잘 수 있었던 것도, 아마 레드가 심어주었을 비기의 기억들 덕분에…….
“어, 잠깐만.”
드러누워 있던 엘런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그냥 텔레포트로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자신에겐 오리하르콘 완드가 있다.
그리고 이 오리하르콘 완드는 자체적으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이걸로 최상층까지 단숨에 텔레포트 하면 대체 누가 자신을 잡아낼 수 있을까.
“내가 왜 이걸 지금 생각했지.”
여태껏 마법진을 이용한 텔레포트밖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몸은, 이 편리한 수단을 뒤로 묻어버릴 뻔했다.
“해보자.”
엘런은 완드를 꺼내고 손에 쥐며, 의지와 마력을 담아 가볍게 휘둘렀다.
스아아아아아아-
오색빛이 찬란하게 물들며 마치 이불처럼 그를 감싸 안는다.
몸이 붕 뜨는 감각도 잠시 엘런은 신발 밑창의 감각이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잔디의 푹신함이 아니라 대리석의 딱딱함이 신발에 맴돈다.
“도착했다. 내 집.”
머리카락 색 하나 바뀌었다고 외출이 이렇게 힘들어질 줄은 몰랐다.
적당히 나갔다가 적당히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어설프게나마 짰던 계획은 뭐 하나 들어맞는 게 없었다.
“그래도 들키진 않았으니까, 거기서 만족하자.”
“뭐가 말이더냐.”
“……!”
머지않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엘런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아직 외투도 벗지 않은 게르슐이 서 있었다.
멜리의 말마따나 황궁에 가셨다가 방금 막 돌아오신 듯하다.
“집에서 후드를 쓰고 다닌다는 건, 필시 머리카락에 어떤 이상이 생겼나 보구나.”
“……사실, 그렇습니다.”
게르슐의 앞에선 숨길 게 없다.
그는 머리 위로 깊숙이 덮여 있던 후드를 뒤로 훌렁 내렸다.
밤같이 새까만 흑발이 아니라, 그 밤 중앙에 뜬 달처럼 반짝이는 은발이 햇빛을 받아 찬연했다.
“어쩌다 색이 돌아온 것이냐.”
“마경의 힘에 오랫동안 닿으면 염색 스프레이의 색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스프레이를 썼는데 이번에는 그 스프레이를 주던 형제들이 집에 없어서.”
“흐음, 앞으로는 너도 스프레이를 몇 개 구비 해놓거라. 자고로 유비무환(有備無患). 준비의 중요성을 느꼈다면 말이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 전투를 나가도 해독 포션 하나 안 챙겼지만, 미래의 안락한 생활을 위협하는 위기는 꼭 걷어내야 옳다.
이 스프레이는 자신이 아공간에 박스 째로 넣어두리라.
그런 후회의 다짐이 이어지는 사이, 게르슐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시간이 비었다면 잠시 날 따라오겠느냐.”
“하실 말씀이라도.”
게르슐은 옅게 웃었다.
“아버지가 아들과 걷는데 어떤 연유가 필요할까. 그저 너와 나란히 걸어본 지가 무척 오래된 것 같아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을 뿐이다.”
“저도 좋습니다.”
“따라오거라. 사람들이 발을 디디지 않는 저택의 뒷길이 있다. 그러니 후드는 답답하게 쓰고 있지 않아도 좋아.”
“알겠습니다.”
엘런은 게르슐의 말대로 후드는 접어둔 채 그의 옆을 걸었다.
그는 이렇게 걷는 것이 오랜만이라고 두루뭉술한 시간으로 말했지만, 엘런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이렇게 걷는 건 8살 때 이후로 처음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 시간도 덧없이 빠르구나.”
“정말 그렇습니다. 저도 어느새 2학기를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학교생활은 뭐, 어떻게……. 할 만하더냐.”
순간 엘런은 대답 대신 게르슐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가만히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리 찾아보아도 흠 하나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 만큼은, 적어도 눈 만큼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질문과 이런 상황이, 게르슐이란 남자에겐 아주 낯간지러운 상황임을 알게 하는 신호였다.
엘런은 입꼬리만 조금이나마 틀어 올리며 대답했다.
“할 만합니다. 예상했던 것보단 훨씬 더요.”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너의 어머니가 걱정이 많으셔서 나도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따로 걱정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빨랐다.
듣는 사람이 서운할 만큼 빨랐다.
하지만 게르슐은 말을 끝내지 않고 더욱 이어 나갔다.
“걱정은 신뢰의 부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식들을 믿는다. 하프 드래곤의 교육열에 녹아내릴 만큼, 무른 얼음이라고 생각지 않아.”
“그 신뢰에 부응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정적.
딱히 정적을 어색해하지 않는 엘런은 게르슐이 안내한 뒷길을 둘러봤다.
뒷길은 말 그대로 뒷길이었다.
마차 한 대 정도가 딱 지나다닐 법한 길의 너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 충분했다.
바닥에는 아직 쓸지 못한 나뭇잎이 종종 떨어져 있고, 나무들은 아직 떨어뜨리지 않은 잎으로 해를 막아주었다.
“좋은 풍경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여긴 내가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찾는 장소인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걷기 좋은 곳이라 애용하고 있다.”
“확실히 그럴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또다시 정적.
게르슐은 뒷짐을 진 채 곁눈질로 막내아들을 훑어보았다.
엘런은 그새 또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며칠 전에 기절한 채 저택으로 와서 깜짝 놀랐는데, 설마 그 이유에 대해 듣고 더 깜짝 놀랄 줄이야.
“비기는 어디까지 펼칠 수 있느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기억이 닿는 데까지 하는 것뿐이라.”
“기억이라니?”
“일전에 보여 드렸던 제 오리하르콘 완드. 최근에 그것과 계약했습니다. 제가 잠들고 난 이후의 세 시간을 주는 대신, 오리하르콘의 힘을 쓰는 걸 허락하기로.”
“최상층에 갑자기 나타났던 힘은 오리하르콘의 힘이었구나.”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반대로 게르슐은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며 잘 관리한 턱수염을 매만졌다.
“제 예상에는 그 세 시간 동안 오리하르콘의 정신체인 ‘레드‘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초대 가주님의 기술들을 제 몸속에 집어넣은 듯합니다.”
“흐음, 뜻밖에 스승이 생겼구나. 동시에 불편한 동거를 하는 중이고.”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일상처럼 편안합니다. 레드도 저와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이쪽에 피해 가는 짓은 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편리한 힘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 주의해서 사용하거라. 또 그 힘에 정신이 치우쳐서 너 자신을 갈고닦는 걸 멈추지 말……거라.”
“물론입니다.”
끝에서 조금 멈췄다가 다시 이어진 목소리.
엘런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게르슐은 속으로 연신 혀를 찼다.
그 못마땅함의 뜻을 내비친 대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이번에는 조금이라도 더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묻고 싶었는데, 어느새 주제는 또 가문의 비기 같은 외적인 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렵구나.’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보다 기사, 가주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아버지로서 내뱉은 말보다 기사, 가주로서 내뱉은 말이 더 많았다.
검은 맘대로 움직이면서 왜 혀는 맘대로 움직여주지 못할까.
게르슐은 약간의 한숨과 함께 물었다.
“돌아와서 어머니는 만나 뵈었느냐.”
“일어나고 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외출하셨다고 해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도 돌아오셨습니까?”
“마리아는 아직 산책 중인 것 같구나. 이제 곧 돌아오겠지. 그 세 녀석도 저녁 전에는 들어올 테고.”
“그때까진 이렇게 기다려야겠군요.”
이제는 익숙하리만치 자주 찾아오는 정적에 게르슐은 그저 걸음을 멈췄다.
언제 오고 언제 갈지 모르는 막내아들인데, 조금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아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선물이라 할 수 있을 테고, 다르게 보면 시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잘만 견딘다면 기연이라 할 만했다.
“엘런. 따라 오거라.”
“또 보여주실 게 있습니까?”
“보여줄 거라기보단 네가 알아야 하고, 겪어봐야 하는 것이다.”
“……?”
엘런은 어딘가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걸 느꼈다.
6년 백수 생활과 더불어 반년의 학교생활로 길러진 본능이, 이 앞은 매우 귀찮은 게 있을 거라고 대차게 경고했다.
하지만 그걸 알고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게르슐을 따라가는 게, 어찌 됐든 당장 이 머리칼로 저택을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그는 엘런을 데리고 얼마간 뒷길을 통해 어딘가로 도착했다.
“여긴 나의 개인 연무장이다.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 없고, 아무도 드나드는 사람 없지.”
“저를 여기 데려오신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구태여 너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다. 카일도, 이사벨도, 엘리스도 모두 이곳에 왔었으니까.”
그렇다면 그 셋은 여기 왜 왔을까.
그 이유는 미루어 짐작해보길 자신과 같을 것이다.
스르르릉-
게르슐이 통에 마구잡이로 꽂혀있던 검 중 하나를 집어 든다.
지면에 곧게 세우면 허리까지 올 법한 길이의 검이었다.
하지만 게르슐의 손에 잡혀 있다면 아무런 상관없다.
그것이 가슴까지 오든, 명치까지 오든, 이마까지 오든 아무런 상관없었다.
그랜드 소드마스터의 손에 들려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나라를 엎을 만한 병기가 될지니.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가르쳐줄 것은 요령이다. 너보다 수십, 수백 배 강한 자를 만나고도 버티는 요령.”
게르슐의 검 끝이 엘런에게 향했다.
그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과 열 걸음보다 조금 더 떨어져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검극이 아니라 검 자체가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위압감에 솜털이 다 쭈뼛거린다.
“최선을 다하거라. 병상에서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들을, 다시 내 손으로 눕히고 싶진 않으니.”
“…….”
그럼 그냥 보내주세요, 아버지.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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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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