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276)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277화(276/354)
#277화. 파견 임무(14)
“안녕하십니까. 재스퍼 반 델라르테입니다.”
그의 첫 인사는 조용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꺼진 마이크에 얘기하고 있는 사람처럼, 학생들은 반응이 없었다.
이미 이전 후보들의 언변과 공약에 마음을 뺏겨버려서일까.
아니면 상대 후보들의 분탕질로, 이미 그가 동급생 폭행 40일 봉사를 받아서일까.
그럼에도 재스퍼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나갔다.
“저에 대해선 딱히 소개할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이미 다른 후보님들이 저에 대해 많이 알려주셨을 테니까요.”
학생들의 눈이 곱지 않은 이유였다.
동시에 잘못된 방식으로 펼친 가문을 향한 구애였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모 학생을 폭행했고, 해당 학생은 그 충격에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학생회 기록에도 이리 남겨져 있습니다.”
자백에 가까운 독백에, 단상 가깝게 앉아있던 후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뭔가 반전이라도 주려는 건가. 저래선 될 것도 안 될 텐데.”
“저놈이 팬 애가 쓰레기긴 했잖아. 나는 그걸 어필할 줄 알았다고.”
“나도 분명 그럴 줄 알았는데. 대체 뭔 생각이냐, 재스퍼.”
“우리가 저놈 생각을 알았던 적이 있었냐. 네 생각은 어때? 우리 유능한 빌레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뒤편에 서 있던 적갈색 머리의 남자, 꾸며진 미성의 남자는 가만히 단상을 올려다봤다.
반면 선배들은 일이 이미 끝났다 생각했는지, 계속 잡담을 걸어왔다.
“그래도 네 덕분에 재스퍼를 여기까지 몰아붙였다.”
“맞아맞아. 투표 날짜를 앞당기자는 아이디어에선 소름이 돋았다니까?”
“어지러운 바깥 상황과 상부, 청원을 통한 거였으니, 학생회도 꼼짝 못 했어.”
“야야. 너는 그때 학생회장님 얼굴을 못 봐서 그래. 그거 청원 신청하러 학생회장실에 갔던 애는 바지에 오줌을 지려서 왔더라.”
빌레드의 손이 스르륵 입을 가만두지 않는 선배들의 어깨로 올라갔다.
히끅-!
그러나 선배들은 몇 초나 지나서야, 손가락 끝이 시야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 음습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선배님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르크는 조금 이따가 따도 늦지 않아요.”
“으, 응. 그렇지. 네 말이 맞아.”
“와인은 숙성시킬수록 값이 뜁니다. 지금 따버리면 맛없겠죠.”
스르륵-
빌레드의 손이 다시 내려왔다.
그제서야 선배들은 참아뒀던 숨을 몰아쉬었다.
후배에게 기에서 밀렸다는 사실은 지금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전 간악한 뱀이 자신의 목을 휘감을 뻔했단 사실만이 자각될 뿐이었다.
그런 원초적 두려움 사이로, 재스퍼의 육성이 번져나갔다.
“또 저는 서자입니다. 이 점이 또 귀족 출신 학생 여러분께는 감점 요소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쯤 오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지금 서 있는 장소가 대강당이 아니라 재판장인 줄 아는 거야?
이런 뜻의 눈빛들이 단상 위에 서 있는 그에게 쏟아졌다.
재스퍼는 능숙하게 그 눈빛들을 받아넘겼다.
가문에서 받았던 눈총보다는 아주 유순했기에, 되려 부드러운 미소마저 입가에 번졌다.
“제가 모 학생을 폭행한 이유. 제가 서자인 이유. 제가 이 단상에 선 이유. 모두 하나의 단어로 귀결됩니다.”
재스퍼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었다.
그를 좋지 않게 보았던 학생들도 귀를 기울여 재스퍼에게 집중했다.
더불어 이 집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재스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로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단어였다.
그래서 몇몇 학생들은 김이 빠졌다는 듯, 등받이에 몸을 눕혔다.
하지만 재스퍼의 연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의 어머니는 평민으로, 아니 사창가의 매춘부로 아버지와 만났고 저를 낳으셨습니다.”
웅성웅성-
조금 전 엘런의 등장에 못지않을 만큼의 수근거림이 장내를 감쌌다.
충격으로 학생들의 머리가 온전치 못한 지금, 재스퍼는 곧장 말을 이었다.
“귀족 학생들은 이후의 결과를 잘 아시겠지요. 어머니는 가문 저택에 들어왔지만 받았던 건 창고 한 귀퉁이였습니다. 거기서 숙식을 해결하셨죠. 아버지의 본처와 그 자식들의 괴롭힘도 감내하며 어린 절 키우셨습니다.”
귀족가 학생들, 그것도 서자 출신 학생들은 대부분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재스퍼의 얘기는 단순히 개인적인 내용이 아니라 다양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서자의 신분에서 나오는 외로움.
그런 외로움을 견디게 도와준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자식에게 관심 없는 아버지.
여기 앉아있는 거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들이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걷기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급성 심장마비였습니다.”
표면적인?
재스퍼의 말 중간에서 생선 가시처럼 걸린 단어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이후 몸이 자란 저는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시종들에게서 편지하고 물건들을 받았습니다.”
여기부턴 엘런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편지는 총 두 개였습니다. 하나는 시종들이 저에게 쓴 것, 다른 하나는 어머니가 쓴 것입니다.”
그 편지들은 재스퍼의 품속에서 나왔다.
상당히 빛바래 조금 노래지고, 군데군데 물이 떨어져 번진 흔적도 보였다.
그는 편지들을 하나하나 펼쳤다.
처음으로 펼친 건 시종들이 보낸 편지였다.
재스퍼는 그걸 자신의 꾸밈 없는 목소리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막내 도련님. 저는 1등 집사 하임입니다. 이 편지는 비밀스럽게 전달하는 것이니 답장은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이리 편지로 찾아뵙게 된 건, 막내 도련님이 꼭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귀족가 학생들은 여기서 다른 사실에 집중했다.
1등 집사와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라고?
델라르테의 1등 집사라면 분명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서자 따위의 인물이 친해질 만한 위치의 사람은 아닌데.
귀족가 학생들이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을 때쯤, 재스퍼의 말이 이어졌다.
“도련님 어머니의 사인은 검사관들이 매춘부 시절 얻었던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한 거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인께선 실은 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독살을 당했다?
귀족가에선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사자를 눈앞에서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평민 출신 학생들에겐 더욱 그랬다.
“독살의 주체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언급할 수 있는 건, 부인의 마지막 식사가 가주님과 즐겼던 둘만의 만찬이라는 겁니다.”
웅성거림이 아까보다 배로 짙어졌다.
이제는 상대 후보들마저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였다.
그 이유는 다양했다.
거의 가문 비사에 해당하는 일을 이렇게 대놓고 밝혀도 된단 말인가?
재스퍼는 거리낌 없이 말을 이었다.
“편지는 이후에 복수를 꿈꾸지 말아 달라는 말과 함께 끝납니다. 하지만 어느 누가 그럴 수 있을까요. 그동안 저의 진짜 가족은 어머니뿐이었고, 그렇게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어머니의 편지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그의 반대쪽 손에 있는 연분홍 편지지 하나.
그렇게 길지 않은 편지인지, 아니면 재스퍼가 집사의 편지와는 달리 육성으로 말하기 힘든 편지인지, 그의 말은 길지 않았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청산유수처럼 이어지던 재스퍼의 목소리가 툭툭 끊긴다.
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엘런은 반대로 옅게 웃어 보였다.
죽은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 슬퍼하지 않을 아들은 없을 터.
하지만 재스퍼는 그런 눈물마저 참을 수 있는 사내였다.
그는 일부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동정표를 사기 위해, 일부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들아. 지금은 네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언젠가 네가 이 편지를 볼 만큼 충분히 자란다면 가문을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가 되어주거라.”
가문의 기둥이 되어주라고 했던 어머니.
가문에게 독살당한 어머니.
모두 하나의 어머니였고 재스퍼의 어머니였다.
“1학년 첫 방학 때 가문에 돌아간 저는 1등 집사를 만났습니다. 남들은 모르는 만남이었고, 남들은 알면 안 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집사는 편지로는 담지 못했던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얘기는 이후 재스퍼에게서 드러났다.
“어머니는 그 만찬이 자신의 최후일 걸 짐작하셨던 것 같다더군요. 저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집사에게 남기고 만찬장에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밑바닥 인생을 살며 생긴 육감이 말해줬을 것이다.
가면 위험하다. 가면 죽는다.
“허나 어머니는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되려 가문이 자신을 불러주었단 거에 감사하여 만찬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곤 기쁘게 요리를 즐기셨습니다.”
충격의 연속으로 학생들의 머리가 종처럼 울렸다.
그래서 재스퍼는 앞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금 꺼냈다.
“헌신적인 사랑. 제가 여러분들께 내세울 유일한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저에게, 가문에게 보이셨던 헌신적 사랑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시도해봐야 한다.
그래야 가장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이 아니라 가문 자체를 사랑하셨다.
나아가 그런 큰 단체는 제 눈앞에 하나밖에 없었다.
“저는 이 학교를 사랑해보기로 했습니다. 또 이 학교에 다니는 여러분을 사랑해보기로 했습니다. 제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계속해서 사랑할 겁니다.”
단상 위에 놓인 수정구가 빛을 발한다.
그가 준비한, 엘런이 준비한 명단이 허공에 띄워졌다.
그 명단에 적힌 이름들을 본 학생들은 입을 뜨악하고 거세게 벌렸다.
“아카데미의 알렉산드라 총장님. 델 교수님, 돌로레스 교수님, 카르멘 교수님, 시모 교수님, 키아 교수님. 그리고 엘리스 학생회장님을 비롯하여 현 학생회 3학년 선배분들께서 제 여정에 함께하셨습니다.”
꼬르르륵-!
후보석에 있던 몇몇 후보들이 기절하는 게 보인다.
“또한 여기 자리까지 올 수 있게 해준 엘런 이안느 후배에게 개인적인 존경을 바칩니다.”
뭘 또 이름까지 불러주나.
개인적인 존경을 바치기는 무슨.
나중에 디저트나 마차 가득 실어서 바쳐주면 모르겠다만.
엘런은 하품만 쩌억 했고, 마지막으로 재스퍼는 학생들 앞에서 깊숙이 고개 숙였다.
“지금까지 재스퍼 반 델라르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짝짝-!!
박수갈채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처음 시작할 때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번쩍-!
한쪽 외벽에 줄지어 설치되어 있던 개표실이 열렸다.
부학생회장 도르마는 마이크를 두어번 톡톡 치더니 말했다.
“학생 여러분들께선 3학년을 순서로 줄지어 투표실에 입장해주십시오. 후보 학생들은 대강당에서 벗어나 대기실로 이동해주세요.”
혹시나 있을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후보들은 대강당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했다.
그 탓에 재스퍼와 말을 나눌 시간도 없었지만, 둘은 가볍게 눈만 맞추며 다음을 기약했다.
개표실에서 떨어져 차례를 기다리는 엘런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뭐, 할 말 있어?”
“준비 많이 했더라. 언제 한 거야?”
“너도 많이 했던데. 뒷수작을.”
“나야 뭐, 괴물을 이기기 위해서 그물과 작살을 준비한 것뿐이야.”
“하여간 말은 잘해요. 어쨌든 네가 한 거잖아. 투표 날짜를 앞당긴 것도, 재스퍼 선배의 약점을 퍼뜨린 것도.”
빌레드는 논점을 빙빙 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순순히 인정하니 되려 화낼 마음도 사라진다.
엘런은 피식 웃으며 외벽에 등을 기댔다.
“어쩐지 3학년 선배들은 싸인 얘기만 하면 자리를 피하더만. 네가 학생회장님에게 먼저 부탁을 드렸구나.”
“그런 거지.”
“학생회장님하고는 많이 친한가 보네. 같은 동아리 원이라곤 해도 벽은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대화에서도 정보 뜯어내기냐.”
빌레드는 옅게 웃었다.
뭔가 상황이 잘 안 풀릴 때 나오는 감정 무마용 미소다.
엘런은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그 기억이 정답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대충 던져줄 테니까 먹고 가.”
“파견 임무가 생각보다 쉬웠나 해서.”
“쉽진 않았는데.”
“일주일짜리를 이틀 만에 끝내고 왔잖아. 나는 분명 일주일로 생각하고 청원을 했거든. 만약 그랬다면 내가 이겼을 텐데.”
“맞아. 그랬다면 네가 이겼을 거야. 그랬다면.”
도르마의 마이크가 다시 한번 울렸다.
“1학년 투표 시작하겠습니다.”
빌레드는 빙긋 웃으며 투표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난 재스퍼 선배 찍으러 가봐야겠다. 줄은 빨리 댈수록 좋으니까.”
“……참, 너도 정상은 아니다.”
“최고 비정상의 입에서 듣고 싶은 말은 아니네.”
빌레드와는 그렇게 헤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표를 마친 엘런은 생활 구역으로 돌아가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음 날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마탑 도시, 마지아가 초토화됐다는 소식이었다.
나아가 1학년 생활 구역은 특히 더 눈깔 튀어나올 만큼 놀라야 했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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