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35)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35화(35/354)
#035화. 영웅
일요일이다.
오늘도 주말이란 것에 안심되지만 내일 일하러 갈 생각에 영 침울한 날.
그래서 썩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날.
이번주의 마지막 휴식을 거세게 즐기고 싶은 날.
그런 날 엘런은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딱히 자의로 뜬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저 밖에서 환청처럼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를 깨웠기 때문이다.
“엘런이여! 같이 수련하러 가자꾸나!”
“얌마! 나와라! 안 나오면 문 부수고 들어간다!”
“…….”
저놈들은 잠도 없나.
엘런은 눈동자만 끌어올려 벽면의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 오후 한 시밖에 안 됐는데 누가 침대에서 일어난단 말인가.
이것은 물론 그의 기준이었지만, 엘런은 자신의 기준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저 두 명에 한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엘런은 무시하고 다시 눈을 붙이려 했으나…….
콰아앙-!! 콰아앙-!!
문을 부술 것처럼 두드리는 카르디아의 손짓에 결국은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1층 유리창이 완파된 상태다.
저러다 문까지 부서지면 여긴 언젠가 성이 아니라 그냥 성채로 변할 것이다.
“나간다, 나가.”
엘런은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늘어놓으며 대충 옷만 갈아입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물로 가라앉힌 그는 디저트를 한 움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곤 하나를 까서 입에도 넣었다.
당분이 들어오니까 그나마 졸린 것도 좀 사라지고 짜증도 가라앉는 것 같다.
“그래. 어차피 나가긴 해야 했으니까. 좋게 생각하자.”
엘런은 아공간에 있을 붉은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것은 자신이 수업 중에 마주친 남자와 색이 똑같았다.
헷갈릴 일은 없다.
그런 건 기억이 온전치 못할 때의 얘기니까.
엘런은 문밖으로 나왔다.
“아침 댓바람부터 남의 집 문은 왜 이렇게 두드려.”
“아침 댓바람……? 지금 몇 시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오후 한 시잖아.”
그 당당한 대답에 카르디아는 얼척이 없어졌다.
“아니, 오후 한 시가 어떻게 아침이야! 점심도 지난 시간이구만!”
시간은 상대적이란 말도 모르나?
저런 논리에 고개를 끄덕여줄 정도로 아침(?)의 엘런은 자비롭지 못했다.
그는 카르디아의 항의를 깔끔히 무시하며 시에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여기 왜 왔다고?”
“합동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내가 그걸 왜 해야 되는데.”
“으음…… 딱히 이유는 없다만.”
“…….”
엘런은 침묵했다.
그는 둘의 사이를 지나쳐 어딘가로 움직였다.
“어, 어디 가냐!”
“찾을 사람이 있어.”
시에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도와주면 우리와 합동 훈련을 해줄 의향이 있느냐?”
“그냥 나 혼자 찾아도 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시에나는 중앙성이 있는 중앙 광장에서, 생활 구역 전반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긴 학생 500명의 기숙사와 여러 잡다한 가게를 포함한 곳인 만큼 생각보다 무척이나 넓다. 나도 아직 못 가본 구역이 있을 만큼 말이다.”
“밖에서 본 것보다 은근 더 넓단 말이지. 저기 북쪽으로 가면 대장간들도 있더라. 실력이 좋던데?”
“그래. 카르디아의 말마따나 여긴 있는 것보다 없는 걸 찾는 게 더 힘들지. 근데 여기서 혼자 발로 뛰어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느냐?”
“…….”
“아마 반나절은 넓게 걸릴 것이다. 게다가 넌 우리 말고 친구도 따로 없어 그자가 어디 사는지 물어볼 수도 없지 않으냐.”
엘런은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다가 한 가지 부분을 정정해주었다.
“누가 너희 친구래.”
“사막에선 등을 맞대고 같이 싸운 자를 친구라 부르거든? 그럼 우린 좋으나 싫으나 친구라고!”
“그 사막의 논리는 사막에 가서 펴는 게 어때.”
“흥! 모래 한 톨 없는 바다도 사막이 될 수 있어! 전투의 뜨거운 고양감이 태양을 대신하고 검풍이 모래바람을 대신하니까!”
저렇게 감성으로 덤비는데 논리가 이길 수 있는 껀덕지는 없었다.
엘런은 그냥 대응을 포기하며 시에나에게 턱짓했다.
“그래서 요점이 뭐냐.”
“여기서 10분만 기다리거라. 네가 말하는 자를 찾아오마.”
“어떻게 그런 속도로 찾는단 거지? 네 말대로 반나절은 걸릴 텐데.”
“그건 네가 걱정할 바 아니니라. 그래서 받아들이겠느냐?”
엘런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히 사람 한 명 찾는다고 주말의 반나절을 반납하는 건 굉장히 아까웠다.
하지만 유리창을 깨고 성에 침입한 놈들을 내버려 두기엔 뒤통수가 따끔거린다.
본래 뒤가 깔끔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 칼 맞기 딱 좋은 법이다.
하루의 주말을 합동 훈련으로 쓰고 더 많은 휴일의 편안함을 도모한다.
이것이 현재로선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엘런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찾아와 봐.”
“좋다.”
“그래서 찾으려는 사람이 누군데?”
엘런은 기억 속에 스며든 그자의 이름을 읊었다.
“라제나 히로.”
금요일 퍼렐라인 교수의 수업을 같이 들었던 적발의 학생이다.
카르디아도 그 학생을 알고 있는지 ‘아아!’하고 눈을 번뜩였다.
“나랑 같이 포션 제조법 수업을 듣는 그놈!”
“잘 아느냐?”
“아니? 그냥 계속 손들면서 교수 말에 대답하고 교수가 칭찬도 자주 해주길래 기억 속에 남았어.”
“모범생인가 보구나. 이런 학생을 엘런 네가 왜 찾느냐?”
엘런은 중앙 광장 벤치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내 성에 쳐들어왔거든.”
“……모범생이 학업 스트레스를 습격으로 푸는 경우도 있나?”
“알겠다. 그 라제나 히로라는 남자의 위치를 파악해오지.”
“딱 기다리라고!”
두 명은 중앙 광장에서 갈라져 어딘가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
10분이 지났다.
어쩌면 10분도 안 됐을지 모른다.
카르디아와 시에나는 아직 안 보였고 웬 엉뚱한 사람이 엘런의 앞에 있었다.
벤치에 앉아 오랜만에 햇빛을 맞고 있는 그에게, 태양같이 붉은 적발의 남자가 다가온다.
“안녕하십니까.”
“…….”
엘런은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반쯤 떴다.
수수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훤칠한 키의 남자가 앞에 있었다.
방금 여길 떠난 둘은 어디 가고 이 남자만 왔다.
엘런은 아공간에서 머리카락을 꺼냈다.
그리곤 그의 머리에 갖다 댔다.
“제 머리카락이군요.”
“자백하는 거라 받아들여도 되겠지?”
“예. 제가 그랬습니다.”
“다른 놈들은? 혼자 안 왔잖아.”
“저 혼자 계획하고 저 혼자 벌인 짓입니다.”
엘런은 짙게 웃으며 말했다.
“글쎄. 말투나 하는 행동이나, 딱 혼자서 덮어쓰려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의 반쯤 확신 섞인 추측에도 라제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여느 때와 같은 경어로 말할 뿐이었다.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진짜 염치없네.”
“…….”
“해봐라.”
엘런은 이놈이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어 주먹을 뻗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개소리가 나오면 바로 니킥을 꽂은 다음, 턱을 날려버리겠다.
밥 먹을 때마다 부서진 턱 사이로 그날 음식물이 질질 흘러나오게 해주마.
그러나 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음식물 대신 비단 뜬금없는 이상한 소리였다.
“저는 작은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뭐?”
“그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웃는 걸 보면 힘이 나고 즐거워하는 걸 보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다만 반대로 전쟁통의 상황이라면 제 목이 다 죄여오는 기분이죠.”
“근데 어쩌라고.”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건 그 미소를 돌려주시면 안 되겠냐는 말이었습니다.”
엘런은 이 라제나란 남자가 뭘 말하는지 단숨에 눈치챘다.
“계약서를 파기해주길 원하는군.”
“그렇습니다.”
“그 이유도 짐작이 가. 20골드가 넘어가는 돈을 평민들이 1학기 내로 갚기엔 무리가 있고 이 빚이 가족들에게도 넘어갈까 걱정하는 거겠지.”
라제나는 너무나 정확한 초점과 그의 사태 파악에 되려 놀랐다.
하긴, 워낙 귀티가 나서 헷갈렸지만, 눈앞의 남자도 평민이다.
공감이야 충분히 갈 터.
그러나 엘런의 공감은 조금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
“나라도 인생을 위협할 만한 빚이 턱 끝까지 밀려온다면 꽤 불안할 거야. 잠도 안 오겠지? 생각해 보니까 그건 정말 큰일이네.”
“……?”
라제나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엘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돈은 필요해서 말이야.”
당장 이번 학기는 크레센티아의 자금으로 필요한 것들을 마련했다.
여기 오기 전에 산 마도구는 그 쓸모를 톡톡히 경험했고 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앞으로 뭐가 더 필요할진 모르는 일이다.
돈, 돈, 돈.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었다.
다다익선(多多益善)과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절대 끝나지 않을 싸움에서 늘 전자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돈이란 존재다.
그러나 라제나도 할 말은 있었다.
“귀족들은 부유한 재산으로 당신이 제시한 25골드를 무리 없이 지출했겠지만 저희들은 아닙니다. 당신도 평민이라면 알 거 아닙니까. 귀족 밑에 있는 평민들에게 25골드가 얼마나 커다란지.”
라제나의 말에 문득 어떤 과거 속에 일이 떠오른다.
아버지, 게르슐 폰 크레센티아는 말했다.
-귀족은 거둬들이는 자들임과 동시에 베푸는 자들이다. 우리가 평민들에게 거둬들이는 건 훗날 그들에게 베풀기 위해서지.
-헌데 다수의 귀족들은 베푸는 걸 망각하고 거둬들이는 것에만 급급하단다.
-그런 부모 밑에서 큰 자식은 백성을 부양할 바를 알지 못하니, 이 때문에 하민들은 여위고 곤궁하고 겨울까지 뱃속에 구더기만 가득하다.
-그런 시체들의 노잣돈으로 고운 옷, 맛있는 음식으로 저들만 살쪄봤자 그 꼴만 우스워질 뿐이란다.
-너는 그런 귀족이 되지 말거라. 알겠느냐?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
게르슐은 모든 자식들에게 이러한 귀족의 역할을 알려주었고 어느 누구보다 솔선수범했다.
말 그대로 모두가 우러러볼 만한 대귀족(大貴族)이었다.
그래서 엘런은 한 발짝 물러섰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그랜드 소드마스터, 게르슐의 아들이니까.
그러나 자신은 아버지와 다르게 베풀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한 손으로는 자비를 보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들어 쟁취한다.
그렇기에 엘런은 라제나에게 제일 먼저 칼이 없는 맨손을 내밀었다.
“나도 빈자(貧者)의 등골이나 빨아서 돈을 얻고 싶진 않아.”
“그렇다는 건…….”
“하지만 이 계약서를 없애고 싶다면, 적어도 이것과 등가의 무언가를 내게 줘야 하지 않겠어?”
라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입니다.”
“근데 너도 주머니 사정은 그들과 엇비슷해 보이는 데 말이야. 이 수백 골드짜리 계약서와 등가인 것이 너한테 있을까?”
“그래서 당신에게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또 다른 부탁이라 보아도 됩니다.”
“말해봐라.”
라제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당신과 제가 결투를 벌입니다. 만약 제가 이긴다면 저를 수하로 두시죠.”
“……너를 수하로?”
“예.”
“지금 네 말은 이 계약서를 몸값으로 대신하겠단 뜻이구나.”
“정답입니다.”
자만인가, 자신감인가.
엘런의 뜻 모를 표정에 라제나는 말했다.
“제가 당신을 이긴다면 그 순간 제 가치는 증명됩니다. 후회할 일은 없을 겁니다.”
엘런은 피식 웃었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자고. 그럼 네가 진다면 어떻게 되지?”
“계약서는 파기되지 않습니다. 대신.”
“대신?”
“계약서에 있는 모든 빚을 저 한 명에게 몰아주시면 됩니다.”
“……뭐라고?”
“제가 그 빚을 전부 짊어지겠습니다.”
엘런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계약서에 이름 적힌 평민들이 네 혈연이라도 되나?”
“그렇지 않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엘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손해밖에 없는 싸움.
자신이라면 절대 시도도 하지 않고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나 라제나는 당연하다는 듯 앞으로 나서서 모두를 제 등 뒤에 숨겼다.
“어이없는 놈이네. 동시에 미친놈이고.”
“당신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둘은 서로의 동공에서 서로의 표정을 보았다.
자신들은 어째서인지 웃고 있었다.
엘런은 그의 눈앞에서 입꼬리를 더욱 올렸다.
“좋아. 나야 손해 볼 게 없는 싸움이군.”
“결투는 다음 주 이 시간. 그때 뵙겠습니다.”
라제나는 그 말만 남기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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