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272)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273화(272/354)
#273화. 파견 임무(10)
엘런은 다시 이사벨의 층으로 올라왔다.
아까 올라갔을 때와 지금의 장비 상태가 다르듯이, 층의 상태도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퍼졌네.”
탑주는 이만 층에서 떠났나 보다.
근데도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외벽에 찰싹 달라붙어 저들끼리 떠드는 모습은 왜인지 모르지만 길을 비켜선 듯했다.
“뭐지.”
엘런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거리낄 것 없이 정중앙으로 걸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저기서 슬렁슬렁 걸어오는 누군가와 마주쳤다.
익숙한 낯빛의 사내, 아니 소년이다.
어디서 마주친 적이 있던가?
회색과 백색이 군데군데 뭉친 머리의 소년은 걸어오면서 이쪽을 눈짓했다.
엘런도 마침 그를 보고 있었기에, 둘의 눈은 자연스레 마주쳤다.
뭐, 앞에서 오는 사람과 지나치다 서로 쳐다볼 수도 있는 거지.
“허으읍…….”
“허어억!!”
“……!!”
근데 주변 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보다.
이 소년도 그리 생각하는지, 그는 걸음을 멈춘 채 입을 열었다.
“네가 엘런 이안느냐.”
“그런데.”
“그런데?”
“너도 반말했잖아. 꼬맹아.”
자신보다 머리 하나 하고도 반 개는 더 작은 소년.
그래서 꼬맹이라 해줬더니, 근처에 있던 몇몇 마법사들이 기절하려 하는 게 보였다.
꼬맹이라는 작디작은 모욕이 언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도 되었나.
“흐흐흐흐흣…….”
소년은 나이대와 한참 떨어진 듯한 웃음을 길게 흘렸다.
익숙한 조소다.
이 낮고도 음침, 음흉한 웃음은 자신의 기억에는 한 명밖에 없었다.
‘카르멘 교수님?’
“여기 있는 걸 보니 임무를 완수했나 보군. 이사벨에게 한 치의 빠짐 없이 보고하도록. 내 귀에까지 닿을 수 있도록.”
“……그럼 당신은.”
“마탑주다. 꼬맹이도 겸하고 있지.”
“…….”
소년 탑주는 일련 비릿하게 웃었다.
허나 그 웃음 안에는 어떠한 적의도 살의도 없었다.
그런 미소마저 카르멘과 똑 닮았다.
머리카락색도 비슷한 게, 혹시 피가 이어진 가족일까.
“탑주님.”
“아까처럼 꼬맹이라고 불러보는 게 어때. 신선하고 좋았는데.”
“이제라도 예의를 지키는 걸 허락해주십시오.”
“흐응, 뭐. 그러지.”
“질문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탑주는 네 속내야 다 꿰뚫었다는 듯 이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속내를 꿰뚫는다.
그 영혼을 봐서 거짓과 진실, 상태를 헤아린다.
죽음과 가장 맞닿아 있으면서 가장 순수해진 사령술사와 네크로맨서의 힘이었다.
소년 탑주의 회색깔 눈은 늑대와 비슷했고 잿빛과 어우러졌지만, 그 안에선 진득한 죽음이 보였다.
“질문의 답변은 알아서 깨달은 것 같다만.”
“……그렇군요.”
“그러니 이만 붙잡지 말아라. 다른 학파의 층으로 몸소 내려온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새파란 마법사에게 꼬맹이란 말까지 듣고. 오늘은 평범하지 않은 날이야.”
“그건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재밌었으니까. 되려 이사벨보단 격식 있고 괜찮은 첫 만남이었어.”
“……?”
내 누나야.
대체 어떤 짓을 한 거냐.
이게 격식 있고 이게 괜찮은 만남이라면, 이사벨은 보자마자 귀엽다며 끌어안은 게 아닐까 의심되었다.
“다음에, 아니. 웬만하면 보지 말지. 자네와 나.”
“저는 또 뵙고 싶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릴.”
역시 사령술사와 네크로맨서는 상대의 거짓을 알아채는데 능하다.
사실 마탑주와의 만남보단 크로플과의 만남이 더 기다려지는 게 사실인지라.
“가봐라.”
“네.”
“아, 그리고.”
이번에는 엘런이 아니라 탑주가 그를 멈춰 세웠다.
탑주는 잠시 그의 행색을 살피다가, 이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 성에를 너무 가벼이 여기지 마라. 옷에 작게라도 들러붙어 있으면 감 좋은 이들은 눈치채버린다.”
딱-!
탑주가 손을 튕겼다.
“아.”
그러자 소매 밑단에 대롱대롱 달려 있던 눈꽃 하나가 사라졌다.
음기로 만들고 살랑이며 옷에 떨어졌던 녀석이었다.
금방 사라질 줄 알았는데 설마 아직까지 붙어 있을 줄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겠지. 걱정은 마라. 난 너희들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으니까.”
크레센티아는 대륙 전역에 발이 뻗어 있다.
제국의 손이 크게 닿지 못하는 마탑이라도 그 예외는 없었다.
당장 크레센티아의 차녀가 마탑 10대 학파장 중 하나로 있으니 더욱 그렇다.
탑주는 이만 후드를 뒤집어쓰며 몸을 돌렸다.
가벼운 작별 인사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지나치자, 주위의 마법사들은 그제서야 멈췄던 숨을 몰아쉬었다.
“에, 엘런 학생!”
“엘런 학생……!”
이쪽의 이름을 부르며 허겁지겁 헐레벌떡 뛰어오는 두 마법사.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다.
“루퍼트 님. 벨라 선배님.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라뇨! 무슨 일은 방금 엘런 학생에게 있지 않았습니까!”
“그, 그보다 탑주님께 꼬맹이라니……! 제정신으로 한 말이었어요?”
“그럴 리가요. 겉보기에 너무 젊으셔서, 다른 마법사의 견습인 줄 알았습니다.”
“저, 젊으셨다고요? 제가 보기엔 수염이 지긋한 노인분이셨는데?”
벨라가 화들짝 놀라며 반문하자, 이번에는 도미노처럼 루터트가 퍼뜩 어깨를 떨었다.
“저는 몸이 다부지고 잘생긴 남자를 보았습니다.”
“흐음.”
아무래도 인식 불가 마법을 걸치고 왔던 건 진짜인 모양이다.
모두가 자신이 상상했던 탑주의 모습을 봤을 테지.
허나 엘런은 회백색 머리의 소년을 보았다.
동시에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소년이 탑주의 진짜 모습임을.
“그럼 전 이만 학파장님을 뵈러 가겠습니다. 보고가 우선인지라.”
“네, 네. 얼른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엘런은 자리를 떠나 학파장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이미 누가 문밖에 서 있는지 아는 걸까.
이사벨은 들어오라는 허락도 없이 자기가 먼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터억-!!
문틈으로 이사벨이 쑤욱 빠져나오고 엘런의 팔을 잡아챈다.
카우보이의 밧줄에 묶인 소와 같은 꼴이 된 그는 순식간에 방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뭐야. 왜 그래?”
“진짜아……. 탑주님은 나한테 왜 그루냐아…….”
“한 소리 들었어?”
“후우, 아니야. 일단 엘런이 먼저 말해봐. 파견 보고를 해야지.”
평소 하늘을 두어 번 찌르고 오는 듯했던 목청이 지면을 기어 다니고 있다.
그녀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둥글게 문지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서로 무슨 대화를 했길래 이 누나의 멘탈이 과자처럼 조각났을까.
엘런은 그 궁금증을 잠시 뒤로 미룬 채, 이번 파견에서 겪고 또 보았던 걸 모두 그녀에게 말했다.
몬스터의 급증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은거지를 습격.
습격 도중에 예티에게서 사제의 흔적을 발견.
이후에 사제 둘과 조우하고 둘을 사살.
-하는 과정에서.
일행에게는 당장 말하지 못했고 아직은 자신만이 아는 사실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모종의 경로로 내가 사제의 영혼을 통해서 다른 차원으로 날아갔어.”
“다, 다른 차원……?”
“응. 그 다른 차원은 마경의 차원이었지. 뭐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이 놈들의 본거지 같았어.”
“으, 으음……. 일단 계속 말해봐.”
“나는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완드를 준비시키다가, 어떤 빈집을 발견했고 거기서 이걸 얻었어.”
엘런은 적월 반지를 꺼냈다.
처음에는 그저 낡은 반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반지는 단순히 낡은 반지라 치부할 수 없었다.
“반지 안쪽에 있는 고대 문자가 보여?”
“보이긴 하는데 읽을 순 없겠는걸?”
“나도 그랬는데, 여기 완드 안에 있는 레드가 대신 해석해줬어.”
“뭐라 쓰여 있는데?”
엘런은 그때를 회상하며 기억 속에 박아두었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멜리마 엘가 프리우드.”
“……그거 설마.”
“맞아. 선조님의 아내였던 엘가 폰 크레센티아. 그분의 본명이야.”
이사벨은 엘런이 여기까지 말하자, 조금씩 떨리는 손으로 적월 반지를 더듬거렸다.
반지의 테두리는 600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살짝씩 낡은 티가 났다.
그러나 중앙에 박힌 붉은 보석만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붉은 적광으로 넘실거렸다.
엘런은 말했다.
“이 반지의 이름은 적월 반지고, 이게 들어 있던 상자와 함께 집을 지키고 있던 자가 있었어.”
“가디언인 거야? 보물을 지키는?”
“유적에 있는 가디언을 말하는 거라면 조금 달랐어. 반지와 서로 묶여버려서 차원까지 넘나들어 버린 존재 같았달까. 또 그자는 기사였거든.”
“기사라면……. 크레센티아의 기사였다는 거야?”
“응. 그는 자신을 적월기사 라텔이라고 소개했어.”
엘런이 이사벨에게 묻고 싶은 건 이거였다.
“누나는 적월기사가 뭔지 알아?”
“……들어는 봤어. 가문의 비사를 다룬 책에서.”
가문의 비사를 다룬 책?
그런 책이 있단 말인가?
호기심이 먼저 일었지만 지금은 귀를 기울여야 할 때.
꽤나 오래전인지, 이사벨은 턱을 괴며 그 책을 읽었던 당시의 기억을 더듬거렸다.
“적월기사. 과거에 만월기사와 같이 존재했던 직책이었나 봐. 하지만 지금은 그 직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
“적월기사의 임무는 뭐였는데?”
“개인 호위였다는 말도 있고, 암살이었단 말도 있었어. 그 책에는 한 사람이 저질렀다고는 믿기 힘든 학살의 기록이 있었지.”
학살의 기록.
확실히 그 혈광은 수백 수천을 베어 넘기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빛이었다.
이사벨은 말했다.
“그 임무가 정확히 뭘 위했던 건지는 두루뭉술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적혀 있었어. 학살 덕분에 괴로운 선택이 줄어들었다고.”
“……당장 이해하긴 힘든 말들이네.”
“맞아. 그리고 적월기사에 대한 말은 이게 끝이었어.”
“적월기사와 관련된 비사도?”
“응응. 사실 모든 비사가 그렇지만 적월기사도 가문의 음지에서 활동하던 인물 같았거든. 모든 게 비밀스러워. 가주가 아닌 이상에야 파고들 수 있는 정도는 이게 한계겠지.”
그럼 아버지께 여쭤봐야 할까.
하지만 물어본다고 아버지가 다 가르쳐주실까.
아마 아닐 것이다.
비사로 취급받은 일이라면 가주가 인정해선 안 된다는 것과 동의어다.
설령 그게 가족이더라도 달라질 건 없을 터.
“그래도 엘런. 지금 네 손에 있는 건 가문의 보물이야. 보니까 결혼반지인 거지?”
“응. 그런 것 같아.”
“그럼 의미가 더더욱 있는 거네. 네가 가문에게 대단한 영광을 쥐여준 거라고.”
“그런 걸까.”
평소 가문 위상 깎아내리기, 아니 부모님 속 긁어내기가 재능이었던 엘런에겐 퍽 낯선 칭찬이었다.
엘런은 반지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처음 이 반지와 마주했을 때부터 느꼈다.
이건 단순한 관상용에다 치장용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아직까지는 단순한 느낌일 뿐, 엘런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었다.
그는 다시 반지를 함에 넣고, 아공간에 넣으며 이사벨에게 물었다.
“그래서? 탑주님은 왜 왔다 가신 건데.”
“나보고 마탑주 비서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시더라.”
“비서? 학파장에서 비서로?”
이사벨은 고개를 천천히 주억였다.
엘런으로선 선뜻 이해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학파장에서 비서면 승진인가 좌천인가.
“엘런은 잘 모르겠지만, 마탑주의 비서는 아카데미로 따지자면 부총장 같은 거야. 사실상 다음 마탑주 후보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지.”
“……그럼 누나가 마탑주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거야?”
“아마도? 하지만 나는 그러기 싫은걸. 내 맘대로 하기엔 딱 학파장 정도가 좋단 말이야.”
누군 꿈에서도 잡지 못하는 자리가 마탑주인데.
이사벨은 단순히 자신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영광을 껄끄러워했다.
하지만 엘런도 이사벨과 같은 이유로 학생회장 자리를 까고 있었다.
그래서 딱히 뭐라 할 자격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
아마 아버지나 어머니라면 마탑주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이사벨을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런은 알고 있었다.
상대가 뭐라 지껄여도 이사벨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인간이다.
“싫으면 거절해.”
그 속 편한 소리에 이사벨은 뭐라 반박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거절도 으렵다고오……. 탑주님 얼굴에서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게 빡하고 보였단 말야아.”
“그럼 해야겠네.”
“흐아아아앙…….”
이사벨은 슬라임처럼 소파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그보다 여기 마탑에서 이틀만 쉬다 갈게. 치료 목적으로.”
“마음대루 하거라아…….”
이사벨은 다 관심 없고 다 무의미하다는 듯, 손만 휘적휘적 저었다.
“그럼 나가본…….”
위이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천장에서 사이렌 소리가 귀따갑게 울려댄다.
이사벨은 아까까지 바닥에 흐르려 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 이, 이건……!!”
“왜. 뭔데.”
이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의 이유는 천장에서 대신 말해주었다.
[외부의 공격 감지. 외부의 공격 감지. 마탑의 전 마법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라.]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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