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268)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268화(268/354)
#268화. 파견 임무(5)
―바닥이 단단해졌다.
아니 원래도 단단하긴 했는데, 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딱딱함이었다.
신발 밑창 너머로 눈의 사그락거림 대신 돌의 울퉁불퉁한 촉감이 넘어왔다.
하지만 구태여 그런 느낌이 아니더라도, 눈은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보고 있었다.
적색 하늘.
그 중앙에 뜬 달은 붉은 창공을 반사해 적색 빛을 띠는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여긴 마경인가.”
엘런은 그렇게 의심했다.
하지만 의심이 확신으로 번져가는 것도 한순간이다.
“레드.”
그의 손에 있는 오리하르콘은 아까부터 묵묵부답이다.
원래도 이 상태면 말을 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자신이 입을 다무는 중이었다.
하지만 구태여 그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빙의를 시도하다가 마경으로 텔레포트 된 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그건 놈들이 육신과 영혼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레드?”
[그래. 지금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는 것이니, 촌스럽게 놀라진 마라.]고작 텔레파시 따위에게 놀랄 틈이 있겠는가.
지금 이쪽은 설원에서 싸우다가 난데없이 마경으로 이동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년에 썼어야 할 당혹스러움을 전부 몰아 써버렸다.
“레드. 지금 이곳이 어딘 것 같아.”
[마경이잖냐.]“내가 그걸 물어본 게 아니란 거 알잖아.”
[마경 중에서도 기운의 밀도가 아주 농밀한 것이, 놈들의 본거지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X됐네.”
입에서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할 수만 있다면, 혹시 위험하지만 않다면 쌍욕이라도 마구 늘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모든 힘과 기운을 경계에 집중시켜야 한다.
일련 남일 대하듯이 말하는 레드도, 남 일이 아닌 엘런도, 둘은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이제 막 새끼를 출산한 어미 고양이처럼.
잔뜩 눈을 부라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레드. 지금 당장 텔레포트 할 순 없겠어?”
[……당장은 무리다. 본래 놈들의 천적인 나도 이곳의 기운은 너무 짙어서 벗어나려면 준비 시간이 필요해.”“어느 정도?”
[한 시간은 족히 있어야 할 것 같군.]“좋은 소식은 아니네.”
여기선 10초만 있는 것도 목숨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근데 한 시간?
그건 고래의 입속에 한 시간 동안 있으면서, 그 입이 닫히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점.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도 없다는 점.
허나 갑자기 이쪽 영역에 침범하게 되었는데, 그걸 못 알아차렸을 리는 없다.
“빠르든 늦든 찾아오겠지.”
그렇다면 얼른 이 자리를 뜨는 게 옳았다.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되네.”
엘런은 아공간에서 초콜릿 하나를 꺼내 들었다.
초콜릿은 긴장을 완화 시켜주고 기분을 좋게 해준다.
딱 지금 이 상황에 필요한 슈퍼 푸드였다.
초콜릿을 우물거리는 입으로 엘런은 중얼거렸다.
“딱히 몸을 숨길만한 공간은 안 보이는데.”
이 주변은 전부 숲이다.
숲을 이룬 나무들은 고스트 타운의 나무들보다 더 기분 나쁘게 생겼다.
식물의 모습으로 큰 게 아니라 귀신의 모습처럼 늘어지게 자라난 모습이다.
나무의 결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절규하는 인간들로 가득했다.
앞으로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는 게 절망적인 자연이었다.
“레드. 여기가 놈들의 본거지라면, 이곳엔 뭐가 있을까.”
[나도 예상할 수 없다. 와본 적도 없고 뭐가 있다고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그보다,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아.”
[마경의 적대 방식이지. 하지만 마력을 쓴다면 놈들이 우릴 알아차릴 거다.]“알고 있어.”
엘런은 숲을 계속해서 걸었다.
그를 찾아왔던 더위는 가실 새 없이 엘런을 강하게 압박했다.
“……젠장.”
오랜만에 땀으로 흥건해진 이마.
손으로 앞머리와 함께 쓸어 넘기자, 손바닥은 어느새 축축해졌다.
이런 후덥지근한 더위는 정말이지 혐오스러웠다.
생각을 둔하게 하고 몸을 둔하게 한다.
이제 슬슬 어지러워질 참에, 레드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이 너머에서 무언가 느껴진다.]“뭐가 느껴지는데?”
[나도 뭔지 알았다면 무언가로 지칭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위험하다고는 느껴지지 않는군.]“그럼 가보자.”
계속 이 숲만 돌아다니는 것도 힘든 일이다.
게다가 이곳은 사제들의 본거지.
가장 위험한 곳이지만, 역으로 놈들의 급소이자 심장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
“혹시나 뭔가 쓸만한 걸 건질 수도 있으니까.
그 쓸만한 건 정보여도 좋고, 어떤 물건이어도 좋다.
[이 숲 안에 있다. 허나 뭐가 있을지 모르니 몸은 숙여라.]“그래야지.”
엘런은 상체를 바닥과 가까이 한 채, 천천히 숲 밖으로 빠져나왔다.
가시덤불 너머로 고개를 내미니까, 어떤 건물이 하나 보인다.
오래되어 보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오래된 양식으로 만든 건물이었다.
“……집인가?”
[내 눈에는 그래 보인다만. 허나 집치고는 무척 커다랗군.]‘집치고는’이었다.
만약 집의 수준을 넘어섰다면 저택이나 성이라고 불렀을 터.
하지만 저기에 있는 건물은 집치고 커다란 크기를 가졌다.
“레드. 안에 놈들이 있나 봐줘.”
[아까부터 해보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사제의 기운은 없다. 빈집 같아.]“그럼 들어가 보자.”
누가 쫓아와도 도망칠 순 있을 것이다.
설령 이곳이 마경 안이라 해도 못 할 건 없었다.
놈들의 초월적인 권능은 어차피 레드에게 제한당한다.
육체 능력만이 나머지로 남게 되면 자신이 그들에게 따라잡힐 리 없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잖아?”
[집 말고 문을 봐라.]“흐음…….”
집이 커지면서 문도 같이 비대해진 걸까.
문은 보통 문보다 반절은 더 컸다.
애초에 사람을 상대로 만든 문이 아닌 것처럼.
허나 문고리가 있는 건 똑같다.
끼이이익-
“잠겨있으면 부수려고 했는데, 의외로 쉽게 열리네.”
[내가 열어준 거다. 이런 잠금장치야 가볍게 풀 수 있지.]“고마워.”
[고마우면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생각이나 해라. 괜히 이런 데 들어갔다가 객사하지 말고.]“나도 그닥 들어가고 싶진 않은데, 기회는 기회잖아.”
불현듯 위기가 찾아왔지만, 그걸 동아줄로 뒤바꾸는 건 개인의 역량이다.
엘런은 그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집 내부를 울린다.
그 정도로 집은 텅 비어 있었다.
테이블이나 의자, 옷장 같은 흔한 가구들도 찾아볼 수 없다.
아직 거주자가 입주 전인 집을 보는 느낌이었다.
“레드. 어떻게 생각해.”
[일단 조금 더 둘러봐야 할 것 같군.]엘런의 생각도 같았다.
그러나 먼저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그는 거실과 주방으로 보이는 곳을 꼼꼼하게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점은 정말로 여긴 인간의 집이 아니란 것이다.
집의 양식은 인간의 것을 가져왔으면서, 다른 것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까 문도 그렇고, 창문도 그렇고. 이 집에 살 놈은 키가 멀대만 한 모양이야.”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하다.
어른보다 반 치는 작은 키 탓에 모든 걸 올려다봐야 하는 어린아이.
“1층에는 별 게 없어. 가구도 그렇고 정말 뭣도 없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바닥으로 소복하게 쌓인 먼지뿐이다.
“그냥 버려진 곳인가.”
그렇다면 그것대로 신기한 사실이었다.
인류를 말살하려는 놈들이 인류와 똑같이 산다는 거 아닌가.
끼익- 끼익-
낡은 계단이 발과 맞닿을 때마다 소음을 낸다.
엘런은 2층에 올라왔다.
2층도 1층과 마찬가지로 어떤 가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뭐가 없는데.”
[아직 한 군데 남았다.]“어디?”
[천장을 올려다봐라.]엘런이 턱을 올렸다.
천장에는 레드의 말대로 문 하나가 있었다.
다락방의 문이었다.
“참 들어가기 꺼림칙한 곳이네.”
[동감이다.]엘런은 한숨을 내쉬며, 다락방 문과 연결된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니 천장이 열리면서 접이식 계단이 힘겹게도 내려왔다.
그냥 밟았다가 부서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끼리릭- 끼릭- 끼릭-
기분 나쁜 쇳소리와 함께, 다락방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역시 뭐가 있진 않았다.
다락방 창문 앞에 있는 저것 말고는.
“뭐야, 저거.”
[함(函)이다.]“……그건 나도 알아. 내 말은 저 안에 뭐가 들어있냐는 거지. 숲 한가운데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도 이상한데, 집 안은 텅 비어 있고. 근데 저런 상자만 덜렁 있다니.”
[구린 냄새가 풀풀 난다.]레드의 말대로였다.
구린 냄새가 풀풀 났다.
마치 카르디아의 방귀처럼 구린 냄새가 풀풀 났다.
엘런은 상자 쪽으로 다가갔다.
상자는 다락방 창문의 햇볕을 쬐고 있었다.
붉은 햇볕을 쬐는 붉은 상자.
사람 얼굴 하나 들어가면 딱 적당할 만한 이것은, 어떤 알 수 없는 기형 문자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 문자의 정체는 엘런도 레드도 알고 있었다.
“고대 문자.”
[고대 문자다.]대략 수 세기 전에 사용하던 이 문자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퇴색되다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레드는 그 문명 발전 이전에도 살아 있던 존재다.
당장 크레센티아의 선조가 날뛰던 시절만 해도 고대 문자의 사용은 흔했다.
“레드. 읽어볼 수 있지.”
[지금 읽고 있는 중이다.]엘런은 상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상자와 완드는 더 가까워지고, 문자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내 몸에 있는 유일한 진심.]“그래서?”
[그게 전부다.]“……끝이라고?”
[그래. 애초에 네가 보기에도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진 않지 않나.]그건 그렇다만…….
뭐, 상자에 적힌 문자 하나로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일 빠른 길은 이 상자를 열어보는 것일 테니까.
“좋아.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고.”
[방어는 해두었다.]“고마워.”
불시의 사고를 대비해, 레드의 힘이 잔뜩 발휘되었다.
육체적, 정신적 공격을 막는 방어막을 만들고 저주 내성을 한껏 끌어올린다.
달칵-
상자는 잠금도 되어 있지 않아 열리면 열리는 대로 제 입을 벌렸다.
“흐음, 반지네?”
그래서 몸에 있다는 말을 쓴 걸까?
엘런은 상자 속 반지를 들어보았다.
반지는 척 봐도 구멍이 크지 않았다.
즉, 남성용은 아니다.
어떤 여자가 썼던 반지로 보이는 이것은, 금색 고리와 중앙에는 피같이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예쁘다 할 만한 반지다.
특히 하프 드래곤 총장은 좋다고 환장할 듯싶다.
“으음? 반지 안쪽 면에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어. 레드. 이것도 읽어줄 수 있겠어?”
[…….]“……레드? 왜 그래?”
끝 모를 침묵을 이어 나가던 그는 입을 열었다.
반지 안면에 새겨진 고대 문자를 읽어나갔다.
[멜리마 엘가 프리우드…….]“누군가의 이름이야? ……근데 잠깐만. 중간에 있는 미들네임이…….”
그는 경악의 침묵에 들어섰다.
레드는 조용히 그 침묵 위로 확신을 얹어주었다.
“……아니, 잠깐만.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이 반지에 새겨진 건 선조인 데카마드의 아내, 크레센티아의 첫 안주인 엘가의 이름이었다.
그것도 크레센티아 내에서 아무도 몰랐던 엘가의 본명이 새겨져 있었다.
애초에 엘가가 본명이 아니란 것조차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허나 레드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반지는 데카마드가 엘가에게 선물한 것이다. 즉 결혼반지라 할 수 있지.]“……미친. 그런 거라면 가문의 보물인데, 왜 이런 마경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야?”
[그건 모른다. 이 세계의 누구도 모르겠지. 엘가와 데카마드 말고는.]엘런은 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상자 쪽으로 눈을 옮겼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아까 들었던 문장을 읊었다.
“내 몸에 있는 유일한 진심.”
이 수수께끼 같았던 말의 속뜻이 어느 정도 풀어진다.
그녀를 가까이서 보았던 레드였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엘가는 거짓이 많던 여자였지. 마녀로 몰렸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마녀가 아니었고 늘상 거짓말을 일삼았지만 되려 그렇기에 진실을 빛나게 만들 줄 아는 여자였어.]“그래서?”
[그러니 엘가에게 거짓 없는 진심이란 특별한 의미다. 그녀의 타고난 거짓말 실력도, 이 반지가 연관되면 속절없이 무너졌으니.]레드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반지를 더욱더 눈여겨보았다.
혹시 교묘하게 제작된 모조품은 아닐까 의심해보았지만, 그런 여지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진심의 상징을 상자에 담아두고, 그것도 마경에 보관시켰을 줄이야.]그는 반지를 꽈악 움켜쥐었다.
다시 함에 집어넣어 아공간에 보관시킨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이익- 텅-
……엘런이 낸 소음이 아니었다.
귀가 일순간 움찔거리며 그 방향을 쫓았다.
바닥 한 개, 두 개 아래에 있는 1층.
[누군가 들어왔다.]1층에서 난 소리였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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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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