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322)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324화(322/354)
#324화. 악의(2)
방 안은 어두웠다.
칠흑같이 어두운 건 아니었으나 안개가 낀 듯이 침침했다.
달칵-
멜리마가 천장에 붙은 줄을 당겼다.
그러자 전구에 하나둘 불이 들어온다.
……그럼에도 방은 밝아지지 않았다.
이 안이 소름 끼칠 만큼 어두운 악의로 가득 차서 어두운 걸까.
전등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빛만 냈다.
“저의 계획은 모두 이 방에서 나와요. 마법사와 비교하면 일종의 연구실이라고 할까요.”
“저로선 알 수 없는 것투성이군요.”
“괜찮아요. 제가 하나하나 알려 드릴 테니까.”
“그래도 됩니까? 제가 어떤 방해를 할지도 모르는데.”
“네. 바로 그거예요.”
멜리마는 왜인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벽면을 향해 이끌었다.
암막 커튼이 쳐진 벽면이었다.
방 주인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의 커튼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피부가 따끔거렸다.
“여보. 제 목적을 알고 싶다 하셨죠.”
“네. 알고 싶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시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아마 틀렸을 거예요.”
“…….”
미래를 알고 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 틀리는 건 일부로라도 힘든 일이다.
근데 이쪽이 틀렸다?
데카마드는 지금 제 위치를 깨달았다.
“제가 생각한 부인의 목적. 그건 정답도 오답도 아니었군요. 저는 정답이라 생각했지만요.”
“그럼 여기서 먼저 들어볼까요? 그 반쪽짜리 대답을.”
미래 역사서에서 마이킨의 재상은 이렇게 기록되었다.
그 이름마저 기억해선 안 될 악인.
전쟁의 불씨를 직접 만들고 직접 키워낸 악마.
살육을 즐기고 세계의 모든 걸 손에 쥐려 했던 그릇된 자.
이런 정보들로 생각할 수 있는 답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태까지 마이킨의 재상과 어울리면서, 이 대답은 온전치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온전치 못한 답은 입술에 걸렸다.
“세계 정복. 저는 이걸 원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세, 세계 정복이요? 하하하하핫!!”
멜리마는 크게 웃었다.
상대를 항상 깔보는 듯한 표정이 기본이었던 이목구비는 모두 저마다의 곡선을 그렸다.
그렇게 눈물까지 찔끔 흘릴 정도로 웃고 나니.
“고마워요, 여보. 여보 덕분에 제 수명이 5년은 더 늘었네요.”
“반쪽짜리 대답마저 아니었나 봅니다.”
“네. 세모를 주기도 어려운 대답이었다고요. 세계 정복은 제 계획의 부수입 같은 거니까요.”
“부수입……이요?”
“세상 어느 누가 금괴를 앞에 두고 금가루에 눈독을 들이겠어요.”
세계 정복을 금가루라 칭했다.
세계 정복을 부수입이라 단정 지었다.
그 정도로 거대한 목적성이, 중앙성 침실만 한 방에 다 담겼단 말인가.
촤아악-!
첫 번째 커튼이 좌우로 걷혔다.
“지도군요.”
“세계 지도예요. 전국의 지도쟁이들에게서 구한 가장 정밀하고 가장 정확한 지도랍니다.”
“그래 보입니다.”
600년 전 지도다.
분명 미래의 지도와 오차가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은 손에 꼽았다.
미래의 지도를 전부 기억하는 기억력도 이 지도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멜리마는 말했다.
“지도에 그어진 빨간 줄들이 보이세요?”
“색맹은 아닌지라 잘 보입니다.”
“그럼 이 줄들이 의미하는 바도 보이시나요?”
“그것도 보이네요.”
“호오, 정말요? 그럼 어디 맞춰보세요. 맞추면 상품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살짝 떠 있었다.
발뒤꿈치도 살짝 떠 있고, 그러면서 몸도 살짝 떠 있다.
기분이 위로 뜨니까 몸 곳곳이 전부 풍선을 매달아 놓은 것마냥 뜨는 것이다.
지금 멜리마는 들떠 있었다.
“이 빨간 줄들은 마이킨 왕국 군대의 진격 경로네요. 사방으로 뻗쳤지만 그 순서는 분명 정해져 있겠죠.”
“네네. 더 말해보세요.”
제 미술 작품의 숨겨진 뜻을 알아맞히는 걸 본 예술가 마냥, 멜리마는 제 흑안을 반짝거렸다.
천장의 전구보다 저 눈이 빛날 때까지, 600년 후 천재의 지혜는 십 분 발휘됐다.
“산새가 험한 지역의 소국들부터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쓸어버리려고 하시는군요.”
“제가 그러는 이유는요?”
“적들이 자연환경이란 성벽 안에서 한참 방심 중일 테니까요.”
“맞아요, 맞아요. 그럼 다음은요? 다음 제 목적은 뭘까요?”
“소국 다음에는 대국을 쳐야겠죠. 아인티제 왕국은 가장 마지막 먹잇감일 겁니다. 덩치가 큰 만큼 조리가 필요한 요리죠.”
지도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 지도에 담긴 고뇌의 시간들이 그렇게 일러주었다.
마치 누가 옆에서 속삭여주듯.
멜리마의 생각들이 책으로 집필된 것처럼 훤하게 보였다.
“아인티제 왕국의 보급로를 하나씩하나씩 끊습니다. 이미 점령한 소국들을 빠르게 합병하는 게 관건이겠군요. 여기서 군량미와 부족한 군사들을 끌어모아야 합니다.”
“더. 더. 더. 계속 말해요.”
“아인티제 왕국은 주변에 거대한 숲이 있습니다. 이 숲은 적들에게 유리한 곳이지만, 점령한다면 자원을 얻기 충분하죠. 하지만 부인은 불을 지를 생각이군요.”
“……!!”
“적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겁니다. 숲의 크기가 크고 건기(乾期)를 노리면 대화재가 발생하겠네요. 그것만으로도 아인티제 왕국의 힘은 꽤나 빠질 겁니다. 이쯤 되면 주변국들이 도움을 주지도 않겠군요. 박쥐 같은 소국들은 대륙의 패자를 따라갈 테니까요.”
멜리마는 외투를 입고 싶어졌다.
팔뚝을 비롯한 전신에 소름이 돋아서.
자신과 비슷하다 못해 똑같이 생각하는 천재를 봐서.
그 천재가 자신의 적수라서.
그 천재가 자신의 부군이라서.
―심장이 박동 친다.
“지도만 봐 가지곤 허점이 많아 보이는군요. 하지만 옆에 커튼들이 많은 거 보니,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번 봐도 됩니까?”
“네…….”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빠져버렸다.
상대의 목소리도 겨우 들었다.
심장 뛰는 소리에 묻혀버려 하마터면 무시할 뻔했다.
그러면 안 된다.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자신은 들어야만 했다.
남의 입에서 나오는 이 계획을 들어야만 했다.
“두 번째 커튼은 세계 주요 인사들이군요. 이 정도면 거느리신 정보 업체가 한둘이 아닌가 봅니다. 각 인물의 약점과 가족들이 모두 집합되어 있는데, 이 정도면 1급 기밀들이군요. 모으느라 고생하셨겠어요.”
고생했다?
남들에게 이 커튼의 뒤편을 보여준 적도 없지만 그 반응은 뻔히 예상했다.
사람의 약점을 잡고 뒤흔들며, 양민 수백만이 죽어 나갈 이 계획에 토악질 하며 뛰쳐나갔겠지.
근데 이 사람은 고생했다고 해주었다.
얼마 안 가 이 계획을 정면에서 맞닥뜨려야 할 사람인데 욕은 커녕 칭찬을 해주었다.
“저라면 스파이를 미리 심어둘 것 같습니다. 신분 조작 조금 하고 경비병에게 뒷돈을 먹이면 가능하죠. 일만 잘 풀리면 야습 때 안에서 성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심지어 피드백까지.
이러려고 여기 데려온 건 아니었는데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다음 커튼으로 넘어갈까요? 갈수록 흥미가 넘치네요.”
“……좋아요.”
“흐음, 점점 미래가 안 믿기기 시작하는데.”
데카마드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계획은 빈틈을 찾기가 힘들었다.
600년 후의 지식, 미래를 알고 있는 처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자신은 이 여자를 이기고, 역사서에 따르면 참형까지 시켰다.
그리고 크레센티아 가문을 만들었다.
……어떻게?
커튼을 열면 열수록 의문은 짙어져만 갔다.
***
모든 커튼이 열렸다.
모든 계획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방의 중앙에서 말이 없었다.
그치만 둘 모두 머리가 어지러운 건 똑같은지, 이마를 부여잡은 채 우두커니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멜리마가 먼저 입술을 움직였다.
“놀랐어요. 설마 제 계획을 이렇게까지 꿰뚫어 보고 이렇게까지 이해해주실 줄이야. 하마터면 사랑에 빠질 뻔했잖아요.”
“그런 낯간지러운 말도 하고, 저한테 많이 물들으셨나 봅니다.”
“그럴지도요.”
두 사람은 또 말이 없어졌다.
서로가 머리를 제 머리를 너무 혹사시켜 재가동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단축시키는 데는 또 이만한 게 없다.
“여보도 한잔하실래요?”
구석 찬장에서 어딘가 낡아 보이기까지 하는 와인이 나왔다.
“……와인은 부인이 어딜 가나 따라오네요.”
“이 방에 제가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는 이유는, 커튼 뒤가 드러날까 봐도 있지만 이 와인이 없어질까 봐도 해요. 그만큼 제가 아끼는 녀석이랍니다.”
주르르륵-
깨끗한 와인 잔에 밑면이 채워지고 나서 조금 더 수면이 올라올 때까지.
병을 거둔 멜리마는 이만 코르크를 닫았다.
진하면서도 달달한 포도향이 방을 구석구석 메꿨다.
“드세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아까 상품이 있다고 했죠? 그 상품이니까 감사해 할 필요는 없으세요.”
쨍-
와인 잔이 가볍게 부딪쳤다.
두 남녀는 침침한 방 속에서 술을 나눴다.
와인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데카마드는 무의식적으로 잔을 바라보았다.
“세죠?”
“……그러네요. 제 장기 위치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먹다 보면 익숙해지실 거예요.”
“순간 독약인 줄 알았습니다만.”
3차 각성을 마친 몸이 순간 흔들렸다.
그만큼 잔에 담긴 와인의 한 모금은 강력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얘기를 할 만큼 강력했다.
“엘가.”
“……예?”
와인으로 더욱 붉어진 입술에서 어떤 이름이 흘러나왔다.
귀에 익숙한 이름이었다.
“제 미들 네임이에요.”
“그렇군요.”
“둘이서만 있을 때는 이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이 세상에서 여보만 아는 이름이니까요.”
“엘런.”
“……?”
엘가라는 이름에 이어 또 튀어나온 이름 두 자.
이번에는 데카마드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제 본명입니다.”
“……데카마드는 가명이었어요?”
“엘런 폰 크레센티아. 이게 제 풀네임입니다.”
스륵-
그의 입으로 와인이 한 모금 더 넘어갔다.
익숙해질 거라고 했지만, 두 번째도 혀가 다 아려오는 맛이었다.
“예쁜 이름이네요. 크레센티아라니.”
“감사합니다.”
“멜리마 엘가 프리우드. 제 풀네임이에요.”
“예쁜 이름입니다.”
“감사해요.”
침묵이 감돌았다.
하지만 손에 든 술 한 잔은 그런 침묵을 없애기 좋았다.
데카마드는 잔을 입에 가져갔다가, 이내 떼어놨다.
“벌써 다 드셨네요.”
“와인을 즐겨 본 적 없어서, 한 번에 많이 삼켜버렸네요.”
“제걸 나눠 드릴게요. 이미 넣은 와인을 다시 꺼내는 건 손이 많이 가니.”
“감사합니…….”
텁-
두 사람의 와인 잔은 모두 비게 되었다.
한 방울 없이 깔끔하게 비게 되었다.
다만 와인을 머금을 입안은 서로가 절반씩 채워졌다.
…입술이 떨어졌다.
“나눠 드렸어요.”
“……잘 받았습니다.”
“벌써 밤이 깊어 가네요.”
“네. 달이 떠올랐습니다.”
“초승달이 예뻐요.”
잠시 조그마한 창문 너머 달을 올려다보던 멜리마는 자연스레 주제를 돌렸다.
“밤도 밤이니까, 제가 도시 괴담 하나 알려 드릴까요?”
“상관없습니다.”
멜리마는 싱긋 웃었다.
“빈민가. 그것도 깊숙한 내부에선 고아들이나 거지들을 상대로 인신매매가 이뤄져요.”
“놀라운 일은 아니네요.”
“그렇죠. 하지만 이게 도시 괴담이 된 이유는 그 납치범들도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이에요.”
“그건 신기하네요.”
“납치범들마저 납치한 존재들은 흰옷을 입고 새까만 빈민가를 휘저었어요. 그들이 한 번 지나가면 아기도 울음을 멈췄죠. 왜냐하면 전부 그들이 데려갔으니까요.”
흰옷과 납치.
어딘가 익숙한 키워드들이 등장했다.
멜리마는 말을 이었다.
“그자들을 직접 본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요. 저를 제외하면.”
“……도시 괴담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그 괴담의 경험자거든요. 말했잖아요. 전 빈민가 출신이라고.”
“그자들을 보셨습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아요. 그자들이 지나간 흔적도 같이 보았죠.”
그자들이 지나간 흔적.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사제들의 흔적이다.
“저를 속박하던 거지왕에게 도망칠 수 있던 건 그 때문이었어요. 여느 때처럼 구걸한 돈을 바치러 거지왕에게 가는데, 흰옷을 입은 자들이 거지왕과 부하들을 붙잡았죠.”
“꼭 잠든 것 같았습니까?”
“네. 정말 그랬어요. 피리 부는 사나이와 그를 따라가는 아이들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리곤 귀신처럼 사라지는데 보고도 믿을 수가 있어야죠.”
확신할 수 있었다.
사제들은 이 시대에서도 활동 중이다.
다만 600년 후처럼 세계의 감시가 뻑뻑하지 않아 들키지 않았을 뿐.
근데 왜 멜리마는 이걸 지금, 그것도 여기서 말해주는 걸까.
그 의문을 느꼈는지 멜리마의 입가는 천천히 땅으로 꺼졌다.
“그들이 끌고 간 사람 중에는, 거지왕이 볼모로 잡고 있던 제 부모도 있었어요. 쓰레기 같은 자들이었지만, 꼴에 부모라고 사라졌을 땐 눈물이 흘렀답니다.”
데카마드의 고개가 옆에 선 멜리마에게 틀어졌다.
그녀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억울했어요. 화가 나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어요. 떨쳐낼 수 없는 무력감이 몸을 휘감고 그런 제 자신에게 토가 쏠렸어요.”
말을 이어갈수록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힘이 필요하단 걸 깨달았고 정신없이 끝내 재상 자리까지 올랐더니, 그자들이 갑작스레 생각나더라고요. 헌데 파면 팔수록 그들이 경고하는 듯했죠. 가까이 다가오면 죽는다고.”
“…….”
“웃기지 않나요? 누가 누구에게 죽을 거라고 경고하는 거야.”
멜리마의 손이 책장 속 어떤 두꺼운 책을 당겼다.
“대륙을 일통(一統)하는 건 부수입일 뿐이에요.”
덜컥-
끼이이익-
책장이 문처럼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척 보기에도 비밀스러운 문에 발을 디디며, 그녀의 한쪽 눈은 데카마드를 바라보았다.
“제 목적은, 제 진정한 목적은 이 세상의 거대한 수수께끼를 제거하는 것뿐이니까요.”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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