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317)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318화(317/354)
#318화. 마이킨의 재상(2)
지지직- 지직-
사람 얼굴보다 조금 더 큰 기계식 화면.
그 화질도 흐려 사람의 형상 정도만 눈에 띈다.
허나 그런 화질도 저 남자의 무력과 반짝이는 은발을 감출 순 없었다.
흑발을 하염없이 길게 늘어뜨린 여자.
그녀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게 웃었다.
“흥미로운데.”
뱀 같이 좌우로 길게 찢어진 입가 사이로 혀가 입술을 핥는다.
[이쯤 되면 파악은 어느 정도 끝나지 않았습니까. 재상 멜리마.]화면에서 기계음 섞인 육성이 흘러나온다.
이쪽이 보고 있단 것까지 알아챘을 줄이야.
점점 더 마음에 든다.
달칵-
피같이 붉은 입술이 마이크 가까이 붙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저의 부하 선에서 끝내려고 했는데 일이 조금 커져 버렸네요.”
[얼굴 보고 얘기하시죠.]“좋아요. 그럴 자격은 충분히 있으신 듯하니.”
마이크에서 떨어지려던 입술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멈췄다.
“아, 그리고 매셔. 너는 해고야.”
[예, 예……?]얼빠진 목소리가 귀로 들려온다.
이것마저 역겹다.
무능한 놈은 역겹다.
“사절께서 널 정말 공격하실 리가 없는데 그리 굼벵이처럼 엎드려있는 꼴이란. 내 부하로 자신을 소개했으면 사형장에서도 당당해야지.”
[메, 멜리마 님! 한 번만 더 기회를……!!]“기회는 내 부하가 된 시점에서 주어진 거야. 이만 사라져. 무능이 옮을라.”
뚝-
마이크는 그대로 끊겼다.
해고 통지가 어떤 의미까지 가진 건진 모르겠다.
하지만 메셔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예상은 했지만 이런 여자구나.’
[그래. 하지만 지금 같이 칼 같은 상사의 모습은 그녀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그래.’
병사들은 이미 좌우로 비켜섰다.
문도 하나고 길도 하나.
만날 사람도 고작 하나이건 만 답지 않게 긴장이 되었다.
그 변화는 손에서 일어났는지, 델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빠. 긴장하지 마세요.”
“……긴장 안 했어.”
“손에 땀이 차셨는걸요. 마음 편하게 먹으세요. 고작 인간과 조우하는 것뿐이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요.”
“그래. 짐승은 본능으로 상대의 두려움을 파악한다. 네가 긴장하면 상대가 그 긴장을 파고들 거야.”
쉰 살 소녀들의 조언은 하나하나가 와닿았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아.”
미래에 뭐가 어떻게 된다 해도 지금의 멜리마 엘가 프리우드는 적국의 인물이다.
이겨야만 하는 인물이고 패배시켜야만 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전력을 다해서 이길 뿐이었다.
크레센티아로서.
크레센티아로 돌아가기 위해서.
덜컹-
방 밖으로 나오니까 사람 한 명이 또 대기 중이었다.
부푼 빵모자와 마이킨 왕국의 문장을 가슴팍에 단 소년이었다.
“메, 멜리마 재상께서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가시죠.”
“따라오십쇼!”
방 바깥은 복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인티제 왕국과 달리 마이킨 왕국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딱딱하고 차가웠다.
건물에 색 자체를 많이 안 쓴 느낌이었다.
눈에 보이는 게 대부분 회색과 강철의 진회색이었으니.
“이곳은 텔레포트 1번실이 있는 대륙이동장이에요. 마이킨 왕국의 사절들이나 타국의 사절들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입니다.”
“첫인상이 썩 좋은 장소는 아니더군요.”
“하하핫. 다들 그렇게 말한답니다.”
“재상은 어디에 있죠.”
“재상께선 바로 위층에 계십니다. 이동장에는 귀빈 접대실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거기서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게 될 겁니다.”
위층으로는 구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게 되었다.
수동으로 가문을 닫고 버튼을 누르니, 엘리베이터는 그제서야 천천히 움직였다.
소년은 위로 가면서 놀랐다는 듯 말했다.
“그보다 재상께서 타인에게 먼저 흥미를 보이신 건 처음이에요.”
“그렇습니까.”
“네. 적어도 제가 재상의 부하로 출근한 뒤부터는요.”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도 재상이나 되는 사람의 부하가 되셨네요.”
“네, 네. 멜리마 재상께선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으로만 사람을 뽑으시거든요. 또 그 능력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가차 없이 자르시죠. 아까 보셨다시피요.”
“제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겠습니까.”
소년은 안 그래도 거슬렸다는 듯 뒤로 팍 돌았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닷.”
그의 손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엘리베이터가 접대실까지 도착하기 전까지.
그 자투리 시간 동안 소년은 살짝 뜬 머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벼락과 같이 다듬었다.
저 작은 손이 한 번 닿았을 뿐인데 다림질을 한 것마냥 옷이 쫙 펴진다.
[……과연 능력주의에 미친 인간이 뽑을 만하군.]소년은 마지막으로 데카마드의 소매를 정리해주며 말했다.
“재상의 눈을 두고 다른 곳을 너무 오래 보지 마세요. 그리고 숨소리를 거슬려하시니까 최대한 작게 내주시고, 멍청한 소리를 하거나 수준 떨어지는 소리도 싫어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최근 역사나 전략, 전술에 얼마나 관심 있으신지는 모르겠는데 거기서 무지한 티를 내면 인상을 팍 찌푸리세요.”
“알겠습니다.”
“체스를 좋아하시니까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으시다면 체스를 권해보세요. 참고로 재상님은 체스에서 져본 적이 없으시답니다.”
“재밌네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데.”
데카마드의 옷 정리를 끝낸 소년은 마지막으로 걸리는 게 있는지 옆을 돌아보았다.
자신과 비슷한 키의 소녀들.
“재상님은 아이들을 싫어하시거든요. 잠시 제가 접대실 밖에서 돌봐 드릴게요.”
“부탁드립니다. 델, 렉시. 잠시만 바깥에 있어 줘.”
“그럴게요.”
“그러마.”
이젠 델과 알렉산드라도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
띠링-
드르르르륵-
접대실에 도착했다.
복도는 또다시 보였지만 형식적인 복도였다.
이 층에는 접대실 밖에 없었고, 이 접대실 안에 있는 한 사람은 기다리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
“조금 빨리 가야겠네요. 걸음을 서둘러주세요.”
소년은 시계를 연신 바라보며 다리를 교차했다.
분명 접대실이라고 들었는데 마이킨 왕국은 참 모든 곳이 사무용 건물 같았다.
딱딱하고 단색이다.
“도착했어요. 바로 여깁니다.”
똑똑똑-
“재상님. 아인티제 왕국의 사절을 모셔왔습니다.”
“들어 오시라 해.”
기계음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목소리.
겨울 새벽 호수같이 차가우면서도 시리도록 깨끗한 육성이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가씨들은 잠시 저와 시간을 보내시죠.”
“부탁드립니다.”
달칵-
끼이익-
문고리가 돌아가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니 보였다.
흑단같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인 여자가.
얼굴은 뒤를 돌고 있어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당장 사령부터가 그녀와 똑 닮았으니까.
“바깥 풍경이 좋나 봅니다.”
멜리마는 접대실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차가 다그닥거리며 지나가는 소리와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글쎄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풍경은 아니네요.”
그녀가 뒤를 돌았다.
뱀을 닮은 여자였다.
동시에 사악한 인상의 여자였다.
오전에도 사람 한 명 잡아먹었을 듯한 미소는 살인적이다.
그런 미소와 어울리는 눈가는 매섭기만 했다.
흑진주 같은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오늘 기분이 어떠신가요.”
“곧 좋아질 것 같습니다.”
“우연이네요. 저도 그런데.”
멜리마는 싱긋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자주 보았던 꾸며진 미소였다.
“거기 앉으세요. 커피 좋아하시나요?”
그녀가 안내한 자리에는 이미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그것도 아주 조그마한 잔에 담긴 게 어떤 맛인지 예상 갔다.
“저는 사양하죠.”
“아쉽네요. 맛이 좋은데.”
“전 차를 개인적으로 더 선호합니다.”
“이유를 묻고 싶지만 피차 쓸데없는 질문이라 하기 싫네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좋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어색하니 할 말도 제대로 안 나오겠군요. 이럴 때는 게임이라도 하면서 말을 나누면 훨씬 편할 텐데요. 예를 들면 체스 같은.”
착각일까.
체스라는 말이 나오자 멜리마의 한쪽 입가가 쭈욱 찢어졌다.
쥐새끼를 눈앞에 둔 독사처럼, 제 송곳니를 드러낸 듯한 미소였다.
“체스를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네요. 좋아요. 금방 판을 준비할…….”
“그럴 필요 없습니다.”
딱-
마법사는 체스판을 준비하지 않는다.
마법사는 체스판을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
쩌저저저저저적-!
손가락을 튕기니 커피가 올려진 탁자 위로 체스판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얼음을 조각해 만든 체스판은 그 기물들마저 하나같이 예술적이었다.
일류 조각가가 하나하나 깎아 만든 듯한 질감.
“이런 것도 마법인가요? 대단하시네요. 과연 저희의 이동장을 가루로 만든 마법사님 다워요.”
“만져도 차갑진 않을 겁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흐응, 그냥 하면 재미없지 않겠어요?”
“내기를 하잔 말씀이십니까?”
“제가 이기면 저희 마이킨 왕국의 궁정 마법사가 되세요.”
체스 한판으로 정하기엔 내기의 스케일이 단숨에 비대해졌다.
“제가 이기면요.”
“사절로서 이쪽에 오신 목적이 있으실 거 아니에요. 그걸 이뤄 드릴게요.”
“마이킨 왕국의 왕을 뵙고 하고 싶은 말들인데, 재상께 다 털어놔도 될지 모르겠군요.”
멜리마가 사근하게 데카마드의 건너편으로 앉았다.
“괜찮을 거예요.”
그녀의 손에 잡힌 체스의 킹.
시체가 연상될 정도의 새하얀 손은 킹을 제 손안에서 천천히 굴렸다.
손가락 사이에 끼기도 하고, 그 목을 엄지로 부러뜨릴 것처럼 누르기도 했다.
킹은 저항하지 못했다.
그녀가 잡는 대로 누르는 대로 조종당하는 장기 말이었다.
“시작할까요?”
“……좋습니다.”
체스는 시작되었다.
“선공은 백이 먼저 하는 건데. 이 얼음 체스는 누가 흑이고 누가 백인가요?”
“선공을 양보하죠.”
“색이 없는 체스라……. 재밌겠네요.”
자신이 둔 위치는 자신이 기억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순간 패배는 한 걸음씩 다가온다.
멜리마가 퀸 앞에 폰을 앞으로 한 단계 움직였다.
“이곳에는 무슨 목적으로 오셨어요?”
비숍 앞에 있는 폰이 맞수로 두 칸 움직였다.
“전쟁 준비를 하시길래 그 동향을 파악하고자 왔습니다.”
“전쟁 준비라뇨. 저흰 그런 무서운 거 한 적 없는걸요.”
“최근 마탑에도 다녀오시고 군사를 징집 중이지 않으십니까.”
“평화를 위해선 강해져야죠. 힘없이 외치는 평화는 단순한 바람일 뿐이니까요.”
왼쪽 나이트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주변 소국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마이킨 왕국이 전쟁을 준비한단 소문이 파다한 건 알고 계시겠죠.”
“날파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하나요.”
“그럼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퀸이 빈자리로 빠져나온다.
그 수를 가만히 보고 있던 멜리마는 가만히 웃음 지었다.
“모르겠네요.”
“무엇을요.”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의외네요. 금방 파악하셨을 줄 알았는데.”
“사절로 왔으면서 왕국에 대한 걸 캐묻지도 않고, 전쟁을 막으러 온 것처럼 보이는데 또 그런 것에 관심 있어 보이진 않고. 그냥 사절 연기를 하는 사람 같아요.”
멜리마의 말이 맞았다.
이쪽은 그저 사절을 연기 중이었다.
한 나라의 대표로 왔지만 대의에는 관심 없었다.
지금은 그저 눈앞에 있는 인간에 대해 최대한 많이 파악하고 싶었다.
멜리마 엘가 프리우드가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평소와 역할이 반대로 되어 있으니까.
본래 파악하는 자였던 사람이 파악 당하고 있으니까 혼란이 오는 것이다.
이른바 거울 치료란 것인데, 그녀는 이런 혼란도 재밌는지 미소를 떨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을 안 했네요. 멜리마예요. 그냥 멜리마.”
“데카마드입니다. 그냥 데카마드.”
둘의 손이 마주 잡혔다.
얼음장 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가졌으면서, 손은 그 무엇보다 따뜻하다.
“자, 그럼 체스를 속행해볼까요.”
“네. 얼른 멜리마 재상을 이겨서 원하는 걸 얻어야겠습니다.”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어줄 생각은 없으니. 빨리 데카마드 마법사를 제 부하로 만들어야겠네요.”
둘은 오랫동안 체스를 두었다.
체스판 속 기물들은 하나하나 밖으로 나가고, 서로가 쓸 수 있는 기물들은 한정되어갔다.
색조차 없는 체스판 위에서 둘은 귀신같이 제 것을 집어나갔다.
그러나 이 게임은 머리 좋은 놈이 이기는 게임.
만약 둘 다 머리가 좋다면, 특이하게 생각하는 놈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런 면에서 데카마드는 도저히 질 수 없었다.
“제가 이겼네요.”
“…….”
“내기였던 소원 들어주기. 지금 바로 쓰겠습니다.”
“……소원 들어주기가 아니라 사절로서 이곳에 오신 목적을 이뤄드리는 거였어요.”
“그게 그겁니다. 저에겐.”
짝-
손뼉을 가볍게 치니 체스판은 눈꽃이 되어 스러졌다.
“제 소원은…….”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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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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