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325)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328화(325/354)
#328화. 미래형 마법사(3)
누군가와 마주쳤다.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레드. 방음벽과 내 몸을 안 보이게 해놨지?’
[그래. 근데 저 앞에 있는 남자에겐 안 통하는 듯하군.]‘……그게 가능해?’
[저 남자. 마탑주다.]어두운 로비 안에서 둘의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후드라도 쓰고 왔어야 했나.
레드가 마탑주라 소개한 남자는 이쪽의 은발과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반대편에 서 있던 도둑(?)도 의도치 않게 마탑주를 훑어보았다.
로브를 겉에 두르고 얼굴은 소싯적에 여자 꽤나 홀리고 다녔을 만큼 미남이었다.
지금은 미중년이지만 어렸을 때는 미소년이었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외모 따위가 아니었다.
‘레드. 마법 풀어봐.’
[그래. 네 맘대로 해봐라. 하필 지금 마탑주가 로비를 지나칠 줄이야.]스르륵-
오리하르콘의 방음 마법과 투명 마법이 해제되었다.
“흐릿하게 보였던 모습이 이젠 뚜렷하게 보이는군. 도둑치곤 재주가 엄청나. 자네, 마법사인가?”
“네. 마법사입니다. 제 이름은 데카마드. 아득한 선배를 뵙습니다.”
“아득한이란 단어까진 안 써도 좋아. 난 아직 마법사치곤 젊은 축에 속하거든. 근데 자네는 거의 햇병아리 수준으로 보여. 그런 젊은 나이에 내 눈을 속일 뻔하다니.”
“얕은 재주인데도 높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흐음……. 여긴 어쩐 일인가.”
마탑주는 그래도 대화로 시작해주었다.
속으로는 싸울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상황은 다행히 좋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이론서를 제출하러 왔습니다.”
“내일 아침에 오지 그랬나.”
“신원 미상으로 낼 생각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허헛.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제 이름을 날리기 위해 오늘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마법사들이 수두룩한데, 신원 미상의 이론서 제출이라.”
“유명세에는 딱히 관심 없습니다. 지금 저의 목적은 이 이론서를 이름 없이 제출하는 것입니다.”
“한 번 볼 수 있을까?”
마탑주는 흥미가 생겼는지 선뜻 손을 내밀었다.
이론서는 손아귀의 힘을 풀자 반대편으로 훨훨 날아갔다.
제 손안에 이론서를 펼쳐 든 마탑주는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한 1분 정도 지났을까.
“흐허허허허허!!”
어딘가 힘 빠지는 웃음소리가 마탑주에게서 터져 나왔다.
이론서는 어느새 다시 접혀 있었다.
새벽 내내 쓴 걸 1분 만에 독파한 것이다.
“속독으로 봐도 이런 의심이 생기는군. 정말 신원 미상으로 제출할 건가?”
“그렇습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이론서는 내 손에 있다는 게 무서워질 정도로 엄청난 지식을 담고 있어. 만약 종이 속의 이론이 정말이라면 마법계가 무시무시한 발전을 이룩할 거야.”
“제가 원하는 게 그겁니다.”
마탑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 발전 속에 자네의 이름 한 줄 적히면 좋지 않겠나? 최소 몇 세기의 후손까지 밥 굶을 걱정 없이 떵떵거리며 살 텐데.”
“굳이 그런 이론서가 아니더라도 제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 겁니다.”
“흐하하하핫!”
이건 또 무슨 참신한 대답인가.
설마 이런 새벽에, 그것도 마탑 로비에서, 심지어 오늘 처음 본 사람의 말에 이리 웃어 재낄 줄이야.
“이건 내 집무실로 가서 조금 더 읽어봐야겠군. 아, 걱정 말게. 이걸 내 이름으로 제출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알고 있습니다.”
“당최 모르겠군. 이런 이론을 생각해낼 정도의 머리가 대체 어디 숨어 있던 거지? 이름이 데카마드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기억하겠어. 죽는 그날까지.”
“그럼 부탁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봐. 자네 이론서의 값어치 정도면 마탑주 자리도 내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마탑주 자리까진 필요 없다.
당장 궁정 마법사장으로 취임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이런 초고속 승진은 필요 없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궁정 마법사장이 딱 적당하다.
그래서 탑주에게 할 부탁은 따로 있었다.
“최근 마이킨 왕국에게 마도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신 걸로 압니다.”
“……그랬지.”
“후회하시는 얼굴이군요.”
“과거에도 미래에도 마탑이 세계 정세에 끼어든 유일무이한 일일 테니까. 그런 일을 설마 내 임기 때 허락할 줄이야. 그 마녀의 혀에 내가 놀아나 버렸어.”
마녀의 혀에 놀아났다.
멜리마의 꾀임에 빠졌다.
마탑주는 이론서를 든 채 천장으로 기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데카마드는 그곳에 기름을 부었다.
“이왕 놀아난 김에 저희하고도 놀아보시죠.”
“……뭐라고?”
“최근 마이킨이 대전쟁을 준비한단 건 아실 겁니다.”
“그래.”
“저는 아인티제 왕국의 궁정 마법사장으로 있습니다.”
양파도 아니고 까면 깔수록 뭐가 더 나온다.
도둑인 줄 알았더니 이젠 아인티제의 궁정 마법사장?
어질거리는 신분 상승에 정신이 회복될 틈도 없이 말이 이어졌다.
“저희 아인티제 왕국에도 지원을 약속해주십시오.”
“마이킨이 전쟁에서 이기는 걸 막도록?”
“그렇습니다.”
마탑주는 고민하다가 이내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 그러지.”
“감사합니다.”
“이왕 규칙을 어기는 거 내가 더 어겨야 후배들이 고생 안 할 거야. 훗날 아인티제 왕국이 지원을 요청하면 마탑은 응하겠다.”
“좋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아, 마지막으로. 통성명을 못 하지 않았나. 데카마드.”
통성명은 양쪽에서 오가는 것.
마탑주는 말했다.
“듀란. 내 이름이야.”
“데카마드입니다.”
“언젠가 또 보지.”
“아마 못 보실 겁니다. 제가 방 밖에서 자주 나오는 스타일은 아니라.”
슈우우욱-!!
도둑은 그렇게 사라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마탑주, 듀란은 헛웃음만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
일주일.
일주일 하고도 하루.
세상이 뒤집히는 시간이었다.
풍년, 인재, 민심, 모든 게 최고조를 찍은 마이킨은 대륙으로 군사를 풀었다.
마이킨의 적색 깃발이 지나간 곳은 적색 혈흔만 무수하게 남겼다.
다만 자신들도 혈귀는 아니라는 듯, 백기를 올린다면 전쟁법에 준수하여 인도적으로 처리했다.
이것 또한 마녀의 전략.
애초에 저항의 의미가 없는 소국과 상인 도시는 저들이 먼저 성문을 열었다.
그 기세는 파죽지세였고, 곧 여기도 마이킨의 군사들에 의해 뚫릴 것이다.
다들 그럴 거라고, 분명 그럴거라고 예상했다.
방금 텔레포트로 도착한 마법사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아인티제 왕국의 궁정 마법사장, 데카마드입니다.”
“아, 아인티제 쪽에서 지원이 온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그 지원입니다.”
도착하자마자 본 건 사람들의 얼굴에 깃든 실망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것에 휘둘릴 시간은 없었다.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 군사들을 주변에 흩뿌려 마이킨 군사들의 전진 속도를 보고받는 중입니다.”
“보고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아주 빠르다 합니다. 마이킨은 기마병단이 대부분인 만큼 전진 속도와 파괴력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력합니다. 지원을 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저희도 항복이 옳은 듯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곳에 크레센티아가 온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이 소국은 증명의 자리다.
아인티제 왕국이라는 거대한 종마의 고삐를 쥘 수 있는 자리다.
그걸 위해서라면 기마병단이고 뭐고 전부 깨부숴야 했다.
“그대들의 군사는 필요 없습니다. 저 혼자 마이킨을 상대할 겁니다.”
“그, 그,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습니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마법사 부대가 오지 않는 이상 그들의 전진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만약 제가 실패하더라도 이건 아인티제 왕국의 저항. 이곳은 안전할 테니 그때 백기를 올리시죠.”
“하, 하지만…….”
“마이킨 왕국이 어느 방향으로 오는지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행동은 제가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명령하는 자와 대답하는 자.
후자는 벌벌 떨며 뛰어갔고, 전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씨 참 좋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텔레포트로 이곳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걸음을 이어나갈수록 하늘에선 이상한 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지금 떨어지면 이상한 게 손에 닿기 시작했다.
“눈……?”
어느 누군가 그것의 정체를 알아보며 하늘과 손바닥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그 싸라기눈 사이를 은발이 지나간다.
크레센티아가 지나간다.
조금 전에 뛰어갔던 하수인이 다시금 이쪽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그러면서도 갑작스레 하늘에서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 눈꽃에 고개를 들어 올린다.
“마, 마법사님! 방금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어디랍니까.”
“동문으로부터 이어지는 거대한 숲길이라고…….”
슈우우욱-!!
마법사는 사라졌다.
손에 든 작대기를 한 번 휘두르더니 사라졌다.
“어, 어……?”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하수인은 얼빠진 소리만 냈다.
멍해진 머리 위로 눈꽃이 톡톡 떨어진다.
텔레포트로 동쪽 숲에 도착한 마법사의 로브 위에도 눈꽃이 톡톡 떨어진다.
하지만 그 톡톡거림은 이내 폭설로 순식간에 변모했다.
“데뷔전이야, 레드. 세게 가보자.”
[준비됐다.]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무수하게 겹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나무들과 수풀들을 뚫고 들려오는 이것은 퍽 공포스러웠다.
허나 진짜 공포는 지금 그들의 갑옷, 군마 위로 떨어지고 있는 눈덩이였다.
히이이잉-!!
선두에서 달려오던 기사가 고삐를 잡아당긴다.
말들은 거친 콧김을 내쉬며 속도를 줄였다.
저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서 있는 장애물.
로브를 입은 것이 마법사처럼 보인다.
“네놈은 누구냐.”
적색 깃발을 든 기사가 묻는다.
“아인티제 왕국의 궁정 마법사장, 데카마드다.”
은발의 마법사는 답했다.
짧은 문답이었다.
그럼에도 의문은 풀렸다.
“전진한다.”
기사의 짧은 명령.
말은 다시 제 두꺼운 다리와 근육을 넘실거리며 달렸다.
다시금 시작된 질주는 꼭 해일을 눈앞에 둔 듯 위용이 거대했다.
하지만 해일 가지고는 이 마법사를 뚫을 수 없었다.
설령 중앙성을 넘어설 크기의 해일이라도 이젠 순식간에 얼릴 수 있으니까.
“떠올라라. 빙월.”
훤한 대낮에 달을 찾는다.
언뜻 미친 소리 같았지만, 달은 크레센티아의 부름에 응답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적적-!!
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태양보다는 낮게.
기사단의 머리보다는 높게.
그렇게 떠오른 달은 차가운 냉기를 흩뿌렸다.
“하아아…….”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온다.
그 입김처럼 숲은 새하얗게 꽃단장했다.
가지 위로 새하얀 눈을 쌓고, 꽃 위로 새하얀 눈을 입었다.
“끝났네.”
해일은 얼어붙었다.
군마, 강철, 창, 칼, 기사로 이루어져 있던 해일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건 여러 개의 얼음 조각상일까.
아니면 그 자체로 하나가 된 조각상일까.
전자로 보자면 조각상은 최초 50개는 만들어졌다.
“잘 훈련된 기마병 오십. 나쁘진 않네.”
좋은 성과였다.
그러나 짜여진 성과였다.
[네 부인이 너의 전적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는군.]“그러게 말이야. 나는 일반 병사들을 보낼 줄 알았는데, 설마 기사단을 보낼 줄은.”
[이것도 내조인가?]“그리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라고 하면 부인의 표정이 돌변할 것 같아서.”
마이킨의 재상, 멜리마.
아인티제 왕국의 궁정 마법사장, 데카마드.
전쟁의 주역들은 모든 계획을 공유했다.
재상은 알고 있었다.
이 소국을 지키기 위해 데카마드가 올 거라는 걸.
마법사장은 알고 있었다.
이 소국을 치기 위해 재상이 군대를 보낼 거라는 걸.
[세계 전체가 너희 둘의 체스판이 됐구나.]“그런 셈이지.”
[그 와중에 이 거대한 체스를 관전 중인 구경꾼을 잡아야 한다니. 천재 하나로는 못할 짓이로군.]“그래서 둘이 있는 거잖아. 물론 내가 조금 더 똑똑하겠지만 말이야.”
[그래. 600년 뒤에 태어나는 놈이 더 멍청하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겠나.]데카마드는 옅게 웃었다.
그 웃음 속에 섞인 입김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가자. 다음 수를 두러.”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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