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47)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47화(47/354)
#047화. 더운 날씨와 냉녹차 한 잔
구름 하나 찾아보기 힘들 만큼 쨍쨍한 하늘.
통풍성이 높은 교복의 특성 덕에, 바람이라도 한 번 불면 시원하긴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엘런은 프리징을 전신에 갑옷처럼 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야 살만하네.”
한여름의 날씨가 순식간에 초가을로 바뀌었다.
본래 더위 속에 시원함이 진짜인 법.
마도구로 방 안에 한기를 불어넣은 다음 이불을 덮고 누우면 그것만큼 천국이 없다.
물론 하녀들은 이럴 거면 왜 비싼 마도구만 낭비하냐고 난리지만 말이다.
엘런은 생활 구역의 외곽까지 나왔다.
정말 입소문만을 토대로 길을 찾는 중인지라 쉽사리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남쪽에서도 골목을 지나야 있다는데.”
남쪽의 골목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증언(?)들을 조합해보니 찻집은 더 외진 곳에 있는 듯하다.
“여기가 맞나.”
심지어 지금은 수업 시간이라 길을 물을 사람도 없었다.
자신이 유난히 일찍 끝난 만큼 이 시간대의 생활 구역은 꼭 유령도시 같았다.
그나마 다른 가게들이 그 소란스러움을 대신해주고 있긴 하지만, 입주자들이 빠지니 그것도 한계였다.
엘런은 그 늪 같은 침묵을 헤쳐나가며 길을 찾았다.
“대충 이쯤인 것 같은데.”
골목에 들어선 그는 몇 번이나 길을 꺾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 찻집은 정말 보통 외진 게 아니었다.
이 정도면 여길 찾은 귀족 영애 학생들이 더 대단해 보일 지경이다.
물론 자신보다 몇만 배는 더 그들이 차에 진심일 테니 이해도 간다.
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시는 게 귀족 영애니까.
엘런은 이제 막다른 길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골목을 돌았다.
슬슬 이곳이 아니라면 돌아가는 게 더 힘들어질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골목의 끝에서 빛이 퍼져 나왔다.
“드디어냐.”
이 찻집은 매출을 더 올리려고 이런 외진 곳에 건물을 지은 것이 틀림없다.
목이 말라야 차를 더 많이 시킬 게 아닌가.
보기보다 악독한 상술을 부리는 놈들이다.
엘런은 살짝 마른 입술과 함께 어떤 공터와 마주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 중앙에 만들어진 것치고는 꽤나 넓은 공터다.
잔디도 드문드문 자라 있고 이 주변은 골목의 벽으로 전부 막혀있지만, 갇혀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엘런은 공터 내부로 발을 들였다.
찻집의 외형은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뭉텅뭉텅 자른 나무들로 만들어진 오두막에다가, 천장에서 이어진 덩굴이 바깥으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딱히 관리는 안 하는 것 같으면서도 더러운 외견은 아니었다.
“간판도 없네.”
엘런은 찻집 주변에 표지판이나 간판이 있는지 보았으나 그것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영업은 하는 건가.”
딱히 창문 밖으로 내부의 불빛이 보이지도 않고 ‘영업 중’이란 팻말도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고 싶진 않다.
안 하면 잠겨 있겠지.
엘런은 그런 생각으로 찻집에 다가갔다.
그의 손이 문고리에 닿는다.
잡고, 돌린다.
덜컥- 끼이익-
“열리네.”
다행히 영업 중인가 보다.
이렇게 많이 걷고 골목을 돌았는데 차도 못 먹을 순 없다.
엘런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문을 완전히 열었다.
찻집의 내부는 요즘 집처럼 마력으로 가동하는 전등이 일체 없었다.
옛날 감성 그대로인 램프와 함께 천장에는 발광석과 발광초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돈 좀 썼네.”
천장을 메꾼 저것들은 모두 연금술 재료들이다.
그것도 꽤나 희귀성을 가진 만큼 비싼 가격을 자랑하는데 이걸 인테리어 재료로 쓰다니.
주인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초기 사업 자금이 아주 튼튼했거나, 본인 만의 감성이 아주 확고한 사람 같다.
그 외에도 눈에 띄는 건 무척 많았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꾼 벽에는 잎이 담긴 투명한 유리병으로 가득했고, 어떤 곳에는 조그마한 묘목이 놓여 있었다.
엘런은 그것들을 차례차례 구경하며 남은 자리 아무 데나 앉았다.
“바깥보다 안이 더 볼 게 많네.”
무언가 반전 매력을 주기 위해 바깥보다 안에 더 힘을 준 가게인 듯하다.
이곳 특유의 분위기도 괜찮고 차 맛만 괜찮다면 가끔 올 만한 가게다.
“테이크 아웃도 되면 좋을 텐데.”
중앙성과 여긴 거리가 꽤나 멀다.
웬 골목들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만약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항아리째로 담아서 가고 싶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지 얼마나 됐을까.
끼이익-
내부의 문 하나가 열리며 그 안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청초한 인상의 여자다.
허리까지 떨어지는 금발은 금괴를 얇게 자르고 엮어 만든 듯 반짝였다.
그러면서 머리칼 옆으로 튀어나온 기다란 귀.
하프 엘프인가?
보통 인간과 이렇게 가까이 지낸다면 십중팔구다.
“안녕하세요.”
작은 바람에도 하늘하늘하고 흩날리는 옷의 여자는 첫 등장부터 지금까지 엘런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따로 입을 열진 않았다.
맞인사도 없이 하프 엘프 여자는 눈만 천천히 깜박였다.
‘……뭐지.’
저 금안을 계속 보고 있으니까 속이 조금씩 메스꺼워진다.
뙤약볕 아래에서 너무 오래 걸은 탓일까.
엘런은 배를 살짝 문지르며 차를 주문했다.
“냉녹차 한 잔만 주세요.”
“…….”
딱히 메뉴판도 없어서 뭔 차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웬만한 찻집이라면 냉녹차 없는 곳은 찾기가 더 힘들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오늘 자신이 해냈나 보다.
찻집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냉녹차 없어요?”
끄덕- 끄덕-
이건 예상 밖인데.
아니면 오늘의 주방장 추천처럼 주인이 마음 가는 대로 만드는 찻집인가?
흔하진 않지만 이런 구성의 가게도 분명 있었기에 엘런은 주문을 다시 해보았다.
“그럼 여기서 가장 맛있는 차로 주실래요? 또 아이스로 만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자는 또 잠시 동안 엘런을 바라보다가, 귀를 살짝씩 쫑긋거리다가, 어딘가로 걸어갔다.
잎으로 가득 찬 유리병들이 벽면에 진열되어있는 곳.
여자는 그 병들의 뚜껑을 몇 개 열어 잎들을 섬섬옥수로 꺼냈다.
“저게 다 찻잎인가.”
근데 저 중에서 녹차가 없다니.
이거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다.
여자는 잎들을 잘게 빻기도 하고 손으로 문질러 바스러뜨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건조되고 숙성된 잎에 잠겨 있던 향기가 집 안으로 눅진하게 퍼져 나갔다.
‘향 좋네.’
엘런은 가만히 앉아 그 향을 충분하게 즐겼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는 척 봐도 그 세월이 느껴지는 찻잔에 잎을 전부 우려낸 후 엘런에게 가져왔다.
잔과 어울리는 접시가 밑에 받쳐지고 나온 찻잔은 그 내용물과 함께 무척이나 고상했다.
그 향도 비교할 만한 게 없을 만큼 신이하다.
차위로 동동 띄워진 각얼음마저 구름 위에 누운 천사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자신도 크레센티아의 막내아들로 살면서 세계 각지의 귀한 차는 웬만큼 먹어봤다고 자부하는데…….
이런 향의 차는 정말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차의 향과 맛이 꼭 비례한 관계는 아닌 법이다.
엘런은 찻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나아가 그것이 목젖으로 넘어가는 순간, 엘런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기억에 없는 맛이네.”
지나치게 뛰어난 기억력은 그야말로 모든 걸 기억한다.
사람의 몸 중에서 기억력을 사용하는 건 시력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각과 미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이 주인의 기억력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엘런은 무엇을 먹든, 전에 먹었던 음식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아무리 귀한 음식을 먹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과거에 먹었던 뭔가가 꼭 생각났다.
심지어 용혈도 그 기억력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그러나 이 하프 엘프 여자가 만들어준 차는 자신의 기억에 존재치 않았다.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
굉장히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 이질감은 엘런에게 신기함으로 다가왔다.
“차가 맛있네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던 여자는 이번에도 어떠한 말도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이건 뭐로 만든 건가요?”
기대는 안 했지만, 이번에도 여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래. 뭐 맹독으로만 안 만들었으면 된다.
“혹시 테이크 아웃 되나요?”
절레- 절레-
여자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딴 건 몰라도 호불호는 확실한 하프 엘프다.
엘런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깔끔히 찻잔을 비웠다.
얼음도 오독오독 씹고 나니, 짧았던 티타임도 끝이 났다.
뭔가 아쉬운데?
“여긴 따로 파는 디저트 같은 거 없나요?”
“…….”
여자는 잠깐 침묵하다가 또다시 어딘가로 걸어갔다.
냉녹차도 없는 곳에 디저트가 있을 것 같진 않았는데 다행이다.
얼마 안 있어 여자가 다시 돌아온다.
그녀는 접시 위에 디저트를 담고 차처럼 엘런의 앞에 두었다.
자신의 취향은 어찌 알았는지 심지어 초콜릿 쿠키다.
쪼르르르르-
여자는 쿠키를 먹을 동안 목이 마를 걸 대비해서 센스 좋게 차를 더 따라주었다.
“감사합니다.”
차도 리필해 주고, 참 서비스가 좋은 곳이다.
엘런은 쿠키와 함께 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여자는 그때까지 어디 가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를 주시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체할 것 같이 뚫어져라 보는 시선이었으나 엘런은 개의치 않았다.
그랜드 소드마스터보다야 덜 따가운 눈이었기 때문이다.
엘런은 디저트까지 한 방에 끝내고 입가를 닦았다.
“잘 먹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계산을 할 차례.
메뉴판이 없어서 방금 자신이 먹은 게 뭔지도 모르고 얼마인지도 모른다.
“얼마예요?”
절레- 절레-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가라는 건가?
아니면 첫 방문이니까 오늘의 차는 서비스?
다양한 가설이 떠올랐지만, 왠지 여자의 표정과는 전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뭐 공짜라니까.
엘런은 염치없이 또는 양심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인 후 미소 지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
여자의 미간이 살짝 흐트러진다.
딱히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럴 거면 차를 맛있게 주지 말던가.
‘안 졸리고 시간도 비면 또 와야겠네.’
엘런은 인사와 함께 집에서 나갔다.
다시금 혼자만 남게 된 여자.
그녀는 엘런이 먹은 찻잔을 다시금 깨끗하게 씻었다.
죽은 듯이 조용했던 집이 아까 그 사람으로 인해 인기척과 활기를 되찾았다.
인간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본 게 언제더라.
수십 년, 아니면 수백 년이려나.
어쨌든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억겁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이젠 언어도 다 까먹어갈 때쯤 집에 누군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놀랐다.
원래 사특한 마음을 지녔거나 평범한 인간은 올 수 없도록 미로형 결계를 쳐두었거늘.
그걸 뚫음과 동시에 이 집의 문까지 열고 들어왔다.
그리곤 한다는 소리가.
“냉녹차 한 잔만 주세요…….”
여자는 그의 말투, 어조를 따라 하며 중얼거렸다.
목은 너무 오랜만에 말을 해본 탓에 목소리가 쩍쩍 갈라진다.
그러나 본래 가지고 있던 아리따운 미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자는 다시금 교복을 입고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다짜고짜 남의 집에 불쑥 찾아와 차를 요구한 남자.
나른함과 나태함이 짙게 깔린 손짓과 눈,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 것이지만 그 얼굴은 낯이 익었다.
그래서 내쫓지 않았다.
말과 언어도 다 잊어가는 판국에 얼굴이 익숙하단 건 분명 자신과 깊숙한 연관이 있을 테니까.
물론 기억은 안 나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에서 자신은 남자의 바람대로 차와 쿠키를 대접했다.
그 자는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르는 듯했다.
시종일관 자신을 찻집 주인 보듯 대했으니 말이다.
물론 본인은 찻집 주인보다야 조금 더 위대한 자지만 별다른 상관은 없다.
그녀는 남자가 떠나기 전 내뱉은 말을 더듬더듬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다음에 또 올게요…….”
이번에는 그 냉녹차란 걸 준비해봐야겠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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