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School Genius Graduates to Become Lazy RAW novel - Chapter (56)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56화(56/354)
#056화. 교양이 철철 넘쳐(4)
빌레드도 이번만큼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되물었다.
“……네 구역?”
물론 입가의 미소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눈썹과 살짝 찌푸려진 미간, 미소의 만남은 완벽한 조소를 만들어냈다.
너의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고 조금도 이해가 안 간다는 어조는 덤이었다.
엘런은 태연히 웨이터가 가져다준 조각 케이크를 제 앞에 가져왔다.
고급스러운 문양의 포크로 케이크는 부드럽게 잘린다.
엘런은 그 포근한 절삭력처럼 느긋하게 말했다.
“그럼 이 생활 구역의 주인이 누구지?”
“…….”
“너는 내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그럼 누가 이 구역의 정점이야?”
빌레드 데 카사블랑카는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서 자신의 이름을 꺼내는 건 본인의 꼴만 우스워지게 만들뿐더러, 다른 강자들은 엘런보다 약하다.
설령 강하더라도 아직은 증명되지 않았다.
엘런은 그 정적 사이에서 여전히 디저트를 음미했다.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집고 입에 넣는다.
그렇게 우물거리며, 그렇게 반쯤 감은 눈으로, 그렇게 망설임 없이 엘런은 말했다.
“나밖에 없어.”
짧은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노블의 안을 울리고도 남아서, 모든 학생의 귀로 처박혔다.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의 적대자는 입술을 깨물 뿐 이빨을 드러내지 못했고, 방관자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 숨 막힐 듯 무거운 분위기를 엘런은 한 마리의 고래처럼 자유롭게 유영했다.
평생을 이 속에서 살아온 듯한 자연스러움은 태산 위에 사는 용처럼 고고하다.
엘런은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성에 가만히 있던 게 아니야. 빌레드 데 카사블랑카.”
“그럼 왜지?”
“아무것도 안 해도 전부 쳐부술 자신이 있었거든.”
“……오만하군.”
엘런은 옅게 웃었다.
카사블랑카는 절대 승산이 없는 싸움에는 참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빌레드란 남자가 계속 고개를 쳐드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정말로 자신이 우습게 보였거나.
엘런은 왠지 둘 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으나 전자에 더 강하게 베팅했다.
왜냐하면 저번 평민들의 습격, 지금 빌레드의 태도로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다.
엘런은 접시 위에 케이크를 거의 다 비워가며 말을 이었다.
“너. 알고 있지?”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알고 있잖아.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거든.”
엘런의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마주한 빌레드는 살짝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 분명 알고 있다.
자신들이 장학생의 약점을 알고 있단 사실을 들켰다.
벌써 이쪽의 패가 상대에게 훤히 드러난 셈이다.
빌레드는 카사블랑카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엘런은 여기서마저 정보를 얻었다.
“이거구나. 네가 진실을 들켰을 때 짓는 표정.”
“……뭐라고?”
“좋아, 좋아. 그럼 거짓말도 다 들통났으니까 어디 한번 내 생각을 들어볼래?”
엘런은 강물처럼 흐르는 생각의 급류로 하나의 결론이 이어졌다.
“너희 귀족이 평민들을 이용해서 나를 치게 만들었어. 맞지?”
“…….”
“……!!”
장내의 분위기가 한층 더 얼어붙었다.
카르디아는 화들짝 놀란 눈으로 엘런과 빌레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것을 같이 계획했던 옆 테이블의 귀족 학생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정확히는 빌레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다.
과연 뱀의 혀라는 이명의 가문답게 다른 학생들이 식은땀을 흘리고 발을 가만두지 못할 동안, 빌레드는 ‘하핫’하고 웃었다.
“이런 폭탄 발언을 할 정도면 증거는 당연히 있겠지? 증거도 없이 억측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증거? 글쎄, 네 말대로야. 그냥 내 감이었거든.”
엘런은 빌레드 앞에 웨이터가 가져다 놓은 조각 케이크까지 집어 들었다.
어차피 그는 먹을 정신이 아닐 거다.
지금 자신의 말이 장난인지 진짜인지부터 재검증에 들어가야 할 테니까.
엘런은 짙게 웃으며 케이크를 잘라 먹었다.
이건 초콜릿 맛이라 더욱 기대된다.
가끔은 여기 와서 디저트만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케이크는 맛이 뛰어났다.
빌레드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아주 살짝 거칠어진 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에게 사과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말도 안 되는 모함으로 우리를 모욕했을뿐더러 명예를 더럽혔잖아.”
“꼬우면 맞짱 뜨던가.”
“…….”
모두의 입이 다시금 닥쳐졌다.
드르르륵-!
엘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케이크도 다 먹었으니 이 합석에 볼일은 끝났다.
더 이상 이 불편한 만남을 이어갈 이유도 사라졌으니 계속 앉아 있어봤자 머리만 아플 뿐이다.
“가자, 카르디아.”
“으, 응!”
엘런은 카르디아와 함께 정문으로 나갔다.
“소, 손님! 계산은……!”
“저기 귀족들에게 달아둬.”
“오늘 먹은 거 공짜 밥이었어? 에잉, 그럼 더 먹는 건데.”
거대한 폭풍들이 노블에서 나가고, 혼자 남겨진 빌레드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그의 무리에 있던 학생들은 슬금슬금, 조심조심 빌레드에게 다가갔다.
“너, 너무 신경 쓰지 마. 천한 것들의 성품이 어디 가겠어?”
“그래, 그래. 어차피 밖에 나가면 눈도 못 마주칠 것들이라니까.”
빌레드는 무어라 중얼거렸다.
가까이 있던 학생들도 듣지 못했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결국 그들은 다시 한번 빌레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고 한…….”
덥석-!!
콰아아앙-!!
입을 연 학생의 목이 붙잡히고, 테이블에 처박아진다.
유리 접시는 전부 깨져나가고 테이블마저 금이 쩍쩍 갈라졌다.
주변의 학생들은 깜짝 놀라 새된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끄으으으윽…….”
그러나 오히려 당사자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여기서 입을 열면 더욱 험한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걸 직감한 탓이다.
초 단위의 짧은 시간으로 벌어진 폭력.
그 학생의 목뼈를 부숴버릴 것처럼 붙잡은 빌레드는 악귀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엘런 이안느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해. 그리고 전부 나한테 보고해. 알아들었어?”
“으, 응. 알겠어, 빌레드.”
“벌레 같은 새끼.”
그는 뇌까리듯 말하며 목을 잡은 손 그대로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 학생은 고통도 잊은 채 벌떡 일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당장 오늘부터야. 오늘부터 엘런 이안느의 모든 걸 알아낸다.”
빌레드는 엘런이 나간 노블의 입구를 노려보았다.
그 갑옷처럼 겹쳐 입은 비밀들…….
전부 거둬내 주마.
***
중앙성으로 돌아가는 길.
카르디아는 엘런의 옆을 쪼르르 따라 걸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입은 계속 오물거리고 손가락은 꼼지락거렸으며 눈은 가만두지 못했다.
결국 보다 못한 엘런이 먼저 발걸음을 멈춰 섰다.
“왜. 뭔데.”
“아, 아니 별건 아니고…….”
“별거 아니면 빨리 말해. 피곤하니까.”
카르디아는 자신 쪽으로 돌아선 엘런에게 애꿎은 뒷머리만 매만지며 말했다.
“오, 오늘은 엄청 고마웠어. 예법 일도 그렇고 아까 식당에서도 그렇고. 네가 아니었으면 난 퇴학 당했을지도 몰라.”
그때의 카르디아는 정말 주먹을 날리려고 그랬다.
만약 그랬다면 그 앞에 누가 있더라도 그녀를 말릴 수 없을 테고 유혈이 낭자했을 거다.
엘런은 그걸 손짓 한 번으로 막았다.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그녀의 학교생활을 지켜준 셈이다.
거기다 카르디아 쪽으로 쏠려 있던 빌레드의 공격성도 전부 그가 끌어안았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카르디아라도 엘런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진 알 수 있었다.
카사블랑카를 이렇게 완벽한 적으로 돌린다는 건 밖에서도 안에서도 편한 생활은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엘런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카르디아의 어깨만 툭툭 두드렸다.
“됐어. 나중에 아이스크림이나 사.”
“저, 정말로 그거면 돼? 아까 그놈 얼굴 봤잖아. 적당히 끝낼 기세가 아니던데.”
“그럼 그러라지. 나도 적당히 끝낼 생각은 없었어.”
이건 진심이었다.
엘런은 집에만 있던 탓에 누굴 적으로 돌려본 적도 드물지만, 적으로 돌린 상대를 봐준 경우도 드물다.
애매하게 잔불을 남겨놓으면 대화재로 번지기 마련.
그러나 잔불은 연소할 껀덕지가 없으면 알아서 힘을 잃어버린다.
내일부터, 아니 당장 오늘부터라도 빌레드의 귀족 무리는 자신의 약점을 눈에 불을 켜고 찾을 것이다.
하지만 백날 찾아보라지.
그들이 가져갈 건 마카롱 포장 봉지와 아이스크림 막대밖에 없다.
엘런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아이스크림 생각하니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얼른 집에 가야지.
그렇게 중앙 광장으로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어? 시에나다.”
“그러네.”
“둘이 같이 있었구나. 난 또 둘이 동시에 사라졌길래 나 몰래 수련이라도 하나 싶었다. 아니면 그 소문이 정말이더냐?”
“소문?”
카르디아와 엘런의 고개가 동시에 틀어진다.
아까 마주치는 학생들마다 수군거렸던 건 이 소문 때문이었나?
시에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생활 구역에 너희 둘이 연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느니라.”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내, 내, 내가 왜 이런 미친놈이랑 연인이야……! 말도 안 돼!”
“너무 열 내지 말거라. 소문은 소문에 불과할 뿐이니, 이렇게 연연할 필요 없느니라. 근데 카르디아. 얼굴이 너무 빨개진 것 아니더냐?”
“응……?”
카르디아는 자신의 볼 위로 손을 대보았다.
손이 데일 것처럼 뜨겁게 달궈진 뺨이 만져졌다.
“내, 내가 왜 이러지?”
“뭘 잘못 먹었나?”
엘런은 제 손을 그녀의 이마에 대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열병이 아닐까 의심될 만큼 뜨거웠다.
심지어 그 열은 더욱 오르고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지만 분명 오르고 있었다.
고기도 익을 것 같은 열에 엘런은 더욱 손을 이마와 밀착시켰다.
“기다려봐. 마력으로 열을 식혀줄…….”
“아아아악! 떨어져!”
카르디아는 이리저리 몸부림치며 그의 손을 이마에서 떼어냈다.
“뭐야. 왜 이래?”
“네, 네가 붙어 있으니까 더워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러니까 프리징으로 시원하게 해주겠다고.”
“도, 도움 안 돼! 그냥 바람에 식힐 거야!”
“그럼 그러든가.”
엘런은 손으로 모았던 마력을 퍼뜨렸다.
시에나는 그런 그에게 물었다.
“어디 있다가 이리 온 것이냐?”
“도서관에 갔는데 얘가 귀족 예법 책을 보고 있더라고. 그거 가르칠 겸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왔어.”
“귀족 예법……? 그걸 엘런 네가 알고 있단 말이냐?”
“그래. 안 되냐?”
“신기해서 그랬느니라. 엘런은 평민인데 귀족 예법을 알고 있다니.”
“엄청 잘 알고 있던데?”
카르디아의 증언까지 합쳐지니, 시에나는 ‘호오’하고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주억였다.
카르디아는 거기다 말을 덧붙였다.
“어렸을 때 어느 귀족 도련님 하인으로 있었데. 거기서 배웠다나 봐.”
“정말이더냐?”
“……그래.”
엘런은 이제 와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엘런에 대한 정보를 또 한 가지 얻었구나.”
“좋겠네, 좋겠어.”
“나는 오늘 찻집에 갔다 왔느니라.”
찻집 얘기에 엘런의 귀가 쫑긋거린다.
시에나의 눈썰미는 그걸 놓치지 않았고 주제는 빠르게 찻집으로 전환되었다.
“갔더니 인테리어도 특이하고 맛도 괜찮더구나.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으에엑. 차를 뭔 맛으로 먹냐. 쓰기만 한데.”
“차도 나름의 맛이 있느니라. 그 쓴맛은 다과로 중화시키면서 향을 느끼는 것이지.”
“높은 분들 입맛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정말로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 한 명, 관심 없는 척하는 사람 한 명.
시에나는 후자의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떠냐, 엘런. 내일 수업 끝나고 같이 가 보겠느냐?”
“나, 나도 갈래.”
“응? 카르디아는 차가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조, 좋아해 보지 뭐!”
“엘런은 어찌할 테냐?”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좋다. 그럼 내일 수업에서 보자꾸나. 내일 수업은 우리 셋이 모두 있는 수업이니.”
“아, 맞다! 그랬지!”
“잘들 가거라.”
“그래.”
셋은 중앙 광장에서 헤어졌다.
내일 있을 키아 데 푸글리시 교수의 전투 마법 수업.
그것은 학기 첫 조별 과제의 시작이었다.
마법학교 천재는 나태하기 위해 졸업한다
지은이 : 강창사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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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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