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335)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338화(335/354)
#338화. 끝은 시작의 또 다른 이름
혈겁은 몇 시간 동안 이뤄졌다.
서로가 가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은 땅과 가까워졌다.
본래 달보다는 저승이 가까운 법.
그들은 자기 머리 위에 있는 게 태양인지 달인지도 모를 만큼 미쳐서 싸웠다.
지금이 밤인가, 낮인가.
내 옆에 있는 게 적인가 아군인가.
우린 지금 이기고 있는가, 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건가?
내가 여기서, 왜 싸우고 있었더라……?
귀로 들리는 건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 심장 소리.
눈으로 보이는 건 적색, 혈색, 홍색.
손에 만져지는 건 피로 얼룩지고 찐득해진 창대였다.
푸우욱-!!
“커흐으윽……!!”
방금 또 사람 한 명을 죽였다.
이상하다…….
내가 죽인 건 분명 악마인데.
왜 사람과 똑같은 절규를 지르지.
왜 사람과 똑같이 고통스러워 하지.
“끄으으윽……. 제, 제, 제발……. 제발 살려줘……. 지, 집에 가족이…….”
콰아아아아앙-!!
포격 소리가 사방의 소음을 거칠게 밀어냈다.
목소리마저 사라진 이곳에서 무어라 입을 뻐끔거리는 저 악마.
고통에 찬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고, 화약 연기가 잔뜩 묻은 눈가에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누가 봐도, 누가 봐도, 이쪽을 저주하는 행태였다.
우리의 승리를 시샘하고, 질투하며, 살아만 있었다면 내 가족을 어떻게든 유린했을 거란 끔찍한 모욕이었다.
“죽어어어!!”
콰지지지직-!!
창대를 비틀자 창날이 주변에 걸려 있던 내장을 사정없이 끊어버렸다.
“꺼으윽…….”
털썩-
창대에 걸려 있던 악마의 손은, 이제 온기를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푸화아악-!!
무언가 절개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등에서 터진다.
뒤에 불을 붙인 듯한 타오르는 고통은 온몸의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풀썩-
방금 창날을 깊숙이 찔러넣어 죽인 악마 위로 몸이 엎어진다.
“이, 이…… 악마 새끼들…….”
비겁하게 뒤를 기습하다니.
역시 하는 짓도 악마 새끼들답게 비열하기 짝이 없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너의 얼굴에 침을 뱉어주리라.
그런 마음 하나로 죽을힘을 다해 눈을 돌리니.
“허으윽……!! 허윽……!! 하아악……!!”
눈이 혈광으로 잔뜩 붉어진 채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광인이 보였다.
그야말로 악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방금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가 있다면 필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나아가 그 악마는,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아, 아, 악마 새끼들!! 전부!! 전부 죽일 거야!! 내, 내, 내가 전부!! 끼히히힉!!”
그는 쇳소리 섞인 웃음을 마구 퍼뜨리며 칼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제 앞에 살아있는 게 있다면 모조리 찌르고 모조리 베었다.
“…….”
도저히 보기 힘들고 도저히 믿기 힘든 모습에 눈은 저절로 돌아갔다.
그러니 자신이 조금 전에 죽였던 시체와 동공이 마주쳤다.
그 눈에선 아직까지도 피 섞인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서야 저 눈물의 의미가 보인다.
“살고…… 싶었던, 거구나…….”
그의 마지막 말은 저주와 모욕이 아니었다.
그저 삶을 바라는 한 사람의 비명이었다.
악마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는가.
이곳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밖에 없었다.
그러니 악마도 있을 수 없었다.
모두가…… 모두가…… 그저 한 명의 사람이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
대륙의 패권을 쥔 싸움이 세인트 대평원에서 벌어졌다.
수뇌부들은 초조하게 그 결과를 기다렸다.
잠이 올 리 없었고, 밥이 들어갈 리 없었다.
하지만 단 한 명은 달랐다.
“이 와이번 고기! 이게 특히 맛있구나! 더! 더! 대령하라!”
“아, 알겠습니다! 왕이시여!”
왕궁 만찬실.
식탁 한쪽에는 빈 접시가 쌓여있고, 다른 한쪽에는 음식이 꽉 들어찬 새 접시가 쌓여있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왕이 되어 있던 꼬마.
왕궁의 위엄이고 법도고 위세고 뭐 하나 몸에 배어 있는 게 없었다.
그런 걸 가르쳐줘야 할 사람들은, 꼬마를 왕좌에 앉혀주었던 자가 싹 죽였으니까.
왕은 커다란 칠면조 다리를 손에 잡고 입을 크게 벌려 양껏 뜯어먹었다.
그런 왕에게 궁정 요리장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왕이시여.”
“음식은 츄릅, 아직이더냐?”
“으, 음식은 준비되어 있사오나,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쯧. 밥 먹는 중에 굳이 해야 하는 질문이더냐? 해보거라.”
요리장은 허리를 잔뜩 숙인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그, 그것이 소인이 듣기로는, 지금 세인트 대평원에서 대륙의 명운을 건 대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하는데…….”
너는 밥이 목구멍으로 쑥쑥 잘 넘어가냐?
뒷말은 묵음 처리되었다.
다만 그 뒷말을 알아들을 눈치가 허수아비에게 있을 리 없었다.
“하는데 뭐?”
“아, 아닙니다. 음식을 더 대령하겠습니다.”
“어서어서! 빨리 움직여라!”
“네, 네!”
요리장이 만찬실에서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이가 안에 들어섰다.
밤하늘같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
천하제일의 명검도 저 여자의 눈매와 콧대, 턱선만큼 날카롭진 않을 것이다.
흑진주 같은 동공은 늘상 상대를 깔보는 듯하고 입가는 아주 비릿하게 올라가 있었다.
“재상! 여긴 어쩐 일이오! 전쟁 중에는 바쁘다고 만찬실에 오지 않겠다면서! 아니면 벌써 전쟁이 끝난 건가? 그으……. 세인트? 페인트? 평원에서의 전투는 어떻게 됐소?”
“그것이 궁금하신가요?”
“딱히 궁금하진 않소. 재상이 때가 되면 알려주겠지.”
왕은 다시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발골 작업이라도 하는 것처럼 고기를 남김없이 처먹었다.
고기에 묻어있던 기름기가 옮겨붙어 얼굴은 번들거렸다.
“참, 잘도 먹으시네요.”
“허헛, 칭찬 고맙소.”
왕은 음식 처먹기에 열중했다.
요리사들이 가져왔던 해산물, 닭, 돼지, 소들은 금세 위장으로 처넣어졌다.
꼬마 새끼 주제에 먹는 건 끊임없이 먹는다.
하지만 말리고 싶진 않았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니까.
“으응?”
왕은 갑자기 자신의 뒤로 온 재상을 돌아보았다.
“에 으러시어?”
커다란 고기를 입에 문 채 묻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
딱히 알 필요도 없겠지.
“가만히 계세요. 제가 잘라 드릴 테니.”
“아아, 그런 것이오? 고맙소. 재상.”
왕은 선홍빛이 물씬 도는 스테이크를 재상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녀가 자르기 편하도록 끌어당겼다.
재상도 자신이 자르기 편하도록 왕을 등받이 가까이 끌어당겼다.
“자를게요?”
“부디 그래 주시오.”
스아아아악-
고기 위로 붉은 선이 그어졌다.
칼이 왔다 간 자리였다.
“흐음, 고기가 질기네요. 생각보다 잘 안 잘려요.”
한 번으로 부족해서 두 번.
두 번으로 부족해서 세 번.
칼날이 고기 안으로 네 번이나 드나들고 나서야, 칼질은 멈췄다.
“휴우. 드디어 잘렸다.”
드르륵-
만찬장의 창문이 열린다.
그곳으로 부드럽게 들어오는 은발의 사내.
“아, 여보. 오셨어요?”
“……제가 때를 잘못 맞춘 걸까요.”
“아니에요. 마침 잘 오셨어요. 여보가 봐야 하는 장면이잖아요? 제가 직접 왕을 죽이는 모습은.”
멜리마의 손은 피범벅이었다.
피의 주인은 드넓은 식탁 위에 엎어져 있다.
척 보기에도 좋은 모습과 좋은 결말은 아니었다.
“제가 죽여도 됐을 텐데.”
“여보의 손에 이런 병신의 피를 묻힐 순 없죠. 제가 뿌린 씨앗이니 제가 거두는 게 옳기도 하고요.”
챙그랑-
피로 얼룩진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걸로 닦으세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주니.
“감사해요. 손에 소스가 조금 많이 묻었네요.”
깨끗했던 손수건이 다신 못 쓸 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신 본래 더러웠던 건 깨끗해졌고 다른 사람을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정말로 오랜만이에요. 여보.”
아직 피가 완전히 닦이지 못해 살짝 붉은 손이 양 볼을 어루만졌다.
“못 본 사이에 키도 커지셨네요?”
“매일 움직이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더 듬직해지셨는데요?”
“부인은 변함없이 아름답습니다.”
“다행이네요. 혹여나 저 말고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통보하면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방금 저 단검이 왕의 목만 베진 않았을 것이다.
둘은 혈향과 만찬의 향기가 뒤엉킨 곳에서 한없이 가까워졌다.
냄새가 섞이고 입술이 섞인다.
몇 년 동안 쌓였던 서로의 노고, 고통, 인내를 치하해주는 위로였다.
“하아……. 피가 입술에도 튀었던 걸까요. 살짝 비릿했죠? 하여간 저 벌레는 왜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될까요.”
“괜찮습니다. 피 맛은 여기까지 오는 길에 충분히 익숙해졌습니다.”
대평원으로 거의 대부분의 병력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역으로 허술해진 마이킨 왕궁.
은밀히 마이킨에 도착한 은빛 얼음은 그곳에 침투하여 모든 경비 인원을 죽여냈다.
이것이 대전쟁의 끝을 장식해줄 작전이었다.
“그럼 이제, 국왕 시해범이자 대륙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마녀를 체포하겠습니다.”
“흐으응…….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제 방이 있어요.”
“그래서요?”
“왕을 죽인 현장에서 마녀를 잡아들이는 것보단, 그 침실에서 안심한 채 자는 마녀를 급습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단 소리예요.”
“안심한 채라면?”
마녀의 팔이 뱀처럼 허리로 휘감겨왔다.
“당연히 나체겠죠? 아니면 나체와 다름없는 상태일 거예요. 전쟁에서 다 이긴 줄 알고 방심한 마녀니까요. 여보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리 봐도 그게 더 좋은 거 같군요.”
“여보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국왕 시해범과 은빛 얼음은 만찬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왕이시여! 요리가 완성 됐……! 으아아악!!”
와장창창-!
손에 들고 있던 접시가 하늘로 떠올랐다.
“이,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요리장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식탁을 짚으면서 일어섰다.
그래도 달리 보이는 건 없었다.
되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란 걸 확인시켜 줄 뿐.
“와, 왕이시여…….”
신선하고 가장 맛있는 음식만이 올라가야 할 왕의 접시.
그것에는 어떤 목이 올라가 있었다.
식탐 많았던 왕은 이제 그 목까지 먹으려는 걸까.
접시 옆에 둔 양손은 여전히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왕으로서 먹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
마이킨의 수도는 싸늘해졌다.
왕이 죽었다는 소문과 풍문이 벼락처럼 퍼져 나가고, 여기 있으면 죽을 거란 공포가 수도를 비우게 만들었다.
왕궁은 물론이고 민가에도 사람 한 명 남지 않았다.
침실에 몸을 뉘인 채, 서로를 죽일 듯이 탐했던 두 인간을 제외한다면.
“제 계획에 미스가 있었네요.”
“뭐가 말입니까?”
멜리마는 제 목에 연신 입술과 숨결을 붙여오는 낭군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며칠이 있을 줄 알았다면 침대를 더 큰 걸로 사다 두는 건데.”
“저는 이것도 괜찮습니다.”
“뭐든 클수록 좋잖아요? 여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둘은 침대 위로 나란히 누웠다.
그럼에도 서로의 몸은 떨어지지 않았다.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사제들이 본격적으로 어부지리를 노리러 올 거예요.”
“제가 그들을 상대할 겁니다. 다른 인간들은 모르게끔 조용히.”
“……이번에는 조금 걱정되네요.”
“제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요?”
“…….”
멜리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품에 안고 있데.
벗어나지 못하게끔 뱀이 똬리 틀 듯 꽈악 붙잡았는데.
근데도 이 남자는 언제나 떠날 사람처럼 옅었다.
당장이라도 떠날 준비를 마친 사람마냥 미련 없어 보였다.
그래서 불안했다.
“여보는……. 제 곁에 항상 있어 주실 건가요?”
“……안 그래도. 그것에 대해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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