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53)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53화(53/354)
#053화. 교양이 철철 넘쳐(1)
사서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처음에는 기겁하다가, 엘런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후우…….”
그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녀는 곧이어 엎어진 바닥에서 일어섰다.
사서는 그제서야 주변의 시선이 모두 이곳으로 꽂혔음을 깨달았다.
“죄, 죄송합니다. 모두 하던 일 계속하세요.”
학생들은 저들끼리 이쪽에 대해 수근거리며 흩어졌다.
사서는 마지막으로 엘런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아는 사람이랑 너무 닮아서…….”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그, 그런가요. 어찌 됐든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것보다 영웅물 같은 소설책이 어딨는지 알고 계신가요?”
“잠시만요.”
사서는 책상 위 수정구를 몇 번 조작하다가 다시금 엘런을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또 말문이 막혔는지 ‘허업’하고 숨을 집어삼킨다.
엘런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사서는 자신의 실수를 퍼뜩 깨닫고 허둥지둥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어, 어우. 오늘 내가 왜 이러지……? 정말 죄송해요. 평소에는 안 이러는데…….”
“제가 사서님이 아시는 분이랑 많이 닮았나 보네요.”
“네, 네. 솔직히 얼굴이 막 닮은 건 아닌데 그 분위기가 닮으셨네요.”
사서는 수정구에 나온 위치대로 도서관 한구석을 손짓했다.
“3층 오른쪽으로 가시면 소설책 코너예요. 거기서 원하시는 걸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엘런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사서가 얘기한 3층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 내내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꽂혔으나 애초에 신경 쓰던 것들은 아니다.
3층에 도착한 그는 중앙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혼자서 책상 하나를 다 쓰고 있는 여자다.
그녀는 양옆으로 두꺼운 책을 쌓아 성벽을 만들고 의자 위에서 한참을 끙끙거렸다.
펜의 끝을 입에 물며 잘근잘근 씹는 얼굴은 누가 봐도 뭐가 잘 안 되는 이의 표본이다.
“신경 쓰지 말자.”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그러니 직진만 할 테다.
엘런은 그녀를 보지 못한 척 소설책 코너로 들어갔다.
도서관에 오는 학생들 대부분의 목표는 공부이기에 이 코너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사람이 없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시리즈를 누군가 빌려 가지 않았을 테니까.
“종류가 많네.”
엘런은 자신이 아는 것부터 모르는 것까지 집합된 도서관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개중에는 눈길을 끄는 소설도 있었고 그가 기억하는 명작도 있었다.
“이거 재밌지.”
엘런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쓰레기 마법사의 회귀]마력 장애를 가진 마법사가 한 가지 마법밖에 쓰지 못하다가 그걸로 최강을 먹지만, 끝내 멸망을 막지 못하고 회귀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심심한 새벽, 잔잔하게 흐르는 스토리에 맛이 들려 계속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엘런은 이 책을 다시금 책장에 집어넣었다.
한 번 본 건 절대 다시 보지 않는다.
엘런이 책을 보는 규칙이었다.
한 번이라도 눈에 담았다면 그건 어차피 문장부터 온점까지 전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럼 책을 다시 읽는다 해도, 처음 느꼈던 긴장감과 박진감 대신 지루함만 느껴질 뿐이다.
엘런은 책장 사이사이를 거닐며 못 봤던 소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6년간의 백수 생활을 거치면서 그는 정말 대부분의 소설을 섭렵했다.
눈길이 가는 거면 본 거고, 그렇지 않다면 관심도 없는 장르였다.
엘런은 그렇게 코너 끝까지 왔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종류가 많은 게 아니었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면서 같이 내려간 시야로 무언가 들어온다.
[완벽한 대마법사]엘런은 그 책으로 저도 모르게 손을 움직였다.
스으윽-
책장에서 얼마나 묵은지 모를 먼지와 함께 책이 꺼내졌다.
주변으로 퍼진 매캐한 그것은 코를 간지럽혔고 목을 매이게 했다.
엘런은 표지 위를 엎은 거미줄과 먼지 덩어리를 탈탈 털었다.
책 표지는 본래 반짝이는 은색이었던 걸로 보인다.
지금은 색이 바래고 종이마저 누렇게 변했지만 말이다.
엘런은 책의 표지를 펴고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 사이사이에서 세월의 향기가 코로 깊숙이 들어온다.
“고전 소설인가?”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
고전도 고전만의 맛이 있으니까.
너무 최근 것만 읽던 사람에겐 되려 고전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다.
“저자는 누구지.”
엘런은 책을 돌려보고 표지를 들춰보며 저자의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눈에 보이는 거라곤 ‘A.D’라는 철자 하나가 끝이었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는 건가.”
보통 습작을 내는 작가들이 가끔 익명 뒤에 숨어 책을 발간한다.
뭐, 재미만 있으면 상관없기에 그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엘런은 ‘완벽한 대마법사’란 책을 품에 끼고 책장 사이에서 나왔다.
이제 책을 빌리고 성으로 가서 신명 나게 읽기만 하면 된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디저트도 먹으면서 읽는 소설은 유독 더 재밌고 잘 읽힌다.
엘런은 책을 빌리기 위해 1층에 있는 사서에게로 내려갔다.
사서는 엘런이 가져온 책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서관에 이런 책이 있었나?”
그녀는 엘런이 건넨 책을 들고 수정구 가까이 가져갔다.
삐빅- 삐빅-
수정구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낸다.
사서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수정구와 책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녀는 엘런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이 책을 어디서 찾으신 건가요?”
“말씀해주신 소설책 코너에 있던데요.”
“그, 그래요? 거긴 나도 자주 가는 곳인데 왜 한 번도 못 봤지?”
“구석 끝에 있어서 눈에 잘 안 띄기는 했어요.”
사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책을 살펴보았다.
역시 처음 보는 제목과 표지, 저자다.
사서는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 책은 대출이 어려우실 것 같아요.”
“……왜 그렇죠?”
“일련번호도 없고 너무 오래되고 해서 보고한 다음에 처분해야 할 것 같거든요.”
“처분……이요?”
“저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오래된 책은 보통 처분해서요. 그전까지는 도서관 어디서든 이 책을 읽으셔도 돼요.”
엘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대신 이거라도 드시면서 읽으세요.”
사서는 엘런에게 냉녹차와 마카롱을 건넸다.
“차는 생활 구역에 있는 찻집에서 산 거예요. 맛이 좋으니까 만족하실 거예요.”
“냉녹차네요.”
“맞아요.”
냉녹차는 안 파는 걸로 아는데?
엘런은 일회용 컵에 담긴 냉녹차를 흔들어 보다가, 사서에게 물었다.
“1학년 생활 구역에 찻집이 두 개인가요?”
“아니요. 하나예요.”
그래. 분명 하나다.
자신이 다녀가고 메뉴 개발이라도 한 걸까.
하긴, 그런 기본적인 메뉴도 없으면 찻집이라고 하기 힘들지.
엘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냉녹차 위로 피어오르는 향을 맡았다.
저번처럼 획기적인 향기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흔하다고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냉녹차 한 잔에 그리 경이로운 걸 원한다면 그것 자체도 웃긴 일.
엘런은 고개를 작게 숙이며 다시 도서관에 남는 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리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젠장.”
오늘부터 시험 기간이었나?
왜 이렇게 자리 잡기가 빡센 거야.
엘런은 1층을 포기하고 2층으로 갔다가 2층마저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했다.
물론 도서관은 5층이라 자리가 더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그물에 구멍 뚫린 것에 불과하다.
촘촘한 학생들 사이에 한 자리 빈 게 끝이란 말이다.
엘런은 반 포기 상태로 설렁설렁 3층에 올라왔다.
그때 보였다.
드넓은 책상을 혼자서 쓰고 있는 여자 한 명이.
“이럴 때는 저 투기가 쓸모있는 건가.”
1학년 모두 카르디아의 기에 눌려서 가까이 올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모두 눈앞에 빈자리가 있어도 못 본 척 넘겨버렸다.
그러나 엘런은 아니다.
그는 책에 집중 중인 카르디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물론 가까이 앉지는 않았다.
멀찍이 떨어져서 책을 폈다.
엘런은 힐끔 그녀를 쳐다봤다.
카르디아는 아까 처음 봤을 때부터 전혀 통일성 없는 제목의 책들을 두고 씨름 중이었다.
딱히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다.
엘런은 냉녹차를 한 번 홀짝이며 페이지를 넘겼다.
책의 구성은 고전인 만큼 익숙지 않으면서도 적응하긴 어렵지 않았다.
일기장 같은 형식으로 쓰인 이것은 에피소드의 벌어진 시간대와 날짜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그 날짜는 무려 지금으로부터 몇백 년 전.
판타지 소설임이 틀림없다.
엘런은 날짜들을 유심히 보다가 무언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날씨가 맑음인 건 왜 적어 논거야.’
먹구름이라도 꼈으면 흐림이라고 적을 셈이었나?
그러나 책을 어떻게 쓰든 그건 작가의 마음이기에 엘런은 그저 눈만 움직였다.
내용은 나름 흥미로웠다.
2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써진 이것은 화자가 어떤 마법사를 보면서 느낀 감정들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시점 자체도 굉장히 특이하지만, 그 대상인 마법사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전부 ‘그 녀석’, ‘그놈’, ‘이 새끼’ -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그 마법사를 표현한 방법은 이렇게 거치면서 제목은 완벽한 대마법사라고 지었다.
“웃긴 작가네.”
엘런은 미소를 띤 채로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책의 시작은 화자가 대마법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
“흐으…….”
숲에서 태어나고 숲에서 살아가는 화자는 대마법사와 우연히 마주쳤다.
“하아…….”
둘은 서로의 강대한 기운에 놀라면서도 긴장을…….
“에휴…….”
“…….”
엘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곧장 카르디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 한 번만 더 한숨 쉬면 영원히 숨 못 쉬게 만들어준다.”
“어, 언제 와 있었어?”
“아까부터 와 있었는데, 네 한숨 소리에 귀청이 다 떨어지겠다.”
“내, 내가 한숨을 언제 그렇게 쉬었다고 그래.”
엘런은 지금 녹음기가 없는 게 아쉬웠다.
그것만 있었다면 이놈의 소음은 구속감이다.
“왜 그렇게 한숨질인데. 뭐가 잘 안 돼?”
“이해가 안 돼서 그래. 다들 왜 이리 어렵게 사는 거야?”
카르디아가 보고 있던 책은 ‘귀족의 예절과 교양’이란 제목이었다.
그녀와는 거리 단위가 광년(光年)으로 따져야 할 만큼 멀어 보이는 책이다.
그는 책의 페이지를 몇 장 넘겨보았지만 정말 제목 그대로의 내용이었다.
엘런은 정말 순수한 의미로 물었다.
“네가 이걸 왜 읽고 있냐?”
카르디아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용병이 살면서 대가리 멍청한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욕을 먹는 줄 아냐. 배운 거 없이 칼 먼저 잡았다고 온갖 멸시와 천대를 다 받어.”
“…….”
“우리 아부지가 항상 말했어.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그래서 아누비샨 용병단은 약관이 안 된 애들이라면 퀘스트보다 학교에 먼저 보내. 가서 글을 배우고 지식을 쌓고 오게 하지.”
“아버지가 지혜로우시네.”
“그치? 그래서 나도 이렇게 배우고 있는 거야. 용병이라는 편견 때문에 무식하단 소리 듣는 게 난 세상에서 가장 싫거든.”
엘런은 ‘흐음’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런 의미라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엘런도 귀족으로 살면서 다른 신분과 직업에 대한 편견이 뭔지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 만남 때 무시당하는 걸 병적으로 싫어했던 건 이러한 이유에서였나.
그는 읽고 있던 ‘완벽한 대마법사’를 덮고 냉녹차를 쭉 들이켰다.
그리곤 그녀의 옆에 앉았다.
“뭐, 뭐야?”
“넌 운이 좋아. 방금 뛰어난 선생님을 얻었으니까.”
“내가? 어디서?”
“지금 네 눈앞에 있잖아.”
곧이어 들려오는 무지한 자의 대답.
“푸흐읍……!!”
이년이?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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