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345)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348화(345/354)
#348화. 귀환할 시간(9)
엘런 폰 크레센티아.
그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제일 먼저 수업 시작 5분 전에 아이스크림 가게로 간다.
“아이스크림 모둠으로 통에 주세요. 가득이요.”
“네네. 물론입니다. 단골손님인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드릴게요.”
고기도 아니고 모둠이란 말이 여기서 들릴 줄이야.
대포알도 여유롭게 담고 다닐 만한 통에 아이스크림이 그득그득하게 담겼다.
하나의 맛만 먹다 질리지 않도록, 다양한 맛을 덕지덕지 넣은 아주 똑똑한 배치였다.
“미래에서 귀환하든, 집에서 돌아오든. 수업 가는 건 귀찮네.”
아침 9시에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몸을 맡긴다.
도착지는 3학년 전용 수련장이다.
“아, 시발 과제 또 생겼어.”
오자마자 주변의 욕지거리가 싱그럽게 귓가로 내려앉았다.
“……너 어제 과제 다 끝냈다고 좋아하지 않았냐?”
“시발 어제도 아니야. 새벽에 도서관에서 끝낸 거니까 사실상 오늘이라고. 나 잠 세 시간밖에 못 잤단 말이야.”
“새끼. 잘 살아있네. 교수님이 기특해하시겠어.”
“……그 악마들의 기특함은 X도 필요 없어.”
수많은 과제 속에 살아남고자 매일 같이 추하게 발악한다.
그런 3학년들의 귀곡성은 여기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엘런도 그런 3학년 중의 하나였다.
과제 때문에 고민할 위치였고, 칼날 앞 대신 책상 앞이 어울리는 나이였다.
“흐음, 오리지널 마법이라.”
“엘런이여. 감이 안 잡히느냐?”
“응. 오리지널 마법이랍시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은 전부 어떤 마법의 파생기들이야. 첫날에 내 아이디어를 들으신 돌로레스 교수님이 그렇게 단정 지으시더라고.”
“돌로레스 교수님은 마법 이론에선 포션만큼이나 깐깐하시지. 그분을 설득하긴 쉽지 않을 것이니라.”
“그래서 귀찮은 거야. 쯧.”
하지만 귀찮은 게 어떻고, 귀찮은 과제가 어쨌건 아이스크림은 한결같이 맛있었다.
명망 높은 크레센티아의 선조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숟가락을 쪽 빨아먹을 만큼.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과제에 대해 고민하(는 척하)고, 세 시간을 날로 보내버렸다.
오후로 접어들면 서슴없이 저녁 먹을 시간이 찾아온다.
“야! 밥 먹자!”
콰앙-!
그럼 배꼽시계처럼 정확하게 집 문을 걷어차는 발길질이 있었다.
카르디아였다.
“엘런 너는 여기 생활 구역에 얼마나 먹을 게 많은지 모르지? 아마 이것들만 하나씩 다 먹어봐도 2학기는 금방 지나갈 거다. 그럼 드디어 개같이 졸업이야!”
“전 믿기지가 않는군요. 당장 어제 늪을 넘어 1학년 생활 구역에 도착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가끔 그때의 악몽을 꾸느니라.”
“시간이 빠르긴 해.”
“너는 어디 처박혀 있다가 왔잖아! 아니, 그래서 대체 언제 말해줄 건데! 사라진 시간 동안 뭘 했어? 그리고 도대체 어디 있었어?”
그 대답을 내뱉을 입과 혀는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어떤 말이 나가기에는 당장 기름을 바짝 뺀 훈제 닭다리를 입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건 모르겠고 닭은 엄청 맛있네. 돌아온 게 후회되지 않을 만큼.”
맛있는 거야 600년 전에도 있었다.
허나 향신료의 차이는 역시 대단했다.
“아오! 말하기 싫으면 말아! 썅것아!”
“그래도 돌아와 준 게 어디더냐. 다행히 졸업 사진은 같이 찍을 수 있겠구나.”
“아, 졸업 사진. 우리 그런 것도 찍지.”
“제국 아카데미에선 그것도 하나의 커다란 이벤트니까요. 그날 찍은 사진들로 사진첩을 가득 채우면 된답니다.”
“뭔가 기념비적인 날이네! 교수님들하고 찍는 것도 되나?”
“아마 되지 않을까 싶구나. 최근 돌로레스 교수님이 옷장에서 새로운 옷을 꺼내두시는 걸 봤느니라. 왜인지 여쭤보니 사진 찍을 일이 앞으로 많을 것 같다 하시더구나.”
돌로레스의 성격상 또 완강히 거절하진 않을 것이다.
뭐, 카르멘 교수라면 또 모르겠지만.
“사진첩을 제 맘대로 꾸밀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같구나. 흐음, 내 그림을 그려 넣을까. 아니면 아리따운 꽃을 피울까.”
“한 서른 살 넘어서 보면 대부분 흑역사일 것 같은데. 그냥 대충 하지?”
“대충하니까 흑역사로 남는 것이다. 나는 이 사진첩에 그날을 불태울 것이니라.”
“뭐, 그러든가.”
“근데 요즘 엘런은 바쁜 일 있습니까?”
“……내가?”
뭐, 안 바쁜 건 아니다만.
지금도 소파에 늘어져 있는 상태에서 받을 만한 질문은 아닌 것 같다.
“요즘 통 못 자시는 지, 얼굴이 살짝 수척해진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돌로레스 교수님 과제 아니면 일도 없는 게 잠은 왜 못 자냐!”
“됐다. 꼬맹이는 모르는 거니까 조용히 닭이나 물어.”
“쳇. 키 좀 컸다고 인생 다 산 척하기는. 그래 봤자 근밀도는 나보다 딸릴걸.”
시답잖은 얘기, 누군가에겐 짱나는 얘기가 오가며 저녁은 마무리되었다.
달이 하늘 높게 뜨니까 이 침입자들도 자신들의 거처로 꺼졌다.
원래 이때라면 딱 잠들어줄 시간인데.
아쉽게도 이제는 그러기 힘들었다.
“이놈의 불면증은, 대체 언제 사라지는 거야.”
[네 부인의 와인도 없으니 최근에는 눈 한 번 붙이지 않았지. 침대에 누워라도 있는 게 좋을 것이다.]“모르겠다. 누워도 잠이 안 오는 건 나한테 더 큰 위화감만 줄 것 같아.”
평생 잠과 친했던 인간에게 불면증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내 일은 끝나지 않았잖아. 그게 끝나면 잠도 다시 올 거야. 부인과 짠 계획들도 다 처리되지 않았으니까.”
[……몸은 괜찮으냐.]“3차 각성도 끝낸 몸이야. 잠 조금 안 잔다고 죽지 않아. 되려 하루가 길어진 것 같아서 뭔가 신기한 기분인데.”
[원래의 네놈이라면 평생 느낄 수 없는 기분이로군.]“그러게 말이야.”
저 감상만큼은 충분히 동감되었다.
소파에서 한참 뒹굴거리던 몸은 이내 벌떡 일어났다.
“술이라도 조금 마시고 싶은데.”
교내에서 술을 구하는 건 지금 당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교내를 벗어나는 수밖에.
그 간단한 해결책(?)은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것도 수백 번 사용해보니까 구조와 원리를 훤히 알겠어.”
아마 원숭이라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작하는 것도 쉬운 일이지.”
도착할 장소의 텔레포트 좌표만 알고 있다면.
나아가 그런 도움은 한 번 보고 들은 건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이 보조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아버지를 뵙고 오자.”
[그곳은 나름 새벽에 가까운 시간일 텐데. 게르슐이 깨어 있을 거라 보는 거냐.]“완전히.”
대륙에서 초인이라 하면 제일 먼저 거론되는 남자다.
고작 새벽 따위가 죽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나아가 그 예상은 완전히 들어맞았다.
크레센티아 대저택에서 유난히 둔중한 방문을 똑똑 두드리니.
“누구냐.”
“엘런입니다. 아버지.”
“들어오거라.”
분명 학교에 있어야 할 아들이 왜 여기에? -따위의 반응은 없었다.
크레센티아의 선조에게 공간은 의미 없는 개념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 학교를 오랜만에 다니려니 잘 맞지 않는 것이야?”
“뭐, 그것도 있고. 겸사겸사 아버지와 술도 기울일 겸 오게 되었습니다.”
“허헛. 아들과의 주담(酒談)은 카일하고 밖에 평생 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설마 엘런 네가 먼저 청해 올 줄이야.”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야 거부할 이유가 없지. 마침 이 방에는 구석에 쌓아둔 술이 무척 많다.”
게르슐은 쌓아뒀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진열된 거나 다름없는 술들이었다.
그만큼 값어치 있고 그만큼 비싼 것들이었다.
“한 잔 받거라.”
쪼르르-
“저도 따라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월광 아래에서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
잔은 청명한 소리를 내며 술을 옅게 떨리게끔 만들었다.
그 떨림이 멎기 전에.
술은 따갑고도 뜨겁게 목구멍으로 주르륵 넘어갔다.
“맛이 어떠냐.”
“아이스크림만 못합니다.”
뭔가 대단한 문장력이나 시적 표현을 기대하신 걸까.
아버지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껄껄 웃으셨다.
“그래. 맛은 네가 평소에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만 못하지.”
“하지만 이 자리는 아이스크림으로 채울 수 없죠.”
“그 말도 맞다. 너와 내가 마주 보면서 아이스크림 핥을 일은 평생 없을 것이야. 술을 부어라 마셔라 마실 일은 있어도 말이다.”
“사실 전 이런 날도 없을 줄 알았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게르슐은 또다시 잔을 비우고 금세 찰랑거릴 때까지 채웠다.
그 끊고 맺음이 어찌나 절묘한지 손목에 따로 눈이 달린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두 개의 잔 중 한쪽이라도 비워지는 일 없이, 병은 다시 엘런의 잔을 채웠다.
쪼르르-
“이 자리를 만든 건 단순히 너의 변심만이 아니란 걸.”
“……그걸 어떻게.”
“예전부터 그러지 않았느냐. 넌 항상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그 무언가에 꼭 두 개, 세 개의 가치를 덧붙였지. 두 번 움직이는 건 귀찮으니까.”
“맞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예측했을 뿐이다. 오늘 이 술자리에도 두 개 이상의 목적이 있겠거니 하고.”
역시 제국 백작가의 수장이자 초인 중의 초인다웠다.
“그래서 무엇이냐. 너의 진짜 목적이.”
“사실 며칠 전부터 몇몇 이들에게 술 한잔하자는 빌미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몇몇 이들이 누구더냐.”
“많지는 않습니다. 마탑주와 묘지기 카르멘, 단 두 명이니까요.”
“마탑주와 묘지기라…….”
그 두 명의 조화를 잘 곱씹어보던 게르슐은 이내 한 가지 수식어를 떠올렸다.
일당백.
지금 막내는 일당백쯤이야 능히 해낼 전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나아가 자신도 개중 하나라는 걸, 게르슐은 눈치챘다.
“이제 마경을 쳐부수려는 것이구나.”
“제가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전부 맞추시네요. 이젠 소름이 돋을 것 같아요.”
“네가 이리 바쁘게 움직일 정도면, 마지막 전쟁이 다가오고 있단 뜻인가.”
이리 바쁘게.
그냥 텔레포트 마법진에 몸을 맡기며 사람 몇 만난 거 가지고, 이리 바쁘게란 소릴 들었다.
하지만 저 말이 정답이었다.
“제 인생 마지막 부지런함이에요. 도와주실 거죠?”
참가야 애초에 확정돼있는 듯한 어투.
근데도 게르슐은 미소 지을 뿐이었다.
나아가 감사할 따름이었다.
가족이라 사사로운 감정이 생길 수 있음에도, 그저 한 명의 기사로서 보아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좋았다.
이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게르슐은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아버지로서. 먼 후손으로서. 당신과 우리의 전쟁에 명예롭게 참가하겠소.”
“좋습니다.”
카르멘과 마탑주도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델과 렉시는 두고 가면서 아버지는 이 위험한 전투로 뛰어들 게 만든다.
이 무슨 불효자인가 싶겠다만은, 이성과 심장은 그렇게 하라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은 여기서 한마디 말을 추가로 덧붙이게 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게르슐은 대답 대신 술 한 잔을 더 삼켰다.
아릿거리는 입 안.
반대로 눈에는 힘이 들어갔다.
“방금 나는 술을 먹지 않았다.”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워진 잔이 월광에 비쳐진다.
“방금의 나는 망설임을, 불안함을, 그리고 두려움을 마셨다. 너도 그렇게 해라.”
“…….”
스르륵-
탁-
잔 두 개가 남김없이 깨끗해졌다.
“비워냈느냐.”
“예.”
“그럼 됐다. 더 이상의 술은 싸움터에 나갈 장부에게 불필요해.”
술은 장부의 몸을 덥히게 만든다.
얼은 손을 녹여 무기를 단단히 쥐게 만든다.
얼은 머리를 녹여 더욱 단단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이상은 손과 정신을 흔들리게 할 뿐이다.
“출정은 언제로 생각 중이더냐.”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벌레가 알을 까기 전에 박멸해야죠.”
당장 일주일 뒤.
이번에는 이쪽에서 쳐들어간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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